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유광종의 한자 時評(7) 애로(隘路)]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길 

좁고 협소한 隘, 사람이 밟고 다녀 드러난 흔적 路… ‘코드’ 그림자에 잡히는 순간 애로의 구덩이에 빠진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한 등산객이 단풍이 절정인 산속 오솔길을 걷고 있다.
인생의 길에는 비바람이 잦다. 장애를 만나고, 때론 큰물 앞에 선다. 평탄한 길보다는 굴곡이 심하고 울퉁불퉁한 길에 몸을 올릴 때가 더 많다. 그래서 길에 관한 사고는 퍽 발달해 있다. 한자 세계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길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한자 낱말은 도로(道路)다. 앞의 道(도)는 조금 추상적이다.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首(수)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제법 있다. ‘머리로 헤아리는 길’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머리를 써서 헤아려야 하는 길이다.

이에 비해 路(로)는 좀 구체적이다. 중국의 고대 사전(事典) <석명(釋名)>은 이 글자를 ‘드러내다’라는 새김을 지닌 한자 露(로)로 풀었다. 사람이 밟고 다녀 ‘드러난’ 흔적, 그런 의미에서의 ‘길’이라고 본 셈이다.

길은 크고 넓어야 매력적이다. 통행이 자유롭고 사람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표적인 큰길은 탄탄대로(坦坦大路)다. 평탄하면서도 넓은 길이다. 성어 ‘강구연월(康衢煙月)’에 등장하는 康衢(강구)의 두 글자도 아주 큰 길이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성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길을 가리킨다.

煙月(연월)은 은은하게 내(煙)가 끼어 있는 상태에서 비추는 달(月)빛을 표현했다. 성어는 크고 넓은 길, 은은하게 비치는 달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쟁이 없어 평안한 상태라는 의미다. 衢(구)라는 글자에도 行(행)이 들어가 있는 점에 주목하자.

街(가)도 매우 큰 길을 가리킨다. 行(행)과 圭(규)의 합성 글자인데, 사전적인 풀이에 따르면 行(행)은 ‘가다’라는 새김 외에 ‘네갈래 길’의 의미가 있으며 圭(규)는 ‘평지’의 뜻이라고 한다. 평지에 네 갈래 길이 맞물려 있는 꼴이다. 일반적으로는 양옆에 민가와 상점 등이 즐비한 큰 거리를 가리킬 때 이 글자 街(가)를 썼다는 설명이다.

이 行(행)이라는 글자가 부수로 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글자가 여럿이다. 衝(충)이 그 한 예다. 이 글자는 원래 고대 싸움터에 등장했던 전차 중에서 가장 큰 것을 지칭했다. 그런 거대한 전차가 때리는(擊) 일이 충격(衝擊), 그 전차 다닐 만큼 크면서 중요한 길이 요충(要衝)이다.

길은 국가와 사회의 근간이다. 사람이 오가고, 물자가 오가며, 마소와 수레가 움직이며, 싸움이 붙어 군대가 이동하는 게 길이다. 이 길을 제대로 닦지 못하면 국가와 사회의 사람 움직임, 물자의 이동이 불가능하거나 크게 줄어든다. 그래서 옛 왕조에서는 이 길을 닦고 보전하는 데 국력의 상당 부분을 쏟았다.

은(殷 BC 16세기~BC 11세기)이라는 왕조에서도 벌써 그 길의 중요성을 알아챘던 모양이다. 왕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고 발굴 현장에서는 당시에 이미 토기의 파편을 이용해 단단하게 다진 길의 흔적이 나왔다. 그 뒤를 이은 주(周 BC 11세기~BC 5세기)나라는 그 도로에 관한 구획이 더 엄격했던 모양이다.

관련 기록을 보면 “길이 단단하고 화살처럼 쭉 뻗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아울러 수도에 해당하는 곳과 그 바깥의 교외지역 도로를 구분했다. 당시 도회지와 시골의 경계는 성벽으로 갈랐다. 성벽 안쪽을 國中(국중)으로 표현했고, 그 바깥을 鄙野(비야)라고 적었다. 아울러 그곳의 도로를 經(경), 緯(위), 環(환), 野(야)로 구분했다.

經(경)은 남북으로 낸 길, 緯(위)는 동서로 뻗은 길이다. 도회지 외곽을 두른 성벽을 따라 낸 길이 環(환)이고, 성벽 바깥인 지역의 길을 野(야)라고 적었다. 서양인들이 지구를 longitude와 latitude로 나눴고, 동양의 한자 세계 사람들은 이를 다시 왜 經度(경도)와 緯度(위도)의 한자로 번역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 바깥인 鄙野(비야) 지역의 도로에도 등급을 매겼다.

인사의 편파적 흐름은 우리사회의 고질(痼疾)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가 만나는 천안분기점 부근에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路(로), 道(도), 塗(도), 畛(진), 徑(경)의 순서다. 가장 작은 길인 徑(경)은 사람이 겨우 다닐 만큼 좁은 길, 畛(진)은 마소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그보다 큰 길이 塗(도), 다시 더 넓은 길이 道(도), 가장 큰 길이 路(로)였다고 한다. 이 길을 닦고 보전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匠人(장인)과 遂人(수인)이다. 요즘 건설교통부 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司空(사공)도 뒀다고 하니, 고대 왕조인 주나라가 길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진(秦)나라는 치도(馳道)로 유명했다. 달린다는 새김의 馳(치)가 말해주듯 거침없이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당시의 ‘고속도로’였다. 진시황이 머물렀던 함양(咸陽)의 아방궁에서 중국 전역을 향해 뻗어나간 도로다. 길을 보전하기 위해 이미 가로수도 심었고, 흙을 다지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장치를 부설했다고도 한다.

좁은 길을 일컫는 글자도 적지 않다. 앞에서 소개한 徑(경)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蹊(혜)와 徯(혜)가 있다.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오솔길 정도가 맞을 듯하다. 지름길을 한자어로 적을 때는 捷徑(첩경)이다. 가로질러 빨리 목표에 이르는 길이니 아주 좁을 것이다. 그래서 徑(경)으로 표현했다.

阡陌(천맥)도 좁은 길이다. 논이나 밭이 있는 시골지역의 작은 길을 가리켰던 한자다. 앞의 阡(천)은 남북으로, 뒤의 陌(맥)은 동서로 난 작은 길이다. 중국에서는 ‘낯설다’는 말을 陌生(맥생)으로 적는데, 원래는 작은 길을 걷다 마주친 생소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 그런 사람을 陌路人(맥로인) 또는 陌路(맥로)라고 적었던 데서 유래했다.

가급적이면 피해야 할 좁고 어두운 길이 있다. 애로(隘路)다. 이 말은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다. “애로사항 없어?”라고 물을 때다. 우리는 이런 길을 좋아하는 편인가 보다. 넓은 길 놔두고 좁고 험한 길에 들어 사람을 피하거나 남을 해치는 심보도 적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반사처럼 불붙는 정쟁이 이렇듯 그악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 인기가 좋다. 그러나 거듭 이어지는 인사의 편파적 흐름이 이제 눈에 띈다. 반복해서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고질(痼疾)이다. 이로써 참신한 개혁의 과제를 짊어진 새 정부가 다시 어둡고 음습한 애로에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차츰 고개를 들고 있다.

애로는 전쟁에 나선 군대가 가장 피해야 할 길이다. 진퇴(進退)를 아우르기 어렵고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좀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변수에 대응할 활력도 크게 떨어진다. 그 애로에 진입하지 않으려면 넓은 포용력이 우선이다. ‘코드’의 음침한 그림자에 붙잡히면 애로의 구덩이는 더욱 커져 우리사회를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만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07호 (2017.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