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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19대 대선 여론조사는 쪽집게? 

1, 2위 간 지지율 격차 컸고, 돌출 변수 적었다 

신창운 덕성여대 사회학과 초빙교수
여론조사 중 대통령 선거가 난이도 가장 낮아, ‘샤이 유권자’·첨예한 이슈·극심한 네거티브 등 많지 않아… 지지율 합 다른 여론조사와 최종 득표율 비교는 난센스, 유·무선 결합의 최적비율 찾기가 관건

▎제19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종료된 5월 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KBS·MBC·SBS 방송 3사 개표방송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출구조사 결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1.4%의 지지율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 무용지물, 신뢰성 다시 도마에”, “또 헛다리 여론조사…예측결과 달라 무용론 제기”, “여론조사 결과 별들에게 물어봐야 하나”, “여론조사 또 헛발질…왜?”

어디서 많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늘 등장하는 여론조사 관련 기사 제목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가? 이번 19대 대선 이후엔 찾아볼 수 없다. 여론조사의 고질적 문제가 사라졌는가? 아니면 지난해 총선 이후 여론조사 분야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는가?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에선 ‘여심위’로 표기) 등록을 통해 여론조사에 대한 투명성과 통제가 강화되었지만, 방법적 한계는 여전하다. 할당추출의 문제점에다 응답률은 여전히 낮고, 유·무선 결합 비율도 오리무중이다.

선거를 앞두고도 걱정과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4월 총선 여론조사 실패 이후엔 험한 말들이 오갔다. “여론조사=전국민적 오락거리”, “이대로면 내년 대선 여론조사는 쓰레기”라고 말이다. 6월 영국 브렉시트, 11월 미국 대선 예측 실패가 이어지면서 “어떻게 여론조사 결과를 ‘여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극언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올 초엔 프랑스 유력 언론사 편집국장이 대선 여론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자 “우리도 이런 언론사 하나쯤 나와야지”라는 비아냥 보도까지 더해졌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선거 중에도 차고 넘쳤다. 어떤 여론조사든 1위 후보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2위 이하 후보 입장에선 문제점투성이다. 왜곡이나 조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조사기관 두 곳을 없애버리겠다고 공언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투표를 하루 앞둔 8일 “민심의 바다가 여론조사를 뒤집을 것”이라며 지지율 수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때 1위를 위협받았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도 마찬가지였다. 저연령층이 많이 사용하는 무선전화(휴대전화) 비율이 높으면 유리하단 분석이 나오자 갑자기 무선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거가 미흡했다. 자신들의 주장이 무용할 뿐 아니라 허망하다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다수 여론조사가 큰 오차 없이 정확한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19대 대선 여론조사 “정확했다”


특정 여론조사의 (절대적) 정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대개 두 가지다. 가장 일반적인 건 여론조사가 당선자, 즉 1위를 제대로 맞혔는가다. 박빙 승부가 펼쳐질 경우 당선자 맞추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번처럼 2위와의 지지율 격차가 두 자리 수를 넘길 경우 쉽게 당선자를 맞힐 수 있다. 또 다른 정확성 판단 기준은 1위 후보 지지율이 오차범위 이내에서 최종 득표율을 포함하고 있는가다. 지지율 격차가 미세하든 큰 차이를 보이든 상관없이 특정 여론조사의 정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평가 대상은 시기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D-7일, 즉 공표금지를 앞두고 실시된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동안의 조사를 통해 투표 종료와 함께 발표된 최종 예측결과가 그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공표금지 이전 마지막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최종 득표율과 비교 판단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다. 이 시기 여론조사는 판세 파악을 위한 것이지 예측 용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여론조사 정확성 평가가 이때 실시된 전화조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져왔다는 점을 감안해 평가 대상에 포함했다.

여심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번 19대 대선의 경우 올 초부터 공표금지 이전에 실시된 여론조사가 400여 개에 이른다. 이 중에서 중앙일보 5월 4일자 1면에 게재된 6개 기관 조사를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더 많은 조사가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여러 조사의 상대적 정확성 평가가 이 글의 목적이 아닌 점을 양해하기 바란다) 1~2위 후보 지지율 격차가 두 자릿수를 넘었기 때문에 당선자 예측 여부에선 틀린 여론조사가 없다. 두 번째 정확성 판단 기준, 즉 1위 문 후보 지지율이 각 조사의 오차범위 이내에서 최종 득표율(41.1%)을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 1주일 전 실시된 여론조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표금지 기간 동안의 조사를 통해 투표 종료와 함께 최종 예측치를 발표한 기관은 한국갤럽, 리얼미터, 리서치뷰 세 곳이었다. 모두 1위 후보를 정확히 예측했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가 발표한 1위 문 후보 지지율은 오차범위 이내에서 최종 득표율을 포함했다. 리서치뷰가 예측한 문 후보 지지율은 최종 득표율과 비교해 오차범위를 벗어났다.

사전 투표율(26.1%)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평소 정확도를 자랑하는 방송 3사 출구조사마저 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었다. 그 와중에 전화 여론조사 예측이 이만한 성과를 거둔 건 고무적이다. 막대한 조사비용 외에 사전 투표자의 지역·성·연령별 자료를 미리 받아 보정작업을 거쳤고, 20%에 달하는 응답 거절자를 육안으로 파악해 ‘샤이’ 유권자의 숨겨진 표심까지 추정 반영한 출구조사의 성과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물론 이번 대선은 여론조사 입장에서 수월한 선거였다. 3대 선거 중 대통령 선거 예측이 가장 난이도가 낮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17대(이명박-정동영 후보) 때와 마찬가지로 1~2위 지지율 격차가 제법 큰 편이었다. 보궐선거로 급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첨예한 이슈와 네거티브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추정이 어려웠던 ‘샤이’ 유권자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며, 막판 후보 단일화와 같은 돌출 변수도 없었다. 운이 따랐던 셈이다.

방법론적으로도 기대할 게 많았다. 단일 선거구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총선처럼 253개 지역구를 조사 예측할 필요나 부담이 없었다. 매일 단위의 수십 차례 조사를 통해 추세를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안심 가상번호 없이도 얼마든지 유·무선 조사가 가능했다. 좀 더 나은 지지율 수치를 뽑아낼 수도 있었다. 집단지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총합(Aggregation)’ 방식이 그것이다. 수많은 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 평균 혹은 가중치를 고려한 합계 지지율이 개별 여론조사의 그것보다 나았다는 증거가 수두룩하다.

여론조사의 정확성 제고에 있어서 조사방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제도적·환경적 측면의 지원 혹은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사방법의 개선은 물론 그 효과가 온전히 나타날 수 없다. 선거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D-7일 공표금지 기간 폐지 혹은 축소해야


▎제19대 대통령 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5월 9일 오후 각 당 대표의 표정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추미애(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문재인 대선 후보의 압도적인 1위 발표에 박수를 보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대행,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당대표 권한대행, 심상정 정의당 대표이자 대선 후보. / 사진제공·뉴시스
우선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을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여론조사의 정확성 논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어떤 방식을 사용했든 선거 전 여론조사(출구조사 제외)는 공표 가능한 5월 2일, 즉 D-7일까지 실시된 조사결과에 불과하다. 조사 시점의 지지율, 다시 말해 당시의 판세를 보여줄 뿐이다. 투표일에 확인할 수 있는 최종 득표율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거 전 여론조사와 최종 득표율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만약 둘이 비슷할 경우 칭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상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여론조사와 최종 득표율 비교가 곤란하다고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후보들의 지지율 합이 다르다. 여론조사에선 80~90%다. 나머지 10~20%는 ‘모름·무응답(무당파)’. 이들의 최종적 선택에 따라 승자가 달라지지만, 여론조사에선 알 길이 없다. 모르겠다거나 말할 수 없다는 유권자를 윽박질러 지지 후보를 밝히라고 강요할 수 없다. 이에 비해 최종 득표율 총합은 100%다. 가령 1~2위 후보 지지율이 여론조사에서 40% 대 35%였을 경우, 최종 득표율이 어떻게 나와야 정확한가. 40% 대 35%인가, 아니면 50% 대 45%인가.

무당파를 통계적으로 처리하더라도 선거 1주일 전 조사결과로 최종 득표율을 맞히기는 쉽지 않다. 막판 돌출 변수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때의 정몽준 후보 지지 철회, 2004년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 등은 선거를 며칠 앞두고 발생했다. 이 경우 그 이전에 실시된 여론조사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후보를 응원하는 편지를 들고 재등장한 것이 투표 3일 전이었다. 2012년 총선 막판 최대 변수였던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 역시 투표를 1주일 앞둔 시점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이전에 실시된 여론조사가 이를 반영할 수 없었다.

여론조사의 정확성 판단은 최종 득표율이란 정답(진실)이 제공돼야 가능하다. 최종 득표율은 투표일, 즉 5월 9일의 정답이다. 2일 실시된 여론조사의 정답이 아니며, 그날의 정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후보의 최종 득표율이 투표 1주일 전에도 그랬을 것이란 주장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득표율이 선거 이전에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의 정답인 양 비교 평가하는 오류가 흔하다. 심지어 선거 한 달 전 여론조사가 최종 득표율을 족집게처럼 맞혔다는 기사가 마치 특종처럼 보도되는 경우도 있다.

선거 직후에 실시된 몇몇 조사기관의 투표자 조사에 의하면, 투표 1주일을 앞두고도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유권자가 절반이나 된다. 가령, 총선의 경우 여론조사 응답자 절반 가량이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다.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 중 또 다른 절반은 여론조사 시점에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거칠게 말하면, 전체 유권자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25%만이 응답자격을 갖춘 셈이다. 여론조사 응답자 4분의 3은 투표소에 갈 생각이 없거나 가더라도 누굴 찍을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다. 그런 여론조사로 어떻게 최종 득표율을 맞출 수 있단 말인가.

여론조사란 조사 시점의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투표일 이전에 실시된 선거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평가하기 위해선 현행 선거법에 나와 있는 공표 금지기간을 없애거나 D-2 혹은 D-1일까지로 크게 단축해야 한다. 그래야 여론조사의 예측 정확성을 말할 수 있다. 정확성 제고 기법이나 방안이 나올 수 있고, 이에 대한 평가도 가능하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더라도 그 효과를 검증하기가 어렵다. 정확성 역시 향상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전화 여론조사를 통한 선거 예측이 권장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때문에 전화조사를 통한 선거 예측이 거의 불가능했다. 공표금지 기간에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는 한 말이다. 선거 막판 6일 동안의 지지율 변화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예측에 나서는 건 위험하면서도 무모한 일이다.

유·무선 결합 최적 비율을 찾아라


D-7일 이전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 예측에 나설 경우 방법론적 대안에 대한 다양하고도 심층적 연구와 경험이 필요하다. 연령대별 예상 투표율은 물론 응답 거절자 및 유보층에 대한 엄밀한 판단이 필요하다. 응답률 제고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유·무선 결합 비율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검증도 필요하다. 예측 경험이 있어야 조사방법에 대한 발전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전화조사를 통한 최종 예측은 조사결과 공표금지가 폐지 혹은 단축되더라도 필요하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최종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해 놓고도 이를 숨기는 유권자, 실제로 미결정 상태에 있는 유권자, 심지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거짓으로 응답하는 유권자 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여론조사에선 연령대별 상이한 투표율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석이 추가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한국갤럽을 비롯한 조사기관 세 곳이 전화조사를 통해 예측자료를 내놓은 건 칭찬할 만하다. 과감한 예측에 나선 건 어떤 비판이나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선행돼야 한다. 실패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유·무선 결합 비율은 최우선 연구과제다. 이번에도 조사방법에 따른 후보 간 유·불리 논쟁이 있었다. 무선조사가 많으면 문재인 후보, 유선조사가 많으면 안철수 후보가 유리하다는 주장이었다. 당분간 결합 비율에 따른 영향력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무선에선 진보 성향, 유선에선 보수 성향의 응답자가 더 포함되는 것이 사실이다. 가중치 보정을 하더라도 말이다. 동일 연령 내에서 직업이 상이한 경우, 가령 30대 여성 중 직장인과 가정주부의 성향이 다른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무선 비중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쪽이 우세한 경우가 적지 않다. 6년째 계속하고 있는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은 출발 때부터 무선조사 위주였지만, 보수 성향 조사결과를 산출하는 걸로 오해받고 있다. 무선 비율 증가만큼 진보가 비례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도 유선+무선조사 대 유선조사 결과에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보고된 적이 있다.

유선조사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무선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건 너무 단순하다. 물론 지금까지 모든 전화조사의 문제점, 가령 포함오차(Coverage Error)나 표집오차(Sampling Error) 등은 유선조사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선과 지방선거 때의 성공 사례도 적지 않다. 문제는 대안으로 제시된 무선조사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검증된 적이 있느냐는 거다. RDD(Random Digit Dialing)를 통해 대표성 확보가 가능하겠지만, 유선 못지않게 응답 거절률이 높고 대체가 쉽게 이루어지는 등 오차 발생 소지가 많다. 결국 유선도 유선 나름이고 무선도 무선 나름이다. 각각을 제대로 하는 게 우선이란 생각이다. 적어도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유·무선 결합의 최적 비율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연구결과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유선조사에 무선을 결합하기 시작한 건 2010년 지방선거 예측 실패 이후다. 처음엔 유선 대 무선 비율이 절반 정도였다. 실제 투표 결과와 가장 근접한 최적 비율을 찾기 위한 시도 혹은 실험이 축적돼야 한다. 조사의 편의성 및 효율성 측면에선 저연령층은 무선, 고연령층은 유선의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 과거 지방선거 때의 필자 경험으론 도시 지역은 무선, 농촌 지역은 유선 비율이 높아야 실제 투표 결과에 좀 더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폰 조사가 많으면 문재인, 집 전화 많이 하면 안철수 유리’. 중앙일보 4월 11일자 6면 기사 제목이다. 알다시피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7개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두 후보 지지율은 모두 박빙이다. 문 후보 혹은 안 후보가 우세하다거나 앞섰다는 표현은 잘 못이다. 심지어 한겨레신문 - 리서치 플러스 지지율도 비록 수치가 같지만 같은 것이 아니라 박빙이라고 써야 한다. 만약 오차범위가 3%포인트라면 안 후보와 문 후보 모두 34.7% ~ 40.7% 사이의 지지율을 얻을 가능성이 95%라는 얘기다. 37.7%는 이번 조사에 한해 우연히 그렇게 나온 것에 불과하다. (문재인 안철수 지지율과 유·무선전화 배합 비율 그래픽 참조 )


조사결과 수치 소수점 이하 사사오입해야

이와 관련해 조사결과 수치 표기에 있어서 소수점 이하는 사사오입 시행이 필요하다. 여론조사 결과를 표기할 때 모든 언론사와 조사기관이 소수점 이하 한 자리까지 관행적으로 적고 있다.(한국갤럽만 예 외) 가령 “A 정당의 지지도가 19.8%에서 27.9%로 높아졌다.”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은 두 시점의 정당 지지도 수치를 정확히 기억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그렇지 않다.

여론조사 수치 표기에서 사사오입을 하자는 가장 큰 이유는 조사결과의 미세한 차이에 대한 오해나 집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오차범위를 가지고 있는 추정치를 토대로 0.1% 포인트 앞섰다는 주장을 막자는 취지다. A정당 22.3%, B정당 21.9%라는 자료를 토대로 ‘B정당, A정당에 1%포인트 차이로 맹추격’이란 제목이 뽑힌 경우를 봤다. 굳이 계산하면 0.4%포인트 차이에 불과한데, A정당이 2위이고 B정당은 3위라고 생각한다. 사사오입하면 둘 다 22%이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 앞섰다고 볼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기억력 때문이다. 19.8%와 27.9%라는 수치를 정확히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27.9%의 경우 나중에 다시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27%, 또 어떤 사람은 28% 혹은 29%라고 한다. 심지어 “30% 가까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냥 28%라고 하면 기억하기도 좋고 불필요한 혼선을 막을 수 있다. 신뢰구간 계산도 수월하다. 만약 1500명을 조사했다면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오차가 ±2.5% 포인트다. 소수점 이하 첫째 자리가 있을 경우 신뢰구간 계산 때문에 계산기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잘못된 인식이나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 20%보다 19.8%가 더 정확한 여론일까.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표본을 통해 얻어진 여론조사 결과는 어떤 수치를 알아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여론조사는 오차를 포함하는 ‘확률적 결과(지식)’다. 19.8%±2.5%, 즉 A정당의 지지도가 17.3%에서 22.3% 사이에 있기 때문에 19.8%와 20% 중 어느 숫자가 더 정확한지 알 수 없다.

언론 입장에서도 수월하다. 당장 제목을 뽑을 때 편집자에 따라 발생하는 혼란을 줄일 수 있다. 27.9%를 제목으로 표시하는 경우, 어떤 편집자는 27% 또 어떤 편집자는 28%로 뽑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또 기사 내에 수치 표기가 많을 경우 원고 분량을 줄일 수 있다. 그래프 작성 역시 수월하다. 여론조사가 발전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사사오입이 관행화되어 있다.

여론조사 불신, 대부분 언론이 초래


▎출구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문재인 후보가 5월 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 도착해 취재진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이번 대선 여론조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론조사는 여전히 위기에 처해 있다. 대선에서의 정확성이 지방선거와 총선 여론조사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각성과 성찰이 요구된다. 특히 언론과 여심위가 그렇다. 언론은 조사결과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그럼에도 경마식 보도 등 일회성 혹은 흥미 위주의 보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본연의 ‘정밀 저널리즘’을 회피·무시하거나 심지어 발을 빼기도 한다. 여론조사에 기반한 분석에 선뜻 나서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가의 해석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조사결과 보도로 인한 손익 계산에도 무척 예민하다.

여론조사 ‘따라하기(Herding)’도 노골적이다. 지난해 4월 총선 예측이 틀리자 모든 언론이 예외 없이 여론조사 때리기에 나섰다. 여론조사 결과에 그토록 목말라 해놓고 말이다. 총선 예측이 늘 쉽지 않았다는 특수성과 역사에 주목하는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10월 미국 대선 때는 트럼프 대신 클린턴 당선을 한 목소리로 전망했다. 미국 언론 보도를 따라 하기 때문이었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은 대부분 언론이 초래한 것이다. 총선 여론조사 및 보도 문제에 공감한 언론 관련 5개 단체가 합동으로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을 제정했지만, 과연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기자가 있을까 할 정도로 걱정스러운 보도가 수두룩했다. 여심위가 언론의 잘못된 여론조사 보도에 대해서도 과태료를 부과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한국언론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선거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기본적 요건 미비, 기사 작성의 문제, 편향적 보도의 문제, 경마식 보도 경향. 그러나 보다 근원적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언론이 실시하는 여론조사 자체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여론조사가 언론의 흥미와 요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상황, 즉 언론과 여론조사의 ‘태생적 불화’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느낌이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금도 미국 갤럽의 편집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프랭크 뉴포트(Frank Newport)에 의하면, 언론 종사자를 교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위원으로 있는 여론조사 국가위원회에서 기자와 언론인을 대상으로 세미나와 일일 강좌를 열어 여론조사 방법과 보도에 대해 설명하고 논의한 적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그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여론조사 방법론과 해석에 대해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언론은 여론조사의 정확성 및 미래와 관련해 가장 적대적 이해관계자임에 틀림없다.

여심위 설치는 조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으로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꾸준히 제기했던 주문사항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 직전 처음 만들어진 이래 2016년 총선,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조사결과에 대한 투명성 확보, 조사기관에 대한 적절한 통제, 등록 자료에 기반한 연구 및 분석 활성화 등 여론조사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이번 대선의 경우 여심위에선 모두 60건의 심의가 이루어졌다. 이 중 44건은 자체 모니터링에 의한 것이었고, 나머지 16건은 외부 신고에 의한 것이었다. 심의 결과 1건은 검찰 고발, 4건에 대해선 과태료가 부과됐고, 나머지는 경고(25건)와 준수 촉구(30건)로 결론이 나왔다. 고발 1건은 ‘여론조사결과 왜곡·조작’ 때문이었고, 과태료 부과 4건은 ‘공표·보도 전 홈페이지 미등록’ 사항이었다. 나름의 통제와 피드백 기능을 충실히 한 셈이다.

그러나 여심위 역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특히 조사기관과 연구자들은 여론조사에 기반한 다양한 연구 및 분석 결과를 인정·포용할 뿐 아니라 지원·장려하는 분위기 조성을 요청하고 있다. 여론조사 분야에 한해 ‘네거티브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책이나 법률 등으로 특별히 금지하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것을 할 수 있게끔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규제든 최소화가 최선이며, 그것은 여론조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다.

- 신창운 덕성여대 사회학과 초빙교수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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