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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전문가 10인에게 물었다! 새 정부 대북정책의 예상 진로는? 

“대화는 찬성, 방향은 고민해야” 

박용한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park.yonghan@joongang.co.kr
공약선 ‘한반도 비핵화’ ‘남북관계 재정립과 북한변화’ 단계적 접근, 큰 틀에서 노무현 정부와 같은 맥락··· 과거와 달라진 정세에 ‘신중한 접근’ 주문도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4일 오전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 소집,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탄핵정국과 더욱 속도가 높아진 북핵 도발 때문에 안보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대통령권한대행 체제의 리더십 공백은 신임 대통령 취임으로 정상화됐다. 문재인 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등장이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대북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정권의 등장이 아니다.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대북정책의 연장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 초반과 같은 우호적인 남북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 기대가 나온다.

그러나 다가서는 미래를 전망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희망적 사고’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북한과 남북관계는 지난 10년 동안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핵무기 개발에 나섰던 북한은 이제 핵무기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었다. 핵무기를 미국 본토까지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미국의 대응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 소식통은 “올 초 노무현 정부의 전직 총리가 북한과 접촉했었다”며 “너무 조급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대북정책을 평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문 대통령은 41.1% 득표율로 당선됐다. 진보진영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 6.2%를 합해도 진보적 가치에 찬성한 국민은 47.3%에 그친다. 보수진영의 홍준표 후보는 24%, 유승민 후보가 6.8%를 득표했다. 안철수 후보가 득표한 21.4%의 표심은 중도로 해석된다.

따라서 50%가 넘는 국민의 견해도 새로운 정부가 끌어안아야 한다. 대통령선거로 정권을 교체했지만 ‘승자독식’으로 국정을 독점하지 말라는 국민의 집단적 지성을 반영해야 한다. 물론 문 대통령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다고 모든 정책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보정부 10년 동안 성공했던 경험과 부족했던 실책을 모두 면밀하게 검토할 것으로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보수정부가 9년 동안 추진했던 정책의 공과(功過)도 오직 국익의 관점에서 모두 반영할 것이라 믿는다. 대선 기간 발표된 문 대통령의 공약을 중심으로 대북정책을 평가하고 전문가들의 견해를 물어 남북관계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대화 선호했던 노무현 정부 기조 이어갈 듯


▎핵무기 개발에 나섰던 북한은 이제 핵무기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문 대통령의 공약을 살펴보면 ‘비핵화와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을 대북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구체적 이행방법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관계 재정립과 북한 변화’로 설명된다. 북핵 해법에서 이전 정부와 다른 접근법을 보였다. 이전 정부에서 북핵은 완전히 폐기돼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핵개발을 포기한다는 약속이 없다면 대화도 없다는 완고한 입장을 고수했다. 대화도 일종의 보상이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폐기한다는 약속부터 하고 대화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공약에서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핵 동결 수준을 약속하거나 의제로 삼는 것만으로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 대화에 나섰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대화는 보상이 될 수 없다”며 대화를 적극 추진하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했던 지난 5월 11일 언론 기고문에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도 인용해 “협상이란 원래 믿기 어려운 상대와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공약에서 6자회담도 거론하며 “다양한 양자·다자회담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화를 선호했던 과거 진보정부의 기조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입장도 보였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여러 차례 개성공단 재가동을 힘주어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을 이어가자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결정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개성공단 자금이 이용된다는 근거였다. 그러나 개성공단 조업중단을 두고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경분리 원칙을 세웠는데 정치적 이유로 경제협력을 중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북한도 아닌 한국이 먼저 나서 교류협력의 원칙을 훼손해 앞으로의 남북관계에서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물론 정부정책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북제재에 힘을 모으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대선 기간 후보자 토론에서도 개성공단 재개를 두고 논란이 있었던 만큼 향후 정책 추진에서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개성공단 재개는 시작일 뿐이다. 남북한의 경제통합을 우선 추진한다는 전략도 공약에 포함했다. 북핵 해결에 따라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내륙의 중부 지역에서 한반도 신(新) 경제벨트를 구축한다는 방안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서해를 공동어로구역지대로 만든다는 정책과 맥락을 같이한다. 북방한계선(NLL) 분쟁을 종식하고 경제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개념이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단됐다. 더구나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나타난 북한의 도발은 위기국면을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올렸다. 이 때문에 보수진영의 대통령 후보들은 개성공단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남북한 교류협력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소야대의 정치구도에서 보수진영의 입장 반영과 정세변화가 있어야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정책 구상에 관여했던 전문가는 익명을 요구하며 “이제는 여러 가지 여건이 변했기 때문에 그때와 같은 방법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노무현 대통령과 같아서는 현상을 타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존과 같은 접근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경우 근본적 관계발전과 북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에서 판단하기는 성급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핵심 참모진 구성을 통해 앞으로의 정책추진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신중파’보다 ‘대화우선파’ 선명해질 듯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로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잠정 중단한 지 1년이 된 2월 10일, 한국 측 기업 관계자와 차량들이 오가던 남북출입사무소 차량 출입구는 차단벽으로 막혀 있다.
문 대통령의 대선 자문단에 포함됐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북정책의 입장에 따라 자문단이 두 부류로 갈렸다고 한다. 그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신중하게 대북관계를 풀어가자는 입장과, 일단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서 또 다른 대화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으로 나뉘었다”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의 입장 차이처럼 문재인 정부 내부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서로 견제와 균형을 맞춰 더욱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두 가지 노선을 놓고 고민한다는 내부 기류가 있지만 결국 대화를 선호하는 입장으로 기운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아무래도 ‘신중파’보다 ‘대화우선파’의 주장이 더욱 선명해 대통령을 설득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여기에 서훈 전 국정원 차장도 포함됐다. 그는 문 대통령 취임 직후 국가정보원장으로 지명돼 국회 인준 절차를 앞두고 있다. ‘대화우선파’에 힘이 실렸다는 전망이 현실화됐다는 말이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실무 책임자였다. 김정일을 가장 많이 만난 한국의 인사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도 그런 점을 고려해 인선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다만 서훈 후보자는 남북대화에 나설 계획을 말하면서도 아직 시기상조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서훈 국정원장 지명을 통해 대화를 선호한 정책을 암시했고, 다른 방침도 보여줬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전히 남북대화에서 통일부가 아닌 국정원을 주무부처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반복하면서 대공수사와 방첩업무를 총괄하는 국정원이 남북대화에 나서는 것이 적절하냐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남북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통일외교학부)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남 교수는 “북한문제는 상대가 있는 현안”이라며 “문제를 해결하면서 만나지 않고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접촉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화의 시점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영호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북한이 평화공세로 나올 수 있다”며 “당장 6·15 공동선언 기념식도 다가와 기회가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미 간 1.5트랙 대화에 나섰던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국장은 5월 13일 평양으로 돌아가면서 “문재인 정부를 지켜보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남북대화 가능성에 긍정적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차두현 아산정책 연구원 겸임연구위원은 “북한의 대화 제의는 수용할 필요가 있고, 오는 6월과 8월 남북한 공동 행사를 제의할 경우 대화에 나서도 괜찮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무리하게 비선을 가동할 경우 나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초반에 무리하게 나설 필요는 없다”며 신중한 자세도 요구했다.

남북대화에 나서기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북전략을 완성하지 못했고, 주변국과 협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국제지역학과)는 “당장 남북대화를 예상하기 어렵다”며 “대북정책의 목표와 최종상태를 확립한 뒤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욱 교수도 “대화 여건을 구비해 놓고 평양과 접촉해도 늦지 않다”며 먼저 준비에 나서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어떤 정부 들어서도 북한은 큰 상관없어”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북한이 남북대화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충고도 나왔다. 대화라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하는 방향과 일치하는지 먼저 따져보자는 말이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서는 이유로 한국보다 미국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차두현 박사는 “북한의 협상 의도를 보면 결국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것”이라며 “한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북한으로서는 크게 상관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평화공세를 강화해 남북대화에 나설 수도 있지만, 그 끝에는 미국이 있다는 말이다. 한국은 북·미대화를 이끌어내는 지렛대라는 분석이다.

최선희 국장이 문 대통령을 지켜보겠다면서도 “여건이 된다면 미국과 대화할 수 있다”며 한미 간 차이를 부각시켰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차두현 박사는 “북한이 한국과 대화하는 것은 핵실험 이후 예상되는 강압정책, 선제 타격 논의에서 한국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북한의 전략을 전망했다. 북한은 압박수단의 효과를 낮추거나 막을 때 한국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북한의 전략 때문에 신중하게 대화에 나서라는 조언이다. 박원곤 교수는 “최소한 핵 동결 수준을 확보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핵 동결 논의를 위한 논의(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부족하며 아직은 대화보다 압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두현 박사는 “비핵화와 관련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며 같은 입장을 보였지만 “단계적 비핵화 논의도 가능하며 일괄타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다소 유연한 전략도 가능하다고 봤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단계적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남북한 대화의 쟁점은 핵문제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문제도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교수는 “성급하게 대화에 나서 재개를 결정할 경우 인질협상에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며 “국제적으로도 대북제재 조치가 계속되기 때문에 조건 없는 재개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대북제재와 비핵화를 병행하는 것이 맞다”며 “개성공단 재개는 대북제재 문제와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 유엔의 반대가 있고, 중국이 대북 제재 참여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라는 충고다. 김 교수는 “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할 수 없다”며 “임금 지급 방식을 바꿔야 하며, 북한경제와 연계해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욱 교수는 “대선 토론에서 비핵화협상 재개 등 전제조건이 추가돼야 재가동하는 것으로 공약이 수정됐다”며 “개성공단 재개에 바로 나설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남북대화의 여건은 그다지 밝지 않다. 대북정책에 나서는 전략도 극명히 갈라졌다. 이종석 전 장관은 앞선 기고문에서 “북핵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6자회담 재개 수준과 유연하게 연동하고 선순환 구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대화에 나서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완전히 반대되는 견해도 나왔다. 서재진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의 대화는 일시적일 뿐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당초 북한이 10·4선언을 했던 것도 이명박 정부에서 지켜지지 않을 것을 예상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서 원장은 “북한은 한국과 진정한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며 “한국이 대화를 계속 요구하면 극단적 도발로 대화를 차단했고, 천안함 사건이 그 결과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정부에서 남북대화를 시작하더라도 북한은 원하는 것만 가져가고 대화가 계속되는 걸 차단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압박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목표는 이상적이지만 과정은 현실적으로”


▎문재인 당시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문재인과 함께하는 더불어국방안보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완성이 임박했고 장거리미사일 실전배치도 곧 이뤄져 대화할 시간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군 당국자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수준은 여전히 부족하며, 최소한 5~10년 정도가 지나야 엔진과 재진입 기술을 모두 갖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재진입 관측장비로 최종적인 평가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평가에 나선 적도 없다”고 했다. 따라서 북한과 대화를 통해 북핵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고 해석된다.

대북정책에 관한 전문가들의 입장은 대화 재개와 압박 지속으로 갈렸지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신중한 접근과 다자간 협력을 통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며 “당분간 핵문제에 집중하고 미·중 관계와 사드 및 북핵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진용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중국이 미국과 국력을 견주는 ‘G2’ 강대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북핵문제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중국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박원곤 교수는 “미국과 공조가 필요하며 조급한 남북대화는 대외관계와 대북관계 모두에서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5월 12일(미국 현지시각)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한국의 새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는 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미국과 긴밀하게 협조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성욱 교수는 “남북한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며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영호 교수도 “조급해하지 말고 국내정치적으로 합의 가능한 수준,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에서 대화해야 지속가능한 대화 및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며 “목표는 이상적이지만 과정은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찾으면서도 현실주의적 국제정세를 충분히 이해할 때 가시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어 노무현 정부 시기와 달라진 남북관계, 국제정치적으로 변화된 정세를 반영하라는 주문이다. 김병연 교수는 “이번 정부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치구도는 이제 진보와 보수가 정권을 교대하고 있다.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을 만들라는 요구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핵화 진전이 있을 때 대화를 시작해야 하며, 지금은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특히 소통을 중시하는 정책행보에 기대가 모아진다. 다양한 견해를 수용하고 편견 없이 원점에서 검토하며 치열한 토론 끝에 정책을 결정하기를 기대한다. 남북대화의 결과는 뻔하니 북한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국민도 많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국민도 있다.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대북정책을 만들고 대화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 박용한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park.yonghan@joongang.co.kr

[박스기사] 역대 정부 대북정책의 행로(行路) -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큰 변화


▎2008년 6월 16일 6·15공동선언발표 8돌 기념 민족통일대회가 금강산에서 진행된 가운데 행사에 참가한 남측 대표들이 버스에 탑승한 북측 대표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내외 정세에 따라 변화를 보여왔다. 분단체제의 근본적 속성이고 운명이었다. 6·25전쟁으로 상호 적대성이 극도로 심화해 갈등과 긴장을 피할 수 없었다. 분단된 한반도에는 필연적으로 대화와 교류도 공존했다. 이런 역설적 구조 때문에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통일과 전쟁, 그리고 협력과 대립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분단 초기에는 냉전의 구조 속에서 갈등과 대결 양상이 심화했다. 그러나 냉전의 대립이 완화하면서 남북한 긴장의 수준도 낮춰졌다. 1970년대 세계적 데탕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해 남북대화가 이어졌고 ‘7·4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물론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1980년대는 남북관계 개선보다 남북 모두 권력기반 구축과 내부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체제 통합보다 체제 경쟁구도가 더욱 굳어졌기 때문에 통일을 주제로 대화에 나서기도 어려웠다.

1990년대로 들어서며 북한은 체제 붕괴의 위기에 직면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북한에도 현실로 닥쳐왔다. 경제적 위기가 심화하고 대내외적 혼란과 위기가 더욱 커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오히려 남북대화에 나섰다. 1991년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해 교류협력에 나섰다. 한국은 북한에 식량을 지원했고, 1994년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불가침을 보장받아 체제를 지속하는 것이 본질적 목적이었다. 오히려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북핵 위기가 시작된 배경이다.

‘남북기본합의서’(91년) 채택 후 핵개발 시작

2000년대 이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남북관계에 큰 폭의 변화가 생겼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정상회담의 의지를 피력했다. 구체적으로 특사 교환 등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적극적 의지는 최초의 정상회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켰다고 평가받았다. 정상회담의 정례화 추진을 비롯해 실무회담을 통한 구체적 이행 등 공동번영과 협력의 확대를 모색했다. 2004년 남북장성급회담을 개최해 ‘서해상 충돌방지’ ‘선전활동 중지’ 등 화해협력을 뒷받침하는 문제를 협의·합의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경제·사회·문화 교류를 위한 기반 조성을 지원했다.

그러나 대북송금문제 등 제도와 절차의 문제가 지적됐다.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추진했지만 임기 내에 2차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지 못했다. 서해상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고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정책을 계승하면서도 북한의 핵무기 폐기 등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2007년 ‘2·13 합의’ 이행과 이후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됐다. 장관급회담에서도 진전이 있어 남북관계 발전이 활발하게 추진됐다. 이런 가운데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을 앞두고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 쉽게 점쳐지던 상황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결국면의 남북관계에 대화를 통한 공동번영의 계기를 마련한 성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북한의 2006년 첫 핵무기 실험과 이후 반복된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점, 남북한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국내적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 남북공동선언’은 합의문으로 끝났다.

그러나 2008년 보수정부가 다시 들어선 이후 대북정책과 통일정책 논의에 다소 변화가 보이기도 했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한국 국민이 사망해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고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각종 도발과 핵무기 실험이 수차례 이어진 파행적 결과도 나왔다. 교류협력의 상징과도 같았던 개성공단은 남북한의 대내외 정세 여건에 따라 조업중단이 반복됐다. 이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교류협력보다 대북제재와 국제적 압박을 강화하는 정책에 방점을 뒀다. 엄격한 상호주의와 북한 붕괴를 상정한 대북정책과 통일정책 논의로 이어졌다.

이제 한국에 다시 진보정부가 들어서지만, 이런 환경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이유다.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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