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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화제] 이대호·최형우 250억원 ‘방망이 전쟁’ 

“李, 부드러움” vs “崔, 골반 회전력” 

이창호 스포츠 평론가·야구전문기자 river2000@naver.com
4년 150억원-100억원 초대형 계약, 롯데-KIA 유니폼 입어…이만수-김성한 이후 30년 만의 영호남 거포 대결 재현될까

‘빅보이’ 이대호(35)가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열광적인 부산 팬들이 뜨겁게 환영한다.‘금강불괴(金剛不壞)’ 최형우(34)가 이적했다. 삼성에서 KIA로 갔다. 고향 전주를 떠나 대구를 찍고, 광주로 옮겼다. 호남으로의 귀향이다. 이대호와 최형우는 ‘100억원 시대’를 열었다.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와 소프트뱅크 호크스,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를 거친 이대호는 사상 최대인 ‘4년 150억원’에 사인했다. 최형우는 ‘4년 100억원’에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국내프로야구 최초로 몸값 100억원 시대를 연 이대호(왼쪽 사진)와 최형우가 2011년 이후 6년 만의 진검승부를 앞두고 있다. 전지훈련 기간 타격훈련에 구슬땀을 쏟고 있는 이대호와 최형우.
올해 연봉으로 이대호는 25억원, 최형우는 15억원을 받는다. 잘나가는 대기업의 전문경영인 부럽지 않은 특급 대우다. 보통사람들은 꿈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프로는 돈이 실력이다. 기록으로,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들에게 걸맞은 개인기록은 뭘까? ‘타율 3할, 홈런 30개, 타점 100개’를 달성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대호는 롯데를 6년 만에, 최형우는 KIA를 2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어야 한다.

이대호와 최형우는 프로야구 초창기 ‘이만수와 김성한의 대결’을 떠오르게 한다. 영호남의 토종 거포들이 자존심을 걸고 펼친 ‘타격 경쟁’을 이어간다. 이승엽과 심정수(전 삼성) 이후 시나브로 사라진 ‘토종 거포들의 대결’도 재현해야 할 주인공들이다.

프로야구의 전체 흥행도 끌고 가야 한다. ‘관중 1000만 명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쩐(錢)의 전쟁’은 시작됐다.

‘8888577.’

무엇에 쓰는 비밀번호인가? 누구의 비밀번호인가? 아니다. 이대호가 경남고를 졸업하고 촉망받는 투수로서 롯데에 입단하던 2001부터 2007년까지 팀 성적이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 꼴찌, 2005년 반짝 올라서는 듯하다가 2006년과 2007년 다시 바닥권으로 추락했다.

롯데 팬들은 이 시기를 ‘암흑기’로 부른다. 국내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이었던 제이 로이스터 감독과 함께하면서 ‘가을야구’를 즐긴 2008년부터 2011년, 2012년까지를 ‘중흥기’라 일컫는다.

복귀(復歸)-이대호의 유턴은 희망


이대호는 투수로 입단했지만 첫해 스프링캠프에서 어깨를 다쳤다. 결국 고민 끝에 우용득 2군 감독의 권유를 받아들여 투수를 포기하고 타자로 전향한다. 이대호도 ‘암흑기’의 전반기를 같이했다.

그래도 2006년 이대호는 최고 타자의 길을 활짝 열었다. 어둠에서 빠져 나와 밝음을 만끽한다. 1984년 이만수가 타율 0.340, 홈런 23개, 타점 80개로 타격 3관왕을 차지하면서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누렸다. 이대호가 2006년 타율 0.336, 홈런 26개, 타점 88개로 22년 만에 역대 둘째의 대기록을 만들었다.

‘중흥기’는 이대호가 최고의 해를 보낸 것과 겹친다. 이대호는 2010년 타격왕(타율 0.364), 홈런왕(44개), 타점왕(133개), 최다안타 1위(174개), 출루율(0.444)과 장타율(0.667) 1위, 득점 1위(99개) 등으로 사상 첫 타격 7관왕에 오른 데 이어 2011년에도 타율 0.357로 타격왕에 등극한다. 일본 진출의 발판을 만들었다.

이대호에게 커다란 덩치는 장점이자 약점이다. 프로 입단 당시 백인천 감독은 이대호에게 체중 감량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무리한 탓에 무릎을 다쳐 고생했다. 일본에 진출할 때도,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때도 몸무게에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빼야 하느냐, 그대로 놔두느냐’가 논란이었다.

어느덧 이대호는 서른다섯 살이다. 볼 살이 빠졌다. 전체적으로 가벼워진 인상으로 롯데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참여했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대호는 롯데로 복귀하면서 ‘캡틴 완장’을 찼다. 책임감이 무겁다. WBC에 출전하느라 팀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했다. 미안함이 남는다. 이대호는 팀의 최고참으로서 ‘하나’를 강조한다. 오랜 경험을 바탕 삼아 강팀의 첫째 조건은 ‘팀워크’라는 결론을 내렸다.

올해 애리조나 캠프를 진행하면서 이대호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훈련 전 스트레칭을 할 때 모자를 쓰거나, 쓰지 않거나 선택에 맡겼던 것을 이번엔 바꿨다. 매번 “다 같이 모자를 쓰자”며 잔소리를 했다. 외국인 선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레일리가 모자를 쓰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다가 이대호에게 지적받는 영상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롯데 선수단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밝아졌다. 할 때와 안 할 때를 명확히 구분한다. ‘캡틴’ 이대호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선수단 미팅을 통해 때론 환하게, 때론 엄하게 강약을 조절하면서 ‘거인의 부활’을 재촉하고 있다.

이대호의 국내 유턴은 ‘롯데의 희망’이다.

이적(離籍)-최형우의 귀향은 꿈


▎정규시즌 막바지인 2011년 9월 11일 대구구장에서 이대호(오른쪽)와 최형우가 만났다. 1년 선배인 이대호가 장난스럽게 발길질을 하고 있다.
최형우가 꿈을 이뤘다. 해외를 거치지 않은 ‘토종 선수’로서 당당하게 ‘100억원 시대’를 열었다. 일본이나 미국에 진출하지 않아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최형우는 전주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포수로서 입단하던 2002년부터 줄곧 꿈을 꾸고 있었다. 좌절할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열심히 했다. 주전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포수로서 주전 기회는 오지 않았다. 진갑용이 확실하게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는 데다 경쟁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포수로서 실전에서 송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2005년 방출됐다. 삼성에선 필요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군 복무를 하면서 착잡한 심정을 정리하려고 상무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경찰청 야구단의 창단 소식이 구세주의 말씀처럼 반가웠다.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으니 행운이었다. 당시 김용철 경찰청 감독이 포수보다 타격 능력을 살려보자며 외야수로 전향하라고 권했다. 받아들였다. ‘최고 타자가 되겠다’는 또 다른 꿈을 꿨다.

2008년 전역을 앞두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방망이에 재주가 있다”는 김용철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현대 유니콘스 김시진 감독이 데려오려고 했다. 그러나 구단이 반대했다. “삼성에서 버린 선수를 굳이 우리가 지금 데려올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삼성이 연봉 5000만원에 다시 최형우를 붙잡았다.

최형우에겐 잊지 못하는 날이 있다. 2008년 4월 1일, 잠실 LG전에서 2-2 동점이던 연장 10회초 정재복으로부터 역전 우월 2점포를 날렸다. 프로 데뷔 후 첫 아치를 그린 날이다. 그는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최형우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라”며 호기를 부렸다.

최형우는 2016년 스프링캠프에서 또 한 번 자신감 넘치는 호언장담으로 구설에 올랐다. “4년 120억원의 가치를 지닌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다분히 FA 자격을 얻는다는 것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팬들의 눈길이 따가웠다. 비난이 차가웠다. “120억원이 장난이냐”며 조롱했다.

최형우는 해냈다. 2016 시즌 타율 0.376, 홈런 31개, 타점 144개를 기록했다. 3년 연속 ‘3할 30홈런 100타점’을 뛰어넘는 꾸준함과 절정의 기량으로 몸값을 최고까지 올려놓았다.

‘세상을 넓게 보자’, ‘오늘 웃고 내일 웃자’ 등의 각오를 문신으로 새겨놓은 최형우가 최고 자리에 올라섰다. KIA가 ‘4년 총 100억원’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최형우를 모셔 갔다. 최형우는 계약금 40억원과 4년 동안 연봉 15억원을 받는다. 스프링캠프의 호언(豪言)이 허언(虛言)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최형우는 가족애가 강하다. 전주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이 “늘 고맙다”고 말하곤 한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한 고향 친구들도 잊지 않고 있다.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생활한 지 어언 15년이다. 이젠 광주로 간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늘 하던 대로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지난 2월 오키나와에서 KIA 선수들과 짧은 스프링캠프를 진행한 뒤 WBC 대표팀에 합류했다. 대회를 끝낸 뒤 정규시즌이 시작되면 다시 ‘3할 30홈런 100타점’을 위해 뛸 것이다. 타자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한결 같은 목표다.

최형우는 2008년 늦깎이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후 삼성이 통합 4연패 신화를 쓰는 데 주역으로 활약했고, 골든글러브도 3차례나 수상했다. 최고 타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MVP(최우수선수)다. KIA에서 남은 꿈을 이루려 한다.

경쟁(競爭)-‘어게인 2011’


▎1. 지난해 미국프로야구 시애틀에 진출한 이대호는 주전이 아니었음에도 홈런 14개를 쏘아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 2. 2008년부터 삼성의 주전으로 발돋움한 최형우는 2011~14년 팀의 통합 4연패 주역이었다. 경기 중 큰 타구를 날린 뒤 궤적을 살피고 있는 최형우.
경쟁은 필수다. 전쟁이다. 이대호와 최형우가 ‘진검승부’에 나선다. ‘100억원 시대’를 활짝 연 주인공으로서 ‘최고 타자’ 경쟁을 시작한다.

이들은 최고 타자로 등극하기 위해 2011년 1라운드 혈전을 펼쳤다. 막상막하,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똑같이 133게임에 나갔다. 이대호는 타율(0.357)과 최다안타(176개) 1위에 올랐다. 홈런(27개)과 타점(113개)은 2위였다. 최형우는 홈런(30개)과 타점(118개) 1위를 차지했다. 타율(0.340)과 최다 안타(163개)에서 2위에 머물렀다.

특히 최형우에게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방출 전력이 있는 선수로서 최초 홈런왕에 올랐고, 프로 입단 이후 처음으로 전 경기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2010년 최고의 해를 보냈다.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남겼다. 도루를 제외한 공격 7관왕으로 MVP에 등극했다. 국내에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다. 국내에서 통산 11시즌 동안 1150경기에 나가 타율 0.309와 홈런 225개, 타점 869개를 남겼다.

이대호는 2012년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로 떠났다. 계약금 2억엔, 연봉 2억5000만 엔에 인센티브 3000만엔 등 총 7억6000만엔의 좋은 조건으로 진출했다. 최형우와 승부할 기회가 없었다.

그사이 최형우는 이대호의 뒤를 이어 펄펄 날았다.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3할 30홈런 100타점’의 금자탑을 쌓았다. 찬스에 강한 4번 체질임을 증명했다.

최형우는 “찬스가 오면 대기타석부터 즐겁다”고 말한다. “찬스에서 한방을 날리면 관중이 좋고, 선수가 좋고, 팀이 좋으니 얼마나 행복하느냐”며 웃는다. ‘주자가 있는 상황을 앞에 놓인 밥상과 같다’고 생각하며 준비한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체질적으로 ‘4번 타자’감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형우는 통산 11시즌(군복무 등 제외) 동안 1147경기에 나가 타율 0.314와 홈런 234개, 타점 911개를 기록 중이다. 이대호와 최형우는 국내 통산기록이 비슷하다.

WBC 대표팀에서 두 선수를 함께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순철 해설위원은 “늘어난 경기를 감안할 때 둘 다 언제든지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 위원은 이어 “이대호의 경우 부드러움이 장점”이라며 “어떤 공이든 자기 포인트에서 때려낼 수 있기 때문에 타율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흠잡을 데 없는 타격자세를 지녔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파워까지 겸비했으니 최고 타자로 올라설 수 있었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통했다는 진단이다.

변수(變數)-달라진 팀 사정


▎6년 만에 국내에 복귀한 이대호는 올시즌 붙박이 1루수로 출전한다. 스프링캠프 기간 수비훈련을 하고 있는 이대호.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과 함께 한국과 일본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종범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이대호의 기량은 변함없지만 팀 사정이 달라진 것이 변수”라고 말한다. 이대호가 한창 잘나갈 때 롯데 타선에는 힘 좋은 가르시아와 홍성흔이 앞뒤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상대 투수들은 이대호를 피해갈 수 없었다. 승부를 걸어야 했고, 그래서 이대호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 위원은 이어 “올 시즌엔 황재균의 미국 진출까지 겹쳐 롯데 타선에서 큰 것을 때릴 만한 타자가 줄었으니 이대호를 피해갈 이유가 줄어들었다. 이럴 때 이대호가 어떻게 컨디션을 조절하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느냐도 지켜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순철 위원은 “최형우는 거의 스트라이드를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골반의 회전력을 이용한 타격을 하기 때문에 좌우 투수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히팅 포인트를 유지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이런 자세를 지녔기 때문에 기복도 크지 않다”고 말한다.

이종범 위원은 “최형우의 경우 방망이의 발사 각도가 어퍼스윙을 하는 듯한 스타일인데다 팔로스루(Follow Through)가 이상적이기 때문에 좋은 홈런과 타점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절정에 오른 기량을 앞세운 ‘좌 형우-우 대호의 2라운드 대결’은 올시즌 팬심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 호재임이 분명하다.

프로야구는 1982년에 출범했다. 이만수와 김성한이 영호남을 대표하는 홈런타자로서 인기몰이에 앞장섰다. 이만수는 삼성의 간판타자로서 1983년 27개, 1984년 23개, 1985년 22개로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다. 해태의 중심타자 김성한은 1988년 30개, 1989년 26개로 2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이들이 바로 ‘흥행 보증수표’였다. 58년생 개띠 동갑내기인 김성한과 이만수는 각각 군산상고·대구상고 출신이다.

그리고 1998년부터 외국인 타자들이 들어오면서 한동안 ‘이승엽과 우즈의 홈런 경쟁’이 핫이슈가 됐다. 그 뒤 ‘토종 타자들의 대결’은 잠잠했었다. ‘좌 형우-우 대호의 대결’이 토종 타자들의 홈런 대결을 되살려야 한다.

최형우는 광주발(發) 흥행 돌풍을 일으킬 조짐이고, 이대호는 돌아선 부산의 팬심을 되돌려놓을 준비를 끝냈다. 다음 과제는 팀 성적과 함께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팀 성적 효과’에선 최형우에게 살짝 높은 점수를 줬다. KIA는 최형우의 영입으로 오른손 타자 일색이던 중심타선에 변화가 일어났고,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주찬·나지완·이범호 등이 최형우의 앞뒤에서 강한 타선으로 거듭날 것이다. 다만 최형우가 좌익수로 나갈 때 생기는 수비의 교통정리가 어떻게 안정화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흥행(興行)-1000만 시대의 쌍두마차


▎스프링캠프에서 진행된 타격훈련 도중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최형우. KIA에 최형우의 동기생으로는 투수 김진우 등이 있다.
롯데는 이대호가 고군분투하면서 끌고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뒤에 확실하게 방망이의 힘으로 상대 투수들을 위협할 수 있는 타자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순철 위원은 “이대호는 개인 기량을 떠나 롯데가 얼마나 팀 성적을 올려줄 수 있느냐가 개인기록을 유지하는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한다.

롯데 팬들은 이대호의 복귀를 환영한다. 그리고 롯데가 ‘가을야구’를 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대호의 복귀, 최형우의 이적은 이승엽의 은퇴 예고와 함께 올시즌 흥행을 주도할 ‘세 가지 기본 코드’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프로야구 10개 구단도 잘 알고 있다.

KBO리그는 지난해 역대 최초로 관중 800만 명을 돌파했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올해 관중 목표는 850만 명 정도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좌 형우-우 대호’가 2011년처럼 뜨거운 타격 대결로 쌍끌이 관중몰이를 해낼 때 목표 달성도 가능하다.

KBO는 올해 처음으로 WBC 1라운드를 유치했다. 그리고 오는 11월 일본·대만과 함께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앞으로 굵직한 국제대회는 계속 이어진다. 내년에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이 있고, 2019년엔 한국이 첫 대회에서 우승했던 프리미어 19가 열린다. 이미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 2021년 제5회 WBC까지 각종 대회를 흥행의 발판으로 삼아간다는 큰 틀을 만들어놓았다.

그 주인공은 선수와 팬들이다. 한국프로야구는 ‘몸값 100억원 시대’를 열었다. 이젠 ‘관중 1000만 명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2017 프로야구는 3월 31일 대단원의 막을 열고 6개월의 장기 레이스에 들어간다.

- 이창호 스포츠 평론가·야구전문기자 river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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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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