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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꽉 찬 살점을 쏙쏙 빼먹는 맛과 재미 

알알이 꼬막을 까먹고 던질 때의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즐겁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꼬막은 해안선을 따라 서식하며, 양식도 가능하다.
집사람이 골목시장에서 꼬막을 한 됫박쯤 사와서 소쿠리에 대고 싹싹 치댄다. 골골 사이사이에 낀 개흙을 씻어내 소금물에 하룻밤 해감하고, 한소끔 끓여내 알뜰살뜰 애써 조개를 깐다. 짝 벌린 조개껍데기 한 짝은 떼어버리고, 다른 조가비엔 조갯살을 남겨둔다. 귀찮고 성가시게도 한 쪽 조가비에 살찐 꼬막 살을 두는 것은 모양새도 그렇지만 조개국물을 맛볼뿐더러, 알알이 조개를 까먹고 던질 때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듣자는 것이다. 음식은 예술이라 하듯이 이른바 먹는 즐거움(여유)을 얻자함이리라. 아무튼 그것 하나 장만하는 데도 잔손질이 참 많이도 가더군.

꼬막 살점 하나하나에 고수한 냄새가 물씬 밴 맵싸한 양념장을 두루 끼얹으니 오동통하고 달차근한 별미 꼬막무침이 된다. 꼬막 속에는 감칠맛 나는 주황색의 졸깃졸깃한 조갯살과 함께 입맛 돋우는 간간한 조개국물이 한가득 고여 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條件反射)가 따로 없다, 지금 바로 군침이 한입이다. 후루룩후루룩 꽉 찬 살점을 쏙쏙 빼먹는 맛과 재미라니!

꼬막(Anadara granosa)은 길이 5㎝ 남짓한 연체동물(軟體動物), 꼬막조개과(科)의 부족류(斧足類) 이매패(二枚貝)이다. 부족류란 발(足)이 도끼(斧)를 닮았기에 붙은 이름이고, 이매패는 껍데기(패각, 貝殼, shell)가 두 짝(二枚)인 조개(貝)란 뜻이다. 패각 겉이 매끈매끈하고 반들반들한 다른 조개들과는 딴판으로 야물기 그지없는 꼬막껍데기는 푹 들어간 골과 오돌토돌 솟은 두둑돌기가 또렷하다.

꼬막은 바닥이 모래흙이고, 들고 써는 바닷물이 갈마드는 조간대(潮間帶)에 서식하고, 주로 연안에서 바닥양식을 하지만 바구니(채롱, 綵籠)에 넣어 바다 밑에 내려 키우는(수하식, 垂下式) 수도 있다. 그야말로 조개도 키워먹는 세상이다!

그들이 겉으로 쏙 빼닮아 피장파장이라 하겠지만 같은 과(무리)에 속하는 꼬막과 새꼬막, 피조개의 다른 점을 보도록 한다. 셋의 크기는 5.2㎝, 7.5㎝, 12㎝ 순이고, 꼬막은 껍데기에 털이 없고, 새꼬막은 조금 나며, 피조개는 털이 더부룩하게 많은 텁석부리다. 또 조개껍데기 겉면에 부챗살처럼 도드라진 부챗살마루(방사륵, 放射肋)가 각각 17~18개, 30~34개, 42~43개씩이고, 총중에 제일 쪼매한 꼬막이 좀 더 큰 새꼬막보다 맛이 더 난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윗길(상품)은 탐스런 피조개다. 참고로 조개와 고둥을 더러 혼동하는 수가 있는데 ‘조개(clam/mussel)’는 껍데기가 두 장인 이매패이고, ‘고둥/고동(snail)’은 흔히 ‘골뱅이’라 부르는 것으로 껍데기가 돌돌 말린 권패(卷貝)이다.

꼬막 하면 전라도 보성 벌교(筏橋)를 쳐주고, “벌교에 가거든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옛날부터 보성 벌교 사람들이 힘이 장사란 뜻인데 아마도 벌교 특산물인 꼬막을 많이 먹어 그런 것이리라. 또 “꼬막 맛 변하면 죽을 날 가깝다”고 하는데 몸이 허하여 꼬막 맛이 없을 정도로 입맛이 갔다는 말이렷다. 그리고 손가락이 짤막한 손을 조막손, 어린아이의 작은 손을 고사리손·꼬막손이라 하는데 이중에서 꼬막손은 꼬막에서 온 말일 터다.

“꼬막 맛 변하면 죽을 날 가깝다”


어부들은 걷잡을 수 없이 내리쬐는 따가운 햇발과 휘몰아치는 시린 해풍을 온통 내리받으며 겨드랑이털이 빠지고, 정강이 살이 녹아내리도록 고된 삶을 그래도 대차게 견디며 산다. 진흙개펄이 많은 남·서해에서 조개 채취를 하기 위한 유일한 이동수단으로 ‘널배’, ‘뻘배’가 있다. 진흙더버기를 뒤집어 쓴 아낙들이 한쪽 다리를 나무판 위에 올리고, 다른 다리로 갯벌 바닥을 쑥쑥 밀어서 스키를 타듯 짤름대며 씽씽 휘달린다.

그리고 아낙들이 널배에 꼬막 잡는 장비‘형망(珩網, dredge)’을 걸어 끌면서 갯벌 바닥을 세게 훑으니 강의 다슬기 잡는 데도 같은 기구를 쓴다. 형망은 갈아 놓은 논이나 밭의 흙덩이를 바수거나 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 데 쓰는 써레 닮았다. 써레는 긴 토막나무에 끝이 뾰족한 이빨 닮게 깎은 써렛발 여남은 개를 빗살처럼 박은 농기구가 아닌가.

앞에서 말한 셋 총중에서 몸집이 제일 큰 피조 개(Scapharca broughtonii)는 역시 꼬막조개과의 연체동물로 보통 껍데기 길이는 12㎝ 남짓이지만 대자는 20㎝에 이르는 것도 있다. 바깥껍데기에는 흑갈색의 거친 털이 수북이 나고, 단단하고 얇은 갈색 겉껍데기(각피, 殼皮)로 덮여있는데 말라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남·동해안에 걸쳐 수심 5~50m 사이의 바다 밑이나 깊은 개펄 속에 사는데 특히 진해만산은 품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하단다.

피조개(red shell)는 육질이 연하고, 살은 붉은색으로 달착지근하며, 씹히는 맛이 꼬들꼬들한데 특히 발과 폐각근(閉殼筋, adductor muscle)이 그렇다. 두 껍데기를 여닫게 하는 힘살(근육) 덩어리인 폐각근은 흔히 일본말로 가이바시라(かいばしら)라고 불리는 조개관자(패주, 貝柱)이다. 다른 조개에 비하여 단백질과 유기산인 타우린(taurine)이 더할 나위 없이 많아 피로회복, 당뇨병 예방, 시력 회복, 빈혈 치료에 좋다.

피조개는 척추동물처럼 철(Fe)이 든 헤모글로빈(hemo globin) 혈색소(血色素)를 가진 탓에 살과 국물이 붉다. 덧붙이면 대부분의 연체동물 혈액에는 구리(Cu)를 함유한 무색 헤모시아닌(hemocyanin)이 산소를 운반하지만 피조개 따위는 붉은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옮긴다.

다시 말하건대 헤모시아닌은 산소 운반능력이 딱히 헤모글로빈의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피조개는 산소가 부족한 깊은 바다나 갯벌에 살기에 헤모시아닌보다 산소결합력이 훨씬 뛰어난 헤모글로빈을 갖게 진화(변화)했던 것이다. 산소가 메마른 시궁창 구정물에 빼곡히 나 실 같은 몸을 살랑거리는 실지렁이(환형동물)도 핏속에 헤모글로빈이 들어있어 매한가지로 새빨간 색을 띤다. 아닌 게 아니라 생물들의 억센 적응력(適應力)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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