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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새 대통령이 1년 내 해결해야 할 7대 난제] 4. 안정적 국정운영 실현할까 

개혁과 협치의 시너지 모색하라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정치학
대통령 권력 개입되는 정당체제 개편은 역풍 불러…
이념과 노선의 차이 인정하고 수평적 연대 이뤄내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당시)이 선거일인 5월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나와 시민과 지지자들을 만났다. 문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대국민 통합의 메시지를 전했다.
부패한 제왕적 권력, 정치와 경제의 부정의한 동거, 기득권의 도덕적 해이 등은 그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미증유의 국기문란과 헌정유린은 이러한 토양 위에서 가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부재, 그를 맹목적으로 비호했던 집권세력의 합작물이다.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을 자신들의 사적 이해에 동원하고 자의적으로 행사한 행태는 후진국 민주주의의 일반적 모습인 위임민주주의의 전형이다. 이를 끌어내린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의 토대 위에서 행사한 민주주의의 구현이다. 집적(集積)된 민심은 혹한의 겨울밤에도 광화문과 전국을 밝혔던 촛불집회로 구체화됐고, 19대 대선은 이를 광정하라는 민의 명령에 의해 치러졌다.

선거는 시대정신을 아는 자가 이긴다. 19대 대선의 시대정신은 촛불민심이었다. 촛불민심에 가장 적극적으로 부응했던 문재인 후보의 당선은 그래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에 의해 치러진 대선은 그래서 당연히 촛불대선이 되어야 했다.

여소야대 운명… 통합은 절실한 것

같은 맥락에서 19대 대선은 ‘적폐청산’이 금기어가 되는 역설을 경험해야 했다.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으로, 과거에 대한 성찰은 미래를 포기하는 구태로 묘하게 치환됐다. 통합이 강조됐고, 협치와 연대가 필연이 되었다. 선거공학상 이른바 ‘중도로의 외연 확장’이라는 선거공학에 적폐청산은 선거를 가르는 핵심 쟁점축이 되지 못했다.

1987년의 6월항쟁이 군부정권을 타도하고, 국민의 선거권 회복을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procedural democracy)를 향한 혁명이었다면, ‘촛불’은 ‘유사(類似) 민주주의(pseudo democracy)’의 병풍에 숨어 요원해지는 실질적 민주주의(substantive democracy)를 수립하고자 하는 시민혁명이었다.

또한 중첩적으로 진지화되고, 중층적으로 공고화된 기득권동맹을 타파하고 사회·경제적 격차와 모순을 해소하라는 민의 명령이었다. 구조화된 정경유착,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로 인한 양극화의 심화와 불평등이 당연시되는 체제를 혁파하라는 주권자의 준엄한 요구였다. 박근혜의 탄핵과 구속을 외치는 주장에는 고착화된 한국사회의 계급모순과 냉전사고에 찌든 수구적 안보관을 타파하라는 절절한 외침이 있었다.

사회적 분극과 경제적 분절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피폐시킨다. 문 대통령은 개혁과 통합을 정권의 지향으로 제시했다. 이 두 단어에 정권의 성패는 물론이요, 한국사회의 명운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혁은 정책으로 구체화된다. 정책은 입법을 전제로 한다. 야당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지 않고는 어떠한 개혁이나 정책도 현실화될 수 없다. 여소야대의 운명이다. 여소야대의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는 국정의 교착이라는 필연을 낳는다. 그래서 통합은 절실하다.

통합의 형태에는 합당과 연대, 연정이 있다. 통칭 협치와 연합의 모습들이다. 합당은 인위적으로 정당체제를 개편하는 형태로, 총선 결과와 민의를 왜곡할 수 있다. 연대는 현안과 이슈에 따른 정당 간 정책연합의 형태로 나타난다. 연정은 내각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당의원들의 입각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러한 다양한 연합정치가 국면에 따라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야당과의 타협은 명분을 필요로 한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의 득표는 76%에 달한다. 홍준표 후보가 획득한 24%를 제외한 수치다. 3월 초 여론조사에 의하면 탄핵에 76% 내외가 찬성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76% 내외의 유권자가 정권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물론 홍준표 후보를 지지했던 상당수의 유권자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통합의 방향도 대체로 이에 준해서 판단할 수 있다.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과 사안별 정책연합이 여소야대의 교착을 풀 수 있는 해법이다. 정치공학적 통합 가능성도 열려 있으나, 집권세력과 대통령의 권력이 개입되는 정당체제의 개편은 역풍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퇴행적 반공주의에 매몰돼 있고, 사회경제적 관점이 판이한 정치세력과의 통합은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에 조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성 있게 설득하고 타협하는 협치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다. 집권세력의 정교한 ‘정치’와 리더십이 절실한 이유다.

국민 지지 입각해 야당 설득하라


▎협치는 가능할까? 결별 직후인 지난 2015년 한 행사장에서 만난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 서로 외면한 두 사람의 표정이 착잡하다.
정치는 상호갈등하는 계층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 내는 작업이다. 제도권의 통합과 협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갈등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체제의 재정렬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당체제가 시민사회의 균열을 반영하고 갈등을 대표할 수 있을 때 정당을 통해 계층의 이해가 표출되고 집약될 수 있다. 정당체제가 분극화된 사회적 균열을 대표하지 못한다면 협치는 정치공학에 그칠 수밖에 없고, 가치지향에 근거하지 않은 통합은 파기되게 마련이다. 정당 간 극단적 대립과 반목을 통해 공생을 모색하는 ‘적대적 공존’의 얼개다.

통합은 정치의 복원에서 찾아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에 입각한 정치공학적 통합은 정치적 퇴행이라는 결과를 낳게 한다. 1990년의 3당합당은 총선 결과와 민의를 왜곡하는 인위적 정계개편이었으며, 강고한 기득권집단으로서의 보수대연합의 단초를 열었다. 여야 협치는 국민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에 입각한 집권세력이 야당을 설득하고 소통의 리더십을 보일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통합은 치밀한 정치기술로만 가능한가? 사회·경제적 관계의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사회적 격차가 일상화되고 불평등이 구조화된다면 통합은 언감생심이다. 사회에는 갈등이 상존한다. 계층 간 간극을 줄이고, 양극화를 완화시킴으로써 통합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충족시켜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될 때 통합의 가능성이 열린다.

통합의 전제는 사회·경제적 격차의 해소며, 불평등 구조의 혁신이다. 재벌을 통한 경제력 집중이 지속되고, 계층 간 블록화가 더욱 공고화된다면 통합을 운위한다는 자체가 위선이고 허언이다. 사회적 상층부를 형성한 기득권과 이를 제외한 계층 간의 모순 구조가 고착화한다면 정치권의 통합과 협치는 공허한 정치적 수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과 통합을 상호모순적이 아닌 상호보완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공간이 열린다.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는 촛불민심에 대한 배신행위다. 적폐청산은 그래서 문재인 정권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다. 적폐청산에 개혁과 통합의 성패가 달렸다. 과거와 미래, 개혁과 통합은 이분법적 개념이 아니다.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0위권임에도 이에 부합하는 삶의 행복감의 상실을 경험해야 하고, 매년 40조원에 가까운 국방예산을 쏟아 붓고도 자국의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전시 작전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이를 환수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 국가가 정상적일 수 없다. 이를 정상화하는 작업이 개혁이고 통합이다.

냉전적 사고에 기대어 아직도 냉전적 반공보수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세력, 지역주의의 망령에 유혹을 느끼는 세력도 분명 협치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강고한 기득권을 대표하고 있기에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전방위적 공격으로 집권 세력을 초토화할 자세가 되어있다. 그래서 더욱 자발적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탈리아의 혁명가요 정치가인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이 절실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문’ 인사의 총리 발탁, 비검찰 출신 인사의 민정수석 기용, 50대 86그룹의 대통령비서실장 기용 등의 인사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내각 구성이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지난 정권처럼 국민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통합은 물 건너간다. 개혁도 추진동력을 상실할 것이다.

임기 초반이 중요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켜켜이 쌓이고 묻혔던 의혹과 비리를 밝혀내는 작업은 미래의 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과 성찰의 전제 없이 통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치지향이 아닌 목적지향의 연대와 통합은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과 협치로 이어질 수 없다.

설득하고 섬기는 리더십

통합의 대전제는 적폐청산이다. 제도적·구조적 혁파를 통한 미래지향적 통합이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가 정권의 전가보도처럼 활용되고 국민을 이분법적으로 분열시킨 집단에 대한 광정 없이 통합은 애당초 운위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는 개혁과 통합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산업화 과정의 압축성장은 불가피하게 너무나 많은 어두운 그늘을 배태했다. 불균형성장 정책은 재벌의 비대화를 가져왔고 계층 간 격차를 심화시켰다. 중산층의 성장을 가져왔고 지금의 경제성장을 가져왔으나 특권은 블록화되고 기득권은 철옹성처럼 강고해졌다. 기득권은 보수라는 우산의 외피에 안주했다. 민주주의의 요체인 관용과 배려는 시민의식 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정의를 세우는 작업이 통합의 정치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은폐되고 축소되었던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수구적 야당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을 파트너로 인식하고 부단하게 설득하는 한편, 원칙과 정의에 입각한다면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통합과 협치는 결기와 강단도 요구한다.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이들을 민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하는 가운데 해답이 나올 수 있다. 이른바 보수언론의 공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겸손하게 설득하고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을 기본으로 하되, 민심의 소재를 두려워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에 충실하다면 개혁과 통합은 상호보완적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집권당의 권력으로 군소 야당을 흡수하는 건 통합이 아니다. 이는 구시대에 익숙한 정치문법이며 민의를 왜곡하는 인위적 정치공학에 다름 아니다.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작업, 그리고 이를 통해 수평적 연대를 의미하는 협치에 다가간다면 야당도 마냥 반대를 위한 반대에 머물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에 입각한 정치보다 더 큰 권력은 없다. 국회와 야당을 우회하는 포퓰리즘과 본질적 차이가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통합에 왕도는 없다.

-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정치학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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