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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한자 時評(4) 賢能] 냉정한 눈으로 검증 또 검증해야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우리사회 모든 영역의 총체적 문제가 빚은 것이 오늘의 사태… 새 시대에 걸맞은 현명하고(賢) 능력(能) 있는 ‘리더십’ 절실하다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성당을 찾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 사진·공정식
동양사회에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치국(治國)의 행위를 언급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의 하나가 바로 현능(賢能)이다. 낱말을 이루는 글자 둘은 모두 사람의 재주를 말한다. 어떤 목적을 상정하고 그를 현실로 옮겨가는 힘이다. 그런 힘을 지닌 사람이 인재(人才)다. 따라서 현능은 국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 또는 그들로부터 나오는 역량을 뜻한다.

앞 글자 賢(현)의 초기 글자꼴은 비교적 뚜렷하다. 전쟁 등에서 상대방에게 붙잡혀 끌려온 뒤 노예의 신분 등으로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글자요소 臣(신), 금전이나 재산 등을 일컫는 요소 貝(패)와 그를 움켜쥐고 있는 글자요소 又(우)의 결합이다.

따라서 이 글자의 풀이는 혼란이 덜 하다. 누군가 노예와 재산 등을 관리한다는 새김이다. 고대사회에서의 노예는 값이 나가는 재산이다. 조개를 가리키는 貝(패)는 옛 사회에서 재산 그 자체, 황금 등 값어치가 큰 물건을 의미했다. 따라서 값이 많이 나가는 노예와 역시 귀중한 재산을 함께 관리하는 사람, 또는 그런 능력을 가리키는 글자가 賢(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서 能(능)이라는 글자를 풀이하는 견해는 엇갈린다. 이 글자의 초기 형태를 곰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설이나 신화 등에 등장할지 모르는 벌레로 푸는 견해가 있다. 곰은 호랑이에게 뒤지지 않는 동물이다. 힘이나 머리 등에서 그렇다.

게다가 나무도 잘 타고, 물에 빠져도 큰 탈이 없다. 먹성도 좋아 아무것이나 잘 먹는 편이다. 그런 맥락에서 곰 자체를 탁월한 힘과 재주를 지닌 동물로 풀어가는 흐름이다. 따라서 다양한 재주를 가리키는 글자로 자리를 잡았으리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초기 글자꼴을 곰으로 보는 데는 많은 이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이를 벌레로 푸는 쪽은 전설의 가상 동물이란 흐름에 서있다. 글자가 만들어진 뒤 생겨난 전설 등의 맥락에서 등장했던 기이한 벌레로 푼다. 그로써 ‘대단한 재능’의 글자 뜻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풀이는 그렇다. 그러나 후대로 무대가 옮겨지면서 이 두 글자는 새김이 매우 뚜렷해진다. 그러면서 어느 무렵에는 두 글자가 붙어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賢能(현능)은 그렇게 어느덧 국가를 이끌어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인재, 또는 그런 이들이 지닌 힘과 능력을 의미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賢(현)이라는 글자를 새길 때 보통은 ‘어짊’으로 푼다. 이는 다른 한자(漢字)인 仁(인)과 헛갈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원래의 글자 형태, 또는 글자를 이뤘던 요소를 볼 때 단순하게 이를 ‘어짊’과 함께 둘 수 없다. 노예 다루기를 비롯한 행정 사무, 재산 등을 관리하는 재정 업무 등이 다뤄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자의 원래 뜻을 좇아 올라가다 보면 ‘정밀한 계산 능력’도 나온다. 그러니 “사람이 어질다”라고 할 때의 맥락에서만 이 글자를 상대해선 곤란하다. 그런 능력이 바탕에 깔리고,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덕목이 글자 새김에 함께 가세했다고 봐야 좋다.

굳이 이를테면 재덕(才德)을 함께 갖춘 사람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재주만 승(僧)하다고 사람들을 다 이끌 수는 없는 법이다. 재주에 못지않은, 아니면 재주를 오히려 초월하는 성품을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의 능력 중에 가장 탁월한 수준에 오른 이를 聖(성)이라고 적은 뒤, 그 뒤를 따르는 이를 賢(현)이라 적었을 테다.

둘은 결국 성현(聖賢)이라는 말로 자리 잡았다. 사람 중에 가장 우수한 사람, 뭇사람을 크게 초월하는 탁월하며 비범한 능력과 성품의 소유자를 일컫는 말이다. 유가(儒家)에서는 보통 공자(孔子)를 聖(성), 그에 버금가는 지위의 맹자(孟子)를 亞聖(아성)으로 적은 뒤 다른 탁월한 이들을 현자(賢者)의 반열에 올렸다.

심각한 분열의 원인은 대통령의 무능


▎당나귀를 타고 손을 흔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나스레딘 호자의 동상. 그는 우즈베키스탄에 전해 내려오는 우화 속 현자(賢者)다. / 사진·중앙포토
能(능)은 항상 그 다음을 따른다. 성품이 좋아도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따라서 能(능)은 보완재이기도 하면서, 필수적인 항목이다. 그렇다고 이 능력적인 면이 앞의 포괄적인 ‘성품+능력’의 賢(현)을 넘어서지 못한다. 따라서 동양사회에서 인재를 가리키는 단어로 등장할 때의 글자 순서는 ‘현능(賢能)’이 늘 ‘정답’이었다.

이 둘의 요소를 간직해 중국의 역사 속에서 ‘인재’의 반열에 오른 유명한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관중(管仲)이다. 포숙(鮑叔)과 맺어진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이다. 그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재상이라고 해도 좋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가장 뚜렷한 치국 이념을 꼽자면 단연 눈에 띄는 게 있다. 역대 왕조 통치자가 늘 본받고자 했던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그 이념적 설정을 처음 선보인 사람이 바로 관중이다. 그는 자기가 모시던 환공(桓公)을 제대로 보필해 긴 안목으로 부국(富國)에 이은 강병(强兵)의 꿈을 실현했다.

북송(北宋)의 최고 문인 소식(蘇軾)의 부친으로서 그 자신이 유명한 문인이자 관료이기도 했던 소순(蘇洵)은 그에 비해 1500년 전 활동했던 관중을 ‘현능함의 대명사’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는 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해 고도의 치세(治世)에 이어 춘추시대 가장 강력한 패권으로 제나라를 끌어올렸던 관중의 현능을 크게 상찬했다.

가장 뚜렷한 예로 든 일이 관중의 사후(死後)였다. 관중은 죽기 전 임금인 환공에게 주변에서 그를 밀착하며 보필했던 세 간신(奸臣)의 위험성을 제기했다. 환공은 유언으로 남긴 관중의 그 간언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 환공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만년은 암담했다. 자신이 낳은 혈육 사이에서 벌어진 내란(內亂), 병사(病死)하는 환공의 그림이다. 측근으로 활동했던 세 간신이 굶겨 죽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사체가 67일 동안 그대로 방치됐다는 점이다. 그의 시신을 수습할 때 벌레가 가득 기어 나와 방 안을 다녔다는 스토리는 매우 유명하다.

탄핵이 인용으로 결정 났다. 국가를 심각한 분열로 몰아갔던 사태의 핵심은 대통령의 무능(無能)이었다. 사람을 뽑아 중요한 자리에 올릴 때 가장 눈여겨봐야 했던 ‘현능’이라는 항목 중 우리는 앞의 賢(현)은 고사하고, 그 다음의 能(능)도 살피지 못한 채 대통령을 뽑았던 셈이다.

진영 논리로 상대를 공격하는 데만 열중할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 모든 영역의 총체적인 문제가 빚은 오늘의 사태다. 이제 법의 틀이 내린 판단을 받아들이면서 난국을 수습할 일만 남았다. 우리 시야에 떠오른 정치 엘리트들을 자세히 살피자. 현은 차치하고 능마저 없는 사람이 퍽 많다. 냉정한 눈으로 이들을 검증하고 또 검증할 때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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