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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의뢰인들에게 피소당한 유명 로펌의 ‘간부 변호사’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최경호 기자·신승민 인턴기자 squeeze@joongang.co.kr
신촌밀레오레 분양대금반환 청구소송 승소 이끈 스타 변호사… 배임·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수사 중

유명 대형로펌의 파트너변호사인 K씨가 자신에게 변론을 맡겼던 의뢰인들에게 고소당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로펌의 파트너변호사는 기업으로 치면 팀장(간부)쯤 되는 직책이다. 의뢰인들은 K변호사가 재판 진행 및 판결금 회수 과정에서 보전처분과 후속조치를 방기(放棄)하는 등 되레 피고 측에 유리한 행위를 했다며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에 업무상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의뢰인들에게 고소당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명 로펌의 파트너변호사인 K씨가 자신에게 변론을 맡겼던 의뢰인들에게 고소당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재판을 승소로 이끈 변호사가 의뢰인들에게 피소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사진은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밀레오레로 유명한 성창F&D는 2004년 서울 신촌기차역 민자역사 임대사업자로 선정됐다. 성창은 1200억 원을 들여 신촌밀레오레를 신축하고 상가분양을 시작했다. 분양대행업체들은 “신촌기차역이 인천국제공항노선에 포함될 것이며, 경의선 복선화가 완료되면 5~10분 간격으로 열차가 운행된다”고 홍보했다.

이에 세입자들은 장기 임대계약을 하고 2006년 9월부터 영업을 시작했지만 매출은 기대에 못 미쳤다. 많은 입점업체가 철수하면서 공실률(空室率)이 한때 70%에 이르렀다. 분양 당시 홍보 내용과 달리 신촌경의선 복선화 사업에 신촌기차역이 포함되지 않자 세입자 124명(1차 소송단)은 “허위·과장광고에 속아 상가를 분양받았다”며 성창을 상대로 분양대금반환 청구소송을 진행했다.

신촌밀레오레 전체 세입자들 가운데 300여 명이 각각 1~5차로 나눠서 차례로 고소장을 접수하고 송사에 참여했다. 세입자들은 1인당 6500만~수억 원을 투자했으며, 소송가액은 총 550억원에 이르렀다. 2007년 11월 시작돼 2년 가까이 진행된 소송 끝에 법원은 2009년 7월 세입자들(1차 소송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신촌밀레오레 상가가 위치한 신촌 기차역은 경의선 복선화 사업구간에 포함되지 않고 인천국제공항 노선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며 분양대금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1차 소송단이 승소하자 송모(51) 씨 등 3차 소송단 118명도 2009년 9월 성창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면서 K변호사와 손을 잡았다. K변호사는 1차 소송단의 법률대리인을 맡아 승소를 이끌었다. 의뢰인들로서는 그만큼 믿음과 기대가 컸다.

고소인단과 법률대리인, 그들이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소장 등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09년 7월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1차 소송단은 2011년 6월 2심 판결까지 승소함으로써 100억원이 넘는 판결금 채권을 확보했다. 이어 “강제집행 시 납부해야 하는 예납금이 거액인 만큼 일단 한 사람 명의로 ‘알박기식’ 압류를 해놓자”는 K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1차 소송단에서 총무 역할을 하던 김모 씨를 채권자로 설정했다. 2012년 2월 피고 측의 소유재산 중 원고 측에서 강제집행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건물인 밀리오레 명동빌딩에 대해 압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빌딩이 호텔 분양을 위해 신탁된 직후인 2015년 3월, 소송단 회원들의 동의 없이 압류가 말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와 관련 K변호사는 빌딩을 호텔로 분양해야 성창이 돈을 마련할 수 있고, 회원들 또한 판결금을 변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각 소송단(1~5차) 대표의 허락을 얻은 뒤 빌딩에 걸려 있던 각종 압류를 분양 신탁 전에 풀어주기로 성창과 문서로 합의했고, 이후 김씨 명의의 압류를 풀어줬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고소인들과 소송단 회원들의 진술은 다르다. 고소인들에 따르면 당시 소송단 대표들로부터 압류 해제와 관련한 어떠한 말도 듣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3차 소송단 대표인 송씨는 성창 측의 합의안에 반대한다는 의사까지 명시적으로 표했으며, 관련 내용의 e메일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고소인들에 따르면 “나를 믿고 성창이 호텔 분양을 하도록 허락해주자”고 주장했던 K변호사의 말과 달리, 성창은 호텔 분양을 성공리에 마쳤음에도 고소인들에게 일부 금액조차 변제하지 않았다.

“동의도 없이 왜 부동산 압류집행을 말소했나?”


▎의뢰인들은 K변호사를 업무상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현재 사건은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이관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1년 6월 17일 1차 소송단의 항소심 판결 또한 1심과 마찬가지로 회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까지 승소로 결정된 만큼 회원들의 입장에서는 즉시 가집행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3일 후인 2011년 6월 20일 피고 측 소유이던 그 빌딩이 한 신탁회사에 신탁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K변호사는 신탁조치가 사해(詐害)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각 차수(次數) 소송단 명의로 같은 해 11월 말 ‘사해 신탁행위취소에 기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권’을 피(被) 보전권리로 하는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이는 12월 8일 집행됐다. 그로 인해 2012년 1월 19일 해당 빌딩이 피고 측 소유로 되돌아왔다.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소장과 남대문경찰서에 건넨 의견서(혐의 내용 요약본) 등에 따르면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재산가치가 있었던 그 빌딩이 다시 성창의 소유가 됐고 성창이 빌딩을 언제라도 양도·처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3년이 지나도록 K변호사는 가집행 등 어떠한 재산 보전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빌딩은 2015년 3월 호텔 분양을 위해 신탁된 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재산이 돼버렸다.

“가압류만 걸어줬더라도 최소한의 구제는 받았을 것”


▎고소인단은 “K변호사가 승소 후 후속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피고 쪽에 유리하게 일이 진행돼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K변호사가 어떠한 재산보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던 3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당시 수분양자(분양을 받은 사람) 중에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들이 중심이 돼 3년 동안 해당 빌딩에 272억원 이상 가압류를 했다. 그런데 빌딩이 2015년 3월 다시 신탁될 즈음 모두 사라진 사건이다. 이는 빌딩을 소유한 측(피고)에서 해방공탁을 하면서 가압류가 말소됐기 때문이다.

송씨는 “그들은 해방공탁금을 수령함으로써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피해액을 회복할 수 있었다. 3차 소송단 118명 중에는 K변호사를 더 이상 믿지 않고, 공탁금을 압류한 A씨 1명만 개별적으로 원금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고소인단은 “결국 K변호사가 아무런 보전조치나 가집행을 하지 않은데다 기존의 ‘알박기식’ 압류마저 풀어주는 등 성창 측의 요구를 들어주는 바람에 의뢰인들만 재산을 회수하지 못하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 과정에서 회원들의 위임이나 동의 없이 압류를 말소한 것과 3년 동안 어떠한 재산보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치한 행위는 명백한 사문서 위조와 배임죄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K변호사를 포함해 관련자 3명을 고소한 고소인단과 그들의 법률대리인 측이 남대문경찰서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보전처분 및 가집행신청이 피소된 K변호사의 임무’였는지에 대한 고소인 측의 견해가 실려 있다.

고소인단은 판례, 본안 소송 위임계약서, 유일한 재산(밀레오레 명동빌딩)이 도망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에 관한 K변호사의 고의성 등을 근거로 ‘소송인단의 채권변제와 관련한 후속조치’는 K변호사의 임무였다고 호소한다.

고소인단 측 변호사는 “별도의 위임이 없는 한 보전처분은 자신들의 업무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이 소송위임 계약서에 쓰여 있긴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재산을 은닉하는 일(1차 소송단의 항소심 판결 직전에 해당 빌딩이 신탁된 사실)이 발견됐으면 적어도 의뢰인들에게 ‘재산보전조치’를 권유하는 것이 법률대리인으로서 마땅한 의무이자 도리”라고 설명했다.

현재 고소인단과 법률대리인 측은 K변호사와 그가 속한 로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고소인단 측 변호사는 “3차 소송단 피해액이 200억원 가까이 된다. 지난 3년 동안 가압류 채권자들이 많지 않았느냐”면서 “이 사람들은 가압류 채권 금액 272억원 가운데 3분의 1 정도를 해방공탁금으로 구제받았다고 한다. K변호사가 가압류만 걸어줬더라도 3차 소송단도 채권금액의 3분의 1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주장했다.

- 최경호 기자·신승민 인턴기자 squeeze@joongang.co.kr

[박스기사] 피소된 K변호사 전화 인터뷰에서 억울함 호소 - “대표단과 다 상의해서 한 일, 서로 주고받은 e메일도 있어”

사건 의뢰인들에게 피소된 K변호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는 3월 15일 오후 1시간 가까운 월간중앙과의 전화통화 그리고 e메일을 통해 “법률대리인이 함부로 (가처분 신청 등을) 취하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다음은 K변호사와의 주요문답.

의뢰인들은 김씨 명의로 해준 강제경매개시결정 압류조치를 K변호사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 말소했다고 주장한다.

“e메일을 통해 의견이 오갔다. 그에 따라서 취하한 것이다. 대리인 입장에서 함부로 취하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동의서나 위임장 같은 것을 가지고 있나?

“나는 2007년부터 소송단의 대리인으로 일했다. (또 다른) K변호사가 2, 4, 5차 소송단을, 나는 1, 3차 소송단을 맡았다. 1차 소송단이 124명, 3차 소송단이 118명이다. 그리고 2차 소송단 57명, 4차 소송단 10명, 5차 소송단 19명이다. 각 소송단의 대표와 임원들이 일을 다한다.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선출해서 나한테 알려줬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분들(대표단, 임원진)과 일을 했다. 300여 명과 일일이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동의서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실질적으로 동의한 e메일들이 있다. 대표단이 나에게 e메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고, 내가 초안을 보내드리면 다시 고쳐줬다. 어떻게 나 혼자 하겠는가?”

고소인단의 법률대리인에 따르면 다시 신탁되기 전까지 3년(2012~2015년) 동안 K변호사가 가압류를 하지 않는 바람에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가압류를 걸었다면 해방공탁금이라도 받았을 텐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그것도 다 합의서를 쓰고 한 일이다. 이 사건은 허위광고로 인해 수분양자들이 사기를 당한 것이다. (성창이) 30년간 월 100만원씩 임대료가 나온다는 등의 허위·과장광고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매우 어려운 소송이었다. 분양 계약서상 허위·과장이 있었던 게 아니라 광고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100건에 1건 이길까 말까 한 사건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1, 2, 3심을 다 이긴 것이다. 다들 너무 좋아했다. 승소했으니 성창F&D 재산에 집행을 해야 했다. 돈을 받으려면.”

성창 측 재산 가운데 밀레오레 명동빌딩만 재산가치가 있었다고 하던데.

“성창이 신탁을 해뒀더라. 그래서 신탁회사를 상대로 사해신탁취소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소송 진행 중 성창이 건물을 다른 곳에 팔아버리면 안 될 것 같아 처분금지 가처분신청도 했다. 사해신탁소송 1심에서 우리가 이겼다. 그러자 성창 쪽에서 스스로 신탁을 풀어버렸다. 그렇게 되면 처분금지 가처분이 쓸모가 없어진다. 2012년 4월 10일 법원에서 가처분을 풀어주라며 가처분 취소결정을 내렸다.”

고소인단의 주장은 다르다.

“건물이 다시 성창에 돌아왔으니까 우리는 1차 소송단에서 총무 역할을 했던 김씨의 명의로 강제경매개시 신청을 한 것이다. 그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고소인단은 ‘자신들도 모르게 K변호사가 가처분을 했고, 또 후속대책도 없이 가처분을 말소했다’며 업무상 배임을 주장한다.

“그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위임 없이 내 마음대로 했다고 하는데 모두 대표들과 상의해서 한 일이다. 등기료 등 돈도 꽤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무슨 영화(榮華)를 보겠다고 변호사가 마음대로 하겠나.”

‘우리에게 소유권을 돌려놓았으니 이제 가처분을 풀어달라’고 성창이 법원에 신청했다는 것인가?

“그래서 풀린 것이다. 의뢰인들이 자꾸 오해하길래 몇 번이나 설명해드렸다. 그런데도 워낙 막무가내더라. 300여 명 가운데 8명과 3차 소송단 대표 등 몇 분이 강성이었다. e메일로 ‘고맙고 감사하다’며 다 동의했던 분들인데.”

그런데 왜 고소장에서 ‘K변호사가 자신들의 동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고 주장했을까?

“성창이 파산하면서 돈을 받지 못할 것 같으니 나한테 분풀이하는 것 같다. ‘왜 함부로 가처분을 했느냐’, ‘왜 가처분을 함부로 풀어줬느냐’고 하는데 당연히 그분들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고소인단은 또 ‘왜 가압류를 하지 않았느냐? 다른 사람들은 가압류를 통해 해방공탁금을 가져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해방공탁금은 소송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우리는 소송해서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다시 한번 입장을 정리해달라.

“나는 이 사건을 맡아 정말 어이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다. 경찰에 가서 조사까지 받았다. 팩트에 대해서는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확실하게 말했다. 내 입장도 완벽하게 밝혔다. 정말 억울하고 어이없다.”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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