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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종교 이야기(14)] ‘역사적 예수’를 찾아서 

말과 행적은 대부분 ‘가짜’, 예수는 마술사였다? 

김환영 중앙일보 심의실장 kim.whanyung@joongang.co.kr
연구대상은 한 인간으로 33년 살았던 ‘사람 예수’… 정통파들이 신앙 강화하는 계기 됐다는 분석도

▎존 에버레트 밀레이의 작품 <부모 집에 있는 그리스도>. 그림 한가운데 못에 찔려 우는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볼에 입을 맞추는 이는 마리아, 아이의 손을 살피는 이는 요셉이다.
‘하늘(天)을 인격화한 것이 하느님, 하느님을 추상화한 것이 하늘이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쉰 살에 지천명(知天命)했다. 예수는 30~33세에 공생활(公生活)을 했으니 30세 이전에 하느님의 뜻을 알았을 것이다.

두 분 다 아마도 자신과 하늘·하느님이 뭔가 특별하고도 긴밀한 관계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두 분 모두 역사 속 인물이니 지금 남아 있는 두 분의 말과 행적을 바탕으로 ‘역사적 예수’ ‘역사적 공자’로 재구성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교(敎)가 최종적이라면, ‘회의’라는 역사학적 방법을 동원한 역사적 예수·공자 찾기의 성과는 항상 잠정적이다. 두 입장 사이의 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온 하느님이다. 그들이 믿음을 요약한 텍스트 중에는 가톨릭·장로회·루터회·감리회·성공회 등 서방교회에서 중시하는 사도신경이 있다. 늦어도 4세기 말에 존재했던 사도신경에서 예수와 관련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돼 나시고,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다시 오시리라 믿나이다.”

사실 믿기 힘든 ‘주장’이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그리스도교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55년께~240년께)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아들이 죽었다. 이를 어떻게 해서라도 믿어야 한다.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에 묻힌 그는 부활했다. 이는 확실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이 말을 줄여서 “나는 그것이 터무니없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라고 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연구자 등장


▎렘브란트가 그린 <설교하는 그리스도>. 렘브란트는 사실적 예수를 그리기 위해 자신이 만난 유대인들을 작품의 모델로 삼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는 이렇게 말했다. “가톨릭의 전통은 처음부터 이성을 거슬러 믿고자 하는 욕구인 소위 ‘신앙주의(fideism)’를 거부했다. ‘나는 그것이 터무니 없기 때문에 믿는다(I believe because it is absurd)’는 가톨릭 신앙을 해석하는 공식이 아니다.”

하지만 이성만으로 예수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워!” 학교 다닐 때 들어본 말이다. 일단 무조건 외우고 나면 신기하게도 이해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게 우리 학창 시절 경험이다.

가톨릭 신앙의 경우 ‘믿을 교리’가 있다. ‘믿을 교리’는 이성적으로는, 적어도 처음엔 전혀 이해가 안 되지만 교회가 2000년 동안 믿었던 ‘진리’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됐다는 것을 믿는다. 하느님이 사람이 돼 인류 역사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인간 예수는 슬퍼했다. 원망하기도 했고 고통스러워 하기도 했다. 절망도 했다. 사람은 다 아는 척하지만 사실 모르는 게 많다. ‘사람 예수’는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최후 심판의 날’의 도래 날짜처럼 모르는 것도 있었다. 아니면 알면서도 성부(聖父)에 대비한 자신의 인성(人性)을 강조하기 위해 모르는 척했을 수도 있다.


▎예수가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광야의 시험산. 산 중턱에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왼쪽의 흰 건물)이 있고, 예수가 악마의 유혹을 받은 곳은 오른편의 산 꼭대기라고 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의 관심은 하느님 예수가 아니라 사람 예수다.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신학·종교학 등 학술 차원의 논의를 벗어나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 탐구’ 운동을 선도하는 존 도미닉 크로산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예수’라 부르는 인물은 내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육신으로 오신 말씀’이라 부르는 인물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나는 예수라는 같은 인물에 대한 쌍둥이 비전을 절대 혼동하지 않는다.”

그럴 듯한 입장 표명이다. 크로산은 ‘역사적 예수 탐구’를 신학 연구와 별도로 수행할 필요가 있지만 ‘역사적 예수 탐구’가 신앙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강경한 전통 신앙인들은 크로산의 말에서 경계해야 할 달콤한 유혹을 발견한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혹은 ‘역사의 예수(Jesus of history)’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를 분리해 생각한다. 그들은 교회의 도그마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들은 교회가 믿어온 것을 ‘팩트체킹(fact-checking)’하겠다는 입장이다. ‘믿음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교리와 같은 ‘믿을 교리’와 관련된 것이다.

반면 ‘역사적 예수’의 대상은 ‘100% 인간, 100% 하느님’인 예수 중에서 ‘100% 인간 예수’와 관련됐다. 예수는 인간으로서 33년 동안 이 땅, 지구의 한 모퉁이인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다.

‘믿음의 그리스도’는 역사를 초월한다. 코스모스적(Cosmic) 존재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는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전기(傳記·biography)를 쓰는 게 가능하다. 예수 전기 쓰기는 18세기 말에 시작된 ‘역사적 예수 탐구 운동’의 제1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신약성경의 ‘모순점’에서 출발


▎예수가 혼인잔치에서 마리아의 요청으로 돌항아리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이적(異蹟)을 행한 곳이 가나(Cana)다. 가나에는 지금도 초대교회 동굴, 13인물을 나타내는 바위 부조(浮彫), 혼인잔치를 상징하는 조각 등이 남아 있다.
칭기즈칸·링컨·처칠·이순신 등 어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를 쓰려는 전기작가나 사학자는 어떻게 전기 집필에 착수할까.

일단 자료를 모을 것이다. 자료 중에서 신빙성 있는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추릴 것이다. 그런 다음 나름대로 ‘이게 아무개의 본모습’이라는 주장을 펼칠 것이다. 주로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예수’의 재구성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역사적 예수’의 추적자들은 신약성경에서 많은 모순점을 발견한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뭔가 ‘이상한’ 부분을 파헤쳐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한다.

정통 신앙인들은 성경에서 드러나는 ‘메시아 예수’ ‘주님이신 예수’ ‘구세주 예수’ ‘하느님의 아들 예수’ ‘인간의 아들 예수’ ‘하느님이신 예수’ 사이에서 아무런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다. 모든 게 다 수미일관(首尾一貫) 무리 없이 착착 이해가 된다. 그래서 정통 신앙인들이 보기에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친다. 그들의 주장은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것들이다.

● 예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화적 가공 인물이다. 그의 삶은 근거가 없다. 당대 그리스·로마 기록에 안 나온다. 고고학적 근거도 없다.

● 예수는 나자렛에서 태어났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이집트에 가지 않았다.

● 예수는 다윗 왕의 후손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 예수는 ‘왕이 되려고 한’ 사회혁명가 혹은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민중봉기를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아니면 정반대로 예수는 공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위대한 인류의 ‘윤리적 스승’이었다. 영적인 문제에 치중했을 뿐 정치나 사회에는 관심이 없었다.

●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믿으라고 했을 뿐 자신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 예수를 로마제국이 처형한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예수가 테러리스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으로 오는 나라’다. 교회가 사람들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왜곡했다.

● ‘예수 운동’의 핵심인 하느님 나라의 저작권은 세례자 요한에게 있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의 사망 후 세례 운동을 승계했을 뿐이다.

● 예수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주변적인 인물이었다. ‘예수 운동’을 세계적인 운동으로 성공시킨 것은 사도 바울이다.

● 예수가 행한 대부분의 기적은 없었다.

●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말과 행적은 대부분 ‘가짜’다.

● 예수는 마술사였다.

● 예수의 사상은 견유학파(犬儒學派)와 일맥상통한다.

●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부활했다면 상징적인 의미로 신앙인들의 ‘마음 속’에서 부활했다.

● 예수에겐 적어도 4명의 형제가 있었다.(개신교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주장)

● 예수는 무덤에 묻히지 못했다.

● 예수는 ‘파티광(party狂)’이었다. 술을 좋아했기에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 전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금주 선언’을 했다.

● 예수는 목수가 아니라 석공이었다.

● 예수는 이집트의 신비주의 컬트의 영향을 받았다.

● 예수의 12제자 중 3명은 예수의 배다른 형제였다.

● 예수에게서 사회주의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아니다. 예수는 보수주의자였다.


‘인류의 스승’ 슈바이처가 이단아?


▎예루살렘 구(舊)도시 안에 있는 시장 길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던 도중 넘어지려 할 때 손으로 짚었다는 벽이 보존돼 있다.
몇 가지 이유에서 ‘역사적 예수’ 그룹을 무시할 수 없다. ‘역사적 예수’ 탐구운동은 어제오늘 시작된 운동이 아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의문은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싹텄다.

‘역사적 예수’ 탐구의 아버지는 헤르만 자무엘 라이마루스(1694~1768)다. 그는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미국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 또한 ‘역사적 예수’ 운동의 초기 가담자 중 한 명이다.

1804년 백악관에서 제퍼슨은 성경에서 ‘믿을 만한’ 내용만 추려내 <제퍼슨 성경>이라는 것을 집필했다. ‘아마존’에서 살 수 있는 책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 박사가 가봉으로 가서 의료봉사를 하기 전에 몰두한 것도 ‘역사적 예수’ 찾기였다. 슈바이처 박사는 <역사적 예수 탐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1906)를 집필했다. 이 책으로 ‘역사적 예수 탐구’의 제1기가 끝난다. 상당수 정통파 신앙인이 이 책을 읽고 슈바이처가 이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제2기의 무대 또한 1950~60년대 독일 학계였다. ‘역사적 예수 탐구’의 대중화가 가속화된 제3기의 중심은 미국이다. 1980년대에 시작됐다. 현대 ‘역사적 예수’ 연구그룹은 가톨릭·개신교·유대교의 신학자·성직자·종교학자·평신도들로 구성된다.

그들 중엔 ‘소설’ 쓰는 황당한 사기꾼,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보겠다는 야심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각 교단·종교계에서 명망이 높은 사람들이다. 신약 성경의 예수의 말과 행적은 20% 정도만 진짜라고 보는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멤버들은 대부분 신학과·종교학과 교수다. 옥스퍼드대·하버드대 교수도 있다. 그들은 또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행적 176개 중 29개만 예수가 실제로 행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예수’는 호황 출판산업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책을 소비하는 독자들에게 예수는 ‘아이돌’이다. 예수 ‘팬’들은 예수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것들, 일요일에 신부·목사들에게 듣는 것으로 신앙인들의 ‘목마름’이 다 해소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적 예수’에 열광한다. 그들은 일면 ‘중도적’이다. 정통 신앙과 무신론의 갈등 속에서 균형을 잡아 줄 잠재력이 있다.

‘역사적 예수’ 운동은 일면 ‘영적’이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 신앙인이 보기에는 ‘역사적 예수’ 운운하는 것은 무신론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상당수 신앙이 흔들리던 사람들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책을 읽고 다시 신앙을 회복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통 신앙인들이 방심할 때 ‘눈물의 회개’가 ‘역사적 예수’ 운동에서 성취되고 있다.

‘역사적 예수’ 운동은 나름대로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 ‘악마도 성경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편다’고 했다. 정통파 신앙인 못지않게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교인들도 성경을 열심히 공부한다. ‘역사적 예수’ 운동은 신학에 역사학·고고학·인류학·사회학 등 사회과학 등의 성과를 접목했다. 즉 방법론이 탄탄하다.

‘역사적 예수’ 운동은 ‘종교 간 대화’ ‘기독교 교회 일치주의(ecumenism)’의 흐름을 타고 있다. ‘역사적 예수’ 운동의 최근 추세는 ‘유대인 예수’다. 특히 1세기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농민 예수’다.

예수 중심으로 모든 그리스도교인 뭉칠 가능성도


▎2000년 전 이스라엘 갈릴리의 호숫가 언덕에서 예수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을 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기도인 주기도(主祈禱)가 산상수훈에서 연유(緣由)한다. / 사진제공·김정자 마리스텔라
<유대인 예수>(1973)를 지은 게저 베르메시를 필두로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유대인 예수’를 중심으로 실행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2011년 <유대교 주석 신약 성경(The Jewish Annotated NRSV New Testament)>을 발간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입장이 상호 수렴하고 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은 국제정치의 진리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내부의 진리이기도 하다. 국제정치에서도 종교에서도 새로운 ‘재배열(realignment)’이 일어난다.

방언(方言)을 하는 오순절 교회 계통(우리나라 순복음교회 등) 신자는 방언을 하지 않는 장로교 신자보다는 같이 방언을 하는 가톨릭 신자에게 더 큰 친밀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 예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감리교 신자는, 같은 개신교 신자들보다 ‘역사적 예수’의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 가톨릭 신자들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한다.

이런 배경에서 ‘역사적 예수’ 운동이 이미 ‘다른 종교다’ ‘별도의 그리스도교 교단이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적’ 가톨릭과 개신교가 이미 하나가 됐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역사적 예수 탐구’가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강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정통파 그리스도교인들이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통파 그리스도교인들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분투한다. 신약성경이 그리고 있는 예수가 실제 예수다.

신약성경은 정확하다고 말한다. 아직은 정통파 그리스도교와 ‘역사적 예수’ 그룹 간의 본격적인 교류나 ‘정반합(正反合)’은 없다. ‘역사적 예수’ 문헌에서 영감을 얻는 근본주의자들은 소수다. 하지만 예수를 중심으로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뭉칠 가능성, 모든 종교가 믿음을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그게 어쩌면 신앙의 역사다.

김환영 -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외교부 명예 정책자문위원. 단국대 인재 아카데미(초빙교수), 한경대 영어과(겸임교수), 서강대 국제대학원(연구교수)에서 강의했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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