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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물] 김정은의 ‘베스트 프렌드’ 마이클 스패버 

“(평양에) 오길 잘했다. 나는 역사의 일부가 됐다” 

도쿄=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NBA 괴짜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 방북(訪北) 성사시킨 캐나다 사업가 “내게 북한을 위한 비전이 있다”며 평양 홍보대사 역할 자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013년 방북한 마이클 스패버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사진캡처·스패버 홈페이지
4월 10일 오후 7시 일본 도쿄(東京) 남부 신바시(新橋)의 한 건물. 미국·유럽·일본 등지에서 모인 약 100명의 청중이 4층 강의실을 꽉 채웠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작은 건물 속, 세미나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 열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캐나다인 마이클 스패버(42).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절친’으로 생각하는 서양인이다. 지난 2013년 미국의 괴짜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의 방북의 징검다리를 놓았던 인물이다.

이날 세미나의 주제는 ‘한반도의 평화를 목표로 하는 문화·경제 교류전략.’ 스패버가 그간 북한에서 꾸려온 관광·투자 등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세미나의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였다. 접수처에서도 “사진촬영 금지”라며 녹음기와 카메라·스마트폰 등을 꺼내지 말라고 했다.

기자가 이 세미나 소식을 듣게 된 건 스패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다. 그는 기자에게 내용을 알리면서도 “세미나에서 나오는 내용은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 요청을 일단은 수락했다. 세미나 내용 외에도 흥미롭기 그지 없는 인물, 그가 스패버이기 때문이다.

스패버와 5년 넘게 교류해온 한 영국인 기자는 월간중앙에 이렇게 전했다. “스패버는 상당히 신중하고 스마트하다. 자신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런 그의 성격이 김정은과의 우정에 한몫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자가 서울에서 가져온 한국의 고급 증류 소주 화요를 선물로 내밀자 그는 미소와 함께 “고맙다”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일본인 한 명이 “그거 평양에 가져가서 마시면 남북 화합이겠다”라고 농담을 던졌지만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한국, 그것도 중앙일보사에서 온 기자이기 때문이기에 각별히 더 조심하는 것 같다고 그의 오랜 지인들은 귀띔했다.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와 함께 스시를


▎스패버는 ‘김정일의 요리사’로 잘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와도 각별한 사이다. 최근 스패버와 후지모토에 대해 보도한 일본의 한 시사주간지는 김정은과 후지모토, 스패버를 두고 ‘의외의 삼각관계’라는 사진설명 제목을 달았다. / 사진캡처·스패버 SNS
신중한 스패버이긴 하지만 SNS를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줄 안다. 3월 15일 그가 평양에서 올린 사진은 그의 SNS 친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평범한 스시 사진이긴 했지만 그 스시를 만든 주인공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70·가명).

<나는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에서 막내아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 후지모토다. 김정은 집권 후에도 종종 평양에 들어가 김정은이 열어준 와인 파티에도 참석한 후지모토는 최근 평양에 스시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그의 오랜 꿈을 김정은이 들어준 거라는 게 복수의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지난해 8월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한때 실종설까지 돌았지만 정보당국 관계자는 월간중앙에 “평양에 들어간 뒤 체류 기간이 길었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가 오픈한 스시 레스토랑은 평양의 ‘핫 플레이스’로 통하는 낙원백화점의 4층이라고 한다. 중앙일보는 지난 2월 평양에 다녀온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후지모토가 지난 1월 8일 일본 요리점을 열었다”며 “스시와 라면을 판매하며, 조만간 라면 전문점도 열 계획이다. 후지모토는 한동안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양에 머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후지모토의 실종설을 의식해서일까. 스패버는 이번 방북 프로그램을 이렇게 작명했다. ‘후지모토를 찾아서(Finding Fujimoto).’ 4월 15일, 북한이 최대 명절로 기념하는 김일성의 생일에 맞춘 방북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스패버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처음엔 직접 촬영한 8점의 스시와 6점의 마키(卷·작은 김밥)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엔 후지모토까지 프레임에 넣은 흑백 사진을 올렸다. 일본의 한 시사지는 지난달 스패버와 후지모토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사진 설명에 ‘의외의 삼각관계’라는 제목을 달았다.

스패버는 단순한 관광상품 기획자가 아니다. 사실상 ‘평양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가 이날 평양발로 올린 트윗의 일부를 그대로 번역해 옮기면 다음과 같다.

“(평양에) 오기를 잘했다. 나는 역사의 일부가 됐다.”

이 밖에도 그는 평양 곳곳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도 했다. 유머감각도 갖춘, 그러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진이다. 스패버가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유용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스패버는 김정은을 김정은이라 부르지 않는다.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김 장군(Marshall Kim)’이라고 부른다. 그가 로드맨과 함께 방북했던 2013년, 김정은은 그를 환한 미소와 함께 포옹으로 맞이했다. 김정은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면서 스패버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은 한때 그의 SNS 프로필 사진이기도 했다.

김정은 깍듯이 대하고 조선어 구사도 유창해


▎스패버가 4월 15일 평양 현지에서 올린 사진들. 후지모토가 평양에 오픈한 스시 레스토랑의 모습이다. / 사진캡처·스패버 SNS
스패버는 로드맨 방북 직후, 고국인 캐나다의 온라인 매체인 매클린과 이례적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로드맨의 방북은 내가 조직한 것이다. 한마디로 대박(blast)이 났다.” 매클린은 로드맨과 스패버의 방북을 놓고 이런 제목을 붙였다. ‘형제들의 휴가(brovacation).’ 그만큼 스패버와 로드맨, 그리고 김정은이 피로 맺어진 형제처럼 각별하다는 의미다.

스패버는 조선어(북한말)에 능통하다. 로드맨과 김정은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북한 고위관리들의 환심을 사는 데도 그의 어학 실력이 한몫했다. 그는 로드맨 방북 당시 김정은과 함께 약 사흘간을 꼬박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그의 북한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프로그램은 더욱 다양화하고 있으며,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아예 ‘백두문화교류사(Paektu Cultural Exchange)’라는 회사까지 차렸다. 올해 초, 북한이 개최한 국제아이스하키축전도 스패버의 기획 작품이다. 올해에도 북한 관련 사업을 여럿 구상 중이고, 이미 진행 중인 것도 있다.

스패버와 북한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와 수년간 인연을 맺어온 한 외국인 소식통은 중앙SUNDAY에 이렇게 전한 바 있다. “스패버는 비정치적 성향을 가졌다. 농담하는 것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북한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05년 즈음이라고 한다. 이 소식통은 “서울에 왔다가 북한의 존재를 알고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권부와 친분을 쌓았고, 결국 김정은과도 친구가 된 걸로 안다”며 “스패버는 상대방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뒤에서 뭔가를 캐내려는 스타일도 아니다. 북한을 오래 다니며 인맥을 구축했지만 그걸 이용해 돈을 벌려고 나서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김정은에게 스패버의 북한을 위하는 진정성이 통했다는 얘기가 된다. 북한과의 인연을 얕은 돈벌이 수단으로 삼거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 김정은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4월 중순 도쿄에서 기자와 만난 스패버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겐 북한을 위한 비전이 있다.” 짧지만 울림이 강한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의 비전은 김정은과 함께 조금씩 그러나 착실히 무르익어가고 있다.

- 도쿄=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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