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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국정농단’ 수사, 박영수 특검 90일의 기록 

이재용 구속기소, 블랙리스트 규명 성과 

진동영 서울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jin@sedaily.com
현직 대통령 겨냥한 사상 최대 특검, 기소 30명·압수수색 46회 모든 기록이 ‘無전례’…대통령 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 끝내 무산, 우병우 수사 아쉬움 남기고 공은 다시 검찰로

▎박영수 특별검사가 3월 6일 특검 사무실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열 수사팀장, 이규철·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양재식 특검보, 어방용 수사지원단장. / 사진·중앙포토
박영수 특별검사가 임명되기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혼란은 사회 곳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취임 후 단 한 번도 30% 아래로 떨어져본 적 없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6년 11월 5%까지 떨어졌다. 자발적으로 모인 촛불시위에는 회를 거듭할수록 박 대통령의 자진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의 참여가 늘어갔다.

박 대통령은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린 상태였다. 박 대통령은 의혹이 확산되던 지난해 10월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어느 누구라도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자금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며 자신과는 무관함을 내비쳤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에 대해 “아는 사이는 맞지만 절친한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리고 나흘 뒤인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나왔다. 이와 맞물려 정치권에서 의견이 개진되던 특검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검 후보로 검찰 출신 변호사 여러 명이 물망에 올랐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의혹 수사를 강행한 뒤 불명예 퇴진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사법연수원 14기)이 언급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은 최종적으로 대검 형사부장을 지낸 조승식 변호사(9기)와 서울고검장을 지낸 박영수 변호사(10기)를 후보에 올렸다. 박 대통령은 11월 30일 박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본격적인 특검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박 특검은 곧바로 특검보와 파견검사 인선 등 특검팀 구성에 착수했다. 박 특검이 대표로 있던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는 매일 취재진 수십 명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박 특검은 문강배(16기)·이재순(16기)·박충근(17기)·이용복(18기)·임수빈(19기)·양재식(21기)·이규철(22기)·최운식(22기) 변호사 등 8명을 특검보 후보로 올렸다. 이중 박 특검이 수사팀장으로 점찍었던 문강배 변호사는 특검보 명단에서 제외되고 한 달여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변호인으로 나서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문 변호사는 “특검보 후보로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못 맡는다면 특검 제도는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재계의 저승사자들’ 대거 참여


▎박영수 특검팀은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현판식을 하고 본격 수사를 시작했다. 특검은 이날 독일에 머무르던 최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신병 확보에 나섰다. 왼쪽부터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 특검보. / 사진·중앙포토
파견검사는 채 전 총장 아래에서 ‘국정원 댓글의혹’을 수사했다 좌천됐던 윤석열 서울고검 검사(23기)를 필두로 진용이 짜였다. 대기업 수사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재계의 저승사자’로 통한 한동훈 검사(27기)를 비롯해 신자용(28기)·양석조(29기) 등 부장검사급이 참여했다. 이밖에 고형곤(31기)·김창진(31기)·김태은(31기)·박주성(32기)·배문기(32기)·조상원(32기)·이복현(32기)·김영철(33기)·이방현(33기)·이지형(33기)·강백신(34기)·김해경(34기)·최순호(35기)·문지석(36기)·최재순(37기)·호승진(37기) 검사 등 총 20명이 이름을 올렸다. 특수부 수사 경험이 많은 ‘엘리트 검사’들로 짜였다는 평을 받았다.

최종 규모 122명의 역대 최대 ‘매머드급’ 규모를 자랑한 특검팀이다 보니 사무실로 쓸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특검팀은 검찰청 부근, 최소 연결된 2개 층을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찾아봤지만 조건에 딱 들어맞는 장소가 없었다. 수사보안 등을 이유로 같은 층에 다른 사무실이 없어야 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곳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D빌딩. 선릉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목 좋은 곳이었지만, 전체 20층 중 1층과 9, 10층만 임대 중이고 나머지 전체가 공실이었다. 저축은행사태 와중에 파산한 솔로몬저축은행이 2008~2013년 사용한 뒤 비워진 건물이라 혹자는 ‘기가 센 곳’이라고 했다. 박 특검은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쓰던 방을 그대로 썼다. 기자단은 14층 한 층을 통째로 빌려 200석 규모의 기자실을 꾸렸다. 각 사가 돈을 갹출해 임대료를 지불했다. 이후 두 달 넘게 ‘선릉역 1번 출구’는 탄핵 찬성·반대 시민들의 집회의 메카가 됐다.

그 사이 특검팀은 사무실 인근에 오피스텔·사무실 몇 곳을 단기로 빌려 수사준비에 나섰다. 우선 검찰 특수본에서 넘어온 1t 분량의 수사기록을 모처의 오피스텔로 옮겨 검토했다. 윤석열 수사팀장 등 일부는 제보자나 참고인들을 바깥에서 만나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수사팀 실무준비는 어방용 수사지원단장이 맡았다. 박 특검이 검사시절부터 연을 맺어온 베테랑 수사관 출신이다. 특검 수사 착수 후에는 어 단장이 특검의 수사첩보를 모두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과 가까운 법조계 관계자는 “어 단장이 특검 수사의 핵심을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입이 무겁고 일처리가 확실해 박 특검이 각별히 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검팀이 2월 3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날 오후 공정위 부위원장실과 사무처장실, 기업집단과 등을 압수수색 중인 특검팀이 압수물품을 담기 위해 박스를 들고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특검의 본격 수사는 12월 21일 현판식과 함께 시작됐다. 기자단이 특검 현판식을 취재할 때, 특검팀 검사·수사관들은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 국장실 등 10여 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고강도 수사의 첫 신호탄이었다. 특검팀은 최순실 씨가 ‘모종의 특혜’를 삼성그룹에 제공하는 대신 재단 출연금과 딸 정유라 씨에 대한 거액의 부당지원금을 받아냈다고 의심했다. 현 정권 내에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려 했던 삼성그룹이 핵심 절차였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과정에 주목했다.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합병 찬성표를 던진 이유가 석연치 않았던 것이다.

검찰 특수본 수사 결과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야 했던 특검은 삼성 뇌물수사에 집중했다. 양재식 특검보를 중심으로 윤석열 팀장, 한동훈 부장검사 등 정예 중의 정예를 투입했다. 수사 착수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난 12월 28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처음으로 체포하고 이튿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어 법원의 영장 발부로 같은 달 31일 문 전 장관이 ‘특검 1호 구속자’가 되는 등 수사에 탄력이 붙였다. 언론은 삼성의 정유라 특혜지원에 대한 정황을 계속 보도했고, 시민들은 촛불로 특검을 응원하며 후방에서 지원했다. 특검은 계좌추적과 관련자 진술을 통해 삼성의 부당지원 정황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삼성 수사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뒤 SK·롯데 등 다른 재단 출연 대기업으로 수사로 확대할 방침이었다.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기업 관계자들은 대치동 주변에서 특검의 동태를 살피는 게 주요 업무가 됐다. 한 대관업무 담당 기업 관계자는 “특검이 ‘여론 끌어들이기’ 차원에서 대기업 총수들을 줄소환할 것이라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특검은 거침이 없었다.

새해 들어 수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특검 안팎에서 “이 부회장의 뇌물혐의 입증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게 세 가지 이유였다. ▷삼성물산 합병을 뇌물에 대한 대가로 보기 어렵고 ▷재단 출연과 최씨 모녀 특혜지원이 이 부회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증거가 없으며 ▷혹 최씨에게 부당지원이 이뤄졌더라도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삼성은 검찰이 뇌물혐의의 전제로 깐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사유재산을 공유한다는 이른바 ‘경제적 동일체’ 이론의 느슨한 논리구조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에서 “완전히 엮은 것”이라면서 “여기(삼성)를 도와주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반격했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는 있었지만 구체적 청탁이 오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검이 삼성 뇌물수사에 총력을 기울인 탓에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었던 14개의 다른 수사들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더뎠다. 그러던 상황에서 삼성 수사마저 난관에 부닥치자 특검 주변에서는 특검 수사 성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삼성 수사팀 내부에서 특검과 파견검사들 사이의 의견충돌이 잦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보안이 삼엄한 특검팀 사무실 밖으로 새나오기도 했다. 후일 특검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1차 구속영장 청구 때는 상당한 격론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재용 첫 영장 청구 앞두고 격론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월 18일 오후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소환해 조사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 사진·중앙포토
결국 박 특검이 결단을 내렸다. 수사팀은 1월 9일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소환한 데 이어 12일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13일 오전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사는 예상보다 더뎠지만 결단은 생각보다 빨랐다. 당시까지 알려진 사실로만 따져봤을 때는 구속영장이 기각돼도 별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특검은 자신감이 넘쳤고, 이 때문인지 ‘특검이 알려지지 않은 확실한 물증을 확보해 놓은 상태’라는 소문이 정설처럼 떠돌았다. “이재용을 구속하라”며 최고조에 달했던 ‘촛불여론’도 뒤를 받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각’ 결정을 내릴 판사는 없을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예상을 깨고 1월 19일 새벽 “소명 정도와 법적 다툼 여지, 수사 내용·진행 경과 등에 비춰볼 때 구속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조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의 영장 기각으로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맞았지만 특검팀에 중요한 숙제를 남겼다. 특검은 이때까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연루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핵심 과제 외 업무’였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이었던 미르·K스포츠재단 및 최씨 모녀에 대한 지원 성격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특검의 의미는 퇴색할 터였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 영장 기각 후 오전 6시30분쯤 박 특검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어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영장 재청구, 불구속 기소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가 오전 언론 브리핑을 통해 “영장 기각 결정은 매우 유감”이라며 “특검과 피의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에 있어서 견해 차이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불만을 내비쳤을 뿐이다. 영장 기각 충격으로 특검은 며칠간 수사 의지를 잃은 듯 보였다. 수사 보완을 위해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등을 소환해 조사했지만 법원을 설득할 새로운 혐의나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이즈음 특검의 운명을 뒤바꾼 결정적 증거물이 확보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반전되기 시작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노트 39권을 추가로 확보한 것이다. 검찰 특수본이 확보했던 17권에 실리지 않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총 56권의 노트에 기록된 내용을 합치면 박근혜 정부의 사초(史草)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검은 이 노트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 자리에서 삼성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요청한 사실을 확인했다. 청와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압력을 가해 삼성 계열사의 삼성물산 주식 매각 규모를 절반으로 줄여준 정황도 포착했다. 특검은 이를 계기로 뇌물의 반대급부를 단순히 ‘삼성물산 합병’ 1건이 아닌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전반으로 확대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수사팀 한 핵심 관계자는 “1차 구속 영장 기각이 오히려 약이 됐다. 이후 보완수사를 통해 청탁 범위가 경영권 승계 전반에 걸쳐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삼성 측이 최씨 측에 명마 ‘블라디미르’를 사주면서 이 과정을 은폐하기 위해 위장계약을 체결한 과정을 발견한 점도 힘이 됐다. 특검은 이 과정에 대한 합의문과 이메일 등을 확보해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을 추궁했다. 이 과정을 주도한 박 사장은 결국 최씨 모녀에 대한 ‘특혜지원’ 사실을 시인했다.

수사 막바지로 접어든 2월 특검은 ‘속도전’을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할 것으로 보이자 과감하게 다른 대기업 수사는 미완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결정은 신중했다. 두 번째 기각이 나오면 사실상 특검 수사는 실패로 끝난다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전체적인 범죄사실 그림을 그려놓은 뒤 ‘삼성 저격수’로 불린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물었다. 김 교수는 “수사팀 생각과 내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확신을 얻었다.

안종범 노트 39권 확보로 극적 반전


▎지난해 12월 26일 특검팀이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를 전격 압수수색 했다. 특검팀은 이날 밤 늦게까지 조윤선 장관 집무실과 1차관 집무실, 기획조정실, 문화콘텐츠산업실 산하 콘텐츠정책국, 문화예술정책실 산하 예술정책국 등에서 압수수색을 했다. / 사진·중앙포토
이와 함께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도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대면조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의 요구조건을 가급적 모두 수용한다는 방침이었다. 양측 합의로 2월 9일 대면조사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특검은 박 대통령 조사 후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하루 전인 8일 밤 언론을 통해 조사 일정이 공개됐다며 대면조사를 보이콧했다. 추가 협의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특검은 애초 계획한 대로 수사 일정을 밀어붙였다.

특검은 2월 13일 이 부회장을 재소환해 조사한 뒤 이튿날 곧바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뇌물혐의 부분을 세밀하게 보강하는 한편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 등 일부 혐의를 추가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 대통령 측의 도움을 약속받고, 433억원을 뇌물로 건네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중 삼성이 실제 지급한 금액은 298억원이었다.

이 부회장의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는 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가 맡았다. 한 판사는 19시간의 장고 끝에 2월 17일 새벽 5시 30분께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였다.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관련 실무를 책임져온 박상진 사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대세에 큰 영향은 없었다.

박 대통령에 대해 특검은 출범 초기부터 대면조사 방침을 세워놓고 있었다. 특검이 불소추 특권을 가진 대통령을 사법 처리할 수는 없었지만 혐의사실을 조사할 수는 있었다. 박 대통령 또한 수차례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실효성 논란과 별개로 조사 자체에는 이견이 없어 보였다. 특검은 박 대통령 관련 의혹 전반을 조사한다는 방침으로, 수사 초반보다 어느 정도 수사가 진행된 후 대면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증거 확보를 위해 대면조사 전에 청와대 압수수색이 필요했다.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서 유의미한 진술이 나올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특검팀은 이 부회장을 구속한 뒤 뇌물 수수자인 박 대통령을 압박하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1월 19일 이 부회장의 영장이 기각되면서 주도권을 박 대통령 측에 빼앗겼다. 특검팀은 1월 말부터 박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의 구체적 일정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자칫 핵심 수사가 좌초될 위기상황에서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은 돌파구이자 무조건 성사시켜야 할 사안이었다.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은 특검은 2월 3일 전격적으로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청와대에 집행 사실을 통보한 뒤 박충근·양재식 특검보가 오전 청와대 연풍문으로 들어갔다. 청와대 정문 앞 경호실과 연결된 장소다. 청와대는 비서실과 경호실 명의로 불승인 사유서를 내고 압수수색팀을 막아섰다. 청와대가 ‘군사보호시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특검이 강제집행을 하지는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어서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때문에 청와대 압수수색 시도는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를 앞두고 실시한 ‘압박용’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특검과 청와대는 이즈음 물밑에서 대면조사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었다. 특검으로서는 이 부회장 영장 기각 사유 중 뇌물 수수자(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던 만큼 유리한 조사 조건보다 조사 자체를 성사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양측은 청와대 경내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보 한 명만 대통령 조사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 조건에 합의했다. 발표도 조사가 모두 끝난 뒤 이튿날 하기로 했다. 특검은 양재식 특검보가 조사에 참석하기로 하고 50페이지 정도의 질문지 작성도 마쳐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8일 밤 SBS 뉴스를 통해 조사 일정이 알려졌다며 청와대가 갑자기 ‘조사 불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청와대는 박충근 특검보가 정보를 유출했다고 주장했지만 특검 측은 당시 박 특검보가 외근 중이어서 합의사실조차 몰랐다고 했다. 복수의 특검 핵심 관계자는 “처음부터 조사를 받을 생각이 없었던 것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특검은 이후 냉각기를 가지면서 한동안 청와대와의 대면조사 협의를 중단했다. 대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서 외곽에서 압박했다. 특검은 서울행정법원에 ‘압수수색 불승인 처분은 위법하다’며 취소소송 및 집행정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사태 속 전반의 과정이 대체로 그러했지만 가처분소송 역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규철 대변인은 “국가기관이 행정법상 항고소송에서 원고가 된 판례가 있다”고 했다. 행정소송이 받아들여져 압수수색을 할 수 있게 되면 이를 방해할 시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는 엄포도 놨다. 이 같은 시도는 행정법원의 각하 결정으로 무위로 돌아갔다. 특검은 이때 “더 이상 압수수색 집행은 어려울 것 같다”고 실패를 인정했다. 박 대통령 대면조사도 협의는 이어갔지만 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양측은 결국 조사 중 녹음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 특검으로서는 최대 과제였던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끝내 하지 못했고, 박 대통령은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 상처를 입었다.

휴지조각 된 50페이지 질문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월 2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비록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통령 직접조사는 실패했지만 다른 곳에서 결과물이 나왔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실체를 상당부분 밝혀냈다. 이와 관련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 등을 기소하는 큰 성과를 올렸다. 특검이 자체 인지를 통해 해결한 사건이다. 특검 수사 대상이 맞는지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특검 안팎에서는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정부 지원을 배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정치권에서 이미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슈였다. 비협조적인 문체부 관료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해 좌천됐다는 증언도 쏟아지고 있었다. 특검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특혜지원과 관련해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 조사를 진행하던 중 ‘블랙리스트’ 관련 증언을 확보했다. 특검 수사가 본격화하자 문체부 직원들의 진술이 줄을 이었다. 사건 정황과 단서가 생각보다 빨리 확인되면서 내부 검토를 거쳐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은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됐다. 탁월한 법 지식을 갖춘 ‘공안통’ 김 전 실장을 특검이 붙잡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문체부에서는 관련자 진술과 자료 협조가 쏟아졌다. 특검은 김 전 실장의 주도 하에 청와대 교문수석실과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은 1월 19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수사 동력에 손실을 입었지만, 이틀 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을 동시에 구속하면서 다소 힘을 되찾았다. 특검은 수사 결과를 발표 하면서 블랙리스트 사안에 박 대통령도 공모했다고 밝히면서, 이번 사건을 “헌법 가치를 위배한 중대 범죄”라고 규정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 등이 ‘블랙리스트’ 외에 보수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화이트리스트’도 만든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관련 수사자료를 넘긴 상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수사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고압적 태도로 여론의 반감이 높았던 우 전 수석에 대해 특검은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었다. 우 전 수석의 의혹을 따라가다 보면 검찰 내부 수사도 불가피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엘리트 파견검사들의 부담이 컸다. 수사 대상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도 있었다.

박 특검은 수사 종료 후 기자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면 100% 발부됐을 것”이라고 확신에 차 말했다. 특검은 수사 기간 종료를 앞두고 서둘러 우 전 수석 소환(2월 18일)과 구속영장 청구(2월 19일)를 했지만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고 관련 사건기록 일체를 검찰에 넘겼다. 세월호 수사개입 등 특검 수사 대상 의혹 외에 가족회사인 정강의 자금유용 등 개인비리까지 함께 처벌하기 위한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의 재수사를 명예회복의 기회로 보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우 전 수석의 계좌만 살펴봐도 (검찰이) 구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영장 재청구했다면 우병우 구속은 100%


▎박영수 특검은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 불발, 우병우 전 수석 구속 수사 실패 등 한계도 있었지만 역대 최대 성과를 거둔 특검으로 평가받았다. 지난 1월 8일 오전 박 특검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수년을 끌어 온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행적,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문제는 특검이 규명에 실패하면서 끝내 미궁에 빠졌다. 특검은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 “수사 대상은 아니지만, 국민적 관심이 크기 때문에 확인하는 것”이라고 조사의 성격을 초반부터 규정했다. 비선 진료의혹 수사와 맞닿아 추가로 확인하는 ‘번외수사’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청와대 압수수색과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무산되면서 애초에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한계도 있었다.

박 대통령의 당일 행적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언급된 의혹은 ‘미용 시술’과 ‘머리 손질’이었다. 특검은 최씨의 단골 성형외과 원장인 김영재 원장이 2014~16년 박 대통령에게 5회에 걸쳐 보톡스·더모톡신 등 시술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대통령 자문의였던 정기양 교수가 2013년 3회의 필러 시술을 한 사실도 파악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일 김 원장은 골프를 쳤고, 정 교수는 광주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한 사실이 확인됐다. 최소한 참사 당일 두 사람에게 미용 시술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머리 손질과 관련해서도 박 전 대통령이 평소 미용사 자매에게 머리 손질을 받긴 했지만 당일에는 오후에만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특검은 여전히 박 대통령이 시술을 받았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사실 확인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김 원장과 부인 박채윤 씨, 정 교수, 김상만 전 자문의 등을 재판에 넘겼다.

특검은 3월 6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든 활동을 마무리했다. ‘특검 수사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념을 깨고 역대 최대 규모인 30명을 재판에 넘기는 성과를 올렸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시·학사비리 의혹, 최씨의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개입 등 상당수 의혹도 실체를 확인했다. 특검 수사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박 특검과 특검보들에 대한 보수단체들의 위협이 거세지고 신변보호가 시작된 것은 수사 성공을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검 관계자는 “지칠 대로 지쳐 특검이 연장됐다면 더 버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검은 수사기간 동안 압수수색을 46회 실시했고, 8.5테라바이트(TB) 분량의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수사에서 핵심 증거의 보고가 됐던 모바일 기기는 364대 분량을 확인했다. 이 중에는 박 대통령과 최씨가 사용한 차명폰(대포폰)도 포함됐다. 두 사람은 지난해 4~10월 570여 회의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의 조카 장시호 씨는 수사팀의 ‘복덩이’로 불렸다. 외향적 성격의 장씨는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면서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윤석열 팀장과 한동훈 부장검사, 박주성·김영철 검사 등 일부 수사팀 관계자들에게는 손편지를 쓰기도 했다.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장씨에 대해 “기억력이 좋고 기억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숫자를 외울 때 숫자 자체를 외우지 않고 숫자판의 선을 그어 외우는 식으로 기억했다. 본인은 ‘공부를 잘 못했다’고 했는데, 마음먹고 했다면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최씨에 대해서는 대체로 평이 비슷했다. 또 다른 특검 관계자는 최씨의 인간관계를 이렇게 평했다.

“최씨는 사람 관리를 못했다. 사람 관계를 지나치게 돈 관계에 기반해 생각하다 보니 측근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최씨를 지켜주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검팀의 남은 과제는 공소유지다. 수사로 확인한 혐의를 법원에서도 인정받기 위해 재판에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특검은 윤석열 팀장을 비롯한 파견검사 8명을 공소 유지팀에 남겼다. 서초동 주변에 사무실을 구해 조만간 기록 검토에 나설 예정이다. 수사기록만 검찰 5만 쪽, 특검 6만 쪽 분량이다.

수사 끝내고 딱 한 번 가진 전체회식


▎대변인 역할을 한 이규철 특검보는 ‘스타’로 떠올랐다. 네티즌들은 이 특검보의 패션 감각을 칭찬하며 ‘코트왕’이라는 별명도 붙였다. 이 특검보가 1월 13일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큰 수사였던 만큼 90일 내내 특검팀 내부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수사팀원 중에는 ‘주당’도 적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맘 편히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일 여유도 없었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특검팀은 2월 28일로 법에 정해진 수사기간을 모두 마친 뒤, 3월 1일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3월 2일이 돼서야 특검 출범 후 처음으로 전체회식을 갖고 회포를 풀었다. 같은 특검팀이었지만 서로 다른 3개 층으로 나뉘어 일하다 보니 회식날 처음 본 동료들이 태반이었다고 한다. 한 특검보는 “파견검사들이야 알음알음 알았지만, 변호사 출신 등 특별수사관들은 처음 본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식장소는 윤석열 팀장의 단골집인 경기 성남시 ‘청계산장’이었다. 달라진 회식문화를 반영하듯 처음부터 ‘1인당 5만 원어치’만 준비해달라고 한 뒤 다소 이른 시각인 9시30분까지만 먹고 헤어졌다고 한다. 얼굴 노출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다른 특검보들과 달리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언론에 자주 등장한 박영수 특검과 이규철 대변인만 알아보고 반겼다는 후문이다.

박 특검은 수사기간 동안 한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식사를 배달 도시락으로 때웠다. 사적 만남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해 개인 약속도 거의 잡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수사팀 인원들도 도시락을 먹으며 밤낮없이 사건에만 매달렸다. 매일 점심 무렵이 되면 인근 도시락 가게 점원이 손수레에 도시락을 잔뜩 쌓아 나르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한 특검보는 “90일 동안 조금 늦게 나온 날은 있어도 아예 안 나온 날은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며 “솔직히 처음엔 그냥 한 거지만 특검 기간이 연장돼 30일을 더 수사했다면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했을 것”이라고 했다. 밤샘근무를 하다 코피가 터지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특검은 설 연휴 때 설 당일만 쉬도록 했지만, 정작 출근해보니 대부분의 검사·수사관이 나와 일하고 있었다.

박 특검과 함께 대변인을 맡은 이규철 특검보는 매일 언론에 얼굴을 비치며 스타로 떠올랐다. 길에서도 이 대변인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한 특검보는 “우리집 식구들도 사인을 받아 오라고 할 정도”라고 했다. 탁월한 패션 감각으로 인터넷에서는 ‘코트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 정도. 하지만 기자들 사이에서는 수사 관련 각종 보도의 사실 여부를 물을 때마다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는 이 대변인에게 볼멘소리가 나올 때도 있었다. 이 대변인은 “기자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지켜본 아들이 ‘아버지, 저녁식사 여부에 대해 풀(pool·확인 내용을 공유하는 것)해주세요’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제 위치는 확인 불가입니다’라고 했다”며 “이게 대변인의 가족인가 보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특검 사무실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도 많았다. 특검 사무실은 1층 출입구가 있지만, 차량과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더 넓은 3층 출입구도 있다. 장소가 상대적으로 넓어 취재진이 대기하는 곳이기도 했다. ‘특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3층으로 와야 했다. 이를 모르던 상당수 소환자들은 기자들을 피해 1층에서 엘레베이터를 탔다가 3층에서 기자들에게 걸려들곤 했다. 선릉역 인근에서 주차장을 찾아 이곳에 들어왔던 일반 차량은 새까맣게 ‘상시 대기’ 중인 취재진을 보고 놀라 도망치듯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워낙 많은 사람이 드나든 탓에 특검 전용 엘리베이터가 멈춰 10여 명의 검사·수사관이 30여 분 동안 갇히는 사고도 있었다.

- 진동영 서울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jin@sedaily.com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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