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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18)] ‘영적인 인간’ 호모 스피리투알리스(Homo Spritualis) 

지하(地下)를 밝힌 불꽃, 혼백(魂魄)을 깨운 심장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현생인류(現生人類)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변화성·규칙성의 자연원칙 간파…신화창조와 벽화예술로 인간의 자아(自我) 탐구하며 생사의 경계까지 초월해

지하세계 신화에 매료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영적 사고에 몰입한다. 생멸의 순환을 깨닫고 불가능의 공간을 꿈꾼다. 이상향과 영웅담이 그려진 동굴벽화는 자아의 본성과 야망이 투영돼 있다. 상징의 다양화, 사유의 추상화, 천재적 정체성까지 보인다. 무한미로 속, 이성과 감성은 합일에 이른다. 바야흐로 예술의 시원(始原)과 문명의 창발(創發)이 시작된다.


▎기원전 4만 년경,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유럽을 장악했다. 그들은 자연의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인 변화성과 규칙성을 깨달았고 의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했다. 사후세계에 대한 신화는 인류에게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져다줬다. / 사진·중앙포토
기원전 4만 년경,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유럽을 장악하였다. 원래 유럽에 거주하여 현생인류의 조상이 될 뻔한 네안데르탈인들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유럽본토에서 점점 쫓겨나더니 기원전 3만 년경에는 이베리아반도의 동굴 고르함(Gorham)에서 조용히 연명하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다른 유인원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현생인류는 환경과 자연을 관찰하여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을 깨닫는다. 하나는 변화성이다. 그들은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변모시켜, 최적의 전략을 세웠다. 만물은 시간이라는 우주의 거대한 틀 안에서 변한다. 현생인류는 만물의 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하였다.


▎프랑스 남부 아르데쉬 강가 위 사암 절벽에 위치한 쇼베 동굴은 하나의 미궁이다. 쇼베 동굴 속 ‘브루넬 방’, ‘붉은 패널 갤러리’, ‘촛불 갤러리’ 등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다른 하나는 규칙성이다. 자연의 변화는 방향 없이 무작위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자연은 규칙적으로 변화한다. 그들은 동식물이 사시사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지만, 새해가 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영원한 회기를 반복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만물의 움직임이 삶과 죽음이라는 선형적 구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탄생과 죽음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생각하였다.

저주와 창조의 결전(決戰): 미노타우로스 신화


▎신화 속에서 파시파에는 대장장이 신인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실제 암소와 똑같은 형태를 만들도록 주문했다. 그 암소의 모형 속으로 들어간 파시파에는 황소와의 교접을 통해 자식을 낳는다. 그가 바로 머리는 소, 아래는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다. / 사진·중앙포토
현생인류는 변화와 규칙이라는 두 가지 상호 모순적인 원칙을 확인하고 그 안에서 효과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문화를 만든다. 그들은 의례를 통해 끝없이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들은 접근 불가능하고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장소를 상상하기 시작하였고, 후대 종교에 등장하는 지옥, 저승, 천국, 극락 등 다양한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사후세계라는 공간은 타부의 공간이지만, 다시 태어나기 위해 간접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공간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 타부의 공간에 매료되었다.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이 공간에 대한 신화는 인간에게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져다주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이 공간을 ‘미궁’(迷宮)이라고 불렀다.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어 ‘미궁’이라고 불렀다. 우여곡절 끝에 그 장소를 발견했다 할지라도 다시 나올 수 없는 공간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탄생은 이 미궁에서 시작하였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그리스 반도 남동쪽 100여 ㎞ 지점에 위치하는 큰 섬 크레타엔 미노스 왕과 파시파에 왕비가 살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장남인 안드로게오스는 4년마다 열리는 종교축제인 범-아테네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아테네로 항해를 떠났다. 안드로게오스가 힘과 기술을 바탕으로 운동경기에서 우승하자, 그와 경쟁관계에 있었던 아티카의 귀족 팔라의 아들 50명이 그를 살해하였다. 미노스 왕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아이게우스 왕은 누가 살인자인지 알 수 없어, 아테네 전체를 미노스 왕에게 양도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자 미노스는 아테네를 양도받는 대신, 아이게우스에게 조공을 요구한다. 그는 9년마다 7명의 가장 용감한 젊은이와 7명의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인질로 삼아 크레타로 보내야만 했다. 이들은 크레타 섬 깊은 미궁에 감금되어 있는 반인반수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쳐질 희생제물이었다.


▎기원전 3만5000년경,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프랑스 남부 아르데쉬 지방에 위치한 쇼베 동굴에 최초의 벽화를 남겼다. 미로 같은 동굴 끝에 미노타우로스 신화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 / 사진제공·배철현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은 미노스와 파시파에의 욕심 때문에 생겼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미노스에게 제물로 바칠, 흠이 없는 황소를 선물하였다. 그러나 미노스는 그 황소의 아름다움에 탄복하면서, 제물로 바치지 않는다. 포세이돈은 화가 나 파시파에에게 자신의 남편 미노스보다 황소를 더 사랑하는 욕정을 심어놓았다. 파시파에는 대장장이 신인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실제 암소와 똑같은 형태를 만들도록 했다. 파시파에는 그 암소 모형 속으로 들어가, 황소와의 교접을 통해 자식을 낳는다. 그가 바로 머리는 소, 그 아래는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다. 미노타우로스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괴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다이달로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인 라비린토스(labyrinthos)에 감금한다.


▎쇼베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브루넬 방’이 등장한다. 벽에 붉은색으로 그려진 사람의 그림자는 지하 동굴 탐험을 감행하려는 의례자의 모습 같다.
아테네엔 평화가 없었다. 이제 세 번째 조공에 참여해 이 악행을 멈추게 할 영웅이 등장한다. 바로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다. 테세우스가 인질들과 함께 크레타에 도착했을 때,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뛰어난 영웅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수 있지만, 라비린토스를 다시 빠져나올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그녀는 이 미궁의 건축가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받아,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준다. 그는 미궁 입구 대문에 실을 묶고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혼돈을 척살하는 부월(斧鉞): 라브린토스 동굴


▎쇼베 동굴에 들어온 현생인류는 입구에 자신의 심장 모습을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이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붉은색을 칠해 동굴 벽에 찍었다. / 사진제공·배철현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찾기 위해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항상 직진하라는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믿고 미궁의 중심에 도착한다. 테세우스는 그곳에서 미노타우로스와 운명의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 그는 자신이 걸어둔 실타래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미궁에서 빠져나온다. 테세우스는 아테네로 돌아와 라비린토스를 흉내 내 아테네라는 도시를 새롭게 건설하였다. 그는 아크로폴리스와 그 주위를 요새처럼 구축한 후에, 그 중앙에 신전을 지어 찬란한 그리스 문명을 시작하였다.

‘미궁’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라브린토스(labrynthos)의 어원에 대한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크레타 섬에서 사용되던 언어인 미노아어 기원설이다. ‘라브리스(labrys)’는 ‘양날도끼’란 의미로 고대 그리스 문명의 가장 오래된 상징이다. 크레타 섬의 양날도끼는 사람보다 크고, 실제로 신에게 제사드리기 위한 황소를 죽이는 제의용 도끼다. 고고학자들은 크레타 섬 아르칼로코리(Arkalochori) 동굴에서 선형문자 A가 새겨진 양날도끼들을 발견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아나톨리아 기원설이다. 인류 최초의 도시문명을 구가했던 차탈휘육에서, 기원전 7500년에서 기원전 5700년 사이에 사용되던 양날도끼를 이르는 용어다. 우주창조의 시초에 관여하는 여신의 소유다.

‘라브린토스’는 인류문화의 원초적인 몇 가지 상징을 담고 있다. 테세우스가 아테네에 서양문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미노스와 라비린토스를 극복해야 했다. 아테네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가 상징하는 비문명의 단계를 제압한 후, 그리스 문명을 창건하였다.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 여신은 이 양날도끼로 우주를 창조하였다. 라브린토스는 새로운 역사로 넘어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괴물을 살해하는 도구다. 그 후 ‘양날도끼’란 의미를 지닌 라브린토스가 미노스로 넘어가 의미를 확장하여, 미노타우로스가 숨어있는 미궁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둔갑하였다. 라브린토스로 제거해야 할 대상은 괴물일 뿐 만 아니라,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는 ‘미궁’이다.


▎‘힐레르 방’에는 손톱이나 나무 같은 도구로 새긴 벽화들이 등장한다. 이 패널은 원래 곰들의 발톱 자국으로 가득 차 있었다. 6m 크기의 패널에 13마리 동물이 묘사됐다. / 사진제공·배철현
인간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있다. 미궁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한다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다. 미궁 안으로 용기 있게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은유적으로 ‘양날도끼’이며, 그 용기가 괴물을 제압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다. 깊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외면하고 싶은 괴물과의 대결에 관한 미노타우로스 신화는 원초적이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기원전 3만5000년 전쯤 프랑스 남부 아르데쉬 지방에 위치한 쇼베동굴(Chauvet Cave)에 최초의 벽화를 남겼다. 인류가 남긴 최초의 그림들이다. 이 동굴은 미로처럼 되어 있고 그 끝에 미노타우로스 신화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영원불멸 지하의 여정: 쇼베 동굴과 브루넬 방


▎브루넬 방의 오른쪽 하단에는 조그만 연결통로가 있다. 벽화 속 붉은 곰 세 마리가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좌) / 곰들의 방을 지나면 바로 위에 ‘붉은 패널 갤러리’가 등장한다. 이곳의 입구는 뒤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이 갤러리 동쪽 벽에 점박이 하이에나와 표범이 묘사돼 있다. / 사진제공·배철현
1994년 12월 18일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일요일이었다. 동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세 명이 모였다. 장 라미 쇼베(Jean-Marie Chauvet)는 두 친구 엘리엣 브뤼네(Eliette Brunel), 크리스티앙 일레어(Christian Hillaire)와 함께 자신이 몇 해 전부터 눈여겨보아왔던 한 동굴을 찾아 나섰다. 프랑스 남부 아르데쉬 강가 위에 형성된 사암 절벽에 있는 조그만 동굴이다. 쇼베는 며칠 전 이 절벽에서 조그만 구멍으로 바람이 나오는 것을 손으로 느꼈다. 그 곳은 동굴의 끝부분이었다. 쇼베와 두 친구는 전문적인 동굴탐험가로 수많은 동굴을 발견했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하이킹 길로 가장 유명한 도로를 바라보는 조그만 동굴에 도착했다.

쇼베 동굴은 탄소연대측정에 의하면, 기원전 3만5000년 전부터 기원전 2만5000년 전까지 거의 1만 년 동안 현생인류가 그린 벽화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엔 다른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처럼 매머드, 들소, 양 그리고 말 같은 초식동물 그림이 많다. 그러나 쇼베 동굴엔 다른 동굴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자, 표범, 곰 그리고 하이에나와 같은 육식동물과 코뿔소 그림까지 있었다. 동굴 바닥은 진흙과 같이 부드러워 이곳에서 기거했던 곰들의 발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발자국과 늑대 발자국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아마도 이 늑대는 최초로 사육된 개의 초기 모습일 것이다. 쇼베 동굴의 입구는 기원전 2만3000년경 산사태에 의해 막혔다. 쇼베 동굴은 1994년 발견되기 전까지, 구석기 시대 예술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타임캡슐이었다.

쇼베 동굴 전체는 하나의 미궁이다. 원래 입구는 산사태로 막혔다. 쇼베와 그 친구들이 발견한 입구는 ‘토끼 구멍’으로, 사람 몸 하나 들어갈 만한 크기의 조그만 입구다. 그들은 이 입구로 들어가 수직 갱도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원래 동굴입구로부터 이곳까지는 산사태로 인한 바윗돌로 가득 차 있다.

쇼베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브루넬 방(The Brunel Chamber)’이 등장한다. 이곳의 바닥은 방해석과 종유석으로 가득 차 있다. 브루넬 방은 동굴 속 깊은 곳으로 진입하기 위한 문지방과 같은 장소다. 이곳에 등잔을 들고 온 현생인류는 방해석에 비쳐 반짝거리는 찬란한 방 모습에 현기증을 느꼈을지 모른다. 이곳엔 어두운 극장에서 밝은 곳으로 갑자기 나올 때 느끼는 착시현상을 그린 그림들이 있다. 벽에 붉은색으로 그려진 사람의 그림자 모습은, 지하 동굴탐험을 감행하려는 의례자의 모습 같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국가>에 언급한 ‘동굴 알레고리’가 연상된다. 자신이 들고 간 등불에 투영된 그림자가 바로 자신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장소를 ‘동굴’이라고 주장하였다. 등불을 들고 있는 자신과, 등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 새김벽화는 예술가의 솜씨를 마음껏 드러냈다. 예술가는 머리와 목선, 몸체와 꼬리 모두 한 번의 거침없는 획으로 그렸다.
쇼베 동굴로 들어와 첫 번째로 만나는 방에서 지하세계로 여행 온 자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붉은색 심장으로 추정되는 그림들로 가득 찬 ‘거룩한 심장 패널’이 있다. 이 패널 오른쪽 상단에 십자가 모형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패널의 크기는 세로 6m 가로 3m로, 이 동굴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영적인 인간으로 태어나겠다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의식이다.

이들은 자신의 손을 ‘심장’으로 표현했다. 인간의 살아있음은 심장의 박동으로 느낄 수 있다. 심장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 그리고 영성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고대 이집트의 장례문헌인 <사자의 서>를 보면 이 심장의 중요성을 유추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를 믿었다. 그들은 현재의 삶이 순간이며, 사후세계를 영원히 변치 않는 세계라고 믿었다. 죽은 자가 사후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바로 ‘심판’이다.

장례를 관장하는 신인 아누비스가 죽은 자를 심판대로 인도한다. 그곳에 심판받는 사람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모두 적은 ‘생명의 책’을 들고 있는 토트신이 판결을 내린다. 아누비스와 토트신 사이에는 천칭이 놓여있다. 천칭의 왼쪽은 죽은 자의 심장이 놓여 있고 오른쪽엔 타조 깃털이자 정의의 상징인 ‘마아트’가 놓여있다. 심장과 마아트가 균형을 이루어야 죽은 자는 영생의 신인 오시리스를 만날 수 있다. 심장을 고대 이집트어로 ‘입(ib)’이라고 부른다. ‘입’은 곧 그 사람 전부다. 인류는 뇌의 기능이 알려지기 전까지, 심장이 인간의 본성을 담은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경주하는 삶을 상징하는 신체기관이다.


▎힐레르 방의 또 다른 유명한 새김벽화인 부엉이는 앉아서 사물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두 귀를 직선으로 표시했다. 눈과 코는 한 선으로 영어 V자 모양을 그렸다.
쇼베 동굴에 들어온 현생인류는 동굴입구에 자신의 심장 모습을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이들의 심장 표시방식도 독특하다. 이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붉은색을 칠하여 동굴 벽에 찍었다. 인간의 손은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 손짓을 하고, 음식을 먹고, 도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도구다. 심장 모양의 손도장은, 지하로 내려와 자신을 관조하고자 의례를 행하는 구도자의 결연한 의지 표현이다. 이 공간을 통해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선언이다. 브루넬 방의 오른쪽 하단에 조그만 연결통로가 있다. 이곳에 붉은 곰들 벽화가 있다. 연결통로의 입구는 70㎝ 정도로 매우 좁지만 점점 넓어진다. 세 마리 붉은 곰이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상향의 예술: 붉은 패널 갤러리와 힐레르 방


▎힐레르 방 벽화패널 왼편에 코뿔소, 오록스 그리고 말이 그려져 있다. 오록스는 오늘날 사육된 소의 조상으로 몸집이 큰 야생 들소다. / 사진제공·배철현
브루넬 방에서 북서 방향으로 곰들이 뒹굴고 놀던 50m 정도 크기의 방이 나온다. 학자들은 이곳이 원래는 호수였다고 추정한다. 이곳엔 벽화나 조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바닥에는 곰들이 들어와 발톱으로 낸 커다란 구덩이와 자국들이 남아 있다. 곰들의 방을 지나면 바로 위에 ‘붉은 패널 갤러리’가 등장한다. 이곳의 입구는 뒤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이 갤러리 동쪽 벽에 점박이 하이에나와 표범이 묘사되어 있다. 하이에나 위에 곰을 그리다 만 흔적이 남아있다. 이 그림들은 기원전 3만 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현생인류가 이 맹수들을 그린 이유는 무엇인가? 영국 미술사학자인 E.H. 곰브리치가 쓴 <예술 이야기(The Story of Art)>는 예술사 분야의 최고 베스트셀러다. 곰브리치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동굴 안에 벽화를 그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그림들에 대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 벽화그림들은 그림을 그림으로 생기는 힘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을 표시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다시 말하자면, 원시 사냥꾼들은 자신들의 사냥감을 그림으로써 실제 동물들이 자신들의 힘에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곰브리치는 이 벽화가 부적처럼 주술적인 의미를 지녀, 사냥꾼이 맹수를 정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는 다윈의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이론의 세례를 받은 자와 같다. <예술 이야기>의 첫 장 제목은 ‘이상한 시작(strange beginnings)’이다. 그는 예술의 기원을 알지 못해 ‘이상하다’고 서술하고, 예술의 시작을 더 많은 동물을 살해하게 해달라는 바람 정도로 설명했다. 정말 그랬을까?

붉은 패널 갤러리에 그린 점박이 하이에나, 표범, 그리고 곰들은 현생인류의 사냥대상이라기보다는, 관찰대상이었다. 이 동물들은 서로 공격하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감싸는 모습이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이 깊은 동굴에서 사나운 짐승들도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사는 이상향의 모습을 그린 것 같다. 코뿔소 세 마리가 유유자적하며 걷는 그림도 있다.

여기에는 브루넬 방에서 본, 손 그림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손 그림이 있다. 창작가는 자신의 손을 벽에 대고, 입에 문 물감을 뿌려 손 모양을 그렸다. 소위 ‘네거타브 페인팅’ 기법을 이용하여 손을 그렸다. 예술가는 자신이 묘사하려는 대상을 직접 그리지 않고, 그 주변에 물감을 칠해, 브루넬 방의 심장 패널 손 그림보다 훨씬 선명하게 그렸다. 인류는 자기 손의 모양 주위를 색으로 채워, 그림으로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추상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자신의 주위를 관찰하고 그것을 채우려고 노력할 때, 자신의 존재가 더 드러난다는 사실을, ‘이 손 그림’으로 보여준 것이다.

붉은 패널 갤러리에서 왼쪽으로 150㎝ 정도 낮아진, 흔히 ‘촛불 갤러리’라는 장소로 이어진다. 이곳은 조각이나 벽화가 없는 낮은 통로다. 이곳에는 현생인류가 벽화를 그리기 위해 가져갔던 횃불과, 불을 지폈던 목탄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들은 목탄으로 벽화를 그렸다. 이곳을 지나면 바로 ‘힐레르 방’이 나온다. 이 방은 지름이 30m, 높이가 17m나 되는 큰 방이다. 힐레르 방에는 손톱이나 나무와 같은 도구로 벽을 긁어 새긴 벽화들이 등장한다.

이 패널은 원래 곰들의 발톱자국으로 가득 차 있었다. 6m 크기 패널에 13마리 동물이 묘사되었다. 동물들은 동굴 안쪽인 왼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들 중 가장 뚜렷하게 표현되어 남아 있는 동물들은 커다란 말과 그 뒤를 따르는 두 마리 맘모스다. 말은 손톱으로 긁어 그 표면 밑에 있는 밝은 색 표현이 드러났다. 말의 입, 콧구멍, 눈이 절제되었지만 그 특징이 잘 표현되었다. 말 갈기 부분에는 예술가의 손 지문을 이용하여 명암과 입체감을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현대 예술작품이라 주장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술가의 천재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힐레르 방의 또 다른 유명한 새김벽화는 부엉이와 신비한 동그라미 기호들이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말이다. 부엉이는 앉아서 사물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두 귀를 직선으로 표시했고, 눈과 코는 한 선으로 영어 V자 모양으로 그렸다. 날개는 앉아있을 때 앞으로 모아져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말 새김 벽화는 예술가의 솜씨를 마음껏 드러냈다. 예술가는 머리와 목선, 그리고 몸체와 꼬리가 모두 거침없는 한 번의 획으로 그렸다. 갈기 부분은 손 지문을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표시하였다. 힐레르 방 새김벽화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들이다.

힐레르 방 벽화패널 왼편에 코뿔소, 오록스 그리고 말이 그려져 있다. 오록스는 오늘날 사육된 소의 조상으로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에 서식하던 몸집이 큰 야생 들소다. 오록스는 17세기까지 유럽에 생존했다. 오록스는 어깨의 높이가 2m, 몸무게는 1t에 달한다. 이 당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가장 잡기 힘든 동물이 바로 오록스였다. 오록스는 인간에게 사자나 곰보다 훨씬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인간이 늑대를 사육하면서 늑대를 이용하여 오록스를 사냥했다.

생사초월의 조화세계: 오록스와 반인반수 벽화


▎쇼베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 놀라운 벽화가 있다. 이 패널의 왼쪽은 동굴 곰들이 질주하고, 오른쪽엔 사자들이 들소를 잡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 사진제공·배철현
오록스 뒤에 말 네 필이 왼쪽에서 사선으로 묘사되었다. 예술가는 네 마리 모두 다르게 표현하였다. 필자의 눈을 끄는 말은 맨 밑에 있는 말이다. 다른 말들과 비교하여 머리 전체가 검은색으로 칠해졌다. 눈 주위만 색을 칠하지 않아 오히려 눈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말은 다른 말들 뒤를 쫓아가느라 힘들어 입을 벌려 숨을 몰아쉬고 있다. 말의 숨 가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혹은, 이 네 마리가 순차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을 수도 있다. 이 장면은 무성영화시대 말이 달리는 장면을 묘사한 것 같다. 인간이 이 시점에 이미 영화의 개념을 창안한 셈이다. 예술가는 전체적으로 한 곳으로 달려가는 단조로운 평면에 두 마리 코뿔소가 뿔을 부딪치며 싸우는 장면을 첨가하여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힐레르 방에서 왼쪽으로 가면 많은 곰 해골 방이 나온다. 이 방엔 곰 뼈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쇼베 동굴 안에서만 190마리 동굴 곰 해골이 발견되었다. 이 방의 중앙엔 특별하게 장식된 돌이 있다. 천장에서 떨어진 커다란 돌 모서리 부분에 곰 해골이 정성스럽게 올라가 있는 걸로 보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의 제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소개된 방들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방이 등장한다. 힐레르 방 오른편으로 가면 지금은 멸종된 가장 거대한 뿔을 지녔던 메갈로케로스 갤러리가 나온다. 어깨 가운데가 검은색이고 목, 머리, 그리고 거대한 뿔을 지탱한다. 이 갤러리 끝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좁고 깊은 구멍이 나있다. 쇼베 동굴의 끝이자 미궁의 끝이다. 이 가장 깊은 장소엔 쇼베 동굴에서 발견된 가장 놀라운 벽화가 있다. 이 패널의 가장 왼쪽은 동굴 곰들이 질주하고, 가장 오른쪽엔 사자들이 들소를 잡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예술가는 패널 왼편 상단에 있는 코뿔소가 달려가는 모습을, 그 뿔들을 연속해서 7번 그림으로 표현했다.


▎지성소 패널 옆 원뿔 모양의 바위에는 미노타우로스의 신비한 벽화가 등장한다. 상단은 들소 모양이고 하단은 여성의 다리와 허벅지, 음부가 묘사돼 있다.
지성소 패널 옆 원뿔 모양의 바위에 미노타우로스의 신비한 벽화가 등장한다. 이 바위엔 쇼베 동굴 벽화와 새김그림의 핵심을 담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상단은 들소 모양이고 하단은 여성의 다리와 허벅지 그리고 그 가운데 음부가 묘사되어 있다. 이 벽화는 쇼베 동굴 안에서 인간을 표현한 유일한 그림이다. 이 거룩한 장소까지 들어온 영웅은 미궁의 심연에서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한다. 미노타우로스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허물어져 하나가 되는 유동성의 상징이다. 미노타우로스는 삶과 죽음을 넘어서, 삶이 죽음이며 죽음이 삶이 되는 투과성의 상징이다. 20세기 형이상학자이며 화가였던 파블로 피카소가 미노타우로스를 그린 이유다. 스페인 사람인 그는 들소, 투우, 그리고 미노타우로스가 자신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린 들소는 소가 아닌 야생성을 지닌 동물이다. 생명이 넘쳐나고, 엄청난 힘을 가졌으며, 항상 자신만만하고 용감하다.

이곳까지 들어온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자발적이며 정기적으로 지하세계로 들어와, 오래된 자아를 살해하고 새로운 자아로 태어나는 정교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쇼베 동굴은 심지어 동물을 포함한 자연과 하나가 되고, 죽음조차 초월하는 영웅으로 탄생하는 수련장소다. 인류는 이제 일반 동물과는 다른, ‘영적인 동물’로 태어나 찬란한 문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배철현 -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셈족어와 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 쐐기문자가 기록된 베히스툰비문의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에 개원한 미래혁신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이다.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이 있다.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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