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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차기 대통령 근무지는 어디가 될까 

“집무실 이전과 소통·효율은 무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서울청사로 집무실 이전… 안철수, 청와대 비서동에 집무실 설치 공약
VIP 경호의 속성상 시민 불편 가중… 유연한 경호 펼치자면 예산 소요 급증


▎북악산 자락에 있는 청와대 본관은 ‘구중궁궐’로도 불린다.(왼쪽) 청와대를 경호하는 경호실 직원들.(오른쪽)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0년 2월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장 뒤편 숲 속에서 표석이 하나 발견됐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이 표석에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 一福地: 세상에서 복이 가장 많은 자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일부 반론이 있기는 했지만 300~4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고, 청와대 자리가 명당이라는 말이 풍수가들 사이에서 돌았다.

하지만 요즘의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민과 동떨어져 권력의 벽에 갇혀 사는 구중궁궐로 묘사된다. 청와대비서실인 위민관에서 대통령이 집무하는 본관까지의 거리는 500m. 대통령이 호출하면 차량을 이용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뛰어간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발상도 나온다. 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가 참모들의 방과 바로 붙어 있는 백악관과 늘 비교되곤 했다. 영국 총리 집무실이 있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도 총리 관저와 비서진 사무실이 빼곡히 들어 있다.

박찬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은 2009년 발간한 저서 <청와대 VS 백악관>에서 “청와대는 국민뿐 아니라 참모들로부터도 대통령이 고립돼 있는 구조”라고 묘사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그는 “본관은 웅장한 규모에 비해선 내부 방의 개수가 매우 적고, 대통령의 동선이 길다. 실용적인 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깝다“고 기록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재는 대통령비서실장도 몰랐다. 참모들과 얼굴을 맞대고 수습책을 논의하지 않고 서면보고만 받는 바람에 직무를 유기했다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앞당겨진 19대 대선 유력 후보들은 이 같은 정치적 소통의 단절을 의식한 듯, 청와대 집무실 이전 내지 재배치를 공언하고 나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집무실을 서울 세종로 정부 서울청사로 이전하겠다고 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청와대 비서동에 대통령 집무실을 만들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참모와 부대끼며 일하고,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정책들이다.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 같은 이들은 “청와대 공관은 유폐된 장소이지 결코 관계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며 대통령을 유폐시키는 곳”이라며 기능과 공간의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세종시에 청와대 제2집무실과 국회 분원 설치를 약속했다. 반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청와대는 인왕산 밑이 가장 안전한 장소”라며 이전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 이전 10년 염원”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2층 대통령관에 조성된 대통령 집무실 모형.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가장 적극적인 이는 문재인 후보라 하겠다. 그는 거의 5년에 걸쳐 확신에 찬 의욕을 거듭 피력했다.

“저는 광화문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고 국민 속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광화문광장이 제대로 조성된다면 대통령이 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 후보는 4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방문한 광화문광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귄위와 불통의 상징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문 후보에게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10년 이상 묵은 숙원에 가깝다. 2012년 민주통합당 후보로 대선에 나섰을 때도 “그동안 꿈꿔왔던 일”이라며 대통령 집무실의 정부청사 이전을 공약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부터 그려왔던 구상”이라며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해도 경호상의 문제나 시민의 불편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권력적폐 청산 3대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지금의 청와대와 북악산은 국민의 휴식 공간으로 돌려주겠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 측은 이에 대한 실무검토를 마치고 설계 초안을 잡아가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되면 빠른 시일 내에 광화문 청사로 옮겨간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의 집무실 이전의 꿈은 “공무원들과 머리 맞대고 토론하고, 퇴근길에는 남대문시장에서 상인들과 소주 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3월 3일 SBS 민주당 경선 TV토론회)는 말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청와대 직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국민과는 긴밀하게 소통하려는 바람이다.

통상 사업타당성은 비용(C) 대비 편익(B)에 따라 결정된다. 경호전문가들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B/C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소통이라는 소기의 목적 달성은 어려운 데 비해 제반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그 비용이란 경호상의 위험, 시민의 불편, 경호 예산의 증가를 뜻한다.

경호전문가들은 서울 시내 한가운데 우뚝 솟은 빌딩에 자리한 대통령 집무실은 테러나 적성국가의 손쉬운 공격 표적이 된다고 말한다. 주변에 북악산과 같은 자연 엄호물이 없는 청사는 북한의 미사일 또는 무인기 공격에 취약하며, 테러단체의 화생방 공격에도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호경비학회장을 지낸 김두현 한국체대 교수는 “남북분단 상황에서의 경호는 북한의 포격이나 화생방무기를 실은 무인기 공격에도 늘 대비하게 된다”면서 “북악산·인왕산이 주변을 가려주는 청와대와 달리 정부청사는 시내 한가운데 덩그러니 노출된 표적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나마 청와대 내부 주요 건물에는 외부의 테러·폭격 등에 대비한 지하벙커(진지)가 갖춰져 있다.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없도록 견고하게 지어진 구조물이다. 조성구 경운대 (경호학) 교수도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에 의해 기습침투 시도 이후 청와대는 요새화 작업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왔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생각보다 더 위험해져”


▎문재인 후보는 4월 10일 광화문광장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광화문대통령 시대’를 약속했다.
경호전문가들은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할 경우 안전시설을 별도로 확보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애로사항으로 짚었다. 정부서울청사 지하 혹은 빌딩이 밀집한 인근 장소에 그런 견고한 벙커 시설을 새로 갖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김두현 교수는 “그런 구조물을 새로 건설하는 기간도 적지 않게 소요되는 데다 일반인의 시선에 다 드러나는 등 보안에 취약하게 된다”고도 말했다. 조성구 교수도 “집무실의 청사 이전 시 군사시설물과 경호인력의 조직편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경호와 안전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경우 기존의 청와대 안전시설을 활용할 수 있지만 경호의 관점에서는 악몽이다. 장현석 경기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핵전쟁이나 미사일 공격 등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의 대통령은 신속하게 청와대로 이동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누군가가 청사 인근에서 대통령 행렬을 가로막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장 교수는 “대부분의 국가가 관저와 집무실을 한 곳에 두는 것도 보안과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광화문광장에서 과격집회나 시위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이 뜻하지 않게 고립되는 사태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게 경호 관점에서의 우려다.

경호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는 정부청사 일대는 특정경비구역으로 설정되고, 대통령경호실의 통제 및 관리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촛불집회의 무대였던 광화문광장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제한도 불가피해진다는 견해도 있다. 대통령의 일정에 따른 통제로 교통체증 유발도 불가피하다. 한 경호전문가는 “대통령 집무실 인근 공간의 통제를 느슨하게 가져갈 경우 차량 돌진 등 대통령 위해(危害) 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집무실 청사 이전의 이익은 시민들에게도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가까이 갈수록 경호는 강화될 수밖에 없어 현실에서는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리라는 문제의식이 소통에 대한 기대감을 상쇄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경호실 홈페이지에는 경호의 취지와 목적이 명시돼 있다. “경호는 계획이 시작이고 끝”이라고 설명한다.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수립하느냐가 시작이고, 그 계획에 맞게 실행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결정에 따라 동선이 결정되면 예정되지 않은 인원이 등장하는 것은 경호상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설령 장관이라 해도 경호실에서 동선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VIP 동선에서는 장관도 통제를 받는다. 일반시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안철수 후보는 개헌을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행정수도 세종시로 이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대통령이 집무실을 정부종합청사로 이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통령과 같은 건물에 있는 일반부처 공무원들의 업무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우려가 앞선다. 김대중정부의 민정·정책기획수석을 지낸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대통령 집무실이 정부서울청사로 가면 대통령 경호 때문에 나머지 모든 부처는 일을 제대로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전 장관은 “부처 공무원들은 지금 청사 출입 시스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이중삼중의 검문을 거치게 된다”면서 “그렇게 달라진 환경에서 각 부처가 지금 하는 업무를 매끄럽게 해내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권력자 가까이 갈수록 실무자의 행동반경 줄어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간이 집무실이 들어선 청와대 비서동 ‘여민관’.
이를 유추해봄 직한 사례를 들여다보자. 2008년 초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의 집무실과 비서실은 서울 통의동 소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됐다. 인수위는 경복궁 너머 삼청동의 금융연수원에 따로 자리했다. 당시 통의동 당선인비서실에서 근무한 정치권 인사는 “당선인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게 뿌듯한 건 사실이지만 실무적으로는 무척 까다롭고 힘이 들었다”며 경험담을 전했다.

“당시 이 당선인의 집무실은 금융감독원 연수원 4층에 있었고, 아래층은 비서진이 썼다. 당선인 얼굴도 보고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굉장히 불편하고 긴장됐다. 예컨대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에 경호원들이 불쑥 나타나 당선인 동선이라며 비켜달라고 하면 복도나 다른 사무실로 황급히 몸을 숨겨야 했다. 당선인이 움직일 때마다 이런 통제가 따랐다. 매사가 이런 식이라 차라리 당선인과 다른 장소에서 근무한다면 일이 훨씬 더 잘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권력자에게 가까이 갈수록 실무자의 행동반경은 줄어들고 자유도 제한받게 된다는 말이다. 문 후보가 집무실을 참모와 국민 가까이에 두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게 업무의 효율 면에서 꼭 바람직한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게 이 인사의 조언이다.

청와대 경호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대통령 집무 및 행사 공간은 절대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호 과정에서 청사 출입자들에 대한 검문검색 및 보안 조치가 강화될 게 확실하다. 그 대표적 예의 하나가 통신이다. 대통령경호실은 대통령이 머무르는 장소마다 일정시간 동안 이동통신 전파를 차단한다. 전파를 이용한 폭파 시도를 막으려는 조치다. 일정한 반경 내에 있는 시민들의 휴대전화는 먹통이 된다. 청와대 직원이나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도 공통된 경험이다.

그래서 대통령 집무실이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면 경호상의 필요와 시민의 불편이 충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경호전문가는 “국제 테러 조직은 휴대폰을 이용한 테러를 일상화하며 기술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 주변의 전파 차단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설령 그 범위를 축소해 제한적으로 전파를 통제하더라도 상호 간섭이나 혼선 등으로 인한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을 가까이하자면 그만큼 불이익과 불편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서울청사를 찾는 시민들도 지금보다 훨씬 더 삼엄한 검문검색을 통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장석현 경기대 교수는 “민원인들이 드나드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통령이 집무한다는 구상 자체가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반응했다. 박근혜 정부 첫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허태열 전 실장도 정부서울청사의 경호를 대통령 경호 수준으로 강화할 경우 “청사에 근무하는 타 부처 공무원이나 출입하는 민간인 등에게는 과거에는 없던 불편이 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청와대 공간배치는 불소통·비효율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한다고 해서 소통과 효율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성재 전 장관은 “대통령이 정말 청사 밖으로 나와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집무실을 청사로 가져온들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꺼리고, 참모들과 대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서 “국민과의 소통 부재도 물리적 공간 탓이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 세종시 이전은 분단 중심 사고의 산물”


▎경복궁 안쪽에서 바라다본 정부서울청사. 청와대에 견줘 경호와 안전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청와대 경호부장 출신인 유형창 경남대 교수는 “국민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에 따르는 비용 증가도 계획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대통령이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서 상인들과 소주 한잔을 나눌 경우 경호실은 그 일대의 안전을 도모하게 위해 엄청난 인력과 장비를 가동하게 된다.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집무를 하면 아침저녁 출퇴근시간대의 대통령 동선이 노출되기 쉽다. 장현석 교수는 “이런 경우 경비 시스템을 보강해야 하는 등 경호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경호전문가는 “대통령이 국민 속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데 드는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그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문 후보 쪽에서 고려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역대 정부의 대통령 집무 공간 이동 시도가 모두 도상연습에 그친 것도 이런 제약 요소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통령 집무실의 정부서울청사 이전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검토됐으나 없던 일에 그쳤다. 표면적으로는 경호상의 어려움이 걸렸지만 청사를 이용하는 많은 시민이 삼엄한 검문검색 등 불편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더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시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가져가는 대신 집무실이 자리한 본관 내부 구조를 바꿔 참모들을 입주시키려 했다. 하지만 한옥 구조가 지닌 건축학적 가치 때문에 뜻을 접었다. 대신 비서동인 위민관에 집무실을 하나 더 만들었으나 이용 빈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집무실과 비서실 간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논의는 있었으나 광우병 파동, 예산 문제 등으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대통령 집무실은 지금도 청와대 본관 그 자리에 붙박이로 남아 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 비서동에 두겠다는 안 후보의 구상은 더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공무원들의 업무 효율 저하를 해소하진 못한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개헌 이후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긴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안 후보는 3월 15일 개헌을 통해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명시하고 청와대와 국회를 모두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확인된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자면 개헌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경호 위험요소를 최소화하자면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종합청사에 두기보다 아예 세종시로 청와대를 이전하는 게 더 낫다는 의견이 경호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한 경호 전문가는 “세종시에 청와대를 신축한다면 경호·경비시설을 충분히 갖출 수 있어 더 안전하다”고 선호 이유를 설명했다.

효율과 미래 비전에서는 이 방안도 반대론에 직면한다.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청와대의 세종시행(行)에 손사래를 친다.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은 통일과 같은 국가 비전은 생각지 않고 행정편의만 염두에 둔 결과라고 비판한다. 김 전 장관은 “분단국가 남한의 중심은 세종시가 맞지만 통일국가의 중심은 세종시가 될 수 없다”면서 “노무현정부가 세종시로 수도를 가져가려 한 것은 분단중심 사고의 산물”이라고 반대했다. 청와대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비행통제공역 재설정, 민간 항공기 항로 변경 같은 복잡한 후속조치도 불가피해진다고 유형창 경남대 교수는 지적했다.

비서동의 기존 집무실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2008년 청와대 영빈관 만찬에 초대받은 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 당선인 및 배우자들.
경호전문가들이나 청와대에서 근무해본 이들은 집무실 이전이 과연 능사인지 되묻는다.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소통의 문제는 공간보다 의지의 문제인데 너도나도 청와대 운용 시스템 개선보다 물리적 재배치 공약을 앞세운다”고 했다.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는 대선 후보들이 홍보효과를 노려 유권자의 귀에 쏙쏙 박히는 딱 부러지는 공약을 선호하다보니 현실성이 떨어지는 약속을 하게 된다는 비판이다.

앞서 봤듯 대선 국면이나 당선인 시절에는 누구나 청와대 공관 재배치를 공언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현실의 장벽에 부닥친다. 18대 대선 당시에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은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일하며 부대끼는 집무실 이전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은 “청와대에 입주하면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쏟아진다”면서 “공간 재배치 문제는 정부 초기 심각하게 논의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일단 대통령과 참모들이 청와대에 들어가면 공간을 이동하는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문·안 두 후보 중 한 사람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정부서울청사가 비어있는 게 아니다. 입주해 있는 정부 부처를 다른 장소로 옮기고 빈 공간을 새로 꾸며 보안시설을 강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6개월~1년은 소요된다고 유민봉 의원은 진단한다. 유 의원은 “이 문제는 의지만 있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다”라면서 “공간 확보 등 절차도 까다로워 현실에서는 거의 이뤄지기 어렵다”고 회의론을 개진했다. 김성재 전 장관도 “대통령 집무실이 청사로 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정도다.

청와대 위민관에 있는 집무실을 적극 활용하는 게 더 실효성 있는 방도라는 게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이들의 견해다.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간이집무실에 들르면 참모진과 더 가까이 호흡할 수 있다”면서 “굳이 예산을 들여가며 비서동 구조를 뜯어고칠 필요는 없다”고 첨언했다. 유형창 경남대 교수는 “청와대를 옮기기보다 위민관에 별도의 대통령 집무실이 마련된 만큼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은 기본적으로 차기 대통령의 결심 사안이므로 그의 의지와 강도에 좌우된다. 문 후보 측은 앞서 제기된 경호상의 우려에 대해 “청와대에 있으면 북한 타격으로부터 안전하고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면 위험하다는 건 이분법적 사고”라며 “우리는 이미 충분한 경호 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고 답했다. 나아가 집무실 이전에 따른 비용 발생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의 기존 집무실을 사용하지 않게 되므로 전체 대통령 경호 비용은 절감되는 측면도 있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정부서울청사 근무자, 출입자들이 겪을 불편에 대해서도 “실무 차원의 보완을 통해 불편함을 해소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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