중앙멤버십

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글로벌 포커스]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드림팀 

트럼프에게 ‘NO’라고 말하는 전쟁영웅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국방장관과 국토안보장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전·현직 장성 발탁…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대외정책의 안전판 역할

▎새로 단장한 백악관 집무실의 트럼프 미 대통령. 그의 오른편 탁자에는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흉상이 놓였다. / 사진·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운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원수와 조지 패튼(1885~1945) 대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와 언론 인터뷰에서 수차례나 두 전쟁 영웅을 칭송한 적이 있다. 그는 “맥아더와 패튼 장군이 승리자였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쟁을 벌였다”고 높게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9일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가진 제2차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미군의 이라크 모술 전투를 언급하며 “미군이 모술에서 어떻게 전투를 벌이는지 상황을 패튼과 맥아더 장군이 안다면 무덤에서 통곡할 것”이라고 오바마 정부의 이슬람국가(IS) 소탕 전략을 비판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도 “패튼 장군이 지휘를 맡았다면 IS를 망설임 없이 쓸어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는 맥아더와 패튼 같은 전쟁영웅의 삶을 다룬 전쟁영화를 좋아하고, 이들처럼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장군들이 있어야 미국이 강해진다고 생각해왔다. 맥아더 장군은 2차대전 때 필리핀을 탈환하는 등 태평양 전투에서 일본군을 패배시키면서 항복을 받아냈고, 6·25전쟁 때는 유엔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미국의 대표적인 군사전략가다. 패튼 장군은 2차대전 당시인 1943~45년 북아프리카와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여러 전투를 지휘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큰 활약을 한 인물로, 지금까지도 미국 최고 지상군 사령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국토안보장관에 해병 4성 장군 출신인 제임스 매티스와 존 켈리를,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에 현역 육군 중장 출신인 허버트 맥매스터를 기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을 기용한 또 다른 이유는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는 군인들의 명령체계뿐만 아니라 충성심과 희생정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13세부터 18세 때까지 뉴욕 군사학교를 다녔다는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내 학창시절은 군대와 같았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장군들의 풍부한 경험과 안보에 대한 지식도 높이 평가해왔다.

1950년 조지 마셜 이후 첫 장군 출신 국방장관


▎2003년 이라크전 당시의 해병1사단 지휘부.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존 켈리 부사단장(현 국토안보부장관), 제임스 매티스 1사단장(현 국방장관) 조셉 던포드 연대장. / 사진제공·미 국방부
실제로 이들 장군 3인방은 모두 트럼프가 좋아하는 전쟁 영웅이다. 이들은 2001년 9·11 테러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해 전공을 세웠다. 이들은 모두 이라크전에 참전했고 최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했다. 매티스 장관은 2004년 전투가 격렬했던 이라크 팔루자에서 해병대를 이끌었고, 켈리 장관은 2003년 바그다드 공격의 선봉을 맡았다. 맥매스터는 2005년 이라크 북부 탈 아파르 전투에서 알카에다를 축출했다.

이들 3인방에게는 모두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매티스 장관은 1950년 조지 마셜 이후 처음으로 장군 출신 국방장관에 오르며 ‘문민 국방장관’의 전통을 깼다. 켈리 장관은 2002년 국토안보부가 창설된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 출신이 아닌 장관이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의 콜린 파월(1987~89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현역 장성에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됐다. 안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세 자리 직책에 장군 출신이 동시 기용된 것은 미국 역사에서 트럼프 정부가 처음이다. 장군 출신 3인방이 미국의 안보정책을 좌우하는 최고 회의체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함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사상 처음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소신파라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상관에게 ‘No’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왔다. 매티스 장관은 2001년 상부 허가 없이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알카에다와 대격전을 치렀고, 2004년에는 이라크 팔루자 공격을 중단하라는 상부 명령을 ‘정치적’이라고 판단해 따르지 않았다.

켈리 장관은 남부사령관 시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려고 하자 오히려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2005년 이라크전에서 안전한 외곽에 주둔하라는 상부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심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작전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또 조지 W 부시 정부의 이라크전 개전 방식을 비판하다가 준장 진급 때 누락됐다. 트럼프 대통령을 사사건건 비판하고 있는 야당인 민주당과 주류 언론은 이들의 소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압도적 지지로 통과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매티스 장관은 찬성 98표, 반대 1표를, 켈리 장관은 찬성 88표, 반대 11표를 기록하며 인준을 받았다.

이들은 장관과 백악관 참모로 발탁된 이후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발언이나 정책을 수습하는 등 외교·안보 정책의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회는 물론 동맹국들과 국제사회도 이들의 믿음직한 행보를 신뢰하고 있다. 매티스 장관의 경우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물고문 부활을 지지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담배 한 갑과 맥주 한두 잔으로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게 낫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 장관은 공개적으로 고문이나 워터보딩(waterboarding)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해왔다”면서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나의 고문 지시를 무시할 수 있다. 내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줬기 때문”이라면서 물고문 부활 입장을 철회했다. 워터보딩은 얼굴에 천을 씌우고 물을 부어 호흡을 힘들게 하는 고문의 일종이다. 중앙정보국(CIA)은 9·11 테러 이후 테러 용의자 수사에 워터보딩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인권 침해 논란이 일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물고문을 금지했고, 2015년에는 법으로도 금지됐다. 매티스 장관은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국제법과 무력충돌법, 제네바협약, 미국법 등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매티스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지난 2월 2~4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위협에 직면해온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운동 당시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었다. 매티스 장관은 한·미와 미·일 동맹 공조를 강조하고 대북 억제력 제고를 확인하는 등 한·일 양국의 불안감을 해소시켰다.

미국의 새 정권 출범 후 부임한 국방장관들이 통상 첫 해외 방문지로 유럽이나 중동을 택했던 전례와 달리 매티스 장관이 첫 해외 방문지로 한·일을 선택한 것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매티스 장관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의 경우 한국 방문에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일본 방문에선 “주일 미군 주둔과 관련된 일본의 비용 분담 형식은 다른 나라에 모범이 된다”고 밝혀 한·일 양국을 안심시켰다. 매티스 장관은 2월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방장관 회의에서도 “나토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동맹”이라면서 “미국은 나토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혀 나토 회원국들의 불안을 무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에 의존하기만 하고 충분한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다면서 NATO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식 체제’라고 비판한 바 있다.

매티스 장관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입장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천명했지만, 매티스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등 역내 세력 확장 움직임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가능성을 일축했다. 매티스 장관은 2월 20일 이라크를 전격 방문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수습했다. 매티스 장관은 “미국은 누군가의 석유를 빼앗으려 이라크에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석유 비용을 지불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리품은 승자의 것이듯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차지했어야 했다”고 말해 이라크의 반발을 초래했었다.

안보 사령탑들의 멕시코, 이슬람 달래기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조지 패턴 장군. / 사진·중앙포토
켈리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멕시코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데 일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불법 체류자들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5일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 미국으로 오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마약사범, 강간범으로 비하하며 국경 장벽 건설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 건설비를 전적으로 멕시코에 부담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체류자들을 단속해 추방하라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에 따라 불법 체류자들 중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추방된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멕시코를 경유해 미국으로 들어온 불법 이민자들을 국적에 상관없이 멕시코로 되돌려보낼 계획이다. 미국에는 최대 1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자가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멕시코 출신이다. 멕시코 정부는 국경 장벽 건설비를 한 푼도 낼 수 없다는 입장이며 불법 체류자 강제 추방 정책에도 강하게 반발해왔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진짜 나쁜 놈들을 우리나라에서 쫓아내겠다”면서 “그런 나쁜 놈들을 쫓아내는 것은 군사작전이 될 것”이라고 밝혀 멕시코 정부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켈리 장관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함께 2월 23일 멕시코를 방문해 “대규모 추방이나 군 동원은 없다”면서 멕시코 정부를 달랬다. 켈리 장관은 “이민과 관련된 미국의 모든 정책은 인권 존중의 기반 위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집행될 것”이라면서 “멕시코 정부의 긴밀한 협조 아래 행동을 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2월 23일 취임 후 첫 NSC 회의를 주재하며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radical Islamic terrorism)’이라는 용어에 문제를 제기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테러리스트들은 이슬람의 교리에 반하며, 이슬람을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 용어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는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이란 용어를 사용할 경우 이슬람 전체를 적대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대(對)테러전에 불리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운동 때부터 애용해 온 용어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테러리즘에 나약하게 대처한다고 비난할 때 주로 사용했었다. 이 용어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창립한 극우 인터넷 매체인 브레이트바트 뉴스에서 국가안보담당 편집자를 지낸 헝가리 출신인 서배스천 고르카 백악관 대테러 담당 보좌관이 만든 것이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까지 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2월 28일 의회 국정연설에서도 이 용어가 들어가지 않도록 연설 담당인 스티븐 밀러 수석 정책고문 등을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으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면서 반(反)이민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비록 맥매스터 보좌관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지는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신을 가감 없이 피력했다는 점에서 볼 때 앞으로 NSC를 주도하면서 안보정책의 사령탑으로서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낼 것이 분명하다.

‘미친 개(mad dog)’이자 ‘승려 전사(warrior monk)’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1950년 이후 장군 출신으로 국방장관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다.
실제로 맥매스터 보좌관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외교·안보에 있어) 상대방일 뿐 친구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으로 낙마한 마이클 플린 전 보좌관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플린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세르게이 키슬야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 미국의 러시아 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했는데 이를 숨겼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도 거짓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진 사임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또 나토와의 안보 협력은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트럼프 대통령과 배넌 수석전략가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들 3인방은 군인정신으로 철저하게 무장됐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적인 지식과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온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매티스 장관은 ‘한국전 이후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전투 지휘관’으로 불리는 등 ‘장군 중의 장군’이란 말을 들어왔다. 1968년 고교 졸업 후 사병으로 해병대를 제대한 그는 센트럴 워싱턴대에서 학군단(ROTC)을 거쳐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전 등에 참전하면서 전투 경험을 쌓은 그는 해병 1사단장이던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바그다드 진격이 늦다며 제1 연대장을 전격 해임하기도 했다.

강한 카리스마와 직선적이고 거친 화법 때문에 ‘미친 개(mad dog)’란 별명이 붙은 그는 제1 해병원정군 사령관, 합동군 사령관, 중부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2013년 전역했다. 그는 <손자병법>과 <전쟁론>은 물론 남북전쟁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의 전기를 비롯해 각종 병서뿐만 아니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 7000권의 책을 독파한 독서가이자 사상가로도 유명하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흐트러지지 않는 태도, 군에 대한 열정과 학문·사상에 대한 깊은 탐구심 때문에 ‘승려 전사(warrior monk)’라고 불리기도 한다.


▎존 켈리 국토안보부장관은 2002년 부서 창설 이래 첫 비(非)민간인 출신 장관이다. / 사진·중앙포토
매티스는 오바마 정부가 추진해온 이란과의 핵 협상을 반대해왔다. 그는 “이란과의 협상으로 얻어낸 것은 핵 개발 일시정지일 뿐 중단은 아닌 만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의회 청문회에서 오바마 정부가 중동에 개입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IS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태동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북한 정권을 이란 정권처럼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2013년 상원 청문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확대를 주장했다. 또 중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공격적 행보를 이어간다면 중국을 견제할 정책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클린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경우 국방장관이 확실시됐던 미셸 플루노이 전 국방부 차관은 “매티스는 존경받는 군사사상가”라며 극찬했고,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선택”이라고 호평했다. 의회는 그가 국방장관이 되도록 하기 위해 군인의 경우 전역 후 7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에 오를 수 있다는 인사 규정의 예외를 적용했다. 지금까지 예외가 적용된 인물은 1950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임명한 육군참모총장(대장) 출신인 조지 마셜 국방장관밖에 없다.

켈리 장관도 사병 출신으로 대장까지 역임한 타고난 무골(武骨)이다. 1970년 해병대에 입대했고 1972년 하사로 전역했다. 이후 보스턴대에 진학했고 1976년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제1사단 부사단장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2003년 바그다드와 티그리트 공격, 2004년 4월 팔루자 공격을 각각 지휘했다. 제1 해병원정대사령관, 국방장관 보좌관 등을 거쳤으며 지난 1월 남부사령관을 끝으로 45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던 아들이나 딸을 잃은 최고위 장성 출신 인사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 로버트 켈리 해병 중위는 29세이던 2010년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서 소대원들을 이끌고 순찰하다 폭탄 공격으로 숨졌다. 그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멕시코 국경지대 안보 강화를 주장해 온 인물이다.

군 수뇌부의 심기 건드린 베트남전쟁 분석서 <직무유기>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현역 장성 신분으로 현직에 올랐다. / 사진·중앙포토
그는 국방부가 지난해 12월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등 미군의 모든 전투부대 직책에 여성 진출의 길을 열어준 데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카리브해와 중남미 32개국을 담당하는 남부군 사령관 출신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조직범죄 소탕에 경험이 풍부한 데다 불법 이민의 주요 공급원인 이 지역 사정에 밝은 전문가다. 그가 국토안보장관으로 등용된 것은 이런 경험과 식견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마크 크리코리언 이민연구센터 상임소장은 “트럼프가 켈리를 국토안보장관으로 발탁한 것은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매티스와 켈리, 현재 미군의 최고 지휘관인 조셉 던포드 합참의장은 해병 출신 장군으로서 같은 해병 제1 사단에 근무한 적이 있는 전우들이다. 매티스가 해병 1사단장이었을 때 켈리는 1사단 부사단장이었고, 던포드는 1사단 예하의 5연대 연대장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끈끈한 친분을 과시해왔다. 매티스와 켈리는 트럼프 진영에 국방장관 후보자로 서로를 천거했으며, 던퍼드는 켈리의 맏아들이 전사했을 때 켈리의 집을 방문해 위로하기도 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걸프전의 영웅’으로 불리는 등 육군에서 최고전략가라는 말을 들어왔다. 육군교육사령부의 육군전력통합센터장이었던 그는 필라델피아 출생으로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 그의 부친은 육군 보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용사다. 전시 현지 임관을 통해 상사로 진급했으며 베트남전에서는 대위까지 승진했다.

기갑병과 출신인 그는 ‘20세기 마지막 최대 기갑전’으로 역사에 남은 이라크전 ‘73이스팅 전투’의 주역이다. 1991년 2월 벌어진 이 전투에서 그가 이끈 미군 2기갑연대 독수리 중대는 수적 열세를 뒤집고 사담 후세인의 최정예 기갑부대였던 이라크군 타와칼나 사단을 궤멸시켰다. 당시 그는 독수리 중대의 탱크 9대를 지휘하면서 매복 공격을 해온 타와칼나 사단의 탱크와 장갑차, 차량 등 80여 대를 파괴하며 대승을 거뒀다. 그는 2007년 이라크전에선 대령 신분으로 반란군 진압 현장 매뉴얼을 개발해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준장 진급에 두 차례나 실패했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강골 성향 때문이었다. 특히 1997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자신의 박사 논문을 보강해 <직무유기(Dereliction of Duty)>란 책을 쓴 것이 문제가 됐다. 그는 이 책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합참의장 등 군 지휘부가 현장 지휘관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해 결국 베트남전에서 패배했다고 지적해 군 수뇌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싸워서 반드시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싸우지 않을 것”


▎위성에서 내려다본 미국의 백악관. / 사진·중앙포토
그는 지난해 4월 상원 국방예산 청문회에서 미국의 위협 국가로 러시아·중국·북한·이란 4개국을 지목하고 이슬람국가(IS)를 비국가적 위협으로 들었다. 이어 그는 “북한은 재정 압박에도 핵과 탄도미사일 확대를 우선 추진하고 있다”며 “미국은 한반도에서 억지력을 유지해야 하며, 한국과 지역 방어를 위해 육·해·공군을 전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14년 시사잡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00명에 들기도 했던 그는 수천 권의 군사 전략서를 탐독해 ‘생각하는 전사(warrior thinker)’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매티스 장관과 유사한 점이 많다. 데빈 누니스 하원 정보위원장은 “맥매스터의 발탁은 트럼프 안보팀에 아주 좋은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호평했다.

이들 3인방은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라는 안보 기조를 수행할 선봉장이 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국방예산을 전년보다 540억 달러(10%)나 증가한 6030억 달러(684조원)로 책정하는 등 미국의 군사력 강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1년 국방 예산 40조 원(353억 달러)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늘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2일,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 항구에서 취역을 준비하고 있는 차세대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호에 탑승해 장병들에게 “우리 군은 조만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장비를 갖게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싸워서 반드시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연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장군 출신들을 안보분야 요직에 기용한 것도 바로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하고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려면 군 출신을 안보 분야 요직에 기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론은 대외 개입은 축소하되 전쟁하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들의 발탁에 대해 ‘전시내각’,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 파괴’ 등을 지적하고 있다. 또 이들이 지나치게 강경파라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들은 이들 3인방의 인품이나 능력에 대해선 문제를 삼지 않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장군 출신이 정부 요직에 기용돼 성공한 경우가 상당히 있다. 육군 대장으로 합참의장을 지낸 파월은 가장 유능한 국무장관이란 평가를 받았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도 공군 중장 출신으로 뛰어난 전략가란 말을 들었다. 전쟁을 수행해본 장군들이야말로 평화의 소중함을 안다. 때문에 미국의 군사개입을 결정할 때도 신중한 입장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들 3인방이 대통령에 대한 맹종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을 것도 또한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images/sph164x220.jpg
201704호 (2017.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