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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트렌드] 나 혼자서도 ‘잘’ 산다, YOLO! 

“외롭다고요? 고독은 자유롭잖아요”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고급취미로 자신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인 ‘나홀로’족 늘었다! 삶에 지친 직장인들의 서글픈 현실에서 생겨나 삶의 주도권을 찾는 방향으로 ‘진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욜로(YOLO)족이 늘고 있다. 김혜리 씨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혼자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 직장인 서지현(33·여) 씨는 최근 서울의 한 특급 호텔에 묵었다. 출장이나 여행 목적이 아니었다. 단지 하루를 푹 쉬기 위해서다. 오후에 체크인한 서씨는 뷔페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바(bar)에서 라이브음악을 들으며 와인 한 잔을 즐겼다. 스파에서 전신 마사지를 받은 서씨는 방으로 돌아와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잠들었다. 30만원 정도의 1인 패키지를 이용했다. “기분전환도 할 겸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 위해 선택했어요. 최고의 서비스를 받아보는 것 또한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거든요.”

#. “요즘 식물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제는 취미라기보다 식사 후 설거지하듯 일상이 된 느낌이 든다.” 오선해(가명·32·여) 씨는 6개월 전부터 허브를 비롯한 각종 식물을 재배한다. 평소 요리를 즐기는 오씨는 허브를 사용할 일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로즈마리·바질 등의 식물을 기르게 됐다. 수경재배를 하기 위해 미국에까지 장비를 주문했다. 한 달에 두 세 번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 들러 마음에 드는 꽃을 구입하는데 갈 때마다 10만원 정도를 투자한다. 그의 휴대폰은 꽃과 식물 사진으로 가득하다. 그런 오씨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경기도 양평의 시골집을 찾는다. 그는 사실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인생이잖아요. 그래서 오늘 하루도 가장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요.”

혼자 즐기되 ‘우아한 취미’를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여행이나 취미생활 등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이들이다. 이른바 ‘욜로(YOLO)족’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영어 문장에서 따온 말이다. 캐나다 출신의 가수 겸 배우 드레이크가 ‘The Motto’라는 노래에서 “인생은 한 번뿐이야. 이게 인생의 진리지.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라고 부른 이후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이 주도한 ‘오바마 케어(미국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 법안)’를 독려하는 동영상에서 ‘욜로맨’을 언급하면서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등록됐다. 현재와 오늘을 중요시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투데이족’으로 부르기도 한다.


▎6개월 전부터 허브를 비롯한 식물을 재배하는 오선해 씨는 수경재배를 위해 미국에까지 장비를 주문했다.
SNS 인스타그램에서 ‘YOLO’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3월 10일). 해시태그(#)로 언급된 숫자만 2507만9468번이다. 욜로 라이프 확대에 따라 온라인 카페도 활성화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욜로’들을 위한 카페에서는 혼자 즐길 수 있는 맛집·여행·공연 등의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영화 보러 갈래요?” 연인들의 ‘흔한’ 데이트 코스인 영화관에도 1인석이 늘고 있다.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족(혼자 영화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좋아하는 공연이나 고궁 관람 또한 티켓 1장만 끊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2000년 15.5%에서 2015년 27.1%로 1인가구가 증가하며 ‘혼밥’‘혼술’‘혼행’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나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형


▎특급호텔들은 욜로족들을 위해 1인 패키지를 속속 선보였다.
욜로족은 이런 ‘혼족’의 진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저 ‘나 혼자 산다’는 게 아니라 ‘나 혼자도 잘산다’는 게 욜로족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욜로족의 소비는 일탈을 꿈꾸는 여행, 새로운 분야의 학습 등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콘텐트로 모아진다. 미래를 위해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고, 저축하는 고달픈 삶 속에서 직장인들은 꿈꾸던 ‘일탈’을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욜로족의 소비 행태는 ‘아낌없는 투자’형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 소비를 줄이던 것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자신을 위해서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욜로족들은 호텔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에게 호텔은 고급 ‘쉼터’다.

이런 추세에 맞춰 특급 호텔들도 ‘1인 패키지’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서울 신라호텔이 지난해 투숙객을 분석한 결과 1인 투숙객이 전체 이용객의 35%에 이른다. 연초부터 1인 투숙객을 겨냥해 주중 저렴한 가격으로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마이 홀리데이 패키지’를 출시했다. 그랜드힐튼서울은 8만 원 상당의 고급 샴푸 세트와 수필집 <잘하고 있어요, 지금도> 1권을 증정하는 ‘포미(For Me)’ 패키지를 선보였다. 쉐라톤 서울디큐브시티호텔도 스파 이용과 조식 뷔페를 포함한 ‘힐링 스파 패키지’를 내놨다.

특급 호텔들이 욜로족을 위해 선보인 상품은 기존 객실보다 가격을 낮추고, 온전히 개인의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혜택들을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서울 신라호텔 관계자는 “호텔이 숙박의 개념에서 휴식과 힐링의 개념으로 변모하면서 혼자 방문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앞으로도 1인 패키지 상품을 더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호텔에서 1인 패키지를 이용해봤다는 서지현 씨는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해주는 곳은 회사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며 “패키지로 모든 서비스를 한꺼번에 누릴 수 있어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샛별(37·여) 씨는 이따금 백화점에 들러 조금은 과감한 쇼핑을 즐긴다. 최근에도 명품 속옷과 이불, 향수를 구매하는 데만 150만원을 썼다. “피부에 닿는 제품만큼은 가장 좋은 제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신의 소비가 결코 ‘사치’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단순한 충동구매가 아니라 삶을 바꾸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20대 후반,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를 정도로 3년간 투병생활을 한 김씨에게 삶의 소중함은 더욱 절실히 와 닿는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이후 오랜 시간 공들여 고민해 만든 물건으로 품위 있는 삶을 향유하기로 결심했다. 때로는 향이 그윽한 고급 차를 즐기기 위해 찻집을 찾거나, 고급 찻잔세트를 물색하러 다니기도 한다. 편의점에서 사온 과자도 좋은 그릇에 담으면 한층 여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씨는 “먹기 위해 살거나 살기 위해 먹는다는 류의 인생이 안 되려면 꼭 비싼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대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 매년 300만~400만원을 자신에게 투자한다.

고급 음식점만 찾는 욜로족도 있다. 부모님이 정년퇴직 후 귀농한 뒤 직장 때문에 혼자 서울에서 자취를 하게 된 김소연(33·여) 씨는 ‘혼스시(혼자 스시를 먹는)’족이다. 한 번에 10만원 가까이 하는 고급 초밥집을 찾아다닌다. “가격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는 주변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게 혼자 초밥집을 찾는 이유다. 한 달에 초밥을 먹는 데 들이는 비용만 30만~40만원에 이른다. 올 초에는 초밥 본고장인 일본 도쿄에도 다녀왔다. 만족하는 만큼 여행 경비는 전혀 아깝지 않다. “현재 내 오감(五感)이 즐거워하고 만족하도록 살고 싶어요.”


▎고급 스시집만 찾는 ‘혼스시’족 김소연 씨는 지난해에는 초밥 본고장인 도쿄에 다녀왔다.
경제학자들은 욜로족의 소비가 충동구매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욜로족의 소비는 비물질적 소비에 가까우며, 현실적 문제 등으로 실행하지 못했던 욕구의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소비 패턴이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만 쾌락과 기쁨을 동반하는 감정인 ‘길티플레져(Guilty Pleasure)’와 흡사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향한 실천인 욜로라이프는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을 지닌 만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충동적 소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욜로족 중에는 꼭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품격 있는 문화생활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젊은 시인 신승민(26) 씨는 “큰돈 없이도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신씨는 ‘사색을 하기 위해’ 유적지·박물관·미술관 등을 자주 찾는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영감이 필요한데, 혼자 풍경과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몰입이 가능해서 좋다”고 한다. 신씨가 사색의 장소를 찾기 위해 들이는 비용은 입장료와 교통비 정도다.

삶의 질 높이는 ‘도전’형


▎자기주도형 소비로 삶의 질을 높이는 욜로족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여행이다.
욜로족은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삶의 질을 높이는 자기주도형 소비로 욜로족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바로 여행이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욜로족이 대표적으로 지갑을 여는 것이 여행인데 시간과 돈이 남을 때 가는 게 아니라 수입에서 기본생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지출을 제외하고 모은 돈을 여행에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투병 대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여생을 마감한 91세 노인 노마 마우어슈미트가 보여준 욜로라이프도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얼마 전 tvN에서 방영한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등과 같은 여행 프로그램도 욜로라이프 트렌드를 가속화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모두투어에 따르면 2015년부터 급증한 혼행족은 지난해 여행상품 예약 5건 중 1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과 2016년 항공권 예약 절반도 1인 예약으로 나타났다.

최근 오랜 공직생활을 접고 한 달간 홀로 여행을 결심한 허정수(가명·46) 씨는 “책으로만 만나던 곳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며 첫 여행지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택했다. 허씨는 40대 초반 암을 발견한 뒤 삶의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40여 년간 달려온 시간이 허망하게 끝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이후 자전거와 달리기로 하루 두세 시간을 투자했다. 허씨는 “이번 여행은 가족들이 배려한 휴식이자 인생공부”라며 “한 달간 매일 30㎞ 정도씩 걷는 동선을 짰다”고 했다. 교통비와 숙식을 포함해 500만원가량을 예상한다는 허씨는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상황과 사람이 ‘도전’이라고 답했다.

부산에서 공연기획자로 일하는 김혜리(31·여) 씨는 줄곧 제주도를 찾는 ‘제주도 혼행족’이다. 오름에 오르기 위해서다. 오름의 장점은 “적당해서 좋다는 것”. 일반 등산에 비해 장비나 복장, 시간 부담이 없다. 한 번 제주도에 갈 때마다 두세 군데의 오름에 오른다. “어느 정도 올랐을 때 주변이 적막에 휩싸이듯 완전히 혼자 있는 느낌이 들 때 외롭다기보다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김씨는 지난해 거의 두 달에 한 번 꼴로 제주도를 찾았다. 한 번 갈 때마다 30여 만원의 경비가 든다. 김씨가 말하는 혼행의 장점은 “자신을 위해 가는 것인 만큼 스스로 만족도가 높은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란다.

이에 따라 여행업계도 욜로족을 겨냥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모두투어는 올해 부산에서 출발하는 ‘욜로 청춘 패키지’를 선보였다. 홀로 떠나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쇼핑 횟수는 줄이고 자유 일정을 늘렸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무제한 삼겹살 파티’도 마련했다. 인터파크투어도 ‘지금 이 순간! 해외여행 인생특가’ 기획전을 마련하는 등 가격을 낮춰 욜로족을 겨냥한다.

스스로 직접 해보겠다는 ‘실천형’ 배움도 늘고 있다. 공연 기획자 김씨는 평소 관람만 하던 발레를 2년 전부터 직접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평소 취하지 않던 자세로 운동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다리를 앞뒤로 찢는 동작을 연습하다 보면 하루 종일 온몸이 쑤셔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변화가 생겼다. 다리를 벌리는 동작부터 한쪽 발로 균형을 잡고 서는 동작들이 하나씩 완성돼 갔다.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김씨는 “(발레는) 꼭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떨쳐낼 수 있었다. 스스로 한계를 하나씩 벗어 던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다시 학업의 길을 택하는 이도 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수빈(33·여) 씨는 직장생활 10년차부터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씨는 “점점 사회의 부속품처럼 느껴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았다”며 용기를 내서 대학원에 등록했다. 석사과정 2년 동안 3000만원 정도가 들었다.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이었다. 주 2회 퇴근 후 야간수업을 듣고 나면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습득 속도도 예전 같지 않았다. 논문은 출산휴가 3개월간 산후조리를 하면서 썼을 정도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력서 한 줄’을 위한 투자일 수 있겠지만 제게는 사회생활의 권태기를 벗어난 원동력이 됐어요.” 이씨는 “(대학원 생활이) 워킹맘이 되기 전 마지막 ‘욜로’생활이었던 것같다”며 웃었다.


▎욜로족들은 각자 한두 가지씩 취미생활을 즐기는 특징을 가졌다. (시계반대 방향으로) / 1. 베이킹과 같은 요리도 작품세계에 속한다. / 2. 김남주 씨는 최근 베이스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 3. 재봉으로 가죽가방을 만드는 이경현 씨. / 4. 도자기공예 작품.
온라인 마케터 김남주(26·여) 씨는 4개월 전 베이스기타를 샀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가수가 속한 밴드음악의 베이스기타 소리를 직접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좋아하는 밴드의 콘서트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한 달에 20여 만원, 기타 레슨에 10만원을 투자했다. 그는 손가락에 물집이 날 정도로 연습에 몰두한다. 올해 아마추어 직장인밴드의 베이시스트로 들어간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술의 문턱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자신만의 작품을 남길 수 있는 도자기공예·재봉·미술·요리 등의 취미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이혜미(가명·33·여) 씨는 지난해부터 재봉을 배운다. 법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해온 그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서툴렀지만 첫 작품을 만들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 말고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는 이씨는 작은 휴지통 덮개에서 시작해 이제는 여름 원피스까지 만들 정도라며 밝게 웃었다.

나만의 작품 남기는 ‘흔적’형


▎공연기획자 김혜리 씨는 그동안 관람이 취미였던 발레를 2년 전부터 직접 배우기 시작했다.
재봉·베이킹 등의 취미를 가진 디자이너 이경현(가명·38·여) 씨는 서른 중반부터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의 집 작은방은 마치 공방처럼 꾸며져 있다. 퇴근 후 재봉틀에 천을 올리는 순간 그의 또 다른 일상이 열린다. 날이 샐 때까지 천가방·가죽가방을 만드는 데 온전히 몰입한다. 이씨는 “만든 작품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요리도 그의 ‘작품세계’에 들어간다. 대충 끼니를 해결하는 수준이 아니라 먹음직스럽게 만든 음식을 예쁜 그릇에 올려 고급식당 못지않게 자신을 ‘대접’하는 것이다. 호스트가 게스트를 접대하듯 자신에게 최고의 대우를 하는 방식이다. 꼭 누군가가 함께하지 않아도 사진을 찍어 SNS에 기록으로 남기고 나면 작품 하나를 탄생시킨 기분이 든다고 한다.

4개월간 도자기공예를 배운 최수여(31·여) 씨의 작품은 여느 명품 브랜드 제품 못지않게 수준이 높아 보인다. 흙으로 빚어 말리고 유약을 칠한 뒤 가마에 구워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3~4주 정도가 걸리지만, 마지막에 ‘해냈다’는 희열이 온몸을 감싼다. 최씨는 “도자기를 빚을 때는 엄청난 정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오랜 시간 집중하지 않으면 도자기 모양이 흐트러져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삶이 다채롭고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덧붙였다.

욜로족들이 이렇게 ‘혼자’를 택한 계기는 대부분 지친 업무 탓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대하는 서비스직이나 컴퓨터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고독을 택한다. 인터뷰에 응한 직장인들은 입을 모아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호소했다. 김남주 씨는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혼자 있고 싶다는 욕구가 더욱 강해졌다고 했다. 그는 “무조건 고객의 말에 호응해야 하고,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일하지 않는 시간만큼은 침묵하고 싶었다”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고운(33·여) 씨는 “고객의 취향에 맞춰야 하는 서비스 직종에서는 늘 나 아닌 누군가의 기분을 살펴야 하고, 시간의 구애를 받기 일쑤”라며 “동행하는 사람의 취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혼자 즐기는 게 편하다”고 말한다. 최수여 씨는 “문득 하루 중에 일 말고 나를 위한 시간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또 주말마다 전시관을 찾는 김샛별 씨는 “활자에 파묻힌 업무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가 상상력을 자극시켜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직접적인 메시지라면 예술은 독창적인 언어로 만들어진 간접적인 소통방식”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선입견도 존재한다. 김남주 씨는 마치 ‘현재만 있고 미래가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며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다. “간혹 부모님 세대는 욜로족을 현재의 즐거움만 추구한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공동체의식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요.”

더 나은 미래 위해 현재에 충실할 뿐

욜로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고 입을 모은다. 김고운 씨는 “여행을 가기 위해 오히려 지금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듯, 미래는 곧 다가올 ‘현재’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김남주 씨 또한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인생의 주체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에 충실하다고 해서 미래를 등한시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단기·장기계획을 세워 저축하는 등 지금 하는 활동이 미래의 제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해요.”

심영섭 교수는 욜로족을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두 배의 수입으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과 비교해서 말했다. “양적 경제력을 지향하는 딩크족과 달리 욜로족은 현재라는 질적 시간과 경험지향적 삶을 산다. 특히 이들은 동기지향적으로 기존의 소유지향적 삶을 버린다는 점에서 기존 세대와 가족제도, 가치관에 대한 일대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카르페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을 향해 외치던 ‘카르페디엠(carpe diem)’은 지금의 욜로족과 많이 닮았다. 키팅 선생은 젊음의 열정과 낭만을 포기하고 오직 공부에 매달리는 제자들에게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카르페디엠’은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뜻이다. 삶에 지친 직장인들의 서글픈 현실에서 생겨난 욜로족이지만, 이들은 ‘카르페디엠’을 외치며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찾아가고 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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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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