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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초상] 깊은 사유로 승화된 단순함의 미학 

“그림에는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다” 

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미술평론가
심플함은 정신자세까지 포함하는 삶과 예술의 지침… ‘그림을 그리는 자’에 온전히 충실했던 자세 돋보여

▎1949년 작 <독>. 지난 3월 7일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돼 7억원에 낙찰됐는데, 이 금액은 현재까지의 장 화백 작품 중 최고가다. / 사진제공·장욱진미술문화재단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해서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마디이지만 또 한 번 이 말을 큰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동아일보> 1969년 4월 10일자)

‘심플한 삶’이라는 어떤 것일까? 모든 복잡한 요소들을 단순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루의 생활을 단순화하고, 일을 단순화하고, 이야기를 단순화하고, 음식을 단순화한다면, 인간의 삶, 현대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심플한 그림의 대명사 화가 장욱진. 그는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과 더불어 일본유학 2세대로 분류되는 화가다.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서구식 미학 개념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조형어법으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뚜렷한 작가의식으로 시대를 초월한 모던한 작품세계를 이뤄낸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평가는 ‘단순성, 동서양의 이분법을 일탈한 융합적 사고, 작은 그림, 동심, 해학성, 문인화적 정취, 민화의 번안, 재료의 다양성’ 등 그의 그림을 수식하는 조형적 특징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식과 조형적 특징만으로 장욱진이 한국미술사에 끼친 영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조형적 특징은 작품을 통해 드러난 결과이지만, 정작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 즉 에너지원이 무엇이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화가 장욱진이 우리(미술계)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해본 결과 ‘단순함의 미학’이라는 답을 내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큰 벽면에 한두 점을 걸었을 때가 어울려


▎1986년 용인 마북리에 정착해 그린 <자화상>. 주변의 자연, 동물과 평화롭게 어우러진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어떤 것을 단순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생활습관, 일과, 공간은 물론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단순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특히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꾸밈과 허세를 벗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장욱진이 말한 ‘심플’은 그 사전적 뜻을 봐도 ‘간단한, 정교하지 않은, 장식 없는, 수수한, 검소한, 뽐내지 않은, 겸손한, 순진한, 천진한, 성실한, 절대적인, 거짓 없는’ 등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지녔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를 지닌 용어를 일상어로 거리낌 없이 사용한 장욱진의 ‘심플’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 ‘절제와 여유’, ‘비움’이라는 실천적 삶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그에게 심플은 외형적 단순함이 아닌, 그러한 단순함을 갖기 위해 갖추어야 할 몸과 마음, 정신자세까지 포함하는 삶과 예술의 지침이었다.

우선, ‘나무, 새, 집, 아이, 산’ 등 소재를 극도의 단순화된 형태로 만들어 작은 화면에 동화처럼 그린 그림만 보더라도 단순한 그림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답해준다. 예컨대 아무리 크고,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한 나무도 그의 그림 속에서 기껏해야 한 뼘 이상을 넘지 못한다. 형태도 둥글거나 삼각형 아니면 바람결에 흔들리는 정도의 모습이다. 이 같은 단순성은 집, 아이(사람), 산, 동물 같은 소재를 그릴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의 소박하고 소탈한 그림은 그 자체로 단순미를 발산하지만, 때로는 전시공간에 그림이 걸린 상황에서 도드라진다. 작은 그림이 크고 복잡한 것을 압도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설립되고 그곳에서 장욱진 관련 연례전과 기획전 등을 개최하면서 더욱 실감한 것이기도 하다. 장욱진의 작품은 크기는 작지만 큰 벽면에 여러 작품을 걸수록 작품의 맛이 살지 않는다. 오히려 큰 벽면에 한두 점을 걸었을 때 마치 그 벽면 전체가 작은 작품과 하나가 되는 듯 잘 어울린다. 작품자체가 지닌 단순함의 힘이 불필요하거나 복잡한 것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느낌이다. 마치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스 반 데어로에(Mies van derRohe)의 유명한 경구인 ‘Less is More(적을수록 더 풍부하고 좋다)’를 일찍부터 그림으로 실천했다고 할까. 본래 단순함은 간결함과 통한다. 복잡해질수록 특성이 사라진다. 핵심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진실로 남겨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안다는 의미다. 단순성이 명료함과 통하는 부분이다.

장욱진의 ‘단순미학’은 재료의 사용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 그림 그리는 재료를 따지거나 불평한 적이 없었던 그는 ‘화가는 재료에 끌려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좋은 재료나 비싼 물감을 고집하지 않았다. 캔버스가 없으면 종이에 그리고, 유화물감 대신 수채화 물감, 매직 마커, 먹, 볼펜 등 재료를 가리지 않았다. 그가 사용한 재료는 특별히 화가의 재료라고 구분지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사용한 재료만 놓고 봐도 장욱진은 예술의 가치를 재료보다 작품에 임하는 화가의 자세와 담고자 한 정신과 의미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직관의 순간 대상을 즉시 화면에 담기 위해 그림 그리기가 가능한 주변의 어떤 도구, 어떤 재료든 개의치 않았다. 이는 화가와 작업의 격식, 작품의 보존이나 가치보다 화가의 본질 즉 ‘그림을 그리는 자’에 온전히 충실했던 장욱진의 삶의 태도이자 화가로서의 자세 그 자체일 뿐이었다.

특정 유파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아


▎1975년 작 <초당>. 아래쪽에는 초당의 인물과 차 달이는 동자들, 중앙에는 경쾌하게 휘감은 나무와 그 밑에서 쉬는 사람, 그 위쪽에는 새와 해를 그렸다.
장욱진의 작품에서 구현된 단순함의 미학이 한국미술에 특별한 영향을 끼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욱진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단순함의 아름다움은 조형질서나 조형기법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와 화가에 대한 지극히 명료하고 단순한 이해와 실천으로부터 태어난 것이어서 특별하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립하기 위해서 도시문명 밖(덕소-수안보-신갈)으로 자신을 고립시키면서 단순한 삶에 충실한 그의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은 사유의 세계를 담고 있다. 이에 개인의 명예나 시대의 유행, 상업성과 철저한 거리 두기를 통해 이뤄낸 단순함의 미학을 단지 도상이 친숙하고 어렵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해석하고 가볍게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장욱진은 “예술은 생활 자체는 물론 시대조류와 유행과 그 어떤 외부적 영향에 비례하거나 논할 수 없다. 다만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모든 것의 자체를 이루는 핵심과 근원을 뚫고 파헤쳐 그 파헤친 위에 다시 창조된 예술이어야 한다.”고 피력했다.(장욱진 그림산문집 <강가에 아틀리에>) 이는 1960년대 이후 앵포르멜, 단색화, 민중미술 등 한국 현대미술의 뜨거운 흐름 속에서 특정 유파나 시류에 휩쓸리거나 동경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집을 지켜낸 실천적 삶과 연결된다. 궁극에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것이 오늘의 그림과 옛날의 그림을 구별 짓는 키포인트’(같은 책)라고 여기며 자기를 정직하게 드러내고, 자기만의 세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렇게 장욱진은 한국미술사의 특정한 양식에 포함되지 않는 시적 서정성 짙은 도상을 꾸준하게 탐구하고, 심화시킨 결과를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했다.

장욱진이 추구했던 작가정신은 “그림에는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다.”, “그림은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라는 지론과도 상통한다. 서울대 교수시절에도 도제식 교육이나 경향을 좇는 미술계의 풍토를 철저히 멀리했다. 소신 있는 태도로 그림은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 ‘영혼을 자극하는 발랄한 영(靈)의 대화체(對話體)’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믿음은 제자들에게 특별한 화풍이나 이론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방식으로 이어졌다. 대신 세속적인 눈높이와는 다른 세계관, 세속적 영리를 멀리하고 자연순환의 생을 동경하는 삶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인생을 숨김없이 보여주었을 뿐이다.


▎1986년 작 <나무>. 적막감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나무 위에 얹힌 집안의 사람만이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를 가진 듯하다.
장욱진의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 인연의 층위가 다양하거나 관계의 양태가 다채로운 것은 아닌데, ‘심플’ 정신을 인간관계에도 예외 없이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조건이나 자격보다는 예술이라는 넓은 세계를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냈다. 어떤 틀에 이끌리거나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며 오직 진솔한 인간관계 형성에 무게를 두는 태도를 고집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실제 장욱진이 참여한 주요 그룹전만 보아도 ‘신사실파’ 동인전을 제외하면, ‘앙가쥬망’ 활동 정도로 제한적이다.

장욱진은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화가의 진정한 자세로 여겼다. 그리고 궁극에는 누구와도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전통민화를 아끼고 늘 가까이했던 생활습관, 조선시대 선비문화의 정신이 묻어나는 구성과 한국적 정서를 가득 품고 있는 그림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양을 잘 이해하면서 동양적 사고로 행동했던 태도, 수묵화처럼 가볍고 간결한 표현으로 내면의 정신세계를 강조한 부분까지. 그가 화가로서 유지했던 태도는 시공간을 초월해 한국미술사에서 확고한 자기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근거로 삼을 만하다.

희망과 사랑, 행복함을 선물한 작가


▎용인 마북리 시절의 장욱진. 작업실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에 여유와 운치가 느껴진다. / 사진·중앙포토
한국 근현대미술사에는 많은 화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들 역시 당대를 살아가며 창작이라는 크나큰 산고를 겪으며 나름의 예술적 성과를 낳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 몸부림이 모두 찬사와 가치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잊히고, 또 누군가는 새롭게 재조명된다. 예술가의 숙명이자 예술의 특성이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화가 장욱진. 그가 한국미술사에 남긴 것은 특정한 화풍, 사조나 유행이 아니다. 소재의 일상성과 의미를 초월해 어린이다운 감성을 유지하며, 누구도 닮지 않은 자신의 사유세계를 그림으로 남겼다. 그가 이뤄낸 단순성은 온갖 욕구를 걸러낸 후 남겨진 존재와 사유의 본질이다.

결국에 화가 장욱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예술정신과 삶의 태도였다. 순수하고 간결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단순함의 미학’을 통해 보여주고,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과 사랑, 행복함을 선물해해준 것은 어떤 조형적 특징 못지않게 값진 것이다. 소탈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삶과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자 했던 장욱진. 그가 말한 “나는 심플하다”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이며 정신이다.

화가 장욱진의 그림 앞에 설 때마다 되뇌어본다.

“나는 심플하게 살고 있나?”

변종필 - 경희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동대학원 석사, 동 대학원 사학과 미술사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와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 당선.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편집위원 등 역임. <손상기의 삶과 예술>, <한국현대미술가 100인> 등의 공저가 있다.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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