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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 일반고의 위기, 왜? 

고교 서열화 심화로 ‘기피 학교’ 전락 향학열 식은 교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2010년 자사고 확대 운영 이후 학력저하 현상 뚜렷해져… 관련법 개정해 유예기간 두고 자사고·특목고 단계적 전환 검토해야

▎6월 26일 서울 지역 자율형사립고 학부모들이 종로구 보신각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를 마친 학부모들은 서울시교육청까지 행진했다. / 사진:연합뉴스
“(수업시간에) 자는 애 깨웠더니 애들이 ‘왜 깨우느냐’고 해요. 어떤 애는 뒤에 ‘C’를 붙이는 경우도 있어요. 더 큰 문제는 학급의 다수 아이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애를 옹호한다는 거예요. 이럴 땐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져요.”

서울시 A일반계 고등학교(이하 일반고)에 근무하고 있는 한 선생님의 이야기다. 일반고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모든 일반고가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인기 있는 일반고도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일반고, 특히 ‘기피 학교’라고 까지 일컬어지는 일반고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남한에 와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고등학교에 갔는데, 여기는 (내가 생각했던) 학교가 아닌 것 같아요. 공부하는 애들이 하나도 없는데 이게 무슨 학교예요? 저 그냥 학교 그만둘래요.”

일반고에 진학한 한 탈북 학생이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멘토에게 했던 말이다. 결국 이 학생은 멘토의 권유에 따라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일반고에서 교사가 수업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수업을 들을 의욕이 없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의욕을 갖고 수업을 들어보려고 하는 학생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교실 분위기가 교사의 얘기에 집중하는 학습 분위기가 조성돼 있으면 수업을 듣기 싫은 학생도 마지못해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대의 분위기라면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조차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교실이라는 공간이 서로 다른 학생들 여럿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한 공간에서 만들어진 분위기나 문화가 학생 전반의 태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일반고 교사들은 “예전보다 점점 더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말을 많이 내뱉는다. 학생은 의욕이 떨어지고, 교사는 교육하기 힘들어진 일반고의 현실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일각에서는 ‘일반고의 몰락’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에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일반고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우리의 교육현장이 이렇게 됐을까? 지금의 고등학교 신입생 선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반고의 위기가 왜 나타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전국 8개 영재학교가 학생을 선발한다. 8월부터 전국 20개 과학고, 9월에 전국 단위 자사고(민족사관고·상산고·하나고 등 10개), 10월에 마이스터고와 예술고, 11월에 외국어고(이하 외고), 국제고, 광역단위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가 신입생을 선발한다. 8~11월에 신입생을 선발하는 학교를 ‘전기(前期) 고등학교’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12월에 ‘후기(後期)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자율형공립고(이하 자공고)와 일반고가 신입생 선발을 하기 시작한다. 평준화 지역은 자공고와 일반고를 동시에 추첨으로 선발하고, 비평준화 지역은 동시에 지원받되 성적에 따라 자공고와 일반고 신입생을 선발하게 된다.

현 고입제도 ‘석유 정제’ 과정과 유사


▎6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외고·자사고 폐지가 공정한 교육인가’ 토론회에서 전북 전주 상산고 홍성대 이사장(오른쪽 셋째)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홍 이사장은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이 외고와 자사고라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라며 외고·자사고 폐지에 강하게 반대했다. / 사진:연합뉴스
영재학교나 전기 고등학교에 지원하는 이유는 마이스터고(특성화고)와 예술고를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입시에 유리하고, 같은 목적을 가진 학생들끼리 모여 있을 때 좋은 면학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 고등학교 입시가 마무리되면 남아 있는 학생들끼리 후기고 입시를 치르게 된다. 비평준화 지역은 고교 내신 성적에 따라 입시가 결정되는데, 자공고와 같이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는 따로 정해져 있다. 평준화 지역은 희망 학교에 따라 추첨을 통해 학교가 정해지게 되는데, 이 경우도 대입이나 면학 분위기를 기준으로 선호 학교에 지원이 몰리게 된다.


서울의 경우 주로 강남 지역의 학교나 일반 사립고가 인기 있고, 일반 공립 고등학교가 가장 인기가 없는 편이다. 후기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선호하지 않는 학교에 해당하는 일반 고등학교가 바로 일반고의 위기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소위 ‘기피 학교’가 된다. 어떤 선생님은 현행 고입제도를 “우리 아이들을 마치 석유 정제하듯이 뽑아낸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석유에서 가스를 뽑고 휘발유, 중유를 뽑은 후 마지막에 아스팔트가 남듯이 학생들을 그렇게 선발하도록 한 제도가 현재의 고입제도라는 것이다. 남은 아이들이 갖는 열패감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과거에도 ‘선호 학교’와 ‘기피 학교’들은 존재했었다. 외고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1990년대부터 특목고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더니,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전국적으로 6개에 불과하던 자사고가 현재 46개 교로 늘어났다. 학생 수는 과학고와 외국어고, 국제고, 자사고를 합쳐 7만8000여 명(2015년 기준)이다. 우선 선발의 혜택을 누리는 학교가 많아지면서 성적 상위권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과거보다 훨씬 심해진 것이다. 자사고가 확대 운영된 2010년 이후 일반고의 학력저하 현상은 더 뚜렷해졌다.

자사고 선발 체제가 완성된 2013학년도에 일반고의 하위 10% 이내 학생 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10%포인트나 늘어난 31%였다. 반면 상위 10% 비율은 자사고와 일반고가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현재 서울 자사고의 경우 성적과 상관없이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자사고의 상위권 10% 이내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성적 하위권 학생들은 능력과 상관없이 학업에 흥미를 잃은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경희대 교육학과 성열관 교수는 ‘위기의 일반계 고교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주제로 당시 민주통합당이 주최한 토론회(2013년)에서 일반고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반고에서 학업성취가 낮은 학생들의 경우 학교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고, 학교의 학업적 사회적 규범에 따르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증가하며, 이는 학생들 사이에 부정적 또래 집단 효과를 발생시킨다. 부정적 또래 집단은 학생 개개인들의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낮아 학교의 규칙을 어기고 비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이를 지도하는 교사들의 고충이 늘어난다.”

앞서 소개했던 A고 교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의 경우 고3 자연과정 학급에서 수학 수업을 듣는 학생이 5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기피 학교가 된 일반고는 교육활동을 진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 토론회에서 성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일반고는 학교 내 성적 격차가 크다. 내신이나 그 밖의 다양한 이유(가령 특목고 탈락, 근접성 등)로 일반고를 선택한 성적 우수자와 특성화고에서 탈락한 성적 하위권 학생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교가 이러한 이질집단의 특징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해 어느 유형의 학생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교육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생이 성취욕구가 약해지고 내면화된 좌절감으로 수업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교사의 수업 운영 계획에 따르지 않는다. 성적 우수자들은 우수자들대로, 하위권 학생들은 그들대로 학교 교육에 만족하기 어렵다. 일부 일반고 학생(다양한 이유로 직업계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학생이나 중간에 진로를 변경한 학생)은 자신들의 진로 계획에 맞는 다양한 직업 교육과정을 이수하기를 희망하지만, 일반고에서는 이런 교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직업위탁 교육기관에 입학하고 싶어도 대기자가 많아 교육받을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자사고·특목고가 무한경쟁 유발


일반고 위기의 원인을 진단할 때 모두 자사고와 특목고 때문이라고만 말하기 어렵다. 3차 산업혁명을 지나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시대적 변화를 겪으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육받는 내용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벌어진 것도 일반고가 위기를 겪는 중요한 이유다. 지식의 전달과 암기 중심의 수업만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탐구능력, 비판적 사고력, 협업능력, 공감능력, 의사소통 능력 등을 키우기 어렵다. 게다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해도 자기 직업을 갖기 어려운 시대를 지나면서 학교 교육에 대한 기대는 점점 낮아졌다. 학교에 대한 기대가 없고, 자신의 삶을 준비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수업에 대한 참여도도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일반고에만 해당하는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학교교육 전체의 문제요, 교육계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시대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이 때문에 지금 일반고가 겪는 위기를 말할 때 다른 고등학교에 비해 특별히 일반고가 처해 있는 어려운 현실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반고의 위기가 자사고와 특목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들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현재의 경쟁적 교육체제에서 일반고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자사고와 특목고를 없앤다고 일반고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대입 경쟁체제가 존재하는 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사고와 특목고를 현재와 같이 유지한 채로는 일반고가 되살아날 수 없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지금과 같은 선발의 특권을 누리는 상황에서 일반고의 해결 노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 자체의 문제보다는 고교 체제라고 하는 구조적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가장 큰 문제는 자사고와 특목고가 만들어 놓는 경쟁교육 시스템이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선발의 특권을 가지고 존재하는 한 우리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조기 경쟁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경쟁 교육은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다. 자녀가 경쟁에서 밀릴까 두려운 부모들은 유아 사교육, 초등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녀를 점수에 의해 평가하게 되고, 아이들도 자신의 점수로 평가하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자라기 어려울뿐더러 자기가 본래 가지고 태어난 소질과 적성을 발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 수 있다.

둘째, 분리교육의 문제다. 고입 경쟁에서 승리해서 외고와 자사고에 들어가면 좋은 면학 분위기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좋은 면학 분위기의 실체는 떠들지 않는 것이다. 떠들지 않는 것은 모든 동료가 나와 같기 때문이다. 서로 차이를 느껴야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공감과 대화의 낯선 배움을 시작할 수 있는데 그럴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직업, 아파트 평수, 중학교 성적이 비슷하고 장래 희망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이게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소득과 안정성이 확보된 직장을 갖게 되면, 직업을 가진 이후 바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된다. 분리교육 체제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고객, 시민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과 공존하며 협업하며 공감하고 사는 능력을 갖지 못한 채 또 다른 분리교육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소득수준도 일반고 학생 가정이 최저


▎한 입시전문업체가 주최한 ‘2015학년도 고교 입시설명회’. 이 자리에서는 내신 절대평가 첫 적용에 따른 예상 합격선과 2015 특목고 및 자사고 입시에 관한 정보 등이 제공됐다. 설명회장을 가득 메운 학부모와 학생들이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셋째, 사회적 계층의 대물림 현상을 고착화하는 문제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반고 학생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400만 원 미만이 45%, 800만원 이상이 22% 정도 된다. 이에 비해 자사고는 각각 27%, 35%이고 특목고는 10%, 56%로 나타난다. 특목고>자사고>일반고 순으로 소득수준이 분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 유형별 서울대 합격자 비율을 생각했을 때, 부모의 경제력과 계층이 그대로 대물림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의 경우 자사고의 학생 1인당 평균 연간 부담경비가 일반고의 2.1배 정도인 것이 현실이다. 결국 자사고와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득수준이 높아야 하고 이런 진입장벽은 악순환으로 이어져 현재의 계층 분포를 고착화시킬 우려가 크다.

넷째, 자사고와 특목고가 유발하는 사교육비 증가의 문제다. 2015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공동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단위 자사고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중3 학생의 28.6%가 월 100만원 이상의 사교육을 받고 있다. 50만원 이상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학생은 57.2%에 달했다. 일반고를 희망하는 학생의 두 배에 해당한다. 또 이미 전국 단위 자사고에 입학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더 높은 사교육비 현황이 드러난다. 5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학생이 79.6%로 나타났는데, 이는 일반고 학생의 2.6배에 이르는 수치다. 학원가에서 성행하는 외고 대비반, 자사고 대비반, 과학고 대비반과 같은 상품을 통해 초등학교와 중학생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계다.

이런 네 가지 문제를 통해 들여다보면 자사고와 특목고는 그 제도 자체만으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일반고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경쟁적 고교 서열체제를 해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자사고와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이 일반고 위기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이들 학교의 법적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자사고·특목고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학교의 안정성을 지켜주기 위해 부칙을 통해 일반고 전환 시점을 정하고, 3년 정도의 경과 기간을 둠과 동시에 경과 기간 동안 일반고와 같은 시기와 방법을 통해 선발하게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전환 시점을 입학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할지, 전체 학년을 전면적으로 전환할지는 해당 학교에서 선택하게 하고, 전환에 따른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고교 경쟁 체제가 없어지면 중학교에서의 경쟁이 완화되고, 입시로부터 자유로운 중학교 교육이 가능해진다. 초등학교부터 준비하고 있는 자사고 대비반, 특목고 대비반이 사라지고 사교육비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 다만 다양한 교육에 대한 수요나 특정 지역에 대한 학교 선호도가 나타나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해 본격적인 일반고 교육 강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교육 다양화 위해 고교학점제 필요


▎6월 28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국제중·외국어고·자사고 재평가 결과와 중·고 체제개편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서울외고와 장훈고·경문고·세화여고, 특성화중학교인 영훈국제중 등 5개 학교는 운영성과 평가 결과 지정취소 기준 점수보다 높게 집계돼 지정유지가 결정됐다. / 사진:연합뉴스
먼저 모든 일반고에 자사고 수준으로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 선발권 외에 특목고와 자사고가 가졌던 특권이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이었다. 일반 고등학교는 필수 이수과목이 많아 교육과정 운영이 경직돼 있는 반면에 자사고나 특목고는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이것을 일반고 전체에 확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사고나 특목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기존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운영할 수 있고, 일반고도 학생들에 맞는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운영해볼 수 있게 된다.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은 고교 학점제를 통해 실현될 것이다. 전면적인 고교 학점제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 있는 학교 환경에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충분히 확대한다면 고교학점제의 효과를 일부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학을 깊이 배울 필요가 없는 학생은 수학의 최소 이수 단위만 배우고, 이후에는 수학을 배우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반면 자신의 진로 계획에 따라 필요한 과학 과목이나, 외국어 과목, 사회 과목 등을 선택해 들을 수 있게 된다. 천편일률적인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영역이 학생마다 모두 다른 구성을 갖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은 전공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 다양화 정책이다.

일반고 과정에서 직업교육의 과정을 대폭 확대하고 직업교육 기관을 더 늘려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특성화고등학교와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 고등학교의 비중이 전체 고등학교의 19%에 불과하다. 반면 OECD 국가의 평균은 47%에 달한다. 직업계 고등학교의 수를 늘리고, 일반고에서도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위탁교육기관을 대폭 늘려야 한다.



수능·내신 절대평가 검토도 필요


낙후 지역의 학교 환경과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특정 지역에 대한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의 학교 환경과 교육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다. 혁신학교를 확대하고 학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야 한다. 혁신학교는 학생이 배움의 주체는 철학적 기초 위에서 출발한다. 학생을 배움의 주체로 세울 때 모든 아이가 학교에서 성공을 경험하는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 학교의 민주적인 소통, 학생 자치의 확대, 학생 인권의 존중을 기본으로 하여 동료와 함께 협업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탐구하고 토론하며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을 목표로 한다. 일반고 위기가 심각하다는 현재에도 전국의 혁신학교 안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 것을 볼 때, 혁신학교가 내실 있게 확대된다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고교 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교 학점제와 새로운 방향으로서의 일반고 교육을 담보할 수 있는 입시와 평가 시스템의 전환도 필수적이다. 수능 절대평가와 내신 절대평가가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는 일반고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대학의 서열화 문제 해결, 학력 간 임금격차 해소, 블라인드 채용, 출신학교차별금지법, 기본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복지정책 실시 등 우리 사회의 차별지수를 낮추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기존의 교육 패러다임과는 다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문제풀이식 공부에, 누가 덜 실수하느냐를 가지고 피 말리는 경쟁 속에 교육받은 학생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제대로 대처할 능력을 배울 수 있겠는가? 사회를 통합하고 공감, 배려 등 인공지능과 차별화된 인간 고유의 역량을 갖춘 사람, 더불어 사는 삶을 가꾸는 사람을 키울 수 있겠는가?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사람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된다. 이제는 생산성 있는 노동자를 길러내는 교육에서 인간으로 존재하는 길을 찾는 교육, 함께 사는 길을 찾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 기조 위에서 일반고 위기의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기 소질과 적성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도 차별 없이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고등학교 단계까지는 경쟁 없는 학교에서 자유롭게 배우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교육개혁의 가장 중요한 중심 가치여야 한다고 본다. 새 정부 교육개혁의 과제가 그래서 중요한 시점이고, 국민이 주목하는 이유다..

-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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