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특별기획|새 대통령이 1년 내 해결해야 할 7대 난제] 7. 저성장시대의 경제개혁 방법론 

경제 왜곡하는 정치 언제까지 용납할 건가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
경제 전반을 재구성할 정도의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 혁신 절실…
사회안전망 확충, 교육 개혁, 정규직 과보호 완화, 규제 혁파도 병행해야


▎지난해 3월 한국무역협회는 경제 성장과 수출 확대를 기원하는 뜻에서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봄맞이 대청소를 실시했다. / 사진제공·뉴시스
대한민국은 위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경제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이 지지부진하고 가계부채 때문에 소비가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없다. 투자가 활발한 것도 아니다. 천만다행으로 조선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 조선과 해운을 비롯한 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 때문에 몸살을 앓았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다. 이제는 장기 저성장 경로로 접어들었는데 인구절벽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양극화는 경제·사회 여러 부문에서 다양한 형태로 심화되고, 소득계층과 지역·이념 간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국제환경의 변화는 또 다른 걱정을 낳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앞에 놓고 고민하다 보면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원인과 그것이 잉태하는 현상을 분리해보면 문제의 본질은 분명해진다. 어느 경제나 선진국에 근접할수록 성장률이 낮아진다. 이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경제발전에 관한 하나의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난세기 1970~80년대에 이루었던 고도성장을 다시는 이룰 수 없음이 자명하다. 대한민국 경제는 지금 장기 저성장 경로에 진입했고, 이제 더 낮은 저성장으로 수렴하는 중이다.

경제주체들에게 착시 일으키는 거품현상


▎수출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문제의 근저에는 저성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저성장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는 것이며, 가계부채가 쌓이고 소비와 투자가 부진한 것이다. 저성장은 근본적으로 경제가 성숙할수록 수익률이 높은 투자기회가 고갈되는 탓에 찾아오는 것이다. 이자율과 저축률이 낮아지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생계비는 경제의 성숙이나 저성장과는 반대방향으로 증가한다.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데서도 고비용화는 예외일 수 없다. 결국 출산율은 낮아지고 인구절벽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더욱 걱정인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더욱 낮아질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우리의 반면교사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부터 시작된 0%대 저성장이 25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왜 그와 같은 저성장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것일까? 한마디로 일본정치의 책임이 컸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자산시장의 거품을 경험했다. 1985년부터 5년 동안 니케이지수와 도시부동산가격지수가 세 배 증가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니케이지수와 도시부동산가격지수가 1985년의 수준으로 세 배 하락하였다.

거품이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착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기업은 과잉투자하게 되고, 가계는 능력 이상으로 소비를 증가시킨다. 담보대출이 관행인 금융기관들은 세 배 상승한 가격으로 평가한 부동산을 담보로 과잉대출을 실시했다. 그러다 거품이 꺼진 것이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과잉설비와 과잉대출에 따른 부실과 비효율이 기업과 금융부문을 덮치고, 그 결과 저성장의 늪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주지하다시피 ‘부자나라’다. 국민저축은 선진국 가운데 어느 나라보다 높다. 이 때문에 일본정치는 구조조정 없이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과잉설비와 과잉대출에 따른 기업과 금융의 부실을 들어 내는 장기관리정책, 곧 구조조정 대신 재정지출 확대와 저금리라는 단기적 총수요관리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미봉책의 결과는 장기불황이었다. 최근 일본은 구조조정에 나섰고, 잠재성장률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다. 일본을 예로 든 것은 최근 우리 경제가 일본과 같이 거품을 겪었다는 것도 아니고 일본과 같이 빠른 시일 안에 극적으로 0%대의 저성장으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예언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제도 혁신 없이 지금과 같은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총수요관리정책이라는 단기관리에 집착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위기 앞에서 혁신을 거부한 일본과 같이, 0%대의 저성장으로 수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확실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겪는 문제는 점점 심화하고 있으며, 이는 시스템의 실패 때문이지 어느 한 부분만의 잘못 탓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경제 시스템은 과거 고성장시대의 유산이다. 여기서 구구하게 이론과 현실을 논할 수는 없지만, 고성장시대(곧 저개발국가)에는 시스템이 대단히 효율적이 아니어도 높은 성장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그랬고, 최근의 예로는 중국을 보라. 중국의 경제 시스템을 대단히 효율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요인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고도성장을 이루지 않았는가? 개발도상국에서는 그만큼 기회가 많다. 그러나 일단 저성장(선진국)으로 수렴하고 나면 고성장시대의 비효율을 제거하지 않으면 성장이 멈추는 성장절벽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지금 그곳에 와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피력하건대 대한민국이 지금 서둘러야 할 것은 경제 시스템의 혁신이며 이를 위한 철저한 개혁이다. 여기서 시스템의 혁신이라 함은 경제 전반을 재구성할 정도의,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개혁을 의미한다. 이는 좌와 우의 문제도 아니고 어느 지역이나 기업집단,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실망스러웠던 점은 모든 후보자의 현실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것이었다. 경제 시스템을 혁신하겠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다는 점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을 실어 나르는 아시아나 항공기.
경제 시스템 혁신의 핵심에는 너무나 상식적이게도 규제 혁파와 노동·교육개혁, 그리고 사회안전망 확충이 있다. 먼저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지 않고 시스템 개혁을 운위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지난번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에서 봤던 것처럼 개혁은 필연적으로, 단기적일 것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고통과 실업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혁에서 피해를 보는 시장 참여자들이 재기할 수 있을 때까지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실업보험의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급여 기간을 늘리는 것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재교육 기회도 반드시 확대해야 한다.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필요하다면 목적을 분명히 한 증세도 고려해야 한다.

다음으로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우리 교육은 관치의 전형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교육까지 철저하게 정부가 관리하고 창의교육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자율이라는 것이 그다지 없다. 교육부는 막대한 예산을 배분하면서 지극히 관료적이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창의교육을 창달하기는커녕 모든 교육을 천편일률적으로 고착화했다.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교육비를 쓰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교육에 힘쓰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교육일 때 빛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교육부를 폐지함으로써 교육의 자율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교육부의 기능은 교육청과 대학교육협의회에 이관하고, 교육재정 또한 이들 기관에서 객관적이고도 확고한 원칙을 정해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교육현장의 무얼 안다고 학생 선발부터 연구, 교과서와 교육까지 일일이 간섭하나.

대학 구조조정 또한 뒤로 미룰 수 없다. 경쟁력이 없는 대학은 과감히 문을 닫거나 다른 특화된 교육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정 혁신을 통해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력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구조조정으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노동력이 새로운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효율적인 교육제도를 만들고 장기목표를 관리하는 역할에만 집중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노동시장은 다른 어떤 시장보다 경직돼있다. 특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는 점차 심화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개혁은 정규직의 과보호를 완화함으로써 비정규직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같은 노동을 하는데 임금과 근로조건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시장친화적이지도 않고 사회정의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노동 관련 법규를 개정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할 것을 정치권에 호소한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진다고 해서 고용의 안전성이 저하되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혁과제들의 포괄적·동시적 추구

사회안전망 확충, 교육·노동시장 개혁과 함께 불필요한 규제를 시급히 혁파해야 한다. 고도성장시대의 유산 가운데 아직도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이 규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개혁위원회라는 것을 유지하거나 새로 만들었으나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는 중앙에서 이미 혁파한 규제가 지방에서는 버젓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규제개혁위원회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우선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중앙과 지방이 긴밀히 협조해 실질적이고도 철저한 규제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밖에도 재정·금융·산업·기업·가계 등 여러 분야에서의 개혁과제는 산적해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어느 한 부문만 선별적으로 개혁하는 것은 큰 효과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사회안전망 확충 없이, 또 교육 개혁 없이 구조조정을 시도하거나 노동시장을 개혁한다면 그에 따른 고통에 비하여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규제 혁파 없이 교육 혁신을 이루기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개혁과제들이 포괄적으로 동시에 추구돼야만 한다.

모든 경제제도의 혁신은 정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치는 경제제도를 다룰 때 반드시 가장 타당한 선택을 하는 장치가 아님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경제문제의 상당부분은 오히려 정치가 없었다면 이미 해결되었을 것이다. 상부구조로서의 정치가 하부구조로서의 경제를 왜곡하는 현상을 언제까지 용납해야 하는가는 이 나라 국민이 선택해야 하는 몫이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됨으로써 새 정부가 탄생했다. 파당의 이해가 아닌 애국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진일보한 정치를 기대해본다.

-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

201706호 (2017.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