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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 (17)] ‘사냥하는 인간’ 호모 네칸스(Homo Necans) 

라스코동굴은 구석기시대인들의 ‘바티칸’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교수
사냥을 통해 생존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과 자연에 대한 묵상…죽어가는 동물과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자연과 하나된 존재 확인하기

1만3000년 동안 묻혀 있던 선사의 비밀. 팔락이는 램프 불빛을 따라 살아 움직이는 듯한 벽화들. 그들이 이곳에서 벌인 의미심장한 의례의 실체는? 라스코동굴의 벽화들이 전하는 선사인들의 생각 들여다보기.


▎라스코동굴의 가치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고색창연한 벽화에 있다. 라스코동굴의 벽과 천장에는 수많은 동물그림이 그려져 있다. / 사진·중앙포토
프랑스는 2016년 12월 10일,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이자 인류 창의성의 발현지라고 자부하는 라스코동굴IV를 개관했다. 라스코동굴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다. 라스코동굴은 1948년 개관해 매일 1200명 정도가 방문했다. 이들이 내뿜은 이산화탄소·습기·열은 동굴 벽화에 영향을 주어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1963년 동굴을 폐쇄하고 원래 상태로 재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1983년 라스코동굴II를 원래 장소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건축하고 벽화의 90%를 재현했다. 그러나 라스코동굴II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움직임이 원래 동굴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내렸다. 라스코동굴III는 외부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벽화들이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이해 2016년 광명시에 전시되기도 했다.


▎사진제공·배철현
라스코동굴IV는 노르웨이 건축회사 스노헤타(Snøhetta)가 맡아 완성했다. 프랑수아 올랑드(Francois Hollande) 프랑스 대통령은 라스코동굴IV에 재현한 벽화들을 보고 “벽화 복사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라고 극찬했다.

프랑스에는 147개 동굴이 있고, 그중 15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벽화의 색감, 크기, 질, 종류에서 라스코동굴을 능가하는 곳은 없다. 라스코동굴 벽화를 맨 처음 분석한 예술사학자이자 신부인 아베 브로이(Abbé Breuil)는 라스코동굴을 “선사시대의 시스틴 성당”이라 불렀다. 라스코동굴IV는 1940년 발견 당시 동굴의 온도·공기압·습도와 음향을 그대로 재현했다. 동굴 입구는 첨단 시설로 장식했지만, 정작 동굴 안 벽화에는 어떤 디지털 장치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곳은 묵상과 자기발견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술에 관한 모든 것을 발견했어”


▎프랑스는 라스코동굴을 보호하기 위해 라스코동굴Ⅱ, Ⅲ, Ⅳ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라스코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 라스코Ⅳ의 일각. / 사진·중앙포토
1940년 9월 8일 프랑스 중서부 도르도뉴(Dordogne)주 동부 몽티냑(Montignac) 마을에 살던 10대 청소년 마르셀 라비다(Marcel Ravidat)는 동네를 둘러싼 야산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알려지지 않은 지하동굴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마르셀은 그날 지하 동굴로 이어지는 수직갱도 입구를 발견했다. 마르셀은 나흘 후인 9월 12일 세 친구와 함께 동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임시변통 램프를 만들어 어둡고, 좁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서서히 진입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고색창연한 벽화였다. 그들은 동굴 벽과 천장에서 수많은 동물그림을 발견했다. 그들은 넋이 빠진 채 팔락이는 램프 불빛을 따라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벽화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들 소년은 그 다음날 동굴의 더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이곳이 바로 라스코동굴이다. 라스코동굴의 갤러리와 통로는 전체가 240m다. 이곳에 그려진 2000여 이미지 중 900개가 동물그림이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기하학적 모형이다. 이렇게 많은 이미지가 현재까지 남겨진 이유는 쇼베 동굴처럼 동굴 입구가 운 좋게 기원전 1만3000년 전에 산사태로 막혔기 때문이다.


▎‘황소 갤러리’ 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검은 황소. 길이 5.2m의 대작이다. 전체가 검은색으로 칠해졌고 앞가슴 부분만 붉은색이다. / 사진제공·배철현
“그들은 예술에 관한 모든 것을 발견했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1948년 라스코동굴을 방문한 자리에서 동굴 안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라스코동굴 예술가들이 발견한 것은 상징의 언어다. 이집트 성각문자를 판독한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 François Champollion)에게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이 있었다. 샹폴리옹은 로제타스톤에 함께 적혀 있는 그리스어를 보고 성각문자를 판독했다. 그러나 라스코동굴벽화 예술가들에겐 로제타스톤과 같은 참고서가 없다. 그들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황금시대까지도 재발견되지 않았던 기술인 원근법을 이용해, 램프나 횃불의 펄럭이는 불빛 가운데 동물들이 마치 벽에서 튀어 나올 것 같은 생명력과 활동성을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했다.

벽화 중에는 말에 관한 벽화가 가장 많고, 17세기 초 멸종한 유럽 들소인 오록스·유럽들소·야생염소, 그리고 심지어 암사자 그림도 발견됐다. 이들 벽화는 기원전 1만7000~1만 5000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르네상스 시대 화가나 조각가처럼 최고 예술가들이 제작했다. 라스코동굴은 구석기시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에게 오늘날 예루살렘이나 바티칸 성당처럼 중요한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의미심장한 의례가 있었을 것이다.

동굴 속 동물그림은 ‘자연 순환에 대한 묵상’


▎동굴 입구에서 7.5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황소 갤러리’. 유난히 많은 황소가 그려져 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은 어떻게 칠흑 같은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고고학자들은 그 안에서 등불 유적을 발견했다. 사암으로 만든 등불에는 현생인류가 추운 겨울이나 밤에 불을 지피기 위해 사용한 동물기름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들은 이 동물기름을 등불 연료로 사용해 깊은 동굴 속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동굴 높은 곳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다리를 만들었다.

그들은 무엇으로 벽화를 그렸을까? 구석기 시대 화가들은 광물에서 추출한 색소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붉은색, 노란색, 검정색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붉은색은 적철석(hematite)을 붉은 진흙이나 황토색 진흙인 오커와 섞어 만들었다. 노란색은 철옥시수산화물(iron oxyhydroxides), 검은색은 석탄이나 망간산화물(manganese oxides)을 사용해 만들었다.

그들은 이들 색소를 곱게 갈아 물과 섞은 후 불에 가열해 접착 성분을 만들었다. 그들은 먼저 석탄으로 자신이 관찰해 머릿속에 간직한 동물 이미지의 윤곽을 그렸다. 그런 후 털이나 이끼로 만든 ‘붓’으로 색감을 칠해 넣었다. 혹은 물감을 입에 물고 속이 빈 긴 원통 뼈를 이용해 구멍이 뚫린 공판 위나 벽에 불어 착색시켰다. 그들은 무엇보다 ‘이미지’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았다.

문제는 노란색의 원료인 철옥시수산화물을 라스코 근처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 원료를 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장소는 라스코동굴에서 250㎞ 떨어진 피레네산맥 중부다. 혹독한 빙하기를 지내던 라스코 예술인들은 지하동굴 벽화를 그리기 위해 수백㎞를 여행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은 동굴을 거주지로 사용했다. 그러나 라스코동굴엔 사람이 산 흔적이 없다. 몇몇 동굴 입구 근처를 방문했을지 모른다. 그들이 남긴 손도장들을 조사해보면 남녀노소,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이곳에서 공동 의례를 올렸을 것이다.

극소수의 예술가만 동굴 안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는 몸이 겨우 들어 갈만한 좁은 통로를 걷거나 기어서 들어갔다. 정작 벽화를 그릴 만한 공간에는 아무런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라스코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동물그림들을 그렸다. 들소·사슴·오록스·야생염소·말·맘모스는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계속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공생하는, 때로는 생존을 위해 이들을 살해해야만 하는 자연의 순환에 대한 묵상을 그렸다. 그들은 이 공생하는 동물들을 죽일 필요가 없는 평온한 공간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의례를 드렸다.

라스코동굴의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은 동물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이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묘사된 동물들이 마치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라스코 예술가들의 목표는 실재감이다. 그런 착각과 환상은 동굴 의례의 핵심이다. 그들은 또한 실재감과 더불어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연출했다. 기억에 담은 3차원의 동물 이미지를 2차원의 울퉁불퉁한 동굴 벽에 솜씨 있게 옮겼다. 이와 같은 사실감과 생동감, 그리고 그 원칙인 원근감이,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과 카메라의 원칙이, 이미 라스코동굴 벽화에 구현돼 있다.

원근법을 사용한 선사시대 화가들의 안목


▎홍적세에 멸종된 큰 사슴인 메갈로세로스. 양 뿔이 하늘로 치솟았고, 입은 약간 벌려 헐떡이는 모습이다.
동굴 입구에서 7.5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등장한다. 길이 19m, 폭이 5.5m다. 여기에는 주로 황소가 그려져 있어 ‘황소 갤러리’라고 부른다. 황소 갤러리 왼쪽엔 긴 뿔이 두 개 쭉 뻗어있는 신화적 동물이 등장한다. 앞에는 여러 마리 검은 말이 중앙을 향해 달려간다. 중앙에는 검은색 목덜미와 붉은색 몸을 가진 말과 큰 뿔을 가진 황소, 그리고 그 앞에 다시 고동색 말의 상체만 묘사되었다. 그 아래엔 붉은색 순록들이 반대 방향에서 달려온다. 오른쪽에는 다시 검은색으로 윤곽이 뚜렷이 그려진 황소가 중앙을 향해 달려온다.

라스코 예술가들이 이렇게 생동감이 있는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그들은 동물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그들은 동물의 일반적이며 습관적인 움직임의 특징을 감지하기 위해 정교하고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관찰했을 뿐 아니라, 기억했다. 둘째, 그들은 동물들의 신체구조, 특히 신체비례, 근육과 뼈의 위치를 완벽하게 파악했다. 셋째는 자신이 관찰해 기억한 것을 예술적 상상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즉 상상력이다. 그들의 상상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피카소의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낀다. 그들의 상상력은 1만7000년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의 감성과 감탄을 자아낸다.

‘황소 갤러리’는 다시 끝이 막힌 약간 작은 통로로 이어진다. 학자들은 이 통로를 ‘축 갤러리’라고 부른다. 축 갤러리는 직사각형으로 22m 길이로 끝은 막혀 있다. 학자들은 축 갤러리 입구 벽화를 구석기 벽화예술의 정점으로 평가한다. 모든 선사시대의 동물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커다란 검은 황소, 세 마리의 차이니즈 말, 떨어지는 암소, 도망치는 말, 많은 오록스, 황소, 들소, 야생염소와 말들이 조화롭게 묘사되었다.


▎몸 아래쪽에 여러 사선으로 이루어진 기호가 등장하는 말 그림. 앞발과 뒷발의 위치를 보면 질주하는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다. / 사진제공·배철현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검은 황소, 차이니즈 말, 그리고 홍적세에 멸종된 큰 사슴인 메갈로세로스다. 검은 황소는 길이가 5.2m이며, 전체가 검은색으로 칠해졌고 앞가슴 부분만 붉은색이다. 차이니즈 말에는 특별한 상징이 등장한다. 말위에 네 개의 선이 그려져 있고, 몸 아래쪽에는 여러 사선으로 이루어진 기호가 등장한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라스코 예술가들에게는 중요한 상징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말은 오른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앞발과 뒷발의 위치를 보면 질주하는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다.

축 갤러리 끝 막힌 벽에는 거꾸로 떨어지는 말이 그려져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위대한 벽화는 바로 메갈로세로스다. 메갈로세로스는 가슴에서 머리 부분만 검은색으로 표현되었다. 양 뿔이 하늘로 치솟았고, 입은 약간 벌려 헐떡이는 모습이다. 그 밑에는 직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으로 12개점이 찍혀 있다. 이것을 그린 예술가는 점을 통해 숫자를 표시한 것 아닐까?

황소 갤러리 중간에서 오른쪽 긴 통로가 이어진다. 이 통로엔 380개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오록스, 들소, 사슴, 말, 야생염소를 그린 240개 이미지와 80개 기호들, 그리고 분류되지 않은 60개 이미지가 있다. 이 통로는 길이가 17m, 너비가 4m다.

황소갤러리에서 이 통로를 따라 20m 정도 더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의례를 행하던 은밀하고도 신비스런 공간인 ‘후진(後陣)’이 나타난다. 길이 4.5m, 높이가 2.7m다. 이곳은 동굴 안에 위치한 또 다른 동굴이다. 이곳에선 벽화뿐 아니라 의례에 관련된 유물들도 발견됐다. 이곳은 라스코동굴의 심장이다. 후진에는 500개 동물(대부분은 사슴) 이미지와 600개의 기하학적 모형 등 라스코동굴 예술작품 중 반이 이곳에 묘사돼있다.

수영하는 6마리 사슴, 영화 한 장면 보는 듯


▎길이 19m, 폭 5.5m에 달하는 황소 갤러리의 현란한 벽화들. / 사진제공·배철현
후진 끝부분에서 갈라진 틈을 자세히 보면 수직갱도가 나온다. 후진의 바닥에서 6m나 직선으로 내려와야 한다. 동굴 전체에서 가장 깊은 곳에 특별한 벽화가 있다. 학자들은 이 벽화를 ‘사고 장면’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창에 찔려 죽어가는 황소와, 사냥 후 지친 혹은 죽어가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그의 창이 묘사돼 있다.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에 사람 모습이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곳에는 벽화나 기호가 거의 없다. 모두 합쳐 네 동물과 세 가지 기호뿐이다. ‘사고 장면’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이 글에서는 동굴의 나머지 부분을 설명한 후 ‘사고 장면’을 해석할 것이다.

후진에서 다시 동굴 중간 통로로 나오면 오른쪽으로 내부 중앙부분인 신랑(身廊)이 나온다. 신랑은 길이 19m, 너비는 6m다. 신랑은 입구의 높이 2.5m로 시작해 끝으로 갈수록 점점 높아져 마지막 부분은 8m에 이른다. 신랑의 벽은 부드러워 대부분은 새김그림이다. 벽화들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평가받는 검은황소그림 패널과 원근법을 적용해 그린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는 들소, 그리고 상상의 개울에서 수영하는 사슴 패널이다.

이 수영하는 여섯 마리 사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맨 앞에서 수영하는 사슴은 몸이 수직이 되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그 뒤에 묘사된 다른 사슴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강을 안전하고 자신 있게 건넌다.


▎고대인들이 의례를 행하던 은밀하고도 신비스러운 공간 ‘후진(後陣)’. 라스코동굴의 심장인 이곳에서는 벽화뿐만 아니라 의례에 관련된 유물들도 발견됐다.
그 뒤는 하얀 석회암이 흘러 생긴 갤러리가 자연 상태로 보존돼 있고, 마지막으로 암사자들이 묘사된 ‘암사자 갤러리’로 이어진다. 신랑에서 암사자 갤러리로 이어지는 길은 우윳 빛 석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의 길이는 20m 정도인데 어떤 이미지나 기호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 뒤로 암사자 갤러리가 있다. 암사자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는 매우 좁다. 암사자 갤러리는 길이 30m에 이른다. 암사자와 사자들이 그려져 있다. 라스코 예술가들이 이 그림에서 달성한 예술적 업적, 특히 현실감과 생동감을 표하는 능력은 압도적이다.

라스코동굴에 남겨진 그림들은 모두 동물그림이다.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생존전략은 관찰과 상상이다. 그들은 관찰과 상상을 통해 생존을 위한 최고의 전략을 짤 수 있었다. 그들의 관찰 대상은 라스코동굴 벽화의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 동물이다. 그들이 오래전부터 지속돼온 네안데르탈인과 경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동물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사냥을 기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자신과 동료들은 그리지 않았을까? 그들이 이전의 동굴벽화에도 자신의 손을 남겨놓은 예가 있지만, 신체 전체의 모습은 남겨두지 않았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 인간을 묘사한 벽화는 극히 드물다.

구석기 동굴벽화에 인간이 없는 이유


▎축 갤러리 끝 막힌 벽에 그려진 거꾸로 떨어지는 말. / 사진제공·배철현
라스코 예술가들은 동물들의 특징, 움직임을 원근감을 이용해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은 그리지 않았을까? 프랑스 미술사학자 뤼퀘는 <원시미술(L’Art Primitif)>이라는 책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예술의 사실적 표현에는 ‘시각적 사실주의(visual realism)’와 ‘지적 사실주의(intellectual realism)’라는 두 층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시각적 사실주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행위이며, ‘지적 사실주의’는 용어가 주는 의미와 달리 대상의 모습과 상관없이 그 대상에 대해 자신이 인식하는 것을 표현하는 행위다. 뤼퀘는 지적 사실주의를 어린아이 그림과 연결해 설명한다. 원시인들도 어린아이처럼 시각적으로 사실적 그림을 그리기 전에 지적 사실주의 그림을 그린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사상가인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원시인들을 어린아이로 폄하하는 뤼퀘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원시인들이 인간을 비정형적 형태로 표현하는 이유를 추적했다.

바타이유는 인간의 모습을 동물과 달리 추상적이며 기형적 모습으로 표현하는 이유를 인간의 본능에서 찾았다. 인간은 새로운 창조와 부활을 위한 파괴와 죽음을 경험하여 그 경험을 ‘거룩’이라고 주장한다. 독일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는 ‘거룩’을 절대타자(ganz Andere)라고 해석했다. 그는 예술의 기원을 인류가 짐승에서 인간으로 가는 여정에서 찾는다.

인간은 이전 짐승 상태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와 금지구역(interdiction)을 넘어 위반(transgression)하는 행위를 통해 문화를 구축한다. 이 전이과정은 동물세계의 동참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동참은 일상적이지 않고 정형적이지 않은 ‘비정형(informe)’으로 표현된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도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금지를 위반하려는 본능적 욕망을 공감한다. 라스코동굴 벽화를 관찰하는 인간은 비로소 ‘종교적 동물’이 된다.


▎라스코동굴의 지성소라고 할 수 있는 ‘후진(後陣)’의 ‘사고 장면’ 그림. 창에 찔려 죽어가는 인간과 황소를 그렸다.
이제 잠시 미뤄두었던 후진의 ‘사고 장면’에 대해 말해보자. 라스코동굴의 지성소라고 할 수 있는 후진에는 특별한 벽화가 있다. 죽어가는 인간과 황소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냥꾼의 마음을 상상해야 한다. 인류는 아직 농업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맘모스처럼 큰 동물 사냥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부족의 생존을 상당기간 보장해준다. 그렇다고 사냥꾼이 맘모스에 대해 적대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맘모스를 사냥하기 전에 들에서 뛰놀던 맘모스와 그 가족들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생존을 위해 사냥해야 하지만, 동시에 맘모스에 대한 동정심으로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최근 인류학자들은 아직도 원시적인 사냥을 하는 부족들은 자신의 가족이자 심지어 자신들을 지켜주는 보호자라고 여기는 동물을 사냥해야 하는 운명에 상당히 고통을 느낀다고 전한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거주하는 부시맨들은 사슴과 같은 동물이 남긴 발자국을 추적해 독을 바른 화살을 쏜다. 독화살을 맞은 사슴은 서서히 죽어간다. 그들은 동물과의 불가분의 유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죽어가는 사슴을 붙잡고 사슴이 울면 자신도 울면서 죽음이 가져다주는 극도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동참한다. 어떤 부족은 동물의 가죽을 입거나 동물의 피나 배설물을 천막에 발라, 의례적으로 그 동물이 지하 세계로 가는 길을 함께 준비한다.

그들은 사냥에서 자신들이 죽여야 하는 동물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동물이 지닌 위엄이나 용맹성을 흠모했을지 모른다. 자신이 생존을 위해 죽여야 하는 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냥할 동물을 위해 미리 용서를 비는 의례를 행했다. 이 그림을 그린 예술가는 당시 최고의 사냥꾼으로 부족 전체를 위해 사냥해야 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바타이유가 말하는 동물 살해라는 ‘금기’ 행위를 통해 생명 살해라는 ‘반칙’을 저지를 계획이다. 이 그림은 바로 사냥꾼이 사냥을 나가기 전에 자신의 행위를 자연과 생명의 순환선상에서 보려는 시도다. 혹은 그가 사냥 후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의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살해하는 인간에 대한 반성 의례


▎벽화들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평가받는 신랑(身廊)의 검은 황소 그림. 원근법을 적용해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는 들소를 그렸다.
맘모스의 배에서는 창자들이 터져 나온다. 맘모스의 왼쪽 앞 다리 끝이 두 개로 갈라져 있다. 다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했다. 뒷다리는 몸에 비해 너무 가늘어 커다란 몸집을 지탱하기 힘들다. 사냥꾼이 던져 상처를 낸 창이 맘모스의 엉덩이 부분에서 땅으로 사선으로 그려졌다. 사냥꾼은 맘모스의 배를 공격해 지금 막 창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맘모스는 고개를 돌려 쏟아져 나오는 창자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맘모스 앞에는 한 사냥꾼이 등장한다. 사냥꾼이 실제로 맘모스 앞에 누워 있는 모습은 아니다. 사냥꾼은 맘모스가 죽어갈 때, 자신도 함께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죽어간다는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사냥꾼은 맘모스에 비해 연약하다. 문명의 이기인 무기와 이성을 통해 맘모스를 제압했다. 사냥꾼의 심리상태는 그의 몸의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다.

바타이유의 용어를 빌리면, 그는 ‘비정형’이며 기형이다. 우선 두 다리의 길이가 다르다. 오른쪽 다리는 길고 왼쪽은 짧다. 맘모스처럼 사냥꾼의 몸도 해체되고 있다. 자신이 유지하던 정상 상태에서 이탈해 비정상적 엑스터시로 진입하고 있다. 비정형성은 양팔과 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 팔 역시 두 발과 마찬가지로 길이가 다르다. 오른팔은 왼팔에 비해 길고 굽었으며 손가락은 네 개다. 왼팔은 거의 목에 붙어 있고 뒤틀려 있다. 왼손 손가락도 네 개다.


▎‘황소 갤러리’ 중간에서 오른쪽 이어지는 길이 17m, 너비가 4m의 긴 통로. 오록스·들소· 사슴·말· 야생염소 등 380개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 사진제공·배철현
사냥꾼의 유난히 긴 몸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의 성기다. 사지는 뒤틀리고 얼굴은 보이지 않는데 성기만은 서 있다. 끝이 뾰족하지만 상당한 크기다. 그는 죽음을 통해 생명을, 해체를 통해 통합을, 엑스터시를 통해 부활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사냥꾼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사냥꾼 앞에 있는 새 솟대의 새 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가면 착용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진입해 태어나기 위한 연습이다. 혹은 사냥꾼 자신이 죽어가는 맘모스를 두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어 착용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동물 사냥을 통해 생존하는 ‘호모 네칸스(Homo Necans)’, 즉 ‘살해하는 인간’이다. 라스코동굴 벽화는 인류가 자연과 우주의 정교한 관찰을 통해 그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라스코동굴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의 예배당이었다. 그리고 맘모스와 인간을 그린 ‘후진’은 지성소다. 그들은 이 지성소에서 사냥을 통해 생존해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을 깊이 묵상하고, 죽어가는 맘모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감을 통해 다시 태어나도록 연습했다. 인류의 조상들은 심지어 동물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의례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된 자신에 대해 묵상했다.

배철현 -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셈족어와 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 쐐기문자가 기록된 베히스툰비문의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에 개원한 미래혁신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이다.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이 있다.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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