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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文 정부 탈원전 정책 걸림돌은? 

비용부담 국민 설득, 백업설비 확충이 관건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태양광·풍력은 가격·효율 측면에서 아직 대체에너지로 미흡… 독일·스위스는 전기료 인상 등 국민 공감대 있어 가능, 탈원전 추진 속도조절해야

▎울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 4호기(왼쪽) 옆에 공사 중이던 5, 6호기 건설 현장 모습. 정부는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발표했다. / 사진:송복은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밀도의 에너지 사회를 건설한 나라다. 단위면적당 에너지사용량, 전력설비 그리고 원자력설비가 가장 큰 상태다. 이는 우리의 산업과 일상이 엄청난 ‘에너지 대식가’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에너지부존량이 사실상 전무한 나라다. 국내 자원은 쓰레기를 소각해 나오는 열에너지와 약간의 수력에너지 정도다. 이 때문에 한국의 에너지 수입액은 전체 수입액의 30% 수준에 육박한다.

한국은 유난히 에너지와 관련한 사회적 갈등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밀양 사태, 부안 사태 등의 갈등이 에너지 문제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한국은 인접국과의 에너지 협력이 불가능한 ‘에너지 섬’이라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이 밖에 전력망의 기술적 특성상 전국 단위의 블랙아웃에 대한 취약성이 크다는 점도 심각하다. 전기에너지의 블랙아웃은 모든 인프라를 일거에 붕괴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이처럼 한국의 에너지시스템은 상당히 취약하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탈석탄이라는 공약을 속도감 있게 실천하고 있다. 탈핵 관련 공약의 주요 내용은 원전사고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신규 원전 전면 중단(신고리 5, 6호기 포함) 및 40년 후 원전제로 국가 체제를 갖춘다는 탈원전 로드맵의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9일 부산에서 열린 고리 1호기 퇴역 기념행사에 참석해 탈원전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의 전면 백지화, 원전 설계수명 연장 금지, 월성 1호기의 가급적 조기폐쇄 등이다. 특히 신고리 5, 6호기는 안전성과 공정률, 투입비용, 보상비용, 전력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른 시일 내에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공식화함에 따라 이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다소 과열 현상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어떤 연료로 국민경제를 지탱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비로소 시작되고 있다는 데 오히려 의미가 있다.

탈원전 정책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한국의 원자력발전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한국의 원자력에너지는 의외로 긴 역사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한·미 간의 원자력 협력 프로그램에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원자력은 사실상 자주적 자원으로서 낮은 전기요금의 유지와 함께 유가변동에 대한 안정성을 제공해왔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 수준도 상당하다. 원자력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와 기술, 건설운영 기술 등을 국산화함으로써 다른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게다가 발전소의 대단지화, 짧은 송전선, 안정적인 수요처 등의 여건이 맞물리며 우리나라 원자력은 특별히 낮은 발전단가를 보이고 있다. 한편 원자력은 미세먼지와 CO2를 배출하지 않아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문제에 있어 절대적인 우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업계는 그동안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의 치명적인 요소들도 존재한다. 사용 후 핵연료와 안전사고 문제가 그것이다. 연소한 핵연료는 다양하고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을 생성하며 수만 년 동안 꺼지지 않고 방사능을 배출한다. 가장 오래가고 위험한 문명의 쓰레기이기도 하다. 사용후 핵연료의 중간저장 및 최종 처분장의 확보는 굴업도·부안 사태 등을 겪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갈등사례로 남아 있다.

온실가스 37% 감축 약속 지켜질까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영구정지 버튼을 누르고 있다. 고리 1호기 폐쇄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신호탄이다. / 사진:연합뉴스
10여 년 후부터 원전 자체의 사용후 핵연료 수용능력이 포화되기 시작해 원자력발전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법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공론화했고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새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재공론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원자력이 갖는 경제성의 장점에 대한 회의론까지 대두했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도 경주 지진 이후 원자력 안전에 대한 우려가 현실적 문제로 다가왔다. 이러한 피해 비용과 폐로 비용을 미리 발전단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환경단체와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경우 원자력의 경제성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부울(부산·울산) 지역의 원전단지는 또 다른 특수성이 있다. 부산 지역의 원전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만약 부울 지역에 원자력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인적 피해 비용도 천문학적이겠지만 물류 중심의 이 지역 경제권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고리 5, 6호기의 처리가 복잡한 것이다. 원자력은 자주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임에는 분명하나 이같이 회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갖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원전 안전 이슈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이를 추진하는 데는 많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우선 탈원전이 에너지 수급에 미치는 영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원자력은 발전량 기준 3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싼 에너지로서 석탄과 함께 기저전력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2030년까지 배출예상량 대비 37%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 이는 원자력의 확대가 전제된 수치다. 만약 탈핵과 함께 온실가스 37% 감축 목표 달성을 추진한다면 석탄 발전의 대폭적인 추가 감축이 불가피하다. 다시 말해 탈핵은 탈석탄과 공동운명체로 연계돼 있다는 얘기다. 현 시점에서 탈원전의 기조는 탈석탄과 연동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연료를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탈원전을 위해 LNG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원자력은 발전원가에서 연료비 비중이 10%에 불과하다. 반면 LNG는 연료비 비중이 90%에 달하고 이를 전량 수입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LNG 수입국인 우리나라가 LNG 비중을 더욱 늘릴 경우 전기요금 인상 등 국민의 비용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행으로 인해 향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LNG 수요가 증가할 경우 에너지 안보도 위협받을 수 있다.

환경단체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그 대안으로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현재 신재생에너지는 태양광·풍력을 중심으로 기술개발이 추진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는 가격과 효율 측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 신재생에너지는 날씨에 의존하기 때문에 백업 전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한다고 해서 기존 설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큰 나라들이 전력 계통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발전설비를 충분히 확보(설비 예비율 120~170%)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현재의 뜨거운 논쟁은 모두 5년 후 혹은 10년 후 설비에 관한 얘기다. 문제는 지금 당장의 ‘에너지믹스 조정’(사용하는 주요 에너지를 어느 하나가 아닌 여러 종류로 적정하게 조정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지금의 논쟁으로는 현재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있는 가스발전, 열병합발전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신고리 5, 6호가 취소돼도 가스·열병합 발전과 같은 분산형 전원은 5년 이내에 상당수 고사하거나 좀비화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가 우려하고 있다. 시장제도의 빠른 개선을 통해 현재의 믹스를 정상화하는 것이 오히려 시급하다. 이미 구축한 설비를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운영하고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오히려 현실적이며 시급하다.

갈등-논란 끝에 탈원전 공감대 형성한 독일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앞바다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침수됐다. 이 사고로 전원 및 냉각 시스템이 파손되면서 핵연료 용융과 수소 폭발로 이어져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사고 8개월 만에 언론에 공개된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오른쪽).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최근 반핵단체들은 독일의 탈핵 정책 사례를 자주 언급한다. 독일은 어떻게 탈원전 정책이 가능했을까. 독일 사회는 전후부터 반핵에 대한 상당한 공감대가 있었다. 독일은 1970년대 중반부터 반원전 시위와 방폐장 건설 문제가 대두되면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원전에 대한 회의적 여론이 급격히 높아진 것은 1979년 TMI 원전사고(미국 스리마일섬에 있던 원전에서 핵분열 연쇄 반응이 일어나는 노심 구조물이 녹아내려 발전소 직원과 지역 주민 등 10만여 명이 대피한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직접 계기다.

높아진 원전 반대 여론을 등에 업고 1998년에 집권한 독일의 사민당·녹색당 연립정권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09년 보수 성향의 메르켈 정부가 집권하기 전까지 기존의 탈원전 정책은 유지됐다. 메르켈 정부 등장 이후 독일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원전의 가동 연한 연장 등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여론은 다시 악화됐다. 독일 정부는 원자력 정책에 관해 3개월간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가동 원전 17기 중 1980년 이전에 건설된 원전 8기의 운영을 즉시 중단했다. 또 안전한 에너지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원자력발전 방향에 관한 심층 논의를 추진했다. 2개월간의 논의 끝에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정지하는 탈원전 정책을 확정한다.

이처럼 탈원전 정책 추진의 대표적 국가인 독일도 지난 십수 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특히 정책 전환 과정에서 지나친 전기요금 상승을 놓고 갈등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독일은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미 수백만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에너지정책 전환을 계속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독일이 에너지 전환의 모범사례인 것은 분명하다. 반면 독일은 이러한 전력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다시 말해 신재생에너지 변동성 문제에 대비하려고) 설비 예비율이 100%를 상회한다.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 분담금이 증가해 가정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2.3배, 한국의 약 3.6배 수준이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오랜 기간 갈등과 논쟁 등을 거치며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부담을 지는 것이 가능했다.

탈원전의 모델로 일각에서는 대만 사례를 들기도 한다. 대만은 거의 완공 단계에 있던 원자력발전소를 과감히 폐쇄했다. 그러나 대만의 원전 발전량 비중은 약 15%다. 한국에 비해 원전 의존성이 절반 수준으로 낮아 사정이 많이 다르다. 게다가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시작부터 법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 중인 원전이지만 이를 중도 포기할 수 있었던 여건과 조건이 어느 정도 조성된 측면이 있었다. 더구나 대만은 원전 자체 기술을 보유하지 않고 있어 탈원전을 한다고 해도 자국 기업은 크게 잃을 것이 없다. 이는 자체 원자력 기술과 산업 체인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스위스 역시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을 포기하기로 한 국가다. 그로 인한 비용 상승을 수용할지에 대한 찬반을 물어 이런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단서조항이 있다. 원전 포기로 인해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인접국으로부터 전기를 수입해 수급 안정을 담보한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전기나 가스를 융통할 곳이 없는 우리와 달리 스위스의 경우 원전을 포기해도 수급을 담보하는 수단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경제력, 자원보유, 전력시스템, 기술력, 도덕성, 정치적 성향 등 나라마다 여건에 맞춰 (에너지)믹스를 조정한다.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고 참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특정 국가를 롤모델로 설정해 무조건 따라가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일이다. 우리 역시 한국적 상황과 여건에 맞는 믹스를 결정해야 한다.

부울 지역 원전 밀집문제는 심각


▎아랍에미리트(UAE)에 짓고 있는 바라카 원전 1, 2호기의 모습. 3세대 한국 표준형 원전기술을 적용했다. 한국은 2009년 UAE에 원전 4기를 짓는 계약을 맺고 세계 다섯 번째 원전 수출국이 됐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도 많지만 일정한 정도 설득력과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부울 지역의 지나친 원전 밀집도 문제는 회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원전 유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이에 대한 우려는 대체로 공감한다. 신고리 5, 6호까지 가세하면 부울 지역의 원전 밀도는 더 커져 지역 안전성을 위협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있을지 모를 위협을 간과할 순 없지만 현실적 문제 역시 사안을 복잡하게 만든다. 신고리 5, 6호마저 중단한다면 수만 명 가장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된다. 전국에서 원자력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미래도 어두워질 것이다. 당연히 원전 수출도 힘들어질 것이다.

미래의 위협, 현실적 문제에 더해 전력 수요 예측이라는 변수까지 등장해 신고리 5, 6호 처리 문제는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예측에서 수요가 7차 대비 11.3GW(기가와트)가 낮아질 것이라는 새로운 전망이 나왔다. 쉽게 말해 전력 수요가 낮아질 것으로 예측돼 신규 원전을 더 건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신고리 5, 6호를 둘러싼 이해관계는 복잡하고 민감하면서 강력하다. 특히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렸다는 식으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그 방향성보다는 정책 추진 속도 때문에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측면도 있다. 탈원전 정책의 효과나 대안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믹스를 너무 빠르게 밀어붙이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신고리 5, 6호 처리 문제를 정부가 제시한 3개월 동안의 공론화를 통해 원만히 정리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은 안이한 판단이다. 한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는 문제인 만큼 단기간의 공론화 과정, 여기서 나온 결과에 대해 과연 국민 상당수가 승복할 수 있을까. 십수 년에 걸쳐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탈원전을 추진한 독일과 같은 강력한 사회적 공감대가 3개월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탈원전 정책이 국민적 공감대를 갖고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선 믹스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이를 실현할 조건들에 대한 차분한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선 탈원전이 탈석탄과 연동돼 있으므로 발전비용, 즉 전기요금의 인상은 불가피하다. 국민이 이를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문제가 있다. 발전설비의 포트폴리오 조정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돼야 한다. 그래야만 대체재인 가스에 대한 원활한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후 신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비한 가스·양수·DR(수요자원) 등 백업설비들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전을 안정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가스와 신재생에너지를 수용할 수 있는 전력망의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사용후 핵연료의 최종 처분에 대한 준비가 마무리돼야 한다.

8차 전력수급계획을 조기에 작성해 공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광범위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앞서 언급한 조건들이 충족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론화 과정에서는 믹스 조정의 혜택과 그에 따른 비용, 누군가의 양보 등에 대한 정보가 포괄적으로 제공되고 논의돼야 한다. 최종적으로 어떻게 확정 지을 것인지에 대한 설계도 필요하고, 공감대가 부족할 경우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이것이 공론화의 요체다. 선택은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다.

공감대가 부족한 상태에서 믹스의 안정적인 조정이 어렵다는 것은 이미 과거에 경험한 바 있다. 동력자원부 시절 일군의 공무원들이 590만㎾(킬로와트)의 수요관리 효과를 반영해 발전소 건설 물량을 계획단계에서 제거한 바 있다. 공급 일변도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해당 공무원이 자리 이동 후 바로 복원된 바 있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시절 2차, 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요관리 물량의 확대를 계획에 반영해 역시 발전소 건설물량을 축소한 적도 있다. 그러나 가격 인상 등 이를 실현할 조건 형성에는 실패해 오히려 2011년 ‘9·15 대정전’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가까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원자력계의 환호 속에서 원전 확대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으나 그 반작용으로 탈핵 여론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원전 마피아’ 비판도 겸허히 수용해야


▎7월 13일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 일시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경북 경주시 한수원 본사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노조와 지역 주민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왼쪽 둘째)이 이사회에 참석하는 조성희 한수원 이사회 의장(오른쪽 둘째)을 막고 있다 /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이러한 실패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공통점은 일방통행식으로 에너지 정책을 만들어낸 데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조건마저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령 정책 방향이 맞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원전 의존 비율을 줄여나가는 정책 방향에 공감하는 중립적 전문가 그룹이 지금과 같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속도에 우려를 갖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과거 경험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 전면 반발하고 있는 원전업계가 성찰할 부분도 있다. 과연 한국의 원전업계는 ‘안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얼마나 받고 있을까.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으냐는 비판, 또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부정적 측면(국민의 비용 부담 증가, 관련 업계 일자리 문제, 기술력 도태와 수출기회 박탈, 안정적 전력수급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두 상쇄할 수 있는 근본적 문제는 바로 ‘원전 안전’에 대한 이슈다. 후쿠시마 사고와 경주 지진 이후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장치를 추가해 왔다고 원자력계는 주장한다. 이러한 기술적 대응은 사실이어야 하고 또 사실일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신뢰의 문제가 제기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은 원전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원자력의 진흥과 규제를 분리해 원자력진흥위원회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독립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 상황을 깊게 들여다보면 두 위원회는 사실상 원자력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분리돼 있어도 결국 이를 운영하는 주체는 한 몸통이라는 뜻이다. 시스템을 개선했다곤 하지만 시스템 안에 담긴 내용적 개선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논의되는 원안위의 대통령 직속화 역시 현 상황에선 그다지 큰 기여를 할 수 없다고 본다. 탈원전 목소리가 높아지고 원전 안전에 대해 여전히 불신의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원전업계가 국민의 신뢰를 온전히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자력업계는 이를 겸허히 인정하고 성찰할 자세가 얼마나 돼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의 원자력산업은 국가의 강력한 주도하에 성장해 오면서 전문가 이외의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또한 제도권에서의 폐쇄적 결정을 통한 원전정책 추진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원자력계의 폐쇄적인 조직 구조와 독점적 지위가 원전 비리의 근원적인 문제였다. ‘원전 마피아’라는 일각의 표현을 억울하다거나 부당하다고만 할 게 아니다. 매년 수천억 원의 원자력 기술개발자금의 독점적 운용은 항상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원전 납품비리, 품질 위조 등 일련의 사건들로 기인한 원전업계에 대한 신뢰 저하가 원전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신재생·전력 등 다른 에너지기술 분야와의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원자력기술 개발과 에너지 기술 개발의 통합 운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믹스 논쟁의 과정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우선하는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이 중시하는 핵심 가치는 수급 안정과 블랙아웃의 방지다. 반핵그룹은 원전사고와 지구 오염 문제를 가장 중요시한다. 소비자들은 당장 부담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가 관심사다. 누가 어디에 공포심을 더 느끼고 우려하는가를 두고 비난해선 곤란하다. 각자의 위치와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부분이다.

찬핵과 반핵을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성의 기준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혹시 발생할지 모를 위기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비용 중에 무엇을 중시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실질적인 이슈로 봐야 한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종합적으로 49개의 장점과 51개의 단점을 갖는 대안 A와, 51개의 장점과 49개의 단점을 갖는 대안 B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국가적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발생하는 나머지의 희생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한국의 에너지 문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고, 그에 따라 미래 믹스의 변경은 불가피하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연료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다소간 과열되더라도 꼭 필요하고 반가운 현상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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