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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부평초 개구리밥 전성시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녹말 성분이 청정 생물연료로 쓰이면서 너도나도 기술 개발… 개구리밥은 가축(家畜)이나 가금(家禽)의 사료로도 제격

▎개구리밥은 다른 식물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
무논 물꼬를 틔우는 날에는 물위에 쫙 지천으로 깔려있던 개구리밥이 떼지어 논길물이나 도랑물 흐름에 몸을 맡겨 물살을 타고 잇따라 자르르 쏟아지듯 세차게 떠내려간다. 이렇게 바람 따라, 발길 따라 구름처럼 정처 없는 떠돌이인생을 뜻하는 부평초(浮萍草)는 물 따라 흐르는 개구리밥에서 비롯하였던 것. 이래저래 얼마 남지 않은 개구리밥인생을 알뜰살뜰 살다 가리라.

다시 말해 사람살이가 마치 물위에 떠있는 개구리밥과 같이 보잘것없고, 덧없이 떠돌이(부유, 浮遊)한다는 뜻으로 ‘부평초인생’이라거나 ‘부평초신세’라 한다. 이는 곧 부평초인 개구리밥이 마냥 플랑크톤처럼 떠돌아다니는 처지를 이르는 말로 수평(水萍) 또는 머구리밥이라 부른다. 여기서 머구리란 개구리의 옛말로 다이버나 잠수부를 일컫기도 한다.

개구리밥(Spirodela polyrhiza )은 개구리밥과의 한해살이풀로 학명(종소명)의 ‘poly ’는 ‘많다’, ‘rhiza ’는 ‘뿌리’란 뜻으로 뿌리가 많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뿌리가 식물체보다 길면서 치렁치렁 여럿 난 것을 개구리밥의 특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개구리밥(floating weed)은 잎줄기가 따로 분화하지 못해 몸 전체가 잎사귀 같으면서 관다발(유관속)도 없는 단순한 하등식물인 엽상식물(葉狀植物)인데 김이나 미역, 다시마 같은 바다풀도 엽상식물이다. 엽상식물에는 공기집이 있어 식물이 물위에 뜨고, 닻이나 추에 해당하는 뿌리를 늘어뜨려 뒤집어지지 않으며, 그것도 부족하여 연잎처럼 물이 묻지 않고 물방울을 튕겨버린다.

개구리밥은 둥글납작한 것이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도란형, 倒卵形)이고, 길이 5∼8㎜, 너비는 4∼6㎜남짓한 꼬마 식물로 한국에는 ‘개구리밥’과 ‘좀개구리밥’ 두 종이 있다.

여기에 먼저 좀개구리밥(Lemna perpusilla )특성을 조금 보탠다. 개구리밥과 좀개구리밥(duck-meal/minute duckweed)은 같은 개구리밥과로 우리말이름(국명)은 비슷하지만 학명에서 보듯이 둘은 다른 속(屬)에 속해서 서로 많이 다르다. 개구리밥이 얕은 논물에 주로 산다면 좀개구리밥은 호수처럼 수심이 깊은 곳에서 살고, 또 개구리밥은 식물체(엽상체)에 여러 개의 뿌리가 나지만 좀개구리밥은 한 개만 나며, 개구리밥은 전국에 나지만 좀개구리밥은 남부지방에만 산다.

다시 개구리밥으로 돌아와, 이들은 뿌리를 흙바닥에 박지 못하고 물위에 떠서 사는 부엽식물(浮葉植物)로 식물체의 아랫면 가운데에서 가는 뿌리가 여럿 나고, 그 뿌리로 물에 녹아있는 양분(비료성분)을 흡수하며,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논·연못·늪지에 산다. 우리나라 전국에 저절로 나서 살아가고(자생, 自生), 아시아·유럽·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남북아메리카의 온대에서 열대에 걸쳐 분포한다.

이 식물은 종자를 만드는 꽃식물(현화식물, 顯花植物, flower plant) 중에서 제일 작은 꽃을 피우는데 2개의 수꽃과 1개의 암꽃이 핀다. 흰색의 자잘한 꽃을 7∼8월에 간혹 피우나 터무니없이 작아서 찾아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실제로 꽃을 피우는 것이 드물다고 한다. 가을에 모체(母體)에서 생긴 작은 겨울눈(휴면아, 休眠芽)이 논바닥에서 겨울을 견뎌내어 이듬해 봄에 물위로 올라와 싹을 틔운다.

강장, 이뇨, 해독 기능도

타원형의 식물체(엽상체, 葉狀體)는 앞면(윗면)은 녹색이나 뒷면(아래)은 자주색이고, 2~5개의 개구리밥이 서로 마주보고 둥그렇게 붙어나며, 각각 뒷면 가운데에서 뿌리가 7∼12가닥이 나고, 뿌리가 나온 자리 옆쪽에 곁눈이 나와 새 식물체가 생긴다. 되 말하지만 여럿 엽상체가 서로 엉켜 달라붙어있더라도 전체가 개구리밥이 아니고 그 하나하나가 개구리밥이다.

그런데 이 개구리밥을 정말로 개구리가 먹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다 잘 알다시피 개구리는 풀을 먹지 않고, 살아있는 벌레를 먹는 육식동물이다. 그러므로 개구리는 개구리밥을 절대로 먹지 않는데도 엉뚱하게 ‘개구리밥’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는 개구리의 놀이마당인 무논에는 개구리밥이 한가득 나지 않는 곳이 없고, 떠들썩거리며 물을 휘젓고 다니던 개구리가 멀뚱멀뚱 뚱그런 눈알을 껌벅이며 머리를 물위에 쏙 내밀었을 적에 소소한 개구리밥이 눈가나 입가에 더덕더덕 붙는 것을 보고 우겨 붙인 이름일 테다.

우리는 개구리입가에 묻은 개구리밥밥풀을 보고 개구리가 개구리밥을 먹을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과학성이 뛰어난 서양인들은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봤으니 마땅히 오리가 달갑게 즐겨먹기에 거기에 걸맞게 ‘오리풀(duck weed)’이라 이름을 붙였다. 언뜻 보아 우리가 꽤나 감성적이라면 그들은 늘 이성적이다.

개구리밥은 관상용으로 키우고, 부레옥잠이 그렇듯이 비료 성분이 지나치게 많은 부영양화(富榮養化) 된 곳에서 인(燐)이나 질소(窒素)를 써서 광합성을 하기에 넘치는 영양물질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물에 산소도 공급한다. 하지만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서(다른 식물보다 2배 빠름) 어느새 물위를 한가득 덮어 물에 서식하는 곤충 따위를 못 살게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 그림자를 드리워 개구리나 작은 물고기가 노닐게 하고, 물의 증발을 줄이는 데도 한 몫을 한다. 또 단백질과 지방 성분이 많은 개구리밥을 걷어서 가축(家畜)이나 가금(家禽)의 사료로 쓴다.

세상사란 늘 연방 엎치락뒤치락, 오락가락하는 것. 보잘것없이 찬밥, 눈칫밥 신세로 괄시받고 왕따당하다시피 했던 개구리밥이 요새 와서는 애지중지 알짜배기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번식속도가 몰라보게 빨라 옥수수보다 대여섯 배 많은 녹말(starch)을 만들기에 거기에서 청정 생물연료(biofuel)를 얻으려고 나라마다 머리를 싸매고, 목을 맨다고 한다. 우리 한방에서는 7∼9월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 것을 강장·발한·이뇨·해독제들로 쓴다고 한다. 세상에 약이 되지 않는 푸 나무가 없도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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