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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마을이 답이다’(5)] 지역공동체의 건강한 순환계가 민주주의다 

‘자치·협동(自治·協同)-풀뿌리민주주의’ 

글·사진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지역마을 주민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곧 자치민주주의의 시작…공론참여와 소통협력으로 사회적경제·지역공동체 활성화해야

촛불시민혁명은 참여민주주의의 저력과 희망을 상징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관념과 지식만으로 배울 수 없다. 연대와 협력을 통한 실천, 지역거버넌스 자치운영, 문제해결과 대안모색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과 사회에 체화된다. 직원협동조합·지역언론·캠페인운동 등 현재 풀뿌리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도농(都農) 지역협의체는 다양하게 조성돼 있다. 핵심은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존중과 소통’이다. 활발한 마을의 담론이 공동체를 살린다.


▎감천문화마을의 전경. 오랫동안 감천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을 ‘공동체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미 깨진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보다, 주민들이 지역협의체에 참여해 무엇을 함께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궁리하는 과정이 곧 ‘풀뿌리민주주의’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들여왔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꽃피우기까지 고통과 희생이 컸다. 4·19 학생혁명에서 6월민주항쟁을 거쳐 촛불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세 번 이상 이뤄지면서 민주주의는 성장했다. 그럼에도 촛불이 말했듯 민주주의가 삐걱거렸다. 민주주의가 아래로부터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풀뿌리민주주의의 중요성이 있다.

사회적경제 활동의 토대인 신뢰와 협동은 민주주의가 삶 속에서 구현될 때 더욱 두터워진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의식과 문화가 뒤따라주지 않으면 정착하기 어렵다. 민주주의가 좋은 보기다. 정치제도이자 생활양식으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배우고, 그리고 지역과 사회에서 써보면서 체득이 가능한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거시적인 차원에서만 논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경제 : ‘몸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전북 부안군 등용리 마을 햇빛발전소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2005년 등용마을, 원불교 부안교당, 부안성당에 햇빛발전소 1~3호기가 설립됐다. 이 과정을 통해 마을 주민간의 신뢰가 회복되고, 궁극적으론 마을공동체가 복원되는 결실을 맺었다.
추상적인 민주주의 원리를 교육(education)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지역/마을 주민들이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함께 고민하고, 궁리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열린 과정이 미시적 차원의 민주주의 모습이다. 그 안에서 서로 소통·인정·존중하고, 이해·타협·절충하는 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이처럼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구성원들은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머리로서 배웠던 민주주의를 몸으로 배우게 된다.

민주주의는 사회적경제 활동의 순환계다. 몸에 피가 흐르듯이 사회적경제 활동에서 정보의 소통·공유·참여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과부하가 생겨 터지고 만다. 사회적경제 활동에 참여자는 우선 지역문제를 알아야 한다. 지역문제를 확인하고 그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게 된다. 참여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문제를 공유하면서 대안을 함께 고민한다. 이 과정에 핵심이 바로 소통과 격론에 이어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특히 사회적경제 영역 내의 소통과정은 우리 몸의 숨통과 같아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심장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 활동의 주인으로 서는 과정은 사회적으로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과정이며 이는 사회적경제의 성패 요건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를 조명할 때 최근 주목받는 이슈는 세대에 따른 사회갈등이다. 최근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세대갈등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독재와 반공 이념에 기초한 산업화의 뒤안길에 민주주의의 후퇴가 자리 잡았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선배 활동가들의 노력은 숭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저항했던 획일주의, 관료주의, 그리고 독단주의가 시민사회 활동가 몸에도 배태되어 있었다.

시민사회 선배들은 후배들의 헌신과 희생 없음을 아쉬워한다. 때로는 후배들의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미숙함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 활동가들이 인내심이 부족하고, 헌신하기 싫어하고, 자기 권리만을 챙기는 얌체로 보이기도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미시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사회적으로 학습하지 못한 시민사회 내부의 문제를 성찰하지 않은 자세다. 후배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함보다는,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꼰대처럼 자신의 희생과 헌신, 자랑만 일삼는 선배 활동가들을 마주친 젊은이들은 그 긴장을 참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다. 시민사회를 견인할 수 있는 활동가를 잃는 순간이다.

비슷한 상황이 사회적경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장년의 풍성한 개척 경험과 청년의 창의적 도전 정신이 만나면 놀랄만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큰 실망감과 이을 수 없는 간극으로 이어졌다.

시민사회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과거와 같은 인내와 헌신 그리고 노력을 기대한다. 그러나 보다 자유롭게 자신만의 꿈을 꾸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부담을 가득 안고 사회에 나온 젊은 후배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이타성과 협동성을 강조 혹은 강요하는 것은 변화된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은 물론 민주주의 경험 부재에서 기인한다.

촛불혁명에서 발견한 민주주의 학습의 저력

젊은이들은 사회로의 진출과 동시에 더 큰 좌절과 분노를 경험하는데,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마저도 기성세대와 갈등을 겪으면서 새로운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된다. 기존의 트라우마는 어떤 힐링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에 지역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자발적 협동과 연대를 통해서 기존 트라우마를 덮어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이룰 수 없으며 바로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학습함으로써 가능하다. 우리는 최근에 진행된 촛불시민혁명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촛불시민혁명에서 희망의 불씨를 목격한 주민과 시민들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덮어쓰고자 다시 참여의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스스로 구획한 경계를 일단 넘어서는 경험을 공동으로 한 것이다. 물론 참여, 소통, 그리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공동으로 체화하는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다. 그 과정이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진행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학교 수업이나 개인적인 공부를 통해 주입되는 것이 아니며, 지역 안에서 참여를 통해 협동을 경험하고 그 위에 연대와 신뢰를 구체적으로 쌓을 수 있다.

이처럼 촛불혁명은 미시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함께 공유하고 기억하는 공간인 것이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광장으로 함께 참여하고 서로 존중하는 원칙이 구현되었다. 광장에서는 발언 기회가 연령·세대·학력·지역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졌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여러 목소리를 듣는 인내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을 배웠다.

이제 촛불혁명의 민주적 운영이 자그만 마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중요하다. 농촌 지역은 전통적으로 혈연에 기초한 집성촌이 많다. 귀농·귀촌·귀향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주민들이 마을에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텃세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그만 마을에도 기득권에 따른 이해관계가 연결되어 있어 민주적 소통보다는 소수가 의사결정을 독점하곤 한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지역을 지키며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견지한 마을 사람들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의 경계와 편견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농촌 마을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할 지혜를 가져야 한다. 지역을 지켜온 분들의 경륜과 의견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혹 자신의 전문성을 내세우며 지역의 고유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특성을 무시한 채 추상적 모델과 이론을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마을의 민주주의를 세우기보다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관찰에 따르면 적지 않은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비슷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해왔다.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주민 속으로 들어간 마을활동가의 역할에 대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들이 마을 안에서 민주주의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주민 간의 소통을 막고 공동체를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마을 활동가가 농촌 지역 주민을 무시한 채 추상적인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려고 할 때 주민들은 쉽게 동조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 마을 활동가들이 역사와 전통에 배태된 지역의 미시적 갈등 요인에 대해 깊이 있게 소통하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형식적인 운영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시 지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특히 수도권 지역 아파트 단지의 미시적 차원의 민주주의는 농촌보다 훨씬 심각할 정도로 많은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다. 아파트 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가는 곳도 있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소통과 공감 더 나아가 협동과 공유의 활동을 가로막는 이익집단의 결사체가 형성되어 있어 아파트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규모의 차이가 있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편법·불법·탈법이 작동하며, 소수 기득권 세력이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 이권싸움, 이익싸움, 권리싸움에 지쳐서 주민들은 공동체를 위한 책임 있는 자세로 참여하는 것에 등을 돌리고 있다.

아파트 뉴타운이 기존의 마을공동체를 대체한 것이 모든 원인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민주주의 학습의 중요성을 간과한 태도다. 신도시 건설, 도심 재개발 뉴타운 사업 지역에서도 일부에는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 층이 다수를 이루면서,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민주주의 원리를 도심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함께 미시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비록 민주주의를 사회적으로 학습하지는 못한 세대이지만 사회적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촛불혁명을 통해 확인한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이 도심 지역 안에서도 하나 둘 꽃피기 시작한다. 물론 이것이 한순간의 사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지역의 문제(복지·환경·교육·보건 등)를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사회적 경제 활동을 통해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이처럼 농촌, 도시 지역에서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미시적 차원의 민주주의 실천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건강한 순환계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 즉, 기후정의와 에너지 자립, 직원협동조합, 그리고 도시재생 프로젝트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사회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사회적경제 활동에 얼마나 중요한 토대가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북 부안군 등용리 마을의 에너지 자립노력 | 기후정의를 학습한 사회적경제 민주주의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덕암 에너지자립마을의 전경. 2014년 덕암 에너지자립마을 프로젝트는 전형적인 정부주도형이었다. 정부 지원으로 건립된 덕암에너지자립센터의 태양광 시설은 다양한 친환경적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다만 주민이 자발적 운영주체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 한계다.
마을 내에서 주민들이 민주주의를 공동으로 학습하는 대표적 사례로 전북 부안군 등용리 마을의 에너지 자립 노력을 주목하고자 한다. 2000년대 초 핵 폐기장 건설을 둘러싸고 여러 마을이 찬반으로 깨지는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주민들이 대규모로 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은 실패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지방선거 때마다 핵 폐기장 유치를 주동한 지역 유지들이 등장하여 과거의 트라우마가 재생되는 고통이 반복된다.

주민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반핵의 가치를 견지하기 위해 에너지 자립 마을로 거듭나기에 나섰다.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여 스스로 친환경 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는 동시에 에너지 과소비 습관을 철저히 바꾸기 위한 자발적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따금씩 지역 개발계획으로 공동체가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10여 년을 넘게 쌓아온 협동과 연대의 힘으로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러한 지난한 노력과 경험으로 과거 핵폐기장 건설반대 과정에서 겪었던 배신, 좌절, 그리고 위협의 트라우마는 조금씩 덮혀지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주민들이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를 사회적으로 학습하는 과정, 즉 민주주의를 터득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어느 일부 사람만 편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조금 불편한 것이 낫다는 것을 학습한 것이다. 과연 주민들이 어떻게 이러한 사회적 가치에 동의하고 협동하게 되었는가?

앞서 강조했듯이 부안 등용마을은 지난한 핵폐기장 반대 운동을 거치면서 마을 공동체가 깨지고 개인적으로도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주민 스스로 10여 년의 에너지 자립마을 구축과정은 기존 마을공동체의 아픔과 슬픔의 기억을 새로운 협동과 협력의 기억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학습을 통해 주민 각자가 사회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등용마을은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변산 바닷가로부터 가깝고, 산과 바다 그리고 농지가 골고루 결합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30가구 5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부안성당의 모체가 되는 등용리 성당이 있었고, 한국전쟁 때는 천주교 마을로 낙인 찍혀 많은 박해를 받기도 했다. 1985년 등용마을은 외국농축산물 수입 중단, 소값 피해보상, 부채탕감 등을 요구하는 소몰이 투쟁을 처음 시작한 저항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전통 이외에도 부안지역은 새만금 간척사업과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주민 반대운동이 강렬했던 곳이다. 2003년 ‘위도 방사성 핵폐기물 처분장’ 추진에 반대하며 2년여 동안 반대투쟁을 전개한 결과, 구속자 55명을 포함하여 300여 명이 넘는 지역 주민이 구속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는 고통의 결과를 낳았다. 이후 1년이 넘는 촛불집회, 학생등교 거부운동, 고속도로 점거 등 수많은 반대운동과, 최초의 독자적 지역주민 투표를 통해 유권자중 72%의 투표에 92%가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등 지역 주민의 민주적이고도 단결된 힘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2005년 9월 정부는 부안에 핵 폐기장 건설을 포기했다. 안타깝게도 이 갈등의 상처는 너무나 컸고 주민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이 심각했다. 지역 주민끼리의 불신은 물론 외부에 대한 불신의 벽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용리 주민은 이러한 아픔과 상처의 기억을 넘어서고자 주민들이 에너지자립 마을사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에너지의 주인으로 서기 위한 협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새로운 공동의 기억을 이루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본격적으로 재생에너지에 주목하고 시민 햇빛발전소를 건립하게 되었다.

2005년 등용마을, 원불교 부안교당, 부안성당에 ‘햇빛발전소’에 1~3호기가 설립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마을 주민간의 신뢰가 회복되고, 궁극적으로는 마을공동체가 회복되는 소중한 민주주의를 학습한 것이다. 가끔씩 정부 지원금의 유혹이 주민을 흔들곤 하였지만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주민들은 에너지 자립실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주민 간의 신뢰와 연대는 더욱 견고하게 되였다. 이처럼 부안 등용마을의 에너지자립 노력은 주민 스스로 기존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공동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마을 공동체 안에서 공공선을 극대화하기 위해 풀뿌리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학습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지역과 마을에서 추진한 에너지 자립노력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정부 주도로 추진된 에너지 자립마을 프로젝트는 풀뿌리 주민들이 기후정의를 향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지 못한 채 마을의 주거환경 개선에만 머무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를 덕암 에너지자립마을 프로젝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전북 완주군 덕암 에너지자립마을 프로젝트는 전형적인 정부 주도형 프로젝트였다. 80억원이 넘는 정부 지원으로 건립된 덕암에너지자립센터의 태양광 시설은 다양한 친환경적 편의시설(찜질방·숙박시설·북카페·농가레스토랑·교육실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주민이 자발적 운영주체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 큰 한계다.

이는 지역 주민 스스로 기후정의, 환경정의, 마을공동체 등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함께 학습하지 못한 채 정부 주도 사업의 열매 즉, 마을 주거환경 개선에만 관심을 보였다는 데 원인이 있다. 마을 안에 전통적인 협동의 경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거나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전통이 부족한 경우에 정부주도형 마을지원 사업은 공동체를 강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해칠 수 있다.

제주도 시민사회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 직원협동조합은 민주주의 훈련소


▎최근 제주시 노형점에 이어 오라점을 오픈한 행복나눔마트는 2013년 기존 17명의 직원을 고용승계하면서 총 4억3000만원을 투자해 설립한 최초의 직원협동조합이다. 기존 마트직원을 대상으로 협동조합 의의에 대한 교육을 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마을보다 더 규모가 작은 협동조합 내에서도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과정은 또 다른 미시적 차원의 과제이다. 사회적경제 활동에서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 시민사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회적경제 활동을 실험하고 있는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행복나눔마트)을 주목하고자 한다. 이곳 직원협동조합 내의 민주주의 학습과정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주 시민사회는 다른 지역과 달리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좁은 지역사회를 배경으로 시민사회의 끈끈한 연줄에 기초하여 상호 협력하고 있는데, 이는 제주도 고유의 ‘괸당’ 문화가 시민사회 내에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괸당문화로 인해 일반 주민들도 ‘웬만하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한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태도를 유지한다. 제주도 시민사회는 사회적경제 활동에 상대적으로 늦게 참여하게 되었고, 지역 개발을 둘러싼 많은 이해관계자가 상호 얽혀 있어 공공성을 지향하는 시민사회의 연대와 협력활동이 어려움을 겪곤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직원협동조합 행복나눔마트는 제주 시민사회가 새롭게 시작한 사회적경제와 민주주의 실험장이다. 사회적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좀 더 행복한 고용기회 및 작업장을 제공하고자 지역 마트를 직원협동조합으로 전환한 것이다.

최근 제주시 노형점에 이어 오라점을 오픈한 행복나눔마트는 겉으로 보기에 여느 마트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행복나눔마트는 2013년에 기존의 17명의 직원을 고용승계하면서 총 4억3000만원을 투자하여 설립한 최초의 직원협동조합이다. 행복나눔마트는 제주의 진보정당, 지역운동,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시작했다. 또한 생활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협동체간의 협동을 통해 성장을 꿈꾸며,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직원의 생각은 교육으로만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행복나눔마트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행복나눔마트는 기존 마트직원을 대상으로 협동조합의 의의에 대한 교육을 하고, 조합원으로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매주 진행되는 세미나 및 토론모임을 통해 직원들은 이른바 협동적 인간으로 변화를 꾀했다. 다른 마트보다 근무시간은 짧고 직원 수가 많으므로 행복나눔마트의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인식하고 장기적으로 성실하게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직원협동조합의 목표다.

사실 이곳의 직원이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더 이상 해고는 불가능하며, 각 조합원은 마트의 공동주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민주적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2년여 실험을 통해 협동나눔마트가 직원에게 쏟은 헌신과 열정의 열매는 쉽게 맺지 않고 있다. 비록 직원들이 협동의 가치와 수평적 관계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다.

직장 내 민주주의 역시 나눔과 배려는 사회적으로 학습하여 훈련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다. 직장 내에서 조합원을 협동적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단기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직원협동조합 내에서 민주주의를 협력적 활동을 통해서 경험하고, 이를 공동으로 학습하면 이것은 직장을 넘어 지역으로 확대되는 중요한 토양이 될 것이다. 앞으로 제주도 행복나눔마트조합의 실험을 눈여겨볼 만하다.

지역신문의 대명사 <옥천신문> | ‘풀뿌리민주주의’ 견인하는 공론장

지역신문의 대명사로 알려진 <옥천신문>은 풀뿌리민주주의를 견인하는 대표적인 지역 언론이다. 옥천신문은 지역신문으로서 1989년부터 자생적으로 성장하였고, 지역의 공론장으로서 소통과 민주주의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옥천지역의 사회적경제 활동 활성화를 위해 사회적경제 담론 및 국내외 선진사례를 소개하고, 지역 내 사회적경제 활동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지역여론의 파수꾼이다.

그렇다면 옥천신문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시적 차원의 민주주의 실천 노력은 어떠한가? 풀뿌리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옥천신문 스스로 직장 내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학습하고 견지하는가는 흥미롭다. 충북 옥천군은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주 평범한 도농지역이다. 대전광역시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옥천지역에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지 않고 농촌지역은 크게 개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옥천신문은 충북 옥천군 옥천읍 중심에 위치하며 총 9명의 기자가 일하고 있다. 옥천신문은 1989년 주민들이 직접 회사의 주인이 되는 주민주주 회사로 창간돼 옥천군을 주된 배포지역으로 하는 주간 신문이다. 지역신문업계에서는 처음으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회사 지분의 일정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을 만들어서 편집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구현하고 있다. 신문의 주요 내용은 옥천 지역주민의 일상부터 자치단체 행정에 대한 비판·감시 등 다양한 사안을 포함한다. 지역주민은 옥천신문에 기사를 제공하는 정보원 역할까지 담당한다. 특히 유료독자 4000명을 보유한 옥천신문은 옥천군 인구의 20% 가까이가 매주 옥천신문의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옥천신문의 역사는 한마디로 지역의 튼실한 공론의 장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지역에서 공론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지역정치는 부패하기 쉽다. 지역신문은 결코 지역 정부가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5만 명의 인구의 옥천에서 지역의 이슈를 다루는 기자가 8명이 상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광고에 신경 쓰지 않고, 주민의 목소리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풀뿌리민주주의와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옥천신문은 외지에서 옥천으로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자원이 되고 있다.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지역에 알리는 동시에 지역의 필요한 구인 및 주택정보를 저렴한 비용으로 광고할 수 있는 섹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옥천신문은 스스로 신명 나는 직장으로 만들고자 구성원 모두가 협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기자 초봉을 150만원을 유지하며 그들이 안정적으로 독립적인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사실 지역신문 기자 한 명이 사라진다면 이것은 풀뿌리민주주의와 지역공동체 형성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옥천신문은 직원부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 활동을 내부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03년 6월에 9명의 노조원으로 옥천신문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2004년 8월에 전국언론노조 옥천신문사 분회로 승인을 얻어 전국 언론 노동자와 연대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옥이네 밥상’이나 ‘옥이네 농부’와 같은 텃밭과 직장 내 식당을 운영함으로써 옥천신문 스스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를 마련하는 동시에 로컬푸드를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하고자 한다.

또한 탄력근무제를 운영하면서 주 35시간 근무시간을 보장하여 보다 나은 직업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옥천신문은 풀뿌리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 관련하여 일방적인 주장을 쏟아내기보다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천함으로써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는 모범사례로 주목된다.

최근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지방정부의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수평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사례이다. 과연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지역공동체 활성화 및 주민의 참여를 제고하였는가? 부산의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례에 좀 더 성찰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부산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작금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구성하기보다는 도시환경개선 혹은 개발에 무게중심이 있다고 평가한다. 일례로 지방정부는 마을 만들기, 공동체라는 용어보다는 도시재생의 담론을 선호한다.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도심의 산복도로 주변 경관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2011년부터 10년간 1500억원을 투입해 중구·동구 등 원도심의 고지대 산복도로 9개 구역을 개선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 도시재생사업은 마을 주민들이 아닌 행정기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수평적 거버넌스를 유지할 만큼의 주민들의 공동체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민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제도적 틀은 물론 구체적인 참여 기회를 의도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어느 순간에 주민은 사라지고 정부의 일방적인 기획으로 진행되고 만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민주적 절차가 관건


▎감천문화마을은 6·25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이 모여 형성된 부산의 달동네였다. 태극도 신도들이 부산 보수동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중 1955년부터 1960년에 걸쳐 이곳으로 집단이주했다. 처음 건립된 판잣집들은 1970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1980년대 지금의 슬라브 형태로 개량됐다.
그 예로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인 감천문화마을 사업을 들 수 있다. 초기 감천문화마을 사업은 마을의 주민, 전문 예술가들과 행정담당자들에 의해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성공적인 창조 도시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동안 감천마을은 개발과 성장이 그치면서 젊은이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떠나고 마을에는 빈곤층과 노인만 남아 있는 죽은 마을이었다. 부산시는 이 지역을 경제적으로 다시 살리기 위해 신도시로 재개발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보다는 문화마을로 보존하고 재생하는 방법으로 ‘문화마을 만들기’를 시작했다.

감천문화마을은 6·25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이 모여 형성된 부산의 달동네였다. 태극도 신도들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 보수동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중 1955년부터 1960년에 걸쳐 이곳으로 집단이주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처음 건립된 판잣집들은 1970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1980년대 지금의 슬라브 형태로 개량되었다. 2009년에 문화체육 관광부가 시행한 마을미술 프로젝트에서 ‘꿈을 꾸는 부산의 맞추픽추’로 선정되어 산복도로 주변에 10여 점의 조형작품이 설치되었다. 2010년에는 2차로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여러 집과 골목길 개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후 마을기업, 협동조합이 생기면서 지역주민의 경제활동 참여를 추동하고 있다.

몇 년 전 만해도 감천문화마을 지역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살맛이 난다고 했다. 그런데 점차 지역주민들의 태도가 다시 불평 쪽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도시재생 사업에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민주적 절차와 수평적 거버넌스가 관건이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깨지면 다 깨진다. 가장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이 주민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주민들이 민주주의를 풀뿌리 차원에서 훈련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들을 그저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고가 문제다. 오랫동안 감천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을 돈으로 보지 말고, 공동체를 지켜온 소중한 구성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감천문화마을을 돈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이미 균열이 생기고 있다. 감천문화마을이 겉만 예쁘게 색칠한 이색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 사는 주민은 만나지 못하고 겉에서 이국적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들만 있다면 감천마을은 어느 새 그 고유한 매력을 잃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감천문화마을에서 마을기업,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던 상점들이 일반 개인가게나 프랜차이즈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 이유를 풀뿌리민주주의 및 공론장의 부재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실 부산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재생 사업은 행정주도 사업이었고, 점차 행정 주도 사업을 주민들에게 이양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행정이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사회적경제 영역이 커지기보다는 외부의 업자가 특색 없는 상품가게를 열고 있어 감천문화마을의 옛 경험과 전통은 사라지고 있다. 특히 감천문화마을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깊숙이 이 재생사업 공론장에 참여하고 있으며 또한 사업 및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사실 이미 깨진 지역공동체를 만든다는 것보다 주민들로 하여금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궁리하도록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함께 논의하는 소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의 사회적경제 활동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부산의 한 지역활동가는 다양한 회의 공간에서 1인 1표의 권리가 있음을 깨달으며,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데는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마을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훈련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평적 거버넌스의 ‘숨통’을 틔워라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도심의 산복도로 주변 경관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2011년부터 10년간 1500억원을 투입해 중구·동구 등 원도심의 고지대 산복도로 9개 구역을 개선한다. 행정기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주민의 참여 기회를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풀뿌리 현장에는 아직도 주민의 자발적 노력을 칭찬하는 문화, 정부와 주민이 공동으로 지역 문제를 발굴하는 과정, 주민 스스로 함께 공부하는 소모임 등이 부족하다. 이런 토양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공동체의 미시적 재구성은 요원한 것이다. 함께 논의하고 궁리하는 공론장이 부족하기에 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는 반영되기 어렵다.

풀뿌리민주주의 경험이 미약한 곳은 공론장이 마련되어도 주민들이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지역 기반의 협동조합 역시 구성원이 공론장에 참여한 경험이 없기에 여전히 수동적 구경꾼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초기에 마을 활동가가 마을로 들어가 공론장을 구성하고 조정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만약 활동가가 조정의 역할을 잘 못하면 무능한 사람이 되고, 너무 자기 의견대로 끌고 가면 간섭하는 자가 되어 서로 협동하는 민주적 공간이 퇴색될 위험에 처한다. 최근에 지역에서의 사회적 경제 활동이 급부상하고 있음에도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활동에 당당하지 못하다. 그 동안 공론장에 참여할 기회가 부족했고, 기회가 있었어도 민주주의를 사회적으로 학습하지 못했기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주민이 당당해지고 맘껏 얘기할 수 있는 숨통을 틔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있어야 사회적경제 활동이 활성화되고 지속가능해지는 것이다. 풀뿌리에서 사회적으로 학습한 민주주의는 지역공동체의 호흡과도 같다.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래야만 지역공동체의 숨통이 터지고 순환계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자연스럽게 마을단위에서 회의체가 살아날 것이다. 이는 마을단위의 공론장이 될 것이며 이곳에서 주민의 성찰과 각성, 그리고 연대와 협력이 회복될 것이다.

사회적경제 영역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수평적 거버넌스를 시도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나 시민사회가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 거버넌스는 무익하다. 협동조합 회의에서 1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던 주민도 의사결정 결과가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렇듯이 자기 의견을 표현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있어 우리는 인내, 공감, 그리고 소통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촛불은 우리 시민들의 힘 있는 민주주의(empowered democracy)를 향한 강한 열망을 보여주었다. 지역의 풀뿌리 차원에서 주민들은 민주주의를 몸소 배우면서 신뢰와 연대를 쌓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민이 주민이 되고, 다시 주민이 시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에 대해 좀 더 관대하게 여유를 가져야 한다. 직원협동조합에서 시작하더라도 마을, 도시, 그리고 국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사회적경제는 살아 숨쉬고 지역공동체도 사람 사는 곳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임현진(林玄鎭, Hyun-Chin Lim) hclim@snu.ac.kr - 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실련 공동대표, 사회 과학협의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장, 아시아연구소 창립소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글로벌 NGOs> <세계화와 반세계화> <지구시민사회의 구조와 역학> <뒤틀린 세계화> <글로벌 패러독스> <아시아의 부상> 등 50여 권이 있다.

공석기(孔錫己, Suk-Ki Kong) skong@snu.ac.kr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동대학원 겸임교수. 환경경운동연합 국제협력위원회와 서울시 공정무역위원회 위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인권사회학> <뒤틀린 세계화> 등이 있다.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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