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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치] 중국과 일전(一戰) 벼르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트럼프와 리버럴 미디어 간 전쟁의 ‘배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트럼프 통해 구현되고 있는 극우 보수주의 사상의 전도사… 미국의 번영과 미래 위해 전쟁과 대혼란 기꺼이 감수할 수도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왼쪽)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의 보수적 세계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유력.’

7월 11일, 미국 전역에 브레이킹 뉴스로 보도된 백악관발 소식이다.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재닛 옐런 Fed 의장 후임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경제 참모가 물망에 오른다는 얘기다. 연방준비제도는 연방은행 이자율을 비롯한 거시경제를 총괄하는, 은행의 은행이다. 말 한마디가 글로벌 경제로 직접 연결되는, 사실상 세계 경제 대통령 자리다. 선임될 경우 40년 만에 이뤄지는 비경제학자 출신 의장이라고 한다.

기사를 접하는 순간 두 가지 사항이 떠올랐다. 먼저 골드만삭스 파워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글로벌 금융서비업의 황제 격인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허리에 해당된다. 글로벌 IT기업 구글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백악관 내 핵심이었던 데 비해 뉴욕 출신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를 적극 활용한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디나 파월 백악관 경제담당 선임보좌관이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게리 콘은 골드만삭스 사장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까지에 오른 골드만삭스의 화신 그 자체다. 이론보다 글로벌 실물경제에 정통하다고 보면 된다. 백악관과 월스트리트 나아가 세계경제로 곧바로 연결되는 파이프인 셈이다.

둘째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파워다. 정책 전문 전략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트럼프의 오른팔이다. 딸인 이방카와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도 트럼프의 핵심 참모이기는 하다. 차원이 다르다. 이방카와 쿠슈너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는 있지만, 전략·전술을 요구할 경우 배넌이 한 수 위다. 피가 물보다 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진할 경우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이방카 부부가 정이 통하는 가슴이라고 할 때, 배넌은 차가운 머리다. 게리 콘이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간다는 것은 배넌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한다. 게리 콘을 백악관으로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배넌이기 때문이다. 배넌 그 자신이 바로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7월 초 문재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당시 필자가 눈여겨 본 것은 두 가지다. 이방카 부부와 배넌이 문 대통령 방미 도중 어떤 접촉을 가질까 하는 부분이다. 한국 신문을 보면 관련된 정보가 전혀 없다. 현장에 없었기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접점을 갖지 못한 듯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문 당시에는 어딘가에서 반드시 등장했던 인물들이지만, 한국과는 별로 연을 맺지 못한 듯하다.

사실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은 너무도 부적절한 시기에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배넌, 이방카 만나지 못한 이유


▎미 행정부의 실세 그룹 게리 콘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내정자(왼쪽부터 시계 방향)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회담 성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필자의 판단에는 잘한 것도 없지만,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 50점짜리 방문이다. 그러나 방문 시기를 좀 더 잘 잡았더라면 결과도 훨씬 좋게 나타났으리라 믿는다.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기간은 6월 29일 목요일과 30일 금요일이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바로 직전이다. 이 기간에는 워싱턴이 텅 비는 시기다. 독립기념일을 기준으로 이미 수일 전부터 거리 전체가 유령도시로 변해간다. 여름휴가를 겸해 보통 1주일, 많게는 2주일 단위로 쉬기 때문이다. 백악관·연방정부·의회·미디어·싱크탱크·NGO 관계자 모두가 대략 6월 말부터 개점휴업이다. 워싱턴의 일상이지만, 금요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전만 일한다. 국회의원이나 행정부 고위관리 같은 사람들은 그 이전에 이미 휴가에 들어간다.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은 이 같은 휴가 시작 기간 중에 이뤄진 것이다. ‘운 좋게’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만났지만, 방문기간을 조절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을 폭넓게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독립기념일 직전에 미국 방문을 서둔 점은 이해가 간다. 독일 G20 정상회담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서 처음으로 트럼프를 만나기보다 일찍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교훈으로 삼아야겠지만, 차후에는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선거운동 중에 워싱턴 방문 시기를 타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방카 부부와 배넌이 안 보인 것은 그 같은 여름휴가라는 배경 아래 이해될 수 있다. 이미 워싱턴을 떠났거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느라 접점이 없었다.

배넌은 이방카 부부보다 한층 더 아쉽게 생각되는 인물이다. 어떤 식으로든 한국 정부가 배넌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필자는 배넌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클린턴 대통령 당시의 정치 참모 딕 모리스와 일한 적이 있다. 백악관에서 정치 참모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딕 모리스를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정치에서의 배넌의 역할은 엄청나다. 딕 모리스는 물론, 이후 부시 대통령의 정치 참모인 칼 로브도 ‘새 발의 피’쯤으로 여길 만큼 트럼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배넌과의 관계를 틀 경우 한반도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히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배넌에게 한국 측 의향을 정확하게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북한 핵 관련 최악의 시나리오인 전쟁도 막아낼 수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일찍 통로를 만들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다.

한국에 전해지는 배넌의 이미지는 ‘악의 화신’으로 느껴진다. 이슬람과 히스패닉 추방에 앞장서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이 배넌이 가진 일반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미국 미디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들자면 아마 1위가 트럼프, 2위가 이방카 부부, 3위는 배넌일 듯하다. 무슬림이나 히스패닉의 경우 배넌을 이방카 부부보다 한층 더 증오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배넌의 이미지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 관점이다. 한국인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호감도나 지지 여부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란 자리가 갖는 의미다. 이라크·시리아·리비아·아프가니스탄에서 보듯, 나라 하나쯤은 간단히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 위치다. 배넌은 그 같은 사람의 머리를 지배하고, 통치 철학을 제공해낸 장본인이다. 배넌의 아바타가 트럼프인 셈이다.

해군-골드만삭스-영화산업-선거로 이어진 배넌의 행보


▎6월 30일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배넌이 트럼프의 브레인이 된 것은 그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필자가 아는 워싱턴 유명인사 가운데 배넌만큼 다채로운 분야에서 뛰어난 결과를 배출해낸 인물도 드물 듯하다. 가톨릭은 배넌의 출발점이다. 1953년생 아일랜드계로 평범한 중산층 출신이다. 보통 미국인 모두가 그러하듯, 스스로 학비를 벌면서 공부한 인물이다. 2007년 한국계 청년에 의해 32명이 학살된 버지니아공대에서 공부했다. 이후 해군에 들어가 전함 장교로 일하다가, 펜타곤 해군상황실에서도 근무한다. 7년간 군에 있으면서 조지타운대 외교학스쿨과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다시 공부한다. 늦게라도 자기계발에 나선, 전형적인 노력형이다. 군대를 마친 뒤 골드만삭스로 들어가 뉴욕에서 기업합병 전문가로 나선다. 1987년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현지 총책임자로 합병업무를 계속한다.

1990년 배넌은 골드만삭스에서 독립해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한 투자회사를 차린다. 사실상 골드만삭스와의 관계를 전제로 한, 사외 벤처에 해당되는 기업이다. 영화와 미디어에 대한 투자가 주된 영역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영화 관계자들과 친분을 맺는다. 골드만삭스를 배경에 둔, ‘돈줄’로서 모두가 선호하는 명사가 된다. 무려 18개 영화에 투자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워싱턴에서 배넌만큼 할리우드에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배넌은 로스앤젤레스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접하게 된다. 미국 내 리버럴들이다. 할리우드가 철저히 리버럴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리버럴 할리우드가 미국 사람, 나아가 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판단한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가톨릭 세계관은 반(反) 할리우드 정서의 근간이기도 하다.

배넌은 직접 다큐멘터리에도 손을 댄다. 리버럴 영화의 정반대편에 선, 미국의 힘과 비전을 찬미하는 영화가 주된 테마다. 레이건 대통령을 찬미한 영화 은 그중 하나다. 미국 리버럴이 보는 레이건의 이미지는, 한국인의 박정희·이승만 정도에 비견될 수 있다. 배넌은 곧바로 우익인사로 떠오른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본격화된 티파티(Tea Party)운동에도 적극 나선다. 한때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세라 페일린의 측근으로 일하기도 한다.

배넌은 어느 틈엔가 21세기 보수주의 운동의 선봉이 된다.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정치활동에도 손을 댄다. 할리우드 보수주의 운동의 선봉이던, 앤드루 브레이트발트(Andrew Breitbart)가 운영하던 정치 사이트다. 배넌은 브레이트발트에 대한 투자에 나선다. 그러나 2012년 갑자기 앤드루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얼떨결에 그가 운영하던 정치 사이트 브레이트발트(www.breitbart.com)를 떠맡으면서 인터넷 보수주의 활동 최전선에 나서게 된다.

배넌은 정치활동의 무대를 할리우드에서 워싱턴으로 옮긴다. 영화업계에서 익힌 유형·무형의 노하우와 기술을 총동원해 워싱턴발 브레이트발트로 업그레이드한다. 오바마 의료 개혁에 대한 맹점과 오바마 출생지에 관한 부정적인 정보를 미국 전역에 퍼뜨린다. 브레이트발트는 미국 내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주된 무대로 부상한다.

워싱턴의 상식과 동떨어진 이단아의 전략


▎뉴욕증권거래소 장내에 자리 잡은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트레이딩 포스트 모습.
2016년 8월은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던 시기다. 배넌은 트럼프 캠프의 최고 참모로 영입된다. 이미 극우 보수주의 운동의 중심이던 브레이트발트는 곧바로 트럼프 지지 선전대로 바뀐다. 원래 트럼프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지명도나 올리는 수준에서 끝낼 것으로 전망됐다. 배넌 영입 이후 극우 보수주의자들로부터의 폭발적 지지를 통해 당선 문턱에 성큼 다가선다.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무슬림, 히스패닉에 대한 발언은 이후 트럼프가 던지는 주된 메시지로 자리 잡는다. 이미 수년 전부터 배넌의 브레이트발트를 통해 극우 보수주의자들에게 퍼져 나갔던 생각을 트럼프가 재생한 것에 불과하다.

동부 뉴욕과 서부 로스앤젤레스를 무대로 하고, 하이테크 출신으로 전함과 펜타곤을 오간 해군전략가, 골드만삭스 투자가와 영화제작자, 인터넷 정치활동과 보수주의 운동가에 이르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가 바로 배넌이다. 동부와 서부, 디지털과 아날로그, 군과 비즈니스,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만능형 지략가가 바로 배넌이다. 사실 정치로 먹고사는 워싱턴에서 그와 같은 전방위 대응 소유자는 극히 드물다. 한국에서 말하는, 소위 책상형 ‘먹물’이 워싱턴의 대세다. 트럼프가 그러하듯, 배넌도 워싱턴의 상식과 동떨어진 이단아다.

배넌의 남다른 능력은 다채로운 경력과 뛰어난 결과에 그치지 않는다. 돌발적 행동이나 일회성 슬로건이 아닌, 시대와 미래를 내다보는 사상적 체계가 튼튼하다. 트럼프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극우 보수주의 사상의 전도사가 바로 배넌이다. 그는 극우 보수주의를 믿고, 구체화해 나가는 사상범이자 확신범이다. 트럼프가 앞장서 주창하고 있지만, 사실 극우 보수주의의 출발점은 거의 대부분 배넌이다. 미래학 서적 <제 4의 전환(The Fourth Turning)>은 배넌의 세계관, 나아가 트럼프의 정치관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아직 출판이 안 됐지만, <제4의 전환>은 21세기 사상사, 나아가 미래 관련 필독서에 해당된다. 1997년 미국에서 출간된 윌리엄 스트라우스(William Strauss)와 닐 호위(Neil Howe)가 함께 만든 것으로, 세대론 분석에 기초한 역사서다. 단순히 과거사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미래에 관한 예측도 가능케 한다.

다소 복잡하지만, 책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1. 역사는 세대론에 기초해 대략 10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는 4개의 사이클로 나눠져 움직인다.

2. 미국 역사의 경우 크게 세 개의 주기를 맞이했다. 18세기 독립전쟁, 19세기 중반 남북전쟁과 뒤 이은 대복구사업, 20세기 중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그 증거다.

3. 세계대전, 경제공황과 같은 혼란과 시련은 새로운 주기로 나가기 직전에 불어닥치는 필연적 과정이다. 혼란과 시련 없이는 새로운 주기의 탄생도 없다.

4. 현재는 4번째 주기가 탄생하기 직전인 전환기다. 과격 무슬림의 창궐, 월스트리트발 경제 혼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그 같은 증거들이다.

“5∼10년에 중국과의 전쟁 불가피” 주장


▎백악관 실세 스티브 배넌(왼쪽)이 보수주의 사상의 바이블로 활용하는 책 <제4의 전환(The Fourth Turning)>. / 사진:유민호
배넌은 현재 미국이 제 4주기로 나가기 직전의 전환기에 들어서 있다고 믿는다. 종교·군사·경제만이 아니라 리버럴에 의한 미국적 가치의 붕괴도 새로운 주기로 나아가는 증거라 확신한다. 극우 보수주의운동의 목적은 미국을 퇴락시키는 리버럴 운동을 확실히 잠재우는 데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리즘, 지구온난화에 반대하고, 무역자유화와 이민자에 대한 나약한 정책의 전면적인 수정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피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싸워서 이겨야만 희망적인 제4의 주기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배넌은 앞으로 5년이나 10년 내에 중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2016년 트럼프 캠프에 들어가기 직전 인터뷰를 통해 밝힌 소신이다. 남중국이 전쟁무대가 될 것이라 말한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를 거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필자는 중국을 대하는 배넌의 전망이 결코 황당한 얘기라고 보지 않는다. 잘 알려진 대로 시진핑은 오는 10월 5년 임기의 주석직을 승계할 전망이다.

제2기 주석직을 맞아 시진핑은 나름대로의 국가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경제성장도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시진핑이 제시할 미래는 너무도 분명하다. 대만(臺灣) 통일 문제다. 이미 시작된 남중국해 영해 문제와 더불어 대만에 대한 호전적 정책이 시진핑 2기를 맞아 본격화될 것이다. 미국은 대만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으로 이어지는 해상라인(Sea Line)인 동시에 아시아 무역으로 이어지는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당시 배넌은 제4의 주기는 거론하지 않았다. 필자는 혼란이나 전쟁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100년 주기론이 중국전쟁 필연론의 근거라 확신한다. 물론 펜타곤 근무를 포함한 해군 전략가로서의 경험에 기초한 역사관이기도 하다. 배넌은 리버럴과의 전쟁은 물론 중국, 북한과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인물이다. 19세기 중엽 대복구와 20세기 중엽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이 그러하듯, 새로운 시대의 번영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전쟁과 대혼란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그 같은 배넌의 생각을 적극 지지하고 따르는 인물이다. 문 대통령과의 회담 직후인 7월 초, 함부르크 G20 회담 직전 트럼프가 찾아간 곳은 폴란드다. 대통령이 된 후의 첫 방문국이다. 폴란드는 역사적 시련이란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비슷한 처지의 나라다. 단일민족, 단일 언어, 단일 문화라는 점에서도 한국에 비견될 수 있다. 유럽에서 폴란드는 정통 가톨릭 국가인 동시에 반(反)러시아, 반(反)이민 국가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트럼프는 폴란드를 “유럽 문명의 중심에 선 국가”라고 극찬한다. 반이민, 크리스천, 순수 유럽, 단일 문화가 트럼프의 생각과 맞아 떨어진다. 트럼프는 방문 기간 중 신앙 고백에 준하는 발언을 공표한다. “서방 문명은 전체주의 세력에 의해 약화되고 있다…. 서방은(The West) 개인에 기초한 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신을 염두에 둔 법의 지배라는 위대한 문명적 사고를 지켜나가야 한다.”

트럼프는 중국·러시아와 같은 독재국가, 이란과 같은 종교 국가를 염두에 둔 서방의 가치와 의미를 유럽 동부 최전선 폴란드에 강조한다. 서방의 가치에 준하지 않을 경우 비문명 야만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란 관점에서의 시대관이다. 과거의 폴란드가 그러했듯이, 서방적 가치를 반드시 지켜나가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트럼프의 연설은 배넌이 믿는 제4의 전환에 대비한 마음자세다. 세상을 문명의 충돌로 해석하는 트럼프의 세계관이 리버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배넌과 트럼프가 인종차별 극우 파시스트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수주의 대변하는 전사로서의 대통령


▎지난해 10월 제주 북쪽 해상을 항해 중인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갑판에서 미 해군 관계자들이 임무 수행으로 분주하다.
배넌의 세계관은 폴란드 방문 직후인 7월 초 함부르크 G20 회의를 통해서도 확연히 나타났다. 한국 신문·방송을 보면, 함부르크 회의는 G19+1로 해석되면서 트럼프 왕따를 핵심으로 다룬다. 사실은 정반대다. G19가 미국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 독주하면서 나머지 19개 나라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도록 만든 것이 올해 G20의 실상이다. 미국을 비난하면서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없는 세계 질서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G20 회의장의 분위기다. 독일·중국, 중국·러시아, 프랑스·EU가 손을 잡는다고 해도 최우선 결론은 미국과의 관계강화다. 트럼프는 G19와의 관계 전체에 목매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만을 외치며 회의를 끝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추종하는 나라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트럼프 생각이다. 흥미롭게도 그 같은 트럼프의 ‘독선’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한 인물은 1977년생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정상회의 촬영 당시 일부러 트럼프에게 달려가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으면서까지 애교를 부린 인물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트럼프와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선 인물이다. G20 결과는 미국 고립, 독일 부상, 중·러 협력이 아니다. 미국이 빠진 세계의 불확실성이 최종 메시지다.

배넌의 세계관과 활동 내용은 한국 보수주의 운동에 대한 모델이자 경종이 될 수 있다. 정확히 말해, 트럼프는 정통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마이너리티 이민자에 대해 차별적 발언은 보수주의 이념에 어긋난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통 보수주의가 갖지 못한 무기이자 장점 하나를 갖고 있다. 기꺼이 싸우겠다는 의지다. 현재 트럼프의 정책은 자신을 지지해준 보수주의자에 맞춘 것이다. 리버럴은 안중에도 없다. 따라서 절반을 위한 대통령이란 비난도 들린다.

그러나 리버럴의 요구에 맞출 경우 어정쩡하게 되기 십상이다. 트럼프는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전사로서의 대통령에 만족한다. 배넌은 그 같은 이념적 근거를 제시한다. 사실 21세기 정치무대에서 싸우고, 싸울 의사를 가진 보수주의는 극히 드물다. 트럼프, 나아가 배넌과 이방카 부부, 트럼프 주변 인물들 모두가 거의 매일 미디어로부터 공격받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제4의 주기에 앞선 전환점에서 트럼프와 리버럴 미디어는 마치 전쟁을 벌이듯이 서로를 공격한다. 익숙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광경이지만, 트럼프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될 상황이다. 오해나 호도되지 말아야 할 부분은 트럼프 탄핵에 관한 것이다. 리버럴 미디어의 바람이나 과장일 뿐, 실제 상황과 엄청난 거리가 있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트럼프에 대한 탄핵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현재의 한국 보수주의 흐름을 보면 배넌과 같은 인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재기 불능으로 판단된다.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현실적 전사다. 한국 보수주의의 부패와 무능, 리버럴의 무식과 시대착오는 한국정치의 민낯이자 비극이다. 그러나 싫든 좋든 양 날개는 필요하다. 현명한 리버럴과 깨끗한 보수주의의 동거만이 한국의 미래를 밝힐 것이다. 극우로 몰아세우면서 비난하기는 쉽다. 트럼프와 배넌이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를 냉철히 분석해보면, 북한 핵과 관련된 한반도의 미래는 물론 한국의 보수주의 나아가 리버럴의 내일도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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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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