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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의 파.스.텔. 인생(11)(마지막 회)] ‘자유’라는 이름에 취직한 ‘학소도(鶴巢島)’의 주인 최범석 

영원한 반더루스트(방랑벽) 들고 다닐 수 있는 것만 소유하라! 

손관승 세한대 교수, 언론중재위원
집으로의 초대가 사라진 시대, 사람들을 기다리는 그곳…자유는 외로운 것,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자만이 선택할 수 있다

서울 홍제동 인왕산자락, 2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남아 있는 단 한 채의 허름한 단독주택. ‘학이 하늘을 날아가다 둥지를 마련한 도시 속의 섬’ 같은 그 집에 자유영혼을 가진 한 중년 남자가 산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사는 이야기를 듣는다.


▎최범석 씨의 현재 직업은 스포츠마케팅 회사 사장이다. 그는 한국의 바이크족을 뉴질랜드나 일본 홋카이도 같은 곳으로 데려가 함께 아웃바운드 바이크 투어에 나선다.
우리는 지금 집 초대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에는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과도하게 사생활을 침범해 가며 불쑥 타인의 집 문을 여는 게 습관이었다면, 요즘은 친구와 동료의 집 문고리조차 잡아볼 기회가 없다. 언젠가부터 식사 초대라고 하면 ‘당연히’ 음식점을 뜻한다. 가끔 음식은 식당에서, 그리고 2차는 집으로 옮겨 와인이나 차를 마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 매우 드물다. 집 초대의 실질적 권한을 가진 안식구들에게 민폐가 되기에 바뀐 풍속도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끼리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게 있어서 상호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습성들이 있는 듯하다. 서로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불가침의 선, 그것이 바로 타인의 집 문턱이 아닐까? 사람들마다 현관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두면서 타인의 공간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화장기가 걷힌 진짜 인생, 삶의 속살을 들여다볼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초대받아 간 곳은 매우 예외적이었다. 그곳은 식당이 아닌 집, 그것도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었다. 주변에 20층짜리 고층 아파트단지가 병풍처럼 빙 둘러싼 서울 홍제동 인왕산 자락에 신기하게도 단 한 채의 단독주택이 짙은 초록빛 나무들과 함께 남아있어 흡사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다. 그곳을 가리켜 사람들은 ‘학소도(鶴巢島)’라 부른다.

학소도만의 특이한 분위기는 몇 년 전부터 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 언론인·예술가·교수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추억을 공유하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 백승권 시인은 멋진 시 한편으로 그 소감을 남겼다.

“문화촌 어느 아파트 단지 옆엔/ 길이 끝난 줄 알았는데/ 돌연 길이 열리고/

허허로운 비탈인 줄 알았는데/ 우물 속 같은 딴 세상이 열리는/ 그런 집이 한 채 있다./

그 집의 주인장은 발바닥이나 혹은 겨드랑이에/ 날개를 숨기고 있다가/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활짝 펼쳐 보인다./ 그 집엔 얼마 전 술을 끊은 셰퍼트가/

사람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며/ 감나무와 살구나무가 무용담을 이야기한다./

새벽별이 뜨기 전엔/ 그 집의 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이 시에서 ‘얼마 전 술을 끊은’ 셰퍼드로 묘사된 반려견과 함께 반겨주는 집 주인은 최범석. 악수하기 위해 장갑을 벗으며 내미는 손에서는 흙을 만지고 육체노동에 단련된 듯한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난다. 방문자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그는 먼저 이렇게 인사말을 건넨다.

“저희 집에 있는 여기 나무들을 혼자 가꾸고 치우다 보니 손이 거칠어졌네요, 어서 오세요!”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무는 가까우면서도 너무나 먼 존재이지만, 그는 늘 나무와 함께 살고 있다. 만약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잡초를 정리하기 위해 온 일꾼으로 착각할 뻔했다. 알고 보니 그의 이름 ‘범석’(凡石)은 돌아가신 부친이 세상의 평범한 돌처럼 소박한 삶을 살라고 지어주었다는데, 그런 연유 때문인지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무척이나 소박한 중년남자다. 물론 이름과 손, 겉모습이 소박하다고 그의 인생까지 평범할 것이라 예단해서는 곤란하다. 그의 옆에서 곧은 사선(斜線)으로 자세를 지키는 셰퍼드의 이름 ‘보너(Bonner)’부터가 그렇다. ‘뉴요커’가 뉴욕 사람이라는 뜻이듯, ‘보너’는 독일 본 출신 혹은 본 사람이라는 뜻이다. 셰퍼드라는 견종이 본래 독일산이기도 하지만, 그가 중학생 시절에 머물렀던 본을 추억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정신적 풍요를 나누는 플랫폼, ‘학소도’


▎고층아파트에서 내려다본 학소도는 흡사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은 모습이다.
이곳은 디자이너가 지은 집도 아니고, 호화스러움과도 거리가 멀다. 인왕산 산비탈에 옛날식 평범하기 짝이 없는 단층 양옥이고, 여기에 얼마간의 나무가 우거졌을 뿐이다. 집주인이 20년 동안의 해외생활을 하다 돌아와 폐허처럼 버려져 있던 옛집을 땀 흘려가며 가꾸고, 드나들던 지인들이 거들면서 도심 속 오아시스로 탈바꿈했다. 그런 남다른 스토리가 숨 쉬는 공간이기에 매력적인 것이다.

“제가 이곳에서 태어나 12년간 살다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1979년 독일로 떠나고 다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20년 정도 비어 있었어요. 그러다 귀국한 뒤인 1999년 단지 저만의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해 이곳에 왔더니 잡초만 무성하고 흡사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처럼 변해 있더군요. 그날 이 집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잔 뒤 그때부터 제 집이 되어버렸네요. 운명인가 봅니다. 18년,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거실에는 그의 아버지가 생전에 써서 낙관까지 찍어둔 ‘鶴巢島(학소도)’라는 붓글씨 세 글자가 액자 안에 걸려 있다. 아버지가 지은 옛집, 외국에서 돌아온 아들에 의해 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본 아버지가 학이 하늘을 날아가다 둥지를 마련한 도시 속의 섬이란 뜻으로 명명했다. 현대도시에서 사는 누군가의 집에 당호(堂號)가 있고, 이처럼 멋진 스토리텔링이 또 있을까?

나는 ‘학소도’라는 액자 앞에서 최범석이라는 사람을 과연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는 학(鶴)이라는 철새처럼 어느 날 조용히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어느 날 불쑥 돌아온다. 지구촌 거의 대부분을 탐험한 여행가다. 몇 권의 책을 낸 저자이며,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상을 누비는 바이커다. 그런가 하면 그 누구보다 화려한 학벌의 주인공이며, 현재는 스포츠마케팅과 컨설팅을 하는 ㈜포르투나의 사장이다. 여기에 요즘의 대세라는 ‘나 혼자 산다’의 1 인가구 세대주다.

학소도는 열려 있는 집이다. 그는 사람을 좋아해 이를테면 작가와 화가·음악가·외교관·저널리스트·여행가·모험가·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눈다. 가끔은 미국인·독일인 같은 외국인도 섞여 있어 다양한 언어가 오간다. 남자와 여자,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까지 뒤섞여 있다.

이곳은 삭막한 아파트촌의 허파 같은 곳이다. 생명의 근원인 땅과 친하게 해준다. “나무는 늙고 지치고 외로워 보이던 나의 고향집을 활기차고 풍요롭게 해주었다”는 이 집주인의 말처럼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나무 주변에 앉아 꽃향기도 맡고 서울 시내도 내려다보고 고기를 구우며 한껏 가든파티의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서양의 집에 들어갈 때처럼 신발을 벗지 않는다. 천장엔 지난가을 추수한 씨앗과 알곡들을 주렁주렁 걸어 갈무리해두었고, 벽에는 비밀 스토리로 가득할 것 같은 사진과, 옛 물건들이 걸려 있다. 마침 독일 축구영웅 베켄바우어, 그리고 차범근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기에 사연을 물었다.

“제가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에서 일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나중에 차 감독 아들인 차두리가 레버쿠젠으로 진출할 때 도와주게 됐고요. 국제축구연맹(FIFA)에 정식 등록된 에이전트로도 일했습니다.”

이곳의 백미(白眉)는 거실의 무쇠난로다. 초대된 손님들은 무게가 400㎏이나 나간다는 벽난로 앞에 빙 둘러 앉는다. 의자는 제각각이다. 장정 6명이 끙끙거리며 운반해 왔다는 무쇠로 만든 벽난로다. 장작을 때는 이 난로는 훌륭한 화덕 역할도 해서, 그 위에서 스테이크와 소시지를 요리하거나 고구마와 옥수수도 노릇노릇 구워 낼 수 있다. 물론 손님들이 가져온 와인을 따고 커피를 마시며 케이크나 치즈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이 벽난로 주변에서 이뤄진다.

그의 집 무쇠 벽난로 주변은 요즘 강조되는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노변정담(爐邊情談)’이란 말이 있고, 영어에도 ‘Fireside chats’라는 표현이 있듯, 난로 주변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나누게 해주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맥주와 와인, 그리고 그가 정원에 심은 나무에서 수확한 열매들로 담근 과실주, 이를테면 3년산 오디주를 마시며 손님들은 행복한 표정이다. 비록 현실에 묶여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집주인처럼 자유영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한국에서 보통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집이란 반(半)지하 전세 혹은 월세에서 출발해 점차 평수를 늘려가는 재미를 의미하잖아요? 그러니 집이란 경제적인 것과 하드웨어적인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외형적인 것보다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적 공간의 역할을 하니 소프트웨어적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인지 오시면 별로 차린 것도 없고 보잘것없는데도 좋아하시는 듯합니다.”

멋있는 집은 사람들의 숨결이 축적된 집


▎최범석 씨는 20년 정도 비어 있어 잡초만 무성하고 귀신 나올 것 같은 학소도 옛집을 다듬어 18년째 혼자 살고 있다.
그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고,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모이는 것도 아니다. 소박한 음식일망정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 마련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문을 열어야 한다. 그 다음에 마음이 열리고 소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학소도에서 확인하게 된다. 학소도의 오랜 증인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박철화 선생은 그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가을이면 그는 자신의 정원이자 텃밭에서 거두어들인 식물과 과일로 술을 담근다. 이따금 파티에서 그 술이 나오는 날이면 우리는 저마다 고향으로 돌아온 자의 기쁨에 취한다. 우리가 찾던 그 고향집의 색채와 냄새와 소리가 바로 여기 학소도에서 깊이 익어가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가구들은 구입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남들이 버린 헌 집기를 주워 와 고쳐 사용한다. 지금 내가 방문해 보고 즐기는 것들은 그 하나하나가 쉽게 돈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일일이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육체노동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나무를 심고 집을 고치는 과정을 통해 공간이 새롭게 탄생했다. 그의 책 <여행자의 옛집>에서 최범석 대표는 그 과정을 이렇게 말한다.

“누구와 친하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해 그만큼 많이 안다는 뜻이다. 나는 처음으로 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고장 난 기능을 고쳐주었다. 상처 난 곳을 실리콘으로 때워주고 찌든 때를 벗겨주었으며, 헐벗은 곳을 페인트와 타일로 덮어주고 환한 조명으로 어둠을 밝혀주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집은 즉각 큰 기쁨으로 보답했다. 나는 더 건강해지고, 멋져지고, 밝아지고 있었다.”

그의 집은 살아온 역사와 주인의 확실한 취향, 더 나아가 인생을 사는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런 느낌이 좋다. 획일화된 시대, 비슷비슷한 형태의 아파트, 뻔한 직장생활에 식상한 이들에게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영어에 ‘man cave’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자들이 작업하는 공간이라고 할까? 제 집은 주거와 작업이 뒤섞인 곳이죠. 건축가 김진애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은 시간의 갤러리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밴 집, 부모님이 저를 키워주던 시간, 이 집을 다녀간 사람들의 숨결이 축적된 집, 그런 집이 멋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제 집을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정말 영광이죠.”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코네티컷 하트퍼드에 집을 지은 뒤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우리 집은 생명이 없는 물질이 아니라 심장과 영혼’이라 했던 마크 트웨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다. 집에서는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자유의 영혼이 숨 쉬어야 한다. 학소도는 진정 그런 곳이다.

학소도가 물론 매력적이지만 내게 더 매력적인 것은 집주인과 집주인의 살아온 이야기다. 그곳은 집 여행이기에 앞서 사람 여행이다. 그는 그곳에서 홀로 산다. ‘돌싱’, 즉 이혼해 다시 돌아온 싱글이 아니라 원래부터 혼자 산다. 한국에서 혼자 사는 1인가구가 500만 명을 돌파했다 하고, 지난해 1인 가구의 비중이 27.6%나 되며, 조만간 30%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지금이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선정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1코노미’ 시대(Era of Aloners)의 화려한 주역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최범석 대표다.

그는 독일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미국에서 고등학교, 버클리대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하버드대 대학원을 거친 덕분에 영어와 독일어가 자연스럽다. 중학생 때 서울을 떠난 이후 배낭을 메고 짧게는 1주일, 길게는 1년 내내 5대양 6대주를 구석구석 여행했다. 여행광으로서 그는 알렉산더 솔제니친의 말을 좌우명처럼 생각한다.

“당신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것만 소유하라!”

그는 부모의 돈이 아닌 도서관 사서, 축구 심판, 서점 직원, 통역, 학원 강사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 돈으로 세상을 보고 또 자신을 발견했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중남미까지 그가 훑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시절 홀로 33일 동안 파리에서 인천까지 유라시아 횡단 기차여행을 한 뒤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20대에 쓴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타고난 여행광인지 잘 알 수 있다. 지금은 ‘내추럴 트래블러’로 이름 바꿔 다시 출판됐지만, 원래의 책 이름 ‘반더루스트(Wanderlust)’는 독일어로 ‘방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 혹은 자유영혼을 말한다. 그 이름처럼 그는 당시 혼돈스러웠던 러시아 대륙, 발칸 국가들, 그리고 흙냄새 날리는 중국과 몽골 등을 용감하게 헤집고 다녔고, 그 이야기들은 후배 배낭여행객들에게 하나의 전설처럼 남아있다. 그 책에 남긴 글이다.

“안정을 뒤로 하고 모험을 선택한다는 것은 항상 생각보다 어려운 법이다.”

그가 대학원을 휴학하고 하버드대가 있는 미국 케임브리지를 떠나 파리를 방문했을 때 영화에도 나오는 저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주인집 2층 ‘작가의 방(Writer’s studio)’과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4층 방에서 무료로 반년을 살게 되는 에피소드는 한 권의 소설 같다.

“저는 값비싸기로 소문난 파리에서 1년 동안 저렴하게 임대해줄 아파트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정말 우연하게도 서점 주인인 조지 휘트먼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할아버지는 제 사정을 들은 뒤 30분도 지나지 않아 아파트 열쇠를 제게 건네는 것 아니겠어요? 매일 한 시간 정도 할아버지의 책 편집 일을 도와드리는 조건으로 임대료는 무료였어요.”

이 서점은 작가 헨리 밀러와 ‘비트 세대’의 시인 앨런 긴즈버그가 집처럼 여겼던 곳이고,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와 시몬드 보부아르도 단골이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파리>에 나오는 헤밍웨이·피츠제럴드·제임스 조이스 등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특히 제임스 조이스는 대작 <율리시즈>를 이 서점 이름으로 출간할 정도로 파리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에게 대단한 존재였다. 최범석 대표는 그곳에서 소설 한 권을 썼다고 했다. 이 서점의 존재를 맨 처음 알려준 사람이자,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만난 전직 버클리대 교수는 그와 헤어지기 직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파리의 서점 주인이 불쑥 내민 열쇠


▎독일의 축구영웅 베켄바우어,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과 함께한 최범석 씨.
“학생은 아직 젊어서 잘 모를 수 있지만, 자유는 외로운 거야.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자만이 자유를 선택해야 해.”

그 말은 자유인 최범석의 가슴에 평생 남게 된다. 마치 뜨거운 불로 낙인을 찍듯, 그의 영혼에 강력한 낙인이 되어 깊게 박힌다. 그는 스스로 창업한 스포츠마케팅 회사를 운영하지만 자유라는 이름에 취직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자전거로 투어를 해주는 ‘바이크 오아시스 코리아’도 운영한다. 화려한 학력에 특출한 외국어 능력,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 근무, 게다가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WTO)에서 인턴도 했다. 유명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뿌리치고 다소 소박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

“큰 사업은 아니지만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여행도 좋아하고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한국에 자전거 길이 많이 생겨 이것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면 어떨까 싶어 제가 최초로 개발했지요. 인프라가 좋거든요. 서양사람들 가운데는 자전거를 이용한 시티투어, 친환경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착안했습니다. 물론 100% 안전과 장비, 가이드를 책임져야 하기에 시스템을 갖춰야죠. 천천히 달리면서 한국의 대자연을 소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요. 저는 전에도 축구유학 지원이나 스포츠 투어를 많이 했기 때문에 체질에도 맞는 듯합니다.”

집이 그렇듯 사업까지도 그는 한편으로 소박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자신만의 철학과 개성이 강한 일을 한다. 그는 사장이지만 가끔은 투어단에 참여해 함께 자전거로 달리며 외국어로 소개해주는 열성도 보인다. 한국의 바이크족을 뉴질랜드나 일본 홋카이도 같은 곳으로 데려가 함께 아웃바운드 바이크 투어에 나섰던 타고난 스포츠맨이다. 스포츠마케팅을 하는 그의 회사이름 ‘FORTUNA’는 행운의 여신을 의미한다. 그런 덕분일까?

한동안 길을 찾지 못하던 내 인생에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여주기 시작했던 것도 학소도를 방문한 직후였다. 나는 1999년 <반더루스트>를 읽었던 독자로 처음 그의 이름을 알았고,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 페이스북 친구가 됐다. 늦가을 그는 집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며 친구들에게 감 따러 오지 않겠느냐고 초청했는데, 때마침 그날은 나의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이란 책이 출간된 날이기도 했다. 출판사에서는 내 집이 아닌 그의 집으로 책을 배달해주게 됐고 그곳에 모여 있던 낯선 이들과 책으로 첫 소통을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감을 따면서 한동안 헤매던 내 인생의 ‘감’을 잡게 됐으니 나에게는 참으로 유의미한 장소 아니겠는가.

집, 살아온 인생, 직업, 하는 일 그 모든 것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읽을 수 있으니 바로 ‘자유’라는 단어다.

“생각해보면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아마도 ‘자유’가 아닌가 합니다. 살아오면서 중요한 결정의 시점마다 내린 최우선 순위에 그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직업이나 일이라 하더라도 너무 자유를 희생한다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배제했던 듯합니다. 제가 제 일을 하는 이유도 덜 제약받기 위해서이고, 집 역시 자유로운 곳이죠. 너무 화려하거나 새로운 것들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래도 자유를 희생하게 됩니다. 결혼에 특별한 거부감이 없지만 아직 미혼인 이유 역시 자유 때문인 듯합니다. 안정을 바라는 사람도 많고, 두렵고 고독하지 않으냐는 말들도 하는데, 제게는 이런 삶이 매우 익숙합니다.”

자연인, 그리고 자유인답게 비가 오는 날이면 옷을 벗고 그의 정원에 홀로 나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흠뻑 맞는다고 한다. 시각적인 시원함이 그려진다. 영원한 청년 같았던 그도 올해 들어 50이라는 숫자를 만났다. 혼자 사는 중년남자에게 그래도 외로움이나 어려움이 있을 터인데, 그것은 무엇일까?

“제 절실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나 깊은 밤 육체적 고독이 엄습했을 때 겪는 외로움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뜻밖의 아름다움과 마주할 때, 행복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을 때, 그때가 가장 견디기 힘든 고독의 순간입니다.”

많은 것을 배제하고 얻은 자유


▎최범석 씨는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시절 홀로 33일 동안 파리에서 인천까지 유라시아 횡단 기차여행을 한 뒤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이라는 책을 냈다.
학소도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울 풍경은 절경이다. 그의 집 학소도가 도심 속 허파 노릇을 하듯, 그의 삶 역시 지인들의 영혼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주는 영혼의 허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낡은 집과 그곳에 사는 부자 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규정한다. 물론 여기서 부자란 정신적인 것, 자유의 풍요로움을 말한다. 학소도의 주인이 좋아하는 독일 작가 괴테의 말 한 구절을 잠시 빌려볼까.

“자기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

이 집을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는 막강한 지위를 가진 사람도 있고, 큰 부자도 있으며, 권세가도 있고, 유명인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와 그의 집, 그리고 그의 인생을 부러워한다. 무엇 때문일까? 그의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자기 자신을 차별화하는가? 뛰어난 학벌? 억대 연봉? 선망받는 직업? 화려한 패션? 육감적 몸매? 호화저택? 럭셔리한 슈퍼카? 물론 그런 것도 의미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딘가 허전하다.

새삼 인생에 대해 생각해본다. 파스텔 정신이란 차별화된 마음, 기득권과 타성적인 것에 묶이지 않는 정신을 말한다. 바로 자유정신이다. 학소도에서 내려오는 인왕산길, 모처럼 두 어깨가 홀가분해졌다.

손관승 - 세한대 교수로 의사소통 능력과 스토리텔링, 리더십 등을 가르치고 있다. MBC 기자로 베를린 특파원, 국제부장, 100분 토론 부장 등을 거쳐 방송 콘텐트 플랫폼 기업인 iM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제2의 인생을 찾는 과정을 그린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그림형제의 길>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노마드>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언론중재위원으로도 재직 중이다.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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