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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종교 이야기(15)]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신(神)에게 자궁만 빌려준 여인’으로 깎아 내릴 순 없어 

김환영 중앙일보 심의실장 kim.whanyung@joongang.co.kr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도 40억 명에게는 ‘신앙의 모범’… 예수 강조하기 위해 마리아 역할 축소했다는 주장도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가톨릭·동방교회 등에서는 성모(聖母) 또는 성모 마리아라고 존칭한다. 서울 명동성당의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한 신도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
“또 천사가 말하길 마리아여 하나님이 너를 선택하사 청결케 했으며 너를 모든 여성들 위에 두셨노라.” 이슬람 경전 쿠란의 제3장(Sura) 이므란 42절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슬람에서도 마리아는 특별한 존재다.

마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다. 전 세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신자 40억 명이 그들의 경전인 <신약성경>과 <쿠란>을 통해 마리아의 존재를 알며 신앙의 모범으로 삼는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교과 이슬람 역사의 전개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사도 시대(apostolic age)’부터 신자들의 공경을 받았다.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의 피난처였던 1, 2세기의 로마 카타콤바에도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원형이 발견된다.

서구 역사에서 마리아는 가장 많은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 된 여성이다. 마리아를 빼놓고 서양 음악사와 미술사도 논할 수 없다. 종교를 떠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구노의 ‘아베 마리아’나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듣고 뭉클해지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라도 오늘날 발현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없다. 마리아는 중요한 예외다. 마리아는 세계 곳곳에서 계속 ‘발현(apparition)’하고 있다. 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발현한 마리아는 ‘소련의 회심’을 예고했다.

5월 13일 프란시스코 교황은 마리아 발현을 목격한 프란시스쿠 마르투와 자신타 마르투 남매의 시성식을 거행했다. 일부 발현 사례는 교회를 당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상업적인 이유나 정신적인 문제, ‘이단’ 사례가 끼어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발현한 사례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2만 건이 넘는다.

역사적으로 마리아만큼 중요하면서도 생애가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드물다. 마리아는 신약성경의 4복음서에서 13번 나온다. 그의 인생을 성경과 역사학, 그리스도교의 전승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면 대략 이렇다.

12~13세에 결혼해 예수 출산한 듯

마리아는 아마도 갈릴레아에 있는 인구 1600명의 작은 마을 나자렛에서 출생했다. 마리아(당시 사람들이 부르는 말로는 미리암 혹은 마리암)는 당시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여성 세명 중 한 명의 이름이 마리아였다. 당시 풍습을 고려하면 마리아는 아마도 몇 달 혹은 1년 정도의 약혼 기간 끝에 12~13세에 결혼해 예수를 낳았다.

남편 요셉은 30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남성의 평균 수명이 45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요셉은 예수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 공생활(公生活)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당시 여성은 6명 정도의 자식을 뒀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에게도 ‘형제자매’가 있었다. 아우가 4명(야고보·요셉·유다·시몬), 여동생이 2명 이상 있었다. 그들을 마리아가 낳았는지, 요셉의 전처 소생들인지는 알 수 없다. 사촌형제들일 수도 있다.


▎브룩클린 예술박물관에서 열린 영국 작가들의 ‘센세이션 전시회’에 출품된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 영국 출신의 흑인화가 크리스 오필리가 그린 이 작품은 마리아를 흑인으로 묘사했다.
성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를 낳고 길렀으며, 예수가 행한 최초의 기적 현장(물을 포도주로 바꾼), 십자가의 현장, 성령 강림의 현장에 있었다. 예수의 ‘승천’ 이후 마리아가 나자렛으로 돌아갔는지, 예루살렘에 남았는지, 그리스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마리아를 애제자 요한에게 맡겼다. 예수의 ‘사망’ 당시 적어도 40대였을 마리아는 사도 요한과 더불어 지금 터키에 있는 에페수스로 갔을 가능성도 있다. 19세기 어떤 독일 수녀가 마리아가 살았던 집의 환영을 보았다. 수녀의 환영을 바탕으로 고고학자들이 마리아의 집과 비슷한 유적을 에페수스에서 실제로 발굴했다. 그 집을 마리아가 거처했던 곳으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리아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약간 풀어주는 것은 서기 145년께 집필된 외경(外經)인 <야고보 원복음서(Proto-Evangelium of James)>다. 이 문헌에 따르면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다.(평생 섹스를 한 적도 처녀막이 손상된 적도 없다는 뜻이다) 마리아의 부모들은 아주 늦은 나이에 마리아를 낳았다. 마리아는 성전(聖殿)에 바쳐져 성전에서 자랐으며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했을 때 홀아비였다. 예수의 형제자매들은 전처 소생이었다.

마리아에게는 수천 개의 호칭이 있다.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과 같은 것들이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다. ‘하느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나 ‘천주의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어 ‘테오토코스(Theotokos)’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의역한 말이다. 테오토코스는 ‘하느님을 잉태한 자’ ‘하느님을 낳은 자’라는 뜻이다.

에페수스 공의회(431)에서 확정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4~5세기 그리스도론(Christology)의 논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성질·인격·행위를 다루는 신학의 한 분야다. 그리스도교 일각에서는 21세기를 ‘성령의 세기’라고 부른다.(지금까지는 성자 하느님에 비해 성령 하느님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는 견해가 있다)

삼단논법에 의하면 ‘하느님의 어머니’


▎한복을 입은 마리아와 예수.
지난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 특히 초기 수백 년은 예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컸다. 예수는 하느님인가, 인간인가 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인가라는 논란에 주류 혹은 정통파 그리스도교가 내린 결론은 예수가 동시에 ‘100% 하느님이자 100% 인간’이라는 것이다.

삼단논법으로 전개하면 “예수는 하느님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스도교회 중 로마가톨릭·정교회·루터교·성공회에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일컫는다. 하지만 가톨릭이나 정교회가 마리아를 하느님으로 믿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톨릭·정교회 신자는 이단이다. 마리아는 피조물이다.

그리스도론에서 파생했다고 볼 수 있는 마리아론(Mariology)은 계속 새로운 교의를 낳았다. ‘동정녀 마리아 탄생설(Virgin Birth)’에 따르면 예수의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다. 요셉이 아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기 때문이다. 이 교의는 2세기께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사도신경’에 포함됐다. 오늘날 로마가톨릭·정교회와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가 믿고 있는 교리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 예수가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안겨 있다.
4세기 이후 보편화된 평생 동정녀설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했을 때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도 전 생애에 걸쳐 영원히 순결했다. 출산할 때도 고통을 겪지 않았다.

‘마리아의 평생동정(Perpetual Virginity)’은 649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의가 됐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도 지지한 교의지만 다른 종교개혁가들은 이 교의에 반대했다. 오늘날에는 로마가톨릭, 정교회, 일부 성공회와 루터 교회가 수용하고 있는 교의다.

루터는 루가복음서 1장 46~55절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讚歌·Magnificat)’에 대한 논문을 썼고 장 칼뱅(1509~1564)은 ‘수태고지(受胎告知·Annunciation)에 대한 설교를 했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관점은 16세기 종교개혁기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멀어진 요인으로 작용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도 가톨릭교회는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교의를 확정했다. 교회일치를 바라는 개신교 신자에게는 근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를 선포했다.

마리아는 잉태됐을 때 아담이 지은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5세기께부터 발전한 오랜 믿음이다.(초대 그리스도교회 사람들은 원죄가 섹스를 통해 후세에 전달된다고 봤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마리아의 승천(Assumption)’을 교의로 발표했다. 이 역시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믿음이다.

개신교회들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마리아 숭배(Mariolatry)’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한다. 상당수가 마리아의 ‘무염시태’나 ‘승천’에도 반대한다. 그들은 마리아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죄가 있는 죄인이라고 본다. 원죄는 없더라도 살아가면서 죄를 지었다고 본다. 죽은 후에는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마리아의 호칭 중에는 ‘평화의 여왕(Queen of Peace)’이라는 것도 있다. 마리아는 다문화 시대의 평화와 갈등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다문화 사회는 다종교 사회이기도 하다. 다문화 사회에서 이질적 그룹들의 접촉이 많아지면 종교와 관련된 접촉도 많아진다. 종교적으로 공통점이 많고 차이점이 적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점이 더 심각한 갈등을 부를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그리스도교는 교단이 달라도 대체적으로 공존 시대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관계다. 이슬람은 그리스도교의 ‘저작권’을 상당부분 인정했다.

쿠란에는 예수도 나오고 마리아도 나온다. 이슬람도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 마리아는 쿠란에 70여 회 나온다. 마리아는 쿠란에 이름이 나오는 유일한 여성이다. 한 이슬람 문헌은 네로 황제 시대에 요한과 마리아가 로마를 방문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역사상 태어났을 때 사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인간은 단 둘이다. 예수와 마리아다.

이슬람·개신교에서는 한 인간으로만 여겨


▎서울 명동성당은 성탄절 전날인 12월 24일 신부들이 아기예수를 말구유에 안치하는 예식을 한다. 요셉과 마리아가 갓 태어난 아기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이슬람은 선지자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존중하지만 예수와 마리아를 크리스천이 아니라 무슬림이라고 본다. 개신교는 가톨릭이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지만, 이슬람 입장에서는 예수 또한 인간일 뿐 ‘하느님의 아들’도 ‘성자(聖子) 하느님’도 아니다.

쿠란의 5장인 ‘마이다’의 116절을 보면 하나님이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네가 백성에게 말하여 하나님을 제외하고 나 예수와 나의 어머니를 경배하라 하였느뇨”라고 묻자 예수는 “영광을 받으소서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아니했으며 그렇게 할 권리도 없나이다”라고 답한다.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말도 있지만 종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에는 상대적으로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사이가 좋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사이가 나빴을 때는 마리아에 대한 나쁜 이야기가 유대교 공동체에서 늦어도 3세기부터 6세기까지 생산·유포됐다. 그중에는 판테라라는 유대 병사가 직업이 미용사였던 마리아를 강간해 낳은 자식이 예수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문화 사회에서는 종교와 페미니즘도 상호작용을 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와 페미니즘이 만나는 현장에도 있다. 전통 사회에서 마리아론은 이중적인 역할을 했다. 마리아는 부권사회에서 억압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독일어 표현을 쓰자면 여성이 해야 할 일과 있을 곳은 ‘Kinder, Küche, Kirche(아이들, 부엌, 교회)’로 요약됐다. 마리아는 육아와 신앙의 모범으로 제시됐다. 마리아의 순종과 정결성은 웬만해선 도달하기 힘든 족쇄였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서구 문명이 마리아를 악용해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타당한 주장이지만 마리아는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는 기능도 했다. 2세기에 활동한 신학자 에이레나이오스는 이브와 마리아를 대비시켰다. 하느님을 거역한 이브(하와) 때문에 인류가 타락했으나, 하느님에 순종한 마리아 덕분에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세계의 다른 문명권 지역에 비해 유럽·미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것은 마리아의 공로라고 주장한다. 1980~90년대 일부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는 성령을 여성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를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마리아와 세상의 만남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도교와 이방 종교가 만났을 때 마리아는 이방의 여신들을 ‘흡수’하는 ‘수단’이었다.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 이후에도 마리아는 현지 사람들과 만났다.

여성들 지위 향상의 ‘견인차’


▎경북 울진군 근남면에 소재한 천연기념물 제155호 성류굴. 굴 안에는 성모 마리아를 닮은 종유석도 있다. / 사진제공·울진군청
마리아를 억압받는 모든 이의 어머니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당시 유대 사람들은 3 곳에 세금을 내야 했다. 로마가 세운 꼭두각시 왕, 로마, 그리고 종교 엘리트들에게 였다. 로마는 걸핏하면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우리는 마리아와 함께 그의 배필 요셉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처녀가 임신을 하면 오늘날에도 상당한 문제가 된다. 요셉은 하느님을 믿었고 마리아를 믿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마리아 위상의 강화와 축소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일반인은 감지하기 어려운 기류가 있다. 교회가 예수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마리아의 역할을 축소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가톨릭이 마리아를 예수와 ‘공동구원자(coredeemer)’라고 도그마로 확정해 내세우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개신교 측의 시각을 불식할 필요가 있었다.

현대 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 ‘눈치’를 본다. 오늘날 상당수 가톨릭 신학자는 마리아가 예수 외에 다른 자식들을 낳았다는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이끈 야고보는 예수의 친동생이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리아는 많은 논란을 부르는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창시하면서 당시 아랍인들이 믿던 360명의 ‘잡신’을 소탕했다. 그중에는 예수와 마리아도 포함됐다. ‘껄끄러운’ 존재지만 이슬람은 일신교의 역사에서 마리아를 지울 수 없었고 쿠란에서 비중 있게 다뤘다.

그 어떤 그리스도교 교회·교단이건 마리아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다. 예수 탄생을 위해 ‘신(神)에게 자궁만 빌려준 여인’으로 깎아 내릴 수 없다.

김환영 -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외교부 명예 정책자문위원. 단국대 인재 아카데미(초빙교수), 한경대 영어과(겸임교수), 서강대 국제대학원(연구교수)에서 강의했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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