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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이슈] 정명훈 이후 서울시향은 어디로 

포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수석 객원지휘자 제도로 리더십과 연주력 사이 간극 봉합…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정체성 결정하는 전용 홀 건립 시급

문화적으로 높은 상징적 가치를 갖는 서울시향. 한국 최고 오케스트라의 미래를 어떻게 형성할까? 서울시향은 한국의 발전된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보편적 세계언어로서의 문화적 상징이다. 서울시향 재도약을 위한 음악계의 긴급 제언을 들어본다.


▎한국의 음악청중은 서울시향을 통해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에 못지않은 연주를 정기적으로 감상하며 감동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 사진·중앙포토
클래식 음악의 기본 가치는 고전이 갖는 힘에서 비롯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전은 모든 현대 예술을 가능케 한 근본으로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과 의미가 커지면서 변화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소유하거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장르인 탓에 종종 특수한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거나 쉽게 다가가기 힘든 속성을 갖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인식과 향유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띄고 있는 인류 언어다. 한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과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실제로 세계의 대도시에는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있고 여기에서 현지의 음악가들과 세계의 많은 음악가가 항상 함께 음악회를 열며 세계를 하나로 묶어나가고 있다. 유럽은 경제 불안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필하모니아 홀이나 함부르크의 엘베 필하모니 같은 막대한 금액을 지원한 현대적인 콘서트홀이 들어서고 있다. 독일은 문화 관련 재정비율을 높이고 있다. 더욱이 동남아시아와 이슬람 문화권도 클래식 음악을 활성화하는 데에 막대한 지원과 환경조성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100년의 세월 같은 10년의 발전


▎지난해 7월 정명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 전 감독은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지난 세기의 국가들이 정치사회적으로 교류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앞세웠던 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의 협력이었다. 런던과 베이징 하계올림픽, 토리노나 소치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서는 그 스펙타클하고 모던한 야외무대 안에 고전예술, 특히 클래식 음악이 공통의 원동력으로 담겨 있었다.

최근 서울시향(SPO,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 내홍을 겪었다. 서울시향의 이전 대표와 관련된 사무직 직원들의 인권문제와 이에 대한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예술감독이었던 정명훈에 대한 사회적 질책과 예술적 발전 사이의 풀기 어려워 보이는 간극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이와 관련된 세부적인 문제들은 언론을 통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양상이다. 그러나 돌출적으로 새로운 반론이 제기되고 있고, 직전 대표와 서울시향 직원들의 소송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높은 상징적 가치를 갖는 서울시향이라는 오케스트라의 미래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서울시향은 한국의 발전된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을 갖춘 보편적 세계언어로서의 문화적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사단법인으로 독립한 지 12년이 되는 서울시향은 2015년 12월 예술감독직을 사임한 정명훈 이후 정식 후임자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을 겸임하는 상임지휘자를 영입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수준과 예술적인 방향을 고려할 때 적합한 사람을 찾기도 힘들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단체와의 계약과 향후 스케줄, 쌍방이 합의할 수 있는 개런티 수준을 비롯한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경우 길게는 몇 년간 예술감독을 공석으로 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공백기에도 오케스트라는 정상적으로 연주회와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다. 그 같은 상황을 대비해 다양한 객원 지휘자를 비롯해 수석객원 및 계관지휘자의 직책을 마련한다. 수장이 없어도 오케스트라는 흔들림 없이 예술적인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다. 이후 새로운 예술감독이 온다면 그때부터 그의 리더십과 예술관에 의해 새로운 음악과 음향을 만들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향의 문제는 오히려 정명훈의 사임 이후에 불거졌다. 계약기간이 끝난 수석단원들이 빠지면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력과 조직력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오케스트라는 그 자체로서 전통과 저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상임지휘자가 없다고 불안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기본체력 자체가 허약하다는 뜻이다. 10여 년간 정명훈이라는 한 명의 마에스트로에게 단원들이 전적으로 의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시향뿐만 아니라 한국의 예술단체는 대부분 대표 혹은 예술감독에 의해 그 수준과 운영이 널뛰기를 하는 경향이 많다.

서울시향의 리더십 상실은 많은 관객의 이탈로 이어졌다. 한국의 오케스트라 청중은 그동안 저렴한 티켓 가격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정명훈의 음악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는데 순식간에 그 기회를 박탈당해버린 것이다. 역사가 꽤 오래됐지만 서울시향이 명실상부한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은 사실상 정명훈이 예술감독으로 오면서부터였다. 그러니 서울시향은 창단한 지 10년 정도의 신생 악단과 다름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짧은 그 기간에 서울시향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유럽의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때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지난 20세기 후반, 한국이 이룬 놀라운 경제성장에 비견할 만한 문화적 성과였음이 분명하다. 더 나아가 서울시향은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을 통해 인터내셔널 릴리스로 음반을 정기적으로 출반해 한국 예술의 저력을 전 세계에 떨쳤다. 수차례의 월드 콘서트 투어를 통해 그 모습을 확인시켜주며 문화대사의 역할까지 수행했다.

라쿠텐 회장도 극찬한 서울시향의 발전모델


▎1960년대 신축한 베를린 필하모닉 홀. 베를린 필의 현대적인 사운드는 이 필하모니 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사진·중앙포토
유수의 콩쿠르에서 한국 음악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 정명훈과 서울시향을 통해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해외의 음악잡지 및 저널에서 집중적으로 관찰·보도되면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렇듯 서울시향의 구조조정과 재단독립, 새로운 도약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화, 그리고 이어진 비약적인 성공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적 자존심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라쿠텐 회장인 미키타니 료이치는 경제학자인 아버지와 나눈 대담집을 책으로 편집한 <경쟁력, The Power to Compete>에서 서울시향의 발전모델을 극찬한 바 있다.

신생 악단일수록 지휘자의 음악적, 흥행적 능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신생 악단은 수준과 실력이 높은 수석과 단원들의 확보, 수익구조의 다변화를 통한 재정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정명훈은 혼자의 힘으로 이뤄냈다. 자신이 상임으로 있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수석들을 어렵게 설득해 서울시향의 수석을 겸임하게 만들었다. 오디션을 통해 훌륭한 실력을 갖춘 세계 각국의 솔리스트를 단원으로 영입해 악단의 기량을 급속도로 높였다. 그리고 마에스트로는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을 통해 서울시로부터 재단 지원금을 기존의 강호였던 KBS 교향악단 이상의 수준으로 높였다. 많은 기업과 후원회를 통해 후원금의 규모를 늘렸으며 국내외의 많은 초청 연주회 제의와 정기연주회에 참여, 매진사례를 통해 티켓 판매량 또한 늘려나갔다. 그 결과 한국의 음악청중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에 못지않은 연주를 정기적으로 공급받으며 감동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은 클래식 음악 가운데에서도 특히 오케스트라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경제력과 문화수준이 교집합을 이루면서 청중의 수준과 저변이 넓어졌고 국가적으로도 세계화의 기회를 삼고자 이를 의식적으로 주도했다. 이 가운데 일본은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클래식 음악과 오케스트라 문화에 집중적이고도 체계적이며 깊이 있는 발전을 도모해왔다. 일본에는 20여개가 넘는 풀-사이즈 오케스트라가 활동 중이고 그 가운데 10여 개가 도쿄에 몰려 있다. 그만큼 도쿄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의 메카다. 베를린이나 뮌헨, 빈, 모스크바에 버금가는 국제적인 오케스트라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도쿄는 무엇보다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음향과 예술성 높은 디자인을 갖춘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이 많다. 100여 년에 가까운 오랜 오케스트라 역사를 보유하면서 청중의 규모와 티켓 판매량, 악단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악단의 기량과 음악에 대한 집중도 역시 드높다. 최근 일본 오케스트라들의 공연에 참석해보면 그 연주의 질이나 청중의 수준, 악단의 기획력 모두가 세계의 메이저 오케스트라에 못지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오케스트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기관 및 재단의 명확한 목적의식과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덕망 높고 노련한 프로급 음악자문위원 선정과 다양한 유럽 지휘자과의 계약, 메인 프로그램과 서브 프로그램과의 조화도 큰 역할을 한다. 콘서트-오페라-발레를 아우르는 다양한 연주활동, 최고의 악단원을 영입하기 위한 노력과 스타급 협연자들의 섭외, 그리고 악단을 서포트하는 다양한 이벤트와 홍보전략 등이 완벽에 가깝게 조화를 이루며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이 가운데 1926년에 창단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NHK 홀과 산토리 홀 두 곳에서 연주회를 진행하는 NHK 심포니는 그간 예약제 콘서트를 1800회 이상 수행했다. 한 회의 정기공연은 프로그램을 A, B, C까지 나누어 다양한 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NHK 에듀케이셔널(Educational)이라는 제목 아래 TV와 FM에서 콘서트 대부분을 송출해 새로운 청중을 계발, 일본의 전 국민에게 오케스트라 문화 혜택을 나눠주기도 한다.

일본 오케스트라의 저력과 실력


▎2015년 열린 서울시향과 도쿄 필하모닉 합동연주회를 지휘한 정명훈 전 서울시향 음악감독.
열도 순회공연과 분카무라 오처드 홀의 정기공연, 산토리 홀 N향 명곡 시리즈, 현대음악 전문 연주회인 ‘Music Tomorrow’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NHK는 한 달 평균 2~3회의 정기공연을 진행하는데 한 지휘자당 프로그램 A, B, C를 합하면 평균 6~9회의 정기공연을 한다. 여기에 특별 연주회와 교육용 연주회까지 합하면 공식적인 연주회만 1년에 80회 이상에 달한다. 한 시즌에 3월과 7, 8월에는 정기공연이 없고, 그때그때 열리는 페스티벌이나 특별 연주회, 해외 연주회까지 합하면 1년에 120회 정도의 공연을 소화한다. 악단의 규모는 등급에 따른 4명의 콘서트마스터를 포함하여 약 110명 규모의 정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 다음으로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TPO).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다. 1911년 나고야에서 소년음악대로 창단됐고 이후 1929년 마츠사카야 오케스트라로 개칭, 단원수를 정규 오케스트라 수준으로 확장했다. 1938년 나고야에서 도쿄로 본거지를 옮기며 중앙 오케스트라로, 1945년에는 도쿄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46년에 이르러서 현재의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정착됐다. 1952년 재단법인으로 거듭난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페라, 발레, 콘서트를 아우르며 독일어권의 슈타츠카펠레나 슈타츠오퍼 형식에 가장 가까운 운영과 음악 만들기를 지속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지휘자가 거쳐갔는데, 특히 정명훈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특별 예술고문으로 재직하고 2010년부터는 명예 계관 지휘자에 임명되면서 TPO의 기량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일본에서 정명훈 열풍이 분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업적 때문이다. 서울시향이 모델로 삼을 만한 오케스트라가 바로 이 도쿄 필로서 예전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지어 여기에 상주시키며 콘서트는 물론이려니와 오페라와 발레 장르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안타깝게 그 프로젝트는 무산됐지만 베이징의 NCPA(국가대극원) 성공 모델을 거울삼아 다시 한 번 도전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주로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육성한다. 하드웨어적인 양적 팽창에 비해 아직 악단의 수준은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낮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국가가 클래식 음악에 투자하는 비용의 수준과 행정적 스케일이 너무나 크고 청중의 규모 또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서 이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클래식 음악시장으로 발돋움했다.

서울시향은 아시아 오케스트라가 직면하는 많은 문제점을 어렵게 극복해가며 지난 10년간 일본 오케스트라들의 수준을 상회하는 수준까지 발전해왔다. 수석 연주자들의 명인적인 기량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지휘자에 따른 기민한 적응력과 다양성 수용의 측면에 있어서 아시아 최고 수준의 악단으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명훈 시기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았다. 앙상블의 안정성과 더 많은 실력 있는 단원의 영입, 정명훈의 급에 해당하는 마에스트로의 상주 지휘 확보가 절실했다.

뛰어난 지휘 능력 보여준 마르쿠스 슈텐츠와 티에리 피셔


▎2016년 12월 서울시향의 송년음악회에서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합창’을 지휘하는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 사진제공·서울시향
보다 전문화된 기획과 섭외력도 아쉬웠다. 바로크나 대규모 합창, 오페라 같은 다양한 장르 음악의 섭렵, 정기공연과 리허설 횟수의 확장도 필요했다. 해외 공연 경험도 부족했고 전용 콘서트홀의 건립은 진통만 거듭했을 뿐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문제들을 비롯해 고속성장에 따른 후유증도 치료하며 새로운 시대를 위한 활로를 마련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휘자 문제는 2017년부터 수석 객원지휘자 제도를 신설해 리더십과 연주력 사이의 간극을 어느 정도 봉합해놓은 상태다. 과거 서울시향과 한 차례씩 호흡을 맞춘 뒤 2017년에 역시 각 한 차례씩 정기연주회를 지휘한 마르쿠스 슈텐츠와 티에리 피셔가 그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 모두 단원들과 안정적으로 호흡을 함께하며 음악의 수준을 끌어올린 구심적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슈텐츠는 독일 특유의 균형감과 정묘한 디테일, 뚜렷하면서도 신선한 맥락과 생명력을 불어넣은 지휘자로 주목받았다. 수석 객원 지휘자의 자리를 넘어서 앞으로 서울시향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음악인이 많다.

현대음악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피셔 또한 단원들과의 호흡과 독특한 열기를 통해 청중에게 충분히 어필하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그들의 남은 정기 연주회를 통해 이전과는 구분되는 서울시향만의 독자적인 음악적 행보와 지휘자들의 탁월한 예술세계를 기대해본다. 그 밖에 예정돼 있는 다른 객원 지휘자들의 라인업 또한 매우 훌륭하고 예술의전당과 롯데 콘서트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두 번 연주하는 시도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서울시향을 이끌고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해 호평을 받은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의 부재는 악단의 발전에 심각한 저해요소로 작용했다. 예술의전당은 수용능력이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반면 지어만 놓고 기획력과 자금부족으로 인해 전용홀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곳도 여럿 있다. 특히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홀의 경우는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다.

오케스트라에 콘서트홀이란 악단의 사운드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세계 최고의 빈 필하모닉도 그 사운드의 완성은 빈 무지크페라인의 황금홀의 특성 때문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그 현대적인 사운드도 1960년대 신축한 필하모니 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한국의 오케스트라는 자신만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전용홀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집이 있어야 안주인의 인테리어 솜씨가 발휘되듯 홀 특성에 맞추어 오케스트라의 음향 또한 조율해나갈 수 있는 법이다. 그나마 서울시향은 롯데콘서트홀이 개관돼 일시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기존 콘서트홀 대관의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협연자와 지휘자, 객원 수석들 같은 연주자의 섭외에 따른 연주회와 기획 스케줄을 서울시향의 타임테이블에 맞출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항상 차선 혹은 차차선으로 프로그램과 연주자를 섭외하게 된다. 당연히 완벽성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게다가 대관과 출장 공연을 반복하다 보면 여기에서 기인하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잃게 되고 단원들 또한 리허설 시간이 부족하고 쉽게 지치게 된다.

오케스트라 해체 주장했던 시민도 포용해야


▎2016년 8월 지휘자 정명훈(맨 왼쪽)이 롯데콘서트홀 개관 기념연주를 마치고 출연자와 함께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제공·롯데콘서트홀
오케스트라 공연 외에 오페라와 합창 같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연주해나가기 위해서도 전용홀은 필요하다. 실내악 연주나 다양한 프로젝트성 기획을 마음대로 펼치기 위해서도 기술적, 음향적 조건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전용홀이 필요하다. 클래식 음악, 특히 오케스트라 음악의 중심은 콘서트홀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콘서트홀로 찾아오는 과정을 통해 장소에 대한 예술적인 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 관람문화에 대한 매너를 익힐 수 있다.

오래전부터 서울시향의 전용홀에 대한 검토가 시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번번히 취소되거나 미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신국립극장은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자리의 부지를 20여 년 동안 꾸준히 매입한 결과 지금의 세계적인 위상을 갖게 됐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옆 공원을 콘서트홀 부지로 예정하고 있지만 서울시가 이 문제를 장기적이고도 발전적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용홀을 짓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짓고 난 뒤에는 건물과 조직을 운영하는 유지 문제가 불거진다. 사실 현재의 재정규모로도 충분치는 않다. 유럽 메이저 오케스트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위에 언급한 일본의 오케스트라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가장 먼저 정기 연주회 횟수를 늘려야 하고 지휘자와 협연자, 객원 연주자들의 풀을 넓혀야 한다. 단원의 보강 문제도 시급하다. 지난해 말 빈 필 악장 출신의 라이너 쾨흘이 객원으로 왔을 때 청중은 마법처럼 달라진 서울시향의 사운드를 경험한 바 있다.

재정 문제에서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는 4년치의 보조금을 시와 정부로부터 미리 받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베를린 필하모닉을 비롯한 다른 유럽의 많은 메이저 오케스트라는 시와 도, 정부와 문화 재단에서까지 지원금을 받아 종합적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이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스케줄은 대부분 몇 년 전부터 미리 잡히기 마련이므로 이렇게 중장기적으로 재원을 확보해놓고 스케줄을 정해야만 비로소 양질의 공연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재정적 지원은 서울시뿐만 아니라 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과 단체로부터 다양하게 분산해서 받아야 한다. 그래야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데에 필요한 재정규모를 마련할 수 있다. 낙하산 인사와 같은 반 예술적인 정치행정도 지양해야 한다. 오케스트라가 전문가들을 다양하게 영입, 예술적 정체성과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독립성을 지향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앞선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한국 예술의 상징이자 고전의 힘을 갖춘 서울시향을 다시금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향이 다시금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서의 명예와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가장 먼저 서둘러야 할 일은 아마도 포용의 음악행정일 것이다. 그동안 소원해졌던 서울시향의 팬들이나 음악 애호가들은 물론이려니와 서울시향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운 반대자들이나 오케스트라 해체까지 주장했던 일반 시민까지도 더 적극적으로 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와 편견을 초월한 예술의 힘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지만 정명훈에게 서울시향 계관 지휘자 같은 타이틀을 부여해, 그가 청중을 위해 봉사하며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어떨까. 서울시향이 모색해야 할 ‘포용의 묘’가 아닐까 싶다.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우르며 미래를 위한 포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서울시향이란 고전의 힘, 그 무형의 사회적 원동력을 재 점화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치유하는 포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박제성 -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을 비롯한 클래식 음악 전문지들과 여러 오디오 잡지, 다양한 일간지에 20여 년 넘게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 음악강좌와 기획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 및 KCO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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