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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화제] 프로야구 그라운드 달구는 야구인 2세들 

저 얼굴, 저 폼 어디서 봤더라! 

이창호 야구전문기자·스포츠평론가 river2000@naver.com
이정후·정의윤·김동엽·이성곤·박세혁 등 공수에서 맹활약…아버지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야구 기본기 충실, “피는 못 속여” 평가

올해 프로야구에 2세 바람이 거세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를 업(業)으로 삼은 야구인 2세들이 그라운드를 휘젓고 있다. 8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는 KIA, 창단 첫 우승에 도전하는 NC, 3년 연속 우승에 눈독을 들이는 두산의 순위 다툼과 함께 야구인 2세들의 맹활약도 프로야구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인 이정후는 데뷔시즌인 올해 날카로운 방망이와 빠른 발을 앞세워 ‘바람의 손자’라는 애칭을 얻었다. 왼쪽 사진은 우투좌타인 이정후, 오른쪽 사진은 우투우타인 이종범의 타격 모습.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아들도 걷는다. 아버지는 그 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가야 할지 잘 알고 있지만 아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 그저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돼주길 바랄 뿐이다. ‘청출어람’, 사전적 의미는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잘하길 바랄 뿐이다.

아버지를 보고, 배우고, 따라 했다. 시나브로 재미를 느꼈다. 이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도 똑같은 직업을 선택했다. 프로야구선수다. 냉혹한 세계다. 매일매일 피 말리는 승부를 해야 한다. 모든 것이 그날그날, 바로바로 숫자로 나타난다. 일희일비(日喜日悲)하지 말아야 한다. 아마추어처럼 단기전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즌이 한창이다.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운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열아홉 살인 넥센 히어로즈의 막내 이정후, 메이저리그를 꿈꾸며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지만 마이너리그만 전전하다 돌아온 SK 와이번스의 김동엽(27) 등 새 얼굴들이 야구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정후는 매서운 방망이와 빠른 발로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천부적인 야구 감각으로 새내기이지만 일찌감치 주전 자리를 꿰찼다. 김동엽은 프로 2년생이다. 그러나 ‘홈런군단’ SK의 신형 파워 히터로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지만 ‘승리 요정’이란 별명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차세대 4번타자’로서 손색이 없다.

이정후와 김동엽은 똑같이 ‘야구인 2세’다. 아버지가 유명한 프로야구선수였다. 이정후는 ‘명가(名家) 해태 타이거즈’를 일군 이종범의 아들이고, 김동엽은 빙그레 이글스의 간판 포수였던 김상국의 아들이다. SK에는 롯데 포수였던 정인교의 아들 정의윤(31)이 있다. 두산에는 해태에서 전성기를 보내면서 명문 구단의 초석을 다졌던 이순철 SBS 해설위원의 아들 이성곤(25)이 뛰고 있다.

포수의 아들-정의윤·김동엽


▎롯데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정인교는 수비가 뛰어난 포수였다.(왼쪽 사진) 2005년 LG에서 데뷔해 2015년 SK로 이적한 정의윤은 거포 외야수다.
정의윤은 SK 4번타자였다. 지난시즌에 풀타임을 뛰면서 책임을 다했다. 144경기에 모두 나가 타율 3할1푼1리와 홈런 27개, 타점 100개를 남겼다.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유망주’, ‘기대주’라는 꼬리표를 잘랐다.

올시즌 출발도 4번타자였다. 그러나 작년만은 못하다. 타격 부침이 거듭되면서 4번타자 ‘임명장’도 반납했다. 정의윤의 아버지는 롯데에서 포수와 코치 생활을 했던 정인교다. LG를 떠나 SK로 이적한 뒤 4번으로 자리 잡기에 ‘이젠 됐다’ 싶었는데 올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아버지도 안타까워한다.

“좋았던 스윙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많이 위축된 것 같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면서 (의윤이가) 전화로 답답함을 호소하더라. 의윤이는 믿고 계속 내보내면 자기 몫을 해내는 스타일이다. 자신도 모르게 또 ‘LG 트라우마’에 휩싸이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쓰인다.”

정의윤은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5년 LG에서 2차 1번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다. 당당한 체격에다 청소년대표로 서 실력을 인정받아 신인 때부터 중심타선에 서곤 했다. 그러나 손가락 부상을 당한 뒤 2015년 SK로 트레이드될 때까지 제대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홀로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객지생활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의논할 사람이 필요할 때 아버지로서 이렇다 할 힘이 돼주지 못했다. 지금은 주로 정신적인 부분에서 가끔 조언을 한다. 분명히 반전은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의윤이도 열심히 준비해서 기회를 다시 찾겠다고 했다.”

SK의 새 사령탑 트레이 힐만 감독도 “정의윤은 안 될 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선수”라며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만큼 곧 기대에 부응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의윤이 주춤하자 같은 팀에 있는 김동엽에게 기회가 왔다. 힐만 감독은 정의윤이 개막 이후 5경기에서 19타수 2안타(타율 0.105)에 그치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4번에서 6번으로 타순을 조정했다. 그리고 “4번 김동엽과 6번 정의윤의 자리를 다시 바꿀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동엽은 장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힐만 감독도 김동엽의 파워에 엄지를 치켜세운다. “힘이 좋다는 인상은 받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경험만 쌓으면 더 좋은 타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동엽은 SK에 입단하기 전까지 훈련다운 훈련을 하지 못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 2군에서 100게임 이상 출전하면서 적응력을 키우면 야구를 보는 눈이 트일 것이고, 1군에서도 통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이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동엽이는 성격이 차분하다. 첫 타석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몰아치기도 가능하다. 유인구에 속지 않고, 좋은 밸런스를 유지하는 노하우를 익혀야 한다고 조언한 적이 있다. 가끔 경직된 모습이 나오는데 최정처럼 하체의 리듬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했다.”

6월 15일 현재 60경기에서 13홈런을 터뜨린 김동엽이 지금의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한다면 30홈런도 기대할 만하다. 김동엽은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 속에 ‘동미니칸(한동민+도미니칸)’ 한동민과 함께 SK의 밝은 미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야구만 하면 반쪽, 큰물에서 놀거라”


▎빙그레의 창단 멤버이자 뛰어난 포수였던 김상국(왼쪽 사진)과 그의 아들인 SK 김동엽.
“덩치는 커도 아직 애다. 어쩌다 집에 오면 용돈을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선수로 뛰는 게임도 봤고, 특히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운동하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동의했다. 자연스럽게 야구 기술을 직접 가르쳤다.”

김상국 전 천안북일고 감독은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다. 이상군·송진우·한희민 등과 함께 빙그레가 해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팀으로 발돋움하는 데 한몫을 한 포수였다.

김상국은 아들 동엽이가 어릴 때부터 남달리 야구에 관심을 보이고, 소질을 나타내자 직접 지도했다.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도 병행하도록 했다. 초등학교 때는 주말에 야구를 했고, 천안북중 때는 수업에 모두 들어가도록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일본 규슈(九州)의 남쪽 미야자키(宮崎)현에 있는 니치난(日南) 학원으로 야구 유학도 보냈다. 큰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적극적이었다.

“야구만 하면 반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하도록 유도했다, 일본에 보낸 것도, 북일고를 졸업하면서 시카고 컵스와 계약한 것도 모두 큰물에서 놀라는 의미였다.”

아버지의 생각과 현실엔 간극이 있었다. 일본의 고교 야구부는 인원이 많다. 니치난 고등학교도 100명 이상의 야구부원이 있었다.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결국 김동엽은 2년 만에 돌아와 천안북일고에 들어갔다.

시카고 컵스의 마이너리그에선 부상을 달고 지냈다. 어깨·팔꿈치·무릎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방출됐고, 지난해 SK가 2차 지명한 덕에 한국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93년 해태에서 데뷔한 이종범은 2012년 시즌 개막 직전 은퇴를 선언한 뒤 같은 해 5월 26일 은퇴식을 가졌다. 당시 휘문중 2학년이던 이정후는 이종범의 KIA 유니폼을, 부인 정정민 씨는 주니치 유니폼을 입고 있다.
김상국은 천안북일고를 거쳐 1986년 한양대를 졸업한 뒤 빙그레에 입단했다. 1995년까지 10시즌 동안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활약하다 1996년과 1997년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가 은퇴했다. 그 뒤 줄곧 아마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동엽이는 지금도 원정경기를 위해 대전에 오거나, 방망이가 잘 맞지 않으면 전화로 고민상담을 한다. 어릴 때부터 내가 가르쳤기 때문에 기술적이든, 정신적이든 사소한 것까지 알고 있으니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주곤 한다.”

아버지는 1997년 은퇴 후 처음으로 올해 6월 4일 대전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직접 관전했다. 자신이 빙그레·한화 유니폼을 입고 땀을 흘렸던 곳에서 이젠 아들이 SK 유니폼을 입고 달린다. 이날 김동엽은 아버지에게 ‘연타석 홈런’을 선물했다. 3대 4로 뒤진 7회초 선두타자 4번 최정의 좌월 동점홈런, 5번 로맥의 좌월 결승홈런에 이어 승부에 쐐기를 박는 시즌 12호째 좌월 아치를 그렸다. 그리고 6대 4로 전세를 뒤집은 9회초 1사 후 다시 중월 1점포를 날렸다. 아버지와 아들이 잊지 못할 경기였다.

이정후는 넥센의 복덩이다. 아버지 이종범처럼 1차 지명을 받은 최초의 부자(父子) 선수로 등록했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막 프로에 입단한 새내기가 이렇게 잘해내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야구 유전자’가 탁월함을 입증하고 있다. 아버지를 능가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현재의 페이스를 꾸준하게 이어가면 올해 신인왕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명가의 후예-이정후·이성곤


▎‘독한’ 해설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순철은 선수시절 호타준족의 대명사였다. 이순철-이성곤 부자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후는 개막 3경기 만에 선발로 출전했다. 그리고 주전 외야수가 됐다. 1번과 9번을 오가면서 겁 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6월 15일까지 64경기에 나가 타율 3할1푼7리와 21타점에 도루 4개를 기록하고 있다.

이정후에겐 확실한 목표가 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고졸신인으로 전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다. 장정석 넥센 감독도 후원자로 나섰다. 체력을 안배하면서 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장 감독은 “선발 출전이 아니더라도 대수비·대주자·대타 등 활용 가치가 높기 때문에 부상만 없다면 언제든지 기회를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정후는 “3할 타자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기록이지만 고졸신인으로 전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첫째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이정후는 아직 어리다. 그러나 공을 방망이에 맞히는 능력과 기술, 손목을 이용하는 요령을 알고 있다. 야구 관계자들이 조심스레 타율 3할을 기대하는 이유다. 차츰 수비도 향상되고 있다. 낙구 지점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사라졌다.

송구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휘문고 때 내야수로 뛰다가 프로에 입단하면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꾼 것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이정후는 “수비는 확실히 출전 경기 수에 비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가급적 말을 아낀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강조한다. 이종범은 이정후에게 “방망이를 잘 치려면 스윙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을 이겨내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종범은 아들 정후가 그저 대견하다.

두산은 4월 22일 이성곤을 1군에 등록했다. 이성곤은 이순철 해설위원의 아들이다. 이순철은 1985년부터 1997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약한 뒤 1998년 삼성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도루 능력이 뛰어났다. 통산 371개의 도루를 기록해 ‘대도(大盜)의 전설’로 남아 있다.

이순철은 현역시절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14시즌 동안 타율 2할6푼2리와 홈런 145개를 기록했다. 이순철과 이종범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해태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다. 경기고와 연세대를 거친 이성곤은 2014년 두산이 2차 3라운드에서 지명했다.

지난해 경찰청에서 95경기에 나가 타율 3할2푼8리와 홈런 19개, 타점 94개를 기록했다. 퓨처스리그에서 홈런과 타점 1위였다. 올해도 6월 8일까지 2군에서 45경기에 나가 타율 3할 6푼과 홈런 9개, 타점 28개, 도루 12개를 기록하고 있다.

2014년 10월 이후 약 2년6개월 만에 1군에 올라온 이성곤은 “1군은 막연하게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곳”이라며 “생각보다 빨리 올라와서 기분이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든든한 후견인이다. 이성곤은 “아버지와 야구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며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해주신 조언이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조언을 가슴에 품고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성곤은 올해 타격자세를 간결하게 고쳤다. 빠른 공과 다양한 변화구에 대처하면서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성곤은 LG 감독까지 지낸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을 갖기보다 야구를 즐기려 한다.

“야구선수? 험한 길이기에 반대했다”


▎유승안 경찰청 감독 집안은 대표적인 야구인 가족이다. 유 감독의 왼쪽은 LG 투수 유원상(장남), 오른쪽은 kt 내야수 유민상.
“내가 반대했다. 안 시키려고 했다. 프로야구선수로서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야구를 시키지 않으려고 정후가 어렸을 때 축구·쇼트트랙·골프 등 이것저것 시켜봤다. 그런데 야구를 제일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이종범 해설위원은 ‘바람의 아들’이다. 공격과 수비는 물론 빠른 발과 뛰어난 주루 감각으로 도루 능력까지 갖춘 ‘최고의 유격수’였다. 1993년 건국대를 졸업하면서 1차 지명으로 해태에 입단해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뒤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 진출했다.

2012년 3월 31일 은퇴할 때까지 통산 20시즌을 프로야구와 함께했다. 한국에서 16년 동안 1706게임에 나가 타율 2할9푼7리와 안타 1797개, 홈런 194개, 도루 510개를 기록했다. 일본에선 4년 동안 311경기에 나가 타율 2할6푼1리와 안타 286개, 홈런 27개, 도루 53개를 남겼다. 1994년 페넌트레이스 MVP, 1993년과 1997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아들이 자신과 똑같은 길을 가겠다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이종범이 스프링캠프를 떠난 사이 광주 서석초교 3학년인 아들 정후는 엄마와 함께 야구부 테스트를 받았다. “내가 해외훈련을 떠나고 없을 때 테스트를 받고 선수가 됐다.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애 엄마가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지 나는 뒤로 물러나 지켜만 봤다. 재미없으면 언제든 그만두라는 쪽이었다.”

이종범은 지금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야구 외적인 면에서 가끔 조언만 해줄 뿐이다. “야구를 처음 시킬 때부터 감독·코치에게 맡겼다. 프로에 입단한 뒤엔 더욱 그렇다. 기술적인 것이든, 체력적인 것이든 코칭스태프와 구단이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프로는 자기가 직접 경기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이정후는 아버지의 눈에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어린애다. 그러나 안타까워도 참고 기다린다. “프로 첫해 잘 적응하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정후에게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했다.”


▎박철우-박세혁 부자는 두산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때도 1군 멤버로 우승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아버지의 마음은 똑같다. 서로 표현법은 달라도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보내주길 바랄 뿐이다. 김상국은 조금 앞으로 당겨 앉았다면, 이종범은 살짝 뒤로 빠진 모양새다.

프로야구는 올해 36년째를 맞았다. 1982년부터 수많은 선수가 꿈과 희망을 찾아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려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원년 세대의 2세들이 성장해 프로선수로서 꿈을 키우고 있다.

유승안 경찰청 감독의 두 아들도 모두 프로야구선수다. 형 유원상은 LG 투수, 동생 유민상은 kt 내야수다. 박철우 두산 타격코치는 아들과 같은 팀에서 호흡하고 있다. 아들 박세혁이 백업 포수로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고 있다.

송진우 KBSN스포츠 해설위원도 두 아들이 프로에 입단했다. 형 송우석은 한화, 동생 송우현은 넥센 유니폼을 입고 있다. 넥센에는 이정후, 송우현 외에도 박종훈 한화 단장의 아들 박윤과 고(故) 유두열 전 롯데 코치의 아들 유재신이 뛰고 있다.

- 이창호 야구전문기자·스포츠평론가 river2000@naver.com

[박스기사] 켄 그리피부터 알로마까지 - 메이저리그의 부자(父子) 선수들


▎1. 칼 립켄 시니어(왼쪽)와 칼 립켄 주니어. 둘 다 볼티모어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2. 아버지 보비 본즈(오른쪽)와 아들 배리 본즈.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선 1903년 잭 도셔가 데뷔하면서 아버지 햄 도셔와 함께 최초의 ‘부자 선수’로 등록했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빅리그에서 활약한 경우는 100여 쌍이고, 현재 빅리그에서 뛰는 2세 선수는 40여 명이다.

로빈슨 카노(아버지 호세 카노), C.J. 크론(아버지 크리스 크론), 디 고든(아버지 탐 고든), 족 피더슨(아버지 스투 피더슨), 닉 스위셔(아버지 스티브 스위셔), 스콧 밴 슬라이크(아버지 앤디 밴 슬라이크), 제이슨 워스(아버지 데니스 워스) 등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타 부자(父子)’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전설로 남아 있는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와 아들 켄 그리피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활약한 아버지 칼 립켄 시니어와 아들 칼 립켄 주니어, 아버지 샌디 알로마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영웅인 아들 로베르토 알로마 등이다.

켄 그리피 시니어는 1970년대 신시내티 레즈 선수로서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1980년 올스타 때는 MVP까지 차지했다. 통산 19시즌 동안 안타 2143개와 타율 2할9푼6리를 기록했다.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선수가 바로 아들 켄 그리피 주니어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1 99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타였다. 통산 13차례 올스타와 10년 연속 골드글러브에 선정됐고, 4차례나 아메리칸리그(AL) 홈런왕에 올랐다.

1997년엔 AL MVP까지 차지한 중견수였다. 통산 24년 동안 홈런 630개(역대 6위)를 터뜨렸다. 2015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아버지 캔 그리피 시니어와 아들 켄 그리피 주니어는 199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함께 현역 선수로 활약한 최초의 부자였다. 그리고 9월 15일 ‘백투백 홈런’을 터트리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칼 립켄 주니어는 ‘철인’이다. 2632경기 연속 출전의 대기록을 세우고 은퇴했다. 1978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한 칼 립켄 주니어는 마이너리그 시절인 1981년 최장시간 경기를 경험하면서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연장 32회까지 2대 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새벽 4시7분에 경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2개월 뒤에 속개해 33회에 승패가 갈렸다. 칼 립켄 주니어는 1982년 홈런 28개, 타점 93개를 기록하며 신인상을 받았다. 몇 차례 위기도 있었다. 1985년 발목, 1993년 무릎, 1996년 코뼈를 다쳐 연속 경기 출전이 어려웠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그리고 1995년 9월 19일 빌 클린턴 대통령과 조 디마지오 등 많은 유명 인사의 축하 속에 루 게릭의 2130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경신하고 새 역사를 썼다. 칼 립켄 주니어는 1983년과 1991년 MVP에 올랐고, 19년 연속 올스타로 선정되는 등 스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아버지 칼 립켄 시니어도 ‘영원한 오리올스 맨’이었다. 선수를 시작으로 코치와 스카우트, 감독까지 36년이나 볼티모어에서 활동했다.

샌디 알로마 시니어는 2루수로서 메이저리그에서 15시즌을 뛰었다. 통산 타율 2할4푼5리와 홈런 13개, 타점 282개를 기록했다. 20년 이상 코치 생활도 했다. 알로마 시니어의 두 아들도 모두 빅리거로 성장했다. 첫째 아들 샌디 알로마 주니어는 포수로서 풀타임 첫해였던 1990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상과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알로마 가문’에서 가 장 유명한 선수는 둘째 로베르토 알로마다. 현역 시절 등번호인 ‘12번’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영구결번이 됐고, 2011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통산 10차례 골드글러브를 받았고, 통산 타율 3할과 안타 2724개, 홈런 210개, 도루 474개를 남겼다.

이 밖에 아버지 보비 본즈와 아들 배리 본즈, 아버지 세실 필더와 아들 프린스 필더 등이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부자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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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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