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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푸틴의 거침없는 질주 

21세기의 ‘유라시아 제국’을 꿈꾸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북아프리카에서 발트 3국, 터키, 중국까지 정력적 합종연횡 주도 … 2024년까지 집권 밑천 삼아 트럼프 압도할지에 관심 집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옛 소련의 막강한 영향력을 복원하고자 한다.
#1. 지난 3월 26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해 99개 도시에서 6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반부패 시위가 벌어졌다. 전국 동시다발로 벌어진 시위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부패 시위는 2012년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하원선거 부정 의혹을 규탄했던 시위 이후 5년 만에 있었던 가장 큰 규모였다. 반부패 시위는 야권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알렉세이나발니(40)가 폭로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축재 보고서가 계기가 됐다.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의 심복인 메드베데프 총리가 국영 은행으로부터 대규모 대출을 받거나 친정부 기업의 기부금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호화 대저택, 요트, 포도농장 등을 취득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지지자들에게 항의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10대와 20대 젊은층이었다. 젊은층은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실업률 증가 등 경제가 후퇴한 데 불만을 품어왔으며 부패 문제를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반부패 시위를 ‘아랍의 봄’에 비유하면서 앞으로 허가를 받지 않은 시위자들을 법에 따라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 4월 3일 러시아 제2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하철 객차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승객 60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러시아에서 지하철 폭탄 테러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0년 3월 모스크바 지하철의 연쇄 폭탄 테러에 이어 7년 만이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지하철 테러범은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 출신 남성인 아크바르존 드잘릴로프(22)라고 밝혔다.

테러범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계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시리아 내전에 군대를 파견해왔다. 그러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는 알 아사드 대통령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에 대해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동조하는 무슬림이 많이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 출신 무슬림 청년들 중 상당수는 러시아로 이주해 왔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차별까지 받아왔다. 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로 건너간 러시아와 옛 소련의 중앙아시아 출신들이 5천~7천 명에 달한다. 폭탄 테러가 발생할 당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던 푸틴 대통령은 사건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을 위해 헌화하고 테러리즘은 악마라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반부패 시위와 테러사건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의 대권가도에 걸림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내년 3월 실시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권력을 대폭 강화해왔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은 현재로선 경제난과 부패 문제, 테러 사건 등이 푸틴에 대한 지지에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있어 푸틴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당선될 것이 분명하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푸틴의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도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따른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경제제재와 유가 급락 등으로 인한 경제난과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2014년 83%, 2015년 85%, 2016년 81%를 기록하는 등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푸틴에게 맞설 정적이 없다!


▎지난 3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르스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갤럽은 러시아 국민들은 자국을 강대국 반열에 다시 올리려는 푸틴의 노력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서방의 러시아 전문가들도 대부분 푸틴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푸틴에 맞설 수 있는 정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푸틴의 유일한 정적이라는 말을 들어온 나발니는 지난 2월 8일 재판에서 횡령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내년 대선 출마가 어렵게 됐다. 러시아 중부 키로프시 레닌스키 법원은 나발니에 대해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나발니가 2009년 키로프 주정부 고문으로 일하면서 주정부 산하 산림 채벌 및 목재 가공 기업인 키로프레스 소유의 목재 1만㎥, 시가 1600만 루블(5억6천만원) 어치를 빼돌려 유용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러시아 선거법에 따르면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변호사 출신의 유명 블로거인 나발니는 2011년부터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는 야권 시위를 이끌면서 반(反)푸틴 저항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특히 나발니는 통합러시아당을 ‘사기꾼들과 도둑들의 당’이라고 부르면서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 등 거대 국영기업과 정치권의 부패 커넥션을 블로그에 실명으로 비판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해 비록 낙선했지만 27%의 득표율을 올리는 등 일약 야권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한 바 있다. 나발니가 대규모 반부패 시위를 주도한 것도 내년 대선에 출마해 푸틴에게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발니가 상급 법원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발니는 그나마 암살된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보다는 낫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부총리를 지낸 넴 초프는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란 말을 들어왔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주장해온 넴초프는 2015년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코레츠키 다리 위에서 차량에 타고 있던 괴한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넴초프를 살해한 남부 캅카스 지역 출신인 아주르 다다예프 등 5명을 체포해 기소했지만 범행을 기획하고 지시한 배후 인물로 지목된 체첸 자치공화국 내무군 소속 장교인 루슬란 무후디노프를 아직까지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유족들은 이들의 범행 동기 등이 불명확한데다 진짜 배후세력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스템상의 야당’과 푸틴의 충복(忠僕)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온 데니스 보로넨코프 전 러시아 하원의원이 지난 3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숨졌다.
넴초프 사건은 2003년 4월 자유러시아당 공동당수였던 세르게이 유셴코프 피격 사건과 비슷하다. 당시 유셴코프 당수는 모스크바의 자택 인근 도로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그는 하원인 두마의 보안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이었으며,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이자 러시아 최대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이른바 ‘코발레프 위원회’의 부의장이었다. 유셴 코프 당수의 사망으로 코발레프 위원회는 해산됐고, FSB에 대한 조사는 종결됐다. KGB 요원 출신인 푸틴은 FSB 국장을 지냈다.

푸틴이 지금까지 집권하는 동안 이처럼 암살되거나 독극물 중독으로 숨진 정치인, 언론인, 인권운동가들은 수십 명에 달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3월 2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데니스 보로넨코프 전 러시아 하원의원 암살사건을 들 수 있다. 보로넨코프 전 의원은 크림반도 병합을 반대하다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정적이다. 범인은 보로넨코프 경호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에서 근무했던 파벨 파르쇼프였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파르쇼프가 러시아 정보기관에 포섭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다. 페트로 포로첸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보로넨코프 암살 사건은 국가가 벌인 테러 행위”라면서 “보로넨코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폭로한 중요한 증인”이라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을 터무니없다며 반박했다. 러시아 검찰은 보로넨코프가 수백만 달러의 개인 기업 재산을 횡령한 범법자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임기 4년의 대통령직을 연임하고 헌법의 3연임 금지 조항에 따라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헌법 개정으로 임기 6년의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푸틴이 내년 대선에서 다시 승리하면 2024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 특히 푸틴은 강력한 통치를 위해 FSB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했다. FSB는 범죄를 저지를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을 영장 없이 무조건 소환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FSB는 이런 특권을 이용해 푸틴의 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거나 탄압해왔다.

심지어 FSB는 도청과 몰래 카메라 등을 동원해 푸틴의 정적들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방법도 동원해왔다. 대표적 사례로 미하일 카시야노프 인민자유당 당수의 섹스 동영상 공개를 들 수 있다. 카시야노프는 지난해 4월 개인 비서이자 반체제 운동가인 나탈리야 펠레바인과 성관계를 갖는 동영상이 방송을 통해 적나라하게 공개돼 사실상 정치적으로 매장됐다. 카시야노프 당수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총리를 맡았지만 당시 최대 석유기업이었던 유코스에 대한 푸틴의 탄압을 비판한 괘씸죄로 해임된 후 야당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푸틴에 반대하는 야권 세력은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야당들은 통합러시아당과 협력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게다가 푸틴과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의회도 통합러시아당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실시된 하원 선거에서 통합러시아당은 전체 450개 의석 가운데 개헌선을 훨씬 뛰어넘는 343석(전체 의석의 76.22%)을 차지했다. 통합러시아당은 메드베데프 총리가 의장을 맡고 있다. 반면 공산당이 42석(9.34%), 자유민주당 39석(8.67%), 정의러시아당이 23석(5.11%)을 각각 얻었다. 공산당, 자유민주당, 정의러시아당은 모두 ‘시스템상의 야당’으로 불릴 정도로 푸틴에 협조적인 정당들이다. 하원인 두마의 의장은 푸틴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을 지낸 뱌체슬라프 볼로딘이 맡고 있다. 볼로딘 의장은 대통령 행정실에서 재직하는 동안 “푸틴이 없다면 러시아는 없다”고 발언하는 등 푸틴의 충복(忠僕)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슬라브민족주의와 크림반도 영유권 정당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월 3일 폭탄 테러가 발생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역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푸틴은 또 자신에게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권력 실세들을 단계적으로 물갈이해왔다. 이에 따라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 등 크렘린궁을 비롯해 주요 부서를 장악해온 푸틴의 KGB와 FSB시절 동료와 측근 인사들이 대거 물러났다. 이바노프는 1970년대 후반부터 푸틴과 KGB에서 함께 근무했던 오랜 동료이자 측근이다. 국방장관과 부총리를 지낸 이바노프는 2008년 푸틴이 연임 규정에 걸려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 후임 대통령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푸틴은 대통령 행정실장으로 안톤 바이노(44)를 기용했다. 바이노는 외교관 전문 양성 학교인 외무부 산하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MGIMO)을 졸업하고 외교부에서 일하다 2002년 대통령 의전실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2년부터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직을 수행해왔다. 푸틴이 신진인사들을 기용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친위세력을 구축해 권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푸틴은 ‘21세기 차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독재자인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이후 러시아 역대 지도자보다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푸틴이 자신의 통치 이념으로 ‘슬라브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11월 4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바로 옆 보로비츠카야 광장에서 슬라브족 최초의 도시국가인 키예프 공국의 통치자 블라디미르 대공(재위 980~1015년)의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키예프 공국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근거지로 9~13세기에 걸쳐 러시아를 지배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988년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여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통합을 이룬 인물이다. 높이 17.7m의 동상은 왼손엔 칼, 오른손엔 십자가를 들었다. 푸틴은 제막식에서 “블라디미르 대공이 받아들인 기독교는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국민의 공통된 정신적 원천”이라면서 “오늘날 우리의 의무는 이 정신적 유산과 단결이라는 소중한 전통을 이어 현대의 도전과 위협에 맞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대공 동상 건립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러시아에서 고조되고 있는 슬라브 민족주의 열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푸틴의 속셈은 블라디미르 대공을 러시아의 지도자로 부상시킴으로써 키예프 공국을 러시아 역사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크림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푸틴은 슬라브 민족주의를 내세워 러시아인, 러시아 언어, 러시아 문화, 러시아 정교회(기독교)를 강조하면서 국민을 결집시키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푸틴은 이와 함께 대외 정책에서도 ‘강한 러시아’를 앞세우면서 말 그대로 힘을 과시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기존의 국제질서를 흔들면서 새로운 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손에 넣은 푸틴은 2015년 10월 IS 소탕을 명분으로 시리아 내전에 군대를 파병함으로써 중동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내전에 빠진 국가의 특정 세력을 적극 도와 실익을 챙기는 전략이다.

러시아가 알 아사드 대통령과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 아랍 국가들이 지원해온 반군의 기세가 꺾였다. 러시아는 여세를 몰아 미국과 아랍 국가들을 따돌린 채 터키·이란과 함께 시리아 내전 휴전협정을 주도했다. 정권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러시아 덕분에 기사회생한 알 아사드 대통령은 기꺼이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러시아는 해군 보급기지로 활용해왔던 시리아 항구도시인 타르투스를 역외 상설 군항으로 승격하는 협정을 시리아와 체결함으로써 지중해에 적극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러시아는 또 시리아 라타키아의 흐메이밈 공군기지를 영구 임차했다.

터키와 손잡고 나토를 분열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의 미술관 총격 사망사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터키 양국은 우호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푸틴은 심지어 반군과 민간인들에게 화학무기까지 사용한 알 아사드 정권을 비호하고 있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 해군 구축함들이 시리아 정부군의 공군기지에 대해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시리아 공군기지 공습을 주권국에 대한 침공이라면서 강력하게 비난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이번 미국의 시리아 공습으로 더욱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경우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신냉전구도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이란과의 관계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푸틴은 3월 28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란은 러시아의 신뢰할 수 있는 이웃이자 안정적인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란의 유일한 원전인 부셰르 원전 원자로 건설을 지원한 러시아는 이란에 방공미사일 시스템 S-300을 수출하는 등 군사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푸틴이 이란과의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큰 틀에서 볼 때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이다. 게다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맞서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때문에 러시아의 입장에선 이란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맺는 것이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터키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러시아와 터키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흑해의 패권을 놓고 크림반도 등에서 여섯 번이나 전쟁을 치르는 등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다. 술탄이 통치하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차르가 지배하는 제정 러시아는 사사건건 대립해왔다. 터키는 냉전시절 미국 등 서방이 옛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 소련이 흑해에 진출하는 걸 견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견원지간이었던 양국 관계는 2016년 11월 최악의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당시 터키가 자신의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러시아의 수호이 전폭기를 격추시켰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터키에 대한 각종 경제제재를 단행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했고, 터키도 이에 맞서 러시아와 교류를 중단했다.

양국 관계는 지난해 7월 터키 군부의 쿠데타 시도로 급변했다. 러시아가 터키 군부의 쿠데타 시도 정보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전달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하룻밤 만에 군부 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었다. 이후 양국은 급속히 친밀해졌다. 심지어 에르도안은 푸틴을 “내 소중한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국은 현재 새로운 밀월관계를 시작했다. 푸틴은 3월 10일 크렘린궁에서 에르도안과 정상회담을 갖고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합의했다. 에르도안은 러시아의 S-400 첨단 방공미사일을 수입하겠다는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푸틴으로서는 터키를 자국으로 끌어들일 경우 나토를 분열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전략적인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터키와 손을 잡고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푸틴의 야심은 북아프리카까지 뻗치고 있다. 러시아는 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IS 격퇴를 명분으로 이집트와의 국경지대에 특수부대를 배치하고 공군기지 임차를 추진하고 있다. 리비아의 현재 상황을 보면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축출된 뒤 서부 트리폴리에는 이슬람주의 정부와 제헌 의회가, 동부에는 지중해 도시 토브루크를 중심으로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세속주의 정부가 각각 들어서면서 대립하고 있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지난해 두 번이나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부대에 군 장교를 보내 군사훈련을 은밀하게 돕고 있다. 하프타르 사령관이 정권을 잡는다면 러시아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푸틴의 또 다른 목표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북유럽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말 발트 3국 접경 지역인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유럽에서 공중·해상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나토와 신경전을 벌여왔다. 러시아의 입장에선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나토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최근 들어 난민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포퓰리즘 확산 등으로 흔들리는 것도 러시아에게는 유리한 환경이다. 러시아는 EU를 분열시키기 위해 서유럽 각국의 포퓰리즘 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러시아는 서유럽 각국에서 실시되는 선거에서 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를 위해 해킹과 가짜 뉴스로 사이버전쟁까지 벌이고 있다. 서유럽 각국 포퓰리즘 정당도 국가별로 성향이 다르지만 러시아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 정당은 푸틴을 ‘백기사’로 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푸틴, 시진핑의 ‘러브콜’에 호응


▎2014년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CICA) 정상회의’ 개최지인 중국 상하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게다가 동유럽 각국은 줄줄이 러시아로 복귀하고 있다. 옛소련 붕괴 이후 EU와 나토의 동진과 함께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동유럽 각국에서 친러시아 정당이 대선과 총선을 통해 정권을 차지하고 있다. 동유럽의 정치지형 변화와 함께 서유럽에서도 포퓰리즘 정당들이 득세할 경우, 자칫하면 푸틴이 유럽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푸틴의 행보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중국과의 협력관계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비롯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대만·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동중국해 문제 등으로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 핵 문제, 사드 한국 배치 등을 놓고 미국과 사실상 정면대결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으로선 러시아와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중국은 또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전략에서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육상 실크로드를 구축하려면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연결통로인 러시아의 공조가 중요하다. 푸틴으로선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과의 에너지 등 경제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만 한다. 푸틴은 또 극동지역을 개발하려면 중국의 자본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푸틴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러브콜’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양국 정상의 밀월관계 덕분에 양국의 집권당인 공산당과 통합러시아당이 최근 합동 포럼을 개최해 우의를 다지기도 했다. 푸틴은 아·태 지역에서 옛 소련이 행사했던 영향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의 안보 협력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사드 한국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에도 동조하고 있다. 푸틴은 이와 함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자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푸틴의 야심은 러시아를 옛소련에 이어 ‘제2의 유라시아 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푸틴의 이런 의도는 앞으로 트럼프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브로맨스라는 말을 들어온 푸틴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러시아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까지 집권할 것이 확실시되는 푸틴은 ‘러시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전략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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