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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리포트] 필리핀 부패경찰과 한국 조폭의 위험한 커넥션 

도박·마약·매춘범죄 비호하며 공생 

마닐라= 문종구 자유기고가, HANISHIP 대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자국 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한국 조폭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한국 조폭들은 돈 많은 사업가 행세를 하며 일부 부패한 필리핀 경찰의 비호를 받기도 한다. 총기까지 소지한 한국 조폭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현지 경찰들의 범죄 실상은?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월 “한국 조폭이 매춘·마약·납치 등 범죄에 관여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며 강력 대응을 경고했다.
‘범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월 4일 “법을 준수하는 한국인들은 보호받고 내국인들과 평등하게 대우받겠지만, 불법행위를 하는 한국 관광객은 내국인 범죄자들과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특히 “한국 조폭이 세부에서 매춘·불법마약·납치에 관여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받았다”며 강력 대응을 경고했다. 자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폭력조직에 선전포고한 셈이다. 당시 두테르테 대통령의 한국 조폭에 관한 언급은 현지 경찰관들이 저지른 한인 지모 씨 살해사건의 초점을 흐리려는 물타기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아직까지는 지씨 사건에 한국 조폭이 가담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핀 현지에서 그동안 벌어진 한인 피해자 관련 각종 강력사건에 한국 조폭이 연루된 사례가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이 있은 지 불과 한 달여 지난 3월 초, 필리핀에서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 남성 9명이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는 장면이 현지 언론의 SNS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40~50대인 이들은 세부의 한 빌라에서 10대에서 20대 초반의 필리핀 여성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성매매 대가로 하루에 2000페소(약 4만 6000원)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필리핀 경찰은 성매매를 주선한 업체의 한국인 운영자 3명을 추적 중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언급처럼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매춘과 마약범죄에 한국인 조폭조직이 관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현지 분위기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기소중지자가 돼 필리핀으로 도피한 한국 조폭 조직원들이 2차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조폭들의 필리핀 진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은 불법사업을 통해 마련한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현지 공무원, 특히 경찰들과 결탁해 이들의 비호를 받으며 범죄에 가담하기도 한다. 과거 필리핀 경찰과 한국 조폭들 사이에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을 먼저 소개한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27㎞ 떨어진 불라칸 지역에 사는 한국교민 윤씨의 집에 건장한 한국인 청년 두 명이 찾아왔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주인 윤씨의 친구로만 알던 가정부가 윤씨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몇 년째 돈을 갚지 않는 윤씨를 협박하기 위해 명동 사채업자 김 사장이 보낸 조폭들이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란 윤씨가 그들을 거실의 소파로 안내하며 겁에 질려 있는 그의 아내에게 뭔가 소곤거렸다. 조폭들은 험상궂은 얼굴과 눈초리로 윤씨의 기를 꺾고자 했고, 땀을 닦는 척 셔츠를 슬쩍 들어올리자 몸통에 새긴 지저분한 용 문신이 보였다. 그들은 거친 말투로 청부받은 내용을 윤씨에게 전하며 다그쳤다. 윤씨는 허리를 굽혀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경청했다.

그로부터 30여 분 후, 윤씨의 집에 느닷없이 경찰 여러 명이 들이닥쳤다. 윤씨의 아내가 연락한 것이다. 경찰들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총을 조폭들의 머리에 겨누었고 사색이 된 조폭들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어느새 허리가 뒤로 젖혀진 윤씨가 자리에 앉은 채로 경찰들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지난 2월 필리핀 앙헬레스에서는 이창호 필리핀 중부루손한인회 부회장(가운데)과 현지 경찰이 협력해 한인타운을 순찰하며 범죄 예방활동을 벌였다.
“이봐! 너희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왜 내 동생들에게 무례하게 굴어!”

순간 경찰들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번졌다. 그들은 윤씨에게 허리를 굽실거렸다.

“보스! 한국 마피아가 찾아와 보스에게 해를 가하려 한다는 부인의 신고를 받고 왔는데요?”

“내 아내가 오해한 거야! 당장 총 거두고 저쪽에 서 있어!”

경찰들은 즉시 조폭들에게서 떨어져 거실 한 쪽에 부동자세로 섰다.

필리핀 경찰들은 평소 자기들에게 용돈을 주는 민간인들에게 그가 설사 외국인일지라도 ‘보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길이 없는 한국의 조폭들은 윤씨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윤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었다.

“아이고, 형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윤씨는 소파에 몸을 파묻고는 거실 바닥에 나란히 엎드려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리는 조폭들을 거만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말이야…. 빌린 돈을 안 갚겠다는 것이 아냐. 이곳 광산 프로젝트가 거의 성사 단계에 있지만 공무원들이 워낙 일을 더디게 해서 지연되고 있을 뿐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자까지 쳐서 다 갚아 주겠다고 얘기했는데, 어째서 김 사장은 이다지도 경솔하게 일을 처리하려 하는지 원! 너희는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용서해 주마! 내가 이런 촌구석에 살고 있는 줄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묻지 않겠다. 요기나 하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네, 형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소음기 단 권총으로 협박한 조양은


▎폭력조직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 씨는 필리핀에서 자신의 지인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기를 이용해 한인 사업가를 협박하고 폭행했다. 2013년 11월 29일 대출 사기혐의로 필리핀에서 검거된 조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십 수년 전에 벌어졌던 교민 사기꾼 윤씨에 얽힌 에피소드다.그 후 윤씨가 김 사장의 돈을 갚았는지는 들은 바 없다. 김 사장이 돈을 받기 위해 또다시 조폭을 필리핀에 파견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필자는 그 후에도 간혹 한국 조폭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필리핀 카지노 도박과 관련해 물의를 빚은 유명 연예인 K씨가 한국으로 와서 조사받는 것을 막기 위해 도박과 고급 매춘을 패키지로 하는 상품을 구매했던 정치인들과 방송사 간부들이 조폭들을 마닐라로 보내 일정기간 K씨를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이 교민사회에 돈 적도 있었다. K씨를 보호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무료해진 조폭들은 한국에서 그들이 늘 하던 버릇대로 마닐라에서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술집들을 찾아다니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즉시 깨달았다. 그들이 업소 주인과 심각하게 말을 주고받는 도중 그 업소를 지키던 무장 경비가 들어와 조폭들에게 총을 들이댄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자국민의 총기 소지를 법적으로 허용한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총기 소지가 불법이다. 그런데 불법으로 제조하고 유통하는 총기가 너무 많아 외국인들(한국인 포함)도 총기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2014년 100억원대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폭력조직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67) 씨. 조씨가 필리핀에서 벌인 사건도 한국인 조폭이 불법으로 총기를 구해 현지에서 범행을 벌인 전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조씨는 2013년 1월 말 필리핀에서 자신의 지인에게 200만원을 빌려간 최모 씨가 돈을 갚지 않자 최씨를 소개해준 소모(62) 씨를 폭행하고 권총으로 협박했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지내던 조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모 씨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그대로 조씨에게 전했다. 이씨는 자신의 지인 소모 씨의 소개로 최모 씨에게 200만원을 빌려줬는데, 여전히 받지 못했다며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조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씨와 함께 최씨에게 돈을 빌려준 소씨와 접촉했다. 이들은 도심의 한 건물에 있는 집에 들어가 본론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조씨는 이씨에게 200만원을 빌려간 소씨에게 “왜 돈을 갚지 않아 나까지 오게 하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소씨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조씨는 미리 준비해둔 권총을 소씨에게 겨눴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소음기를 꺼내 권총 총열에 결합시켰다. 조씨는 소씨에게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으라고 지시했다. 소씨가 옷을 다 벗자 조씨는 권총의 몸통을 잡고 손잡이 부분으로 소씨의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소씨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조씨의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주먹과 발을 이용해 소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소씨는 신음을 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무자비한 폭행은 무려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조씨가 범죄를 저지른 필리핀 앙헬레스 지역은 필리핀 내에서 상대적으로 위험한 도시다. 특히 살인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인 피살사건은 대부분 앙헬레스에서 일어난다. 과거 미 공군기지가 있던 클락 주변의 앙헬레스는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로 한국인들이 자주 찾고 한국 교민도 많이 거주한다. 지난해 10월, 필리핀 경찰들에 의해 납치살해된 한국인 사업가 지모 씨 사건 역시 앙헬레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지역은 1991년 미군이 철수한 이후로는 불법도박과 매춘관광이 성행하는 곳이자, 다수의 한국인 조폭들이 암암리에 숨어들어 지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에서는 경찰에 신고해 허가를 받으면 총기를 갖는 게 합법이다. 하지만 불법 총기 소지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돈으로 50만원 정도면 쓸 만한 권총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필리핀 경찰은 현재 불법 총기가 100만 정 이상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조씨의 사례에서처럼 이들 조폭은 현지에서 큰돈 들이지 않고 어렵지 않게 총기를 구해 소지하고 다닌다고 한다. 필리핀은 빈부격차가 심한 데다 총기 사용 범죄가 끊이지 않고 치안마저 불안하다 보니 거의 모든 업소들이 무장한 경비원을 고용한다. 경찰보다 무장경비원이 훨씬 많다. 나라에서 급여를 받는 경찰이나 업소가 지불하는 경비원들이나 평소 무장하고 일하는 그들이 받는 공식적인 급여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그렇다 보니 급여에 불만이 있거나 범죄의 유혹에 빠진 일부 경찰이 그들에게 부여된 공권력을 악용해 범죄에 가담하는 사건도 적지 않다. 마약 유통에 간여해 큰돈을 벌거나 부자들을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기도 하고, 민간인들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곤 한다.

우리 교민이 필리핀 경찰의 함정에 빠져 억울한 일을 당한 사례도 있다. 차를 몰고 가던 한 교민은 오토바이를 탄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경찰은 교민에게 자동차 창문을 열라고 요구했다. 영문을 모른 채 창문을 열자 경찰은 교통단속을 하는 척하며 마약을 차 안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다른 경찰이 다가와 차를 수색하면서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며 체포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 현지에서 오래 생활한 교민들은 경찰의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쉽사리 차량의 창문을 열지 않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도박사업에 진출한 한국 조폭들


▎지난해 12월 20일 필리핀에서 발생한 50대 한인 사업가 피살사건의 공조수사를 위해 한국에서 파견된 경찰과학수사대 수사관이 차량 감식을 하고 있다.
이런 부패경찰들의 범죄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 그 뿌리가 깊다. 게다가 그들은 강탈한 검은 돈을 그들의 상관들에게 상납하고 동료들과 나누기 때문에 주범이 적발돼도 내부자들의 보호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어쩌다 처벌받고 쫓겨난 경찰도 몇 년 후 슬그머니 복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활동하던 조폭들은 이런 실상에 눈을 뜨면서 그들 사업의 방향을 재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현지 부패경찰과의 동업이다. 그들은 교민들이 생업으로 삼고 있는 합법적 업종보다 불법 온라인 도박과 매춘, 그리고 그와 연관된 환치기 사업에 주로 포진해 있다고 한다. 매년 22만여 명에 이르는 한국인 해외원정 도박자 가운데 60%가 마카오로, 30%는 필리핀으로, 10%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고 한다. 해외 원정도박자들은 도박의 천국이라는 마카오로 가장 많이 향하지만, 최근에는 필리핀을 찾는 이들의 숫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강원랜드 등 내국인 도박사업이 합법화됐지만 출입 일수 제한이 싫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이들이 비행기를 타면 현지 브로커들이 기다리고 있다. 해외 원정도박자 가운데 다수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브로커들에 이끌려 ‘정킷(junket·원정도박 알선)방’으로 안내된다. 이들이 뿌리고 온 돈은 폭력조직의 자금이 되고, 공갈·협박 등 부수범죄를 야기한다.

마카오·필리핀 등에는 ‘범서방파’ ‘학동파’ ‘영산포파’ ‘청주파라다이스파’ 등 국내 조직폭력 조직이 앞다퉈 도박 사업에 손을 댄 지 오래다. 그리고 이들 조직 주위에는 동업자이자 보호자인 현지의 부패경찰들이 서성댄다. 교민뿐 아니라 현지인들이 보기에 돈 씀씀이가 크고 값비싼 차를 굴리며 고급 주택가에 살고 있는 폭력조직원들은 현지 경찰들마저 보디가드처럼 데리고 다니며 우쭐대기 때문에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여겨진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수년 전 한국인이 마약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은 수감자가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점과 억울한 동포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면회를 갔다고 한다. 한참 동안 그의 주장을 들은 지인은 변호사를 선임해줄 테니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 몇 명만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무척 의아스럽게도 그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감되기 전 필리핀에서 생활했던 몇 년 동안 한국인은 물론이려니와 필리핀 사람들 누구와도 사귀지 않고 혼자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도움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자신을 체포한 경찰들에게 몇 천만 원만 쥐여주면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경찰들을 돈으로 매수하자고 제안해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면회간 지인에게 거짓을 말하고 그가 연루됐을지도 모르는 마약조직을 감추고 보호하려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지인은 더 이상 그 한국인 수감자를 도울 수 없었다. 실제 수감자의 제안처럼 경찰에 큰돈을 주면 옥살이를 끝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기대려고 한 대상이 부패한 현지 경찰들이라는 사실이었고, 이런 일은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지난 27년간 필자가 듣거나 경험한 바로는, 필리핀 사업가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민 사업가들이 직원 채용 시 경찰 가족을 우선적으로 배제한다. 그만큼 필리핀 경찰들의 이미지는 오랜 세월 동안 부정적이었다. 한 달 전 필리핀 경찰청은 범죄혐의로 조사받고 있거나 재판받는 경찰 300여 명을 이슬람 반군과 전투중인 필리핀 남부 바실란 섬으로 전출시켰다. 그들은 향후 2년간 그 오지에서 일해야 한다. 형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혐의가 있는 경찰은 인사와 보직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두테르테가 집권한 후 치안환경이 많이 개선되고 범죄율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뿌리깊은 필리핀 부패경찰들을 앞으로 얼마만큼이나 솎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필리핀 경찰들의 급여가 중산층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낮아 큰 돈을 벌 기회가 생겼을 때 공권력을 악용해 범죄에 쉽게 연루되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일 로널드 델라 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이 앙헬레스를 찾아 한국인 관광객 등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했다 적발된 경찰관 7명에게 공개적으로 얼차려를 줬다. 앙헬레스는 지난해 10월 필리핀 경찰에 의해 납치 살해된 한인 사업가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필리핀에서는 현지 경찰과 자주 어울려 다니거나 경찰과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그런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그들은 조폭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찰과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려 다니다 심각한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다. 살인이나 강도, 도박과 매매춘 및 마약범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기죄, 횡령죄, ‘더미방지법’ 위반죄와 같은, 중형이 선고될 수 있는 범죄와 연루되면 돈맛에 취한 부패경찰들이나 범죄수사국(NBI) 요원들이 파리떼처럼 몰려들 것이 뻔하다.

‘더미방지법’ 지키며 합법적인 사업해야


▎필리핀 앙헬레스 한인타운에 설치된 CCTV. 한인 범죄피해와 범죄자 도피가 계속되면서 방범시설을 강화하고 있다.
간혹 어떤 사정으로 필리핀 법을 위반해 조사받거나 관공서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담당 수사관 또는 공무원에게 현금을 주어 해결하려는 교민이 적지 않다. 불법행위에 연루된 교민들의 약점을 알아챈 한국인 조폭들은 현지 경찰이나 NBI 요원들과 공모해 어렵지 않게 교민들로부터 현금을 갈취할 수 있다. 협박받은 교민들은 대사관이나 필리핀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린다. 또 신고하더라도 대사관에서 과연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지 확신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필리핀 경찰들은 한통속이라는 생각 때문에 신고했다 오히려 문제가 더 크게 꼬일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기 때문에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심심찮게 벌어지는 교민 관련 사건을 접하는 필리핀 경찰과 공무원들은 모든 한국인이 겁도 많고 현금도 많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약점 잡힌 한국인을 봉으로 생각하고, 이들로부터 목돈을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이런 문제에 맞닥트렸을 때 변호사나 대사관에 알려 도움을 받아야 조금이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음성적으로 해결하려 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 다행스러운 일은 두테르테의 필리핀 정부가 공무원 부정부패 척결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돈 냄새를 맡은 조폭들과 부패한 필리핀 경찰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한 번 약점을 잡히는 순간 헤어날 수 없는 결과가 기다린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교민들 스스로 경계하는 부분도 필요하지만 한국 정부와 대사관의 노력과 체질개선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인 관광객이나 교민이 억울한 사건에 연루됐을 때 대사관이나 외교부 등 우리 정부의 대응은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었다. 특히 대사관과 교민들의 관계가 물과 기름이라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정보 공유가 부족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내 일이 아니라는 행태를 보인 적도 있었다. 우리 교민과 한국인 관광객들이 범죄에 노출됐을 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교민사회와 우리 정부의 공동대처 노력이 필수다. 두테르테 정부 출범 후 변화하는 현지 상황에 맞춰 이제는 한국정부가 적극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부분 중 필리핀의 ‘더미방지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리핀은 자국민의 사업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국내산업에 투자할 때 4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둔다. 하지만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 경영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은 현지인의 명의를 빌려 허수아비 주주를 세운다. 이렇듯 명의를 빌려주는 현지인을 ‘더미(Dummy)’라고 부른다. 필리핀 정부는 ‘더미방지법(Anti-Dummy Law)’이라는 특별법을 통해 불법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명의를 빌려주는 현지인과 빌린 외국인 모두 5년 이상 15년 이하 중형에 처하고 공소시효도 없다. 즉, 외국인들은 필리핀 내수시장에 투자할 수 있지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내수시장에서 사업을 벌이는 적지 않은 교민은 투자한 사업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더미방지법’을 어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국대사관에서도 이러한 실상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사관은 경영권 문제 때문에 필리핀 법을 교묘하게 위반하는 일부 영세한 교민사업가들을 적극적으로 계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교민사업가 중에는 자신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가난한 현지인을 ‘더미’로 내세워 사업을 한다.

대사관 측은 일부 교민의 이러한 불법행위를 인지하고 있지만 사건으로 비화하지 않기를 바랄 뿐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업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다 보니 동종업계의 현지인 사업가들이나 화교, 일본인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교민들 밀집지역에서 영세한 한국인들끼리 부대끼며 서로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필리핀 경찰이나 공무원에게 불법행위가 발각돼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교민들이 모여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걱정하며 멀찌감치 서서 팔짱을 끼고 관망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필리핀 경찰들에 의해 납치 살해된 한국인 사업가 지모 씨가 운영하던 마닐라 소재 회사 직원들이 지난 2월 6일 사건 현장에서 추모의 풍선을 날리고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 교민사업가들이 범죄에 연루되지 않고 안전하게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정직하고 유능한 현지인 동업자를 찾아 그들에게 60% 이상의 지분을 맡겨 함께 경영하는 수밖에 없다. ‘더미방지법’을 피해가려다 약점이 잡히고 오히려 더 큰 범법자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오랜 세월 필리핀에 살면서 현지 경찰들과 친분을 쌓을 기회가 많았다. 한국 조폭들과 알고 지낼 기회도 있었다. 급한 사정이 생겼을 때 손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최대한 관계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게 결론이다. 두테르테 정부 하에서 급변하는 필리핀 내부의 변화상에 맞춰 한국정부의 대처 못지 않게 교민사회 소속원들, 그리고 현지를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의 체질개선 역시 중요하다.

- 마닐라= 문종구 자유기고가, HANISHI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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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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