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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리포트] 도시재생의 ‘신화’ 써내려간 베를린 

구제불능 회색 도시가 멀티 컬처의 ‘성지’로 

글·사진 손관승 세한대 교수 언론중재위원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된 어두움·패배의식이 지배했던 곳… 예술 영감 불어넣자 세계적 크리에이티브 메카로 재탄생

▎베를린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 준 비결은 5분의 1이란 말이 있다. 베를린 전체 면적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숲과 녹지를 의미한다.
여행은 시선이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 시선의 방향을 보면 그 사람의 지금 상황과 마음을 가늠할 수 있다. 나의 시선은 ‘재생’(再生)이란 단어로 향했다. 잠시 인생의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문자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 곳,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현장이다.

재생이란 무엇인가? 영어 단어를 분석해보면 죽어가던 곳에 동력(Generate)을 새롭게(Re) 입히는 작업이다.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은 재개발사업(Urban renewal)과는 차별화된 개념이다. 점차 슬럼화돼 가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 노후시설을 철거 후 깨끗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식이 후자인 도시 재개발사업이다.

하지만 주로 경제 논리에 의해 이뤄진 이 사업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문제점을 야기했다. 원래 거주하던 저소득 주민과 영세사업자, 그리고 그곳을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어놓은 주체인 예술가들이 높은 임대와 집값을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가고 대신 다른 곳에 있던 부유한 사람들이 들어오는 현상을 말한다.


▎독일 동부를 흐르는 슈프레강. 길이 398㎞로 하펠강의 지류이며 베를린의 중심부를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른다.
우리의 직장생활도 비슷하다. 죽어가던 현장과 업무를 열과 성을 다해 간신히 살려놓았더니 결국은 M&A(인수합병) 같은 절차를 통해 쫓겨날 수밖에 없는 차가운 현실에 비유할 수 있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형국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요즘 부각되는 개념이 도시 재생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재생은 기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사회적·경제적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말한다. 때마침 문재인 정부에서는 5년간 50조원을 투자해 전국 낙후 지역 500곳을 정비하는 프로젝트인 ‘도시재생 뉴딜’ 정책을 야심 차게 추진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겸사겸사 베를린 방문 계획을 세웠다.

왜 베를린인가? 도시재생 정책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영국으로 런던의 도클랜드 지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사업을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도쿄·뉴욕 같은 도시에서도 성공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여 건 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흡사 거대한 프로젝트처럼 진행되는 베를린만큼 도시재생 상황을 관찰하기에 좋은 곳은 없다.


▎도시 전체가 흡사 거대한 프로젝트처럼 진행되는 베를린만큼 도시재생 상황을 관찰하기에 좋은 곳은 없다. 하우스 슈바르첸베르크의 스트리트 아트 (Street Art).
베를린은 파리보다 9배나 큰 거대 도시다. 숲이 많지만 물도 풍부한 도시다. 베를린에는 슈프레와 하펠이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6개의 운하, 80여 곳의 호수가 있다. 400여 개의 다리가 있는 베네치아를 가리켜 ‘다리의 도시(city of brides)’라 말하는데 베를린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979개의 다리가 있다.

젊은 아이디어·자본·문화가 몰리는 매력 도시


▎베를린필하모니에서 바라본 포츠담 광장. 시민들이 자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 풍경과 달리 한때 ‘그라운드 제로’였던 곳이 바로 베를린이다.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됐고, 분단 기간 동안 장벽에 가로막혀 세상의 끝,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어두움과 짙은 안개비, 그리고 패배의식이 지배했다. 서 베를린에는 터키 사람들, 그리도 동베를린에는 베트남 출신의 가난한 노동 이민자들의 얼굴만이 각인될 뿐이었다. 베를린의 얼굴은 그러나 아픈 상처가 아물고 건강한 세포가 다시 살아나듯 새롭고 매력적인 얼굴로 다시 태어나 있다. 요즘 유럽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뜨거운 곳이고 가장 멋진 문화·예술의 도시가 베를린이라는 입소문이 들려왔다. 이 시대의 가장 힙(Hip)하다고 생각하는 힙스터들의 ‘성지’라 여겨진다.

힙스터란 남들과 다르게 살기를 열망하는 사람들로 유행이나 뻔한 트렌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남과 다르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다. 잘나가는 곳에는 젊은 피가 몰려 신진대사가 원활하다. 젊은 인력, 젊은 아이디어, 젊은 감각, 젊은 자본, 젊은 문화가 끊이지 않고 유입되고 있다.

“같은 유럽이라지만 베를린은 도시 자체가 젊어요. 다른 도시들은 과거의 명성으로 먹고사는 데 이곳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당연히 젊은이들이 오고 싶어 하고 살고 싶어 하지요. 가장 큰 매력은 열린 분위기입니다. 종교·인종·국적을 가리지 않고 멀티 컬처(Multi-Culture)가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터부(taboo)도 적어요. 문화와 예술에서 가장 나쁜 것이 금기고 규제겠지요. 저희 88명 단원 가운데 한국인이 7명이나 돼요. 거의 10%나 되니 열심히 하고 실력만 인정받으면 일할 수 있는 곳입니다.”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국립 슈타츠오페라에서 25년간 합창단원으로 일하는 권복희씨의 얘기다. 확실히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베를린의 도시재생 사업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막대한 통일비용이 소요됐던 까닭에 10년이 지난 2000년이 돼서도 도시 곳곳에 버려진 건물들이 즐비하고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황폐한 풍경이었다.

베를린 지방정부는 통일 직후 제1차 도시정비 사업지역으로 미테, 프렌츠라우어베르크, 프리드히스하인 등 주로 장벽 부근에 있던 22개 지역을 선정해 집중 투자했다. 그럼에도 2005년께 베를린의 실업률은 무려 15%에 달해 실패한 도시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이 도시를 지배하는 색은 암울한 회색이었다. 내가 베를린 특파원 시절 독일의 한 신문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회색(Grau)도 하나의 색이다. 짙은 안개, 습기 가득한 날씨, 어두움, 냉기, 그리고 비.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슬프다.”

버려진 땅, 구제 불능의 도시처럼 여겨진 베를린의 회색빛 하늘 아래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은 주역은 예술가와 문화인들이었다. 이들은 전쟁과 분단의 후유증으로 버려진 공간을 스튜디오로 사용해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던 독창적인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디자인·건축·미술·사진·음악 등 문화·예술 거의 전 분야의 예술가들이 베를린이란 도시를 혁신으로 이끌었다. 그들이 마법사였다.

매력이 있으려면 남과 다른 자신만의 특징을 표현해야 한다. 도시건 사람이건 마찬가지다. 베를린은 2006년 유네스코에 의해 ‘디자인 도시(City of Design)’로 선정됐고, 세 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 크리에이티브 도시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건축학도들뿐 아니라 예술·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필수 견학 코스로 줄을 잇는다. 관광객들이 몰리자 호텔 건축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서서히 경제가 꿈틀거리며 성장했다.

샘솟는 창의성의 ‘경연장’


▎철도역을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한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
통계가 입증한다. 요즘 베를린은 이방인으로 넘쳐나는 덕분에 가장 호황을 맞은 곳은 여행업종이다. 2016년 호텔을 이용한 숙박객수는 129만 명으로 전년보다 2.9% 상승했으며 연간 311만 숙박일을 기록해 기존 기록을 깼다. ICCA에 따르면 베를린은 2016년 모두 195회의 국제 행사를 주관해 대표적인 콘퍼런스 도시로 선정됐다.

새로운 베를린 탐험의 시작은 포츠담 광장과 인근 글라이스드라이크에크(Gleisdreieck) 공원이다. 세 개의 지하철 노선이 지나기에 독일어로 그렇게 불리는 이 공원은 도심 개발과 도시재생의 건강한 균형을 이루는 멋진 사례로 집중 연구 대상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에서 가장 번화했다고 하는 베를린 포츠담 광장 주변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됐다. 그리고 오랜 분단 기간 동안 동서 베를린장벽이라는 냉전의 벽에 가로막혀 사연 많은 여인처럼 흉터를 간직한 채 방치돼 있었다.

기차역 부근의 31.5ha에 이르는 거대한 화물차 야적장 공간은 오랫동안 토론 과정을 거친 후 결국 시민단체들의 아이디어와 주도로 아이들의 놀이공원과 자전거, 보드 타기, 비치발리볼, 산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해 2014년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인근 포츠담 광장을 오피스 건물로 개발하는 대신 그곳에서 얻게 되는 개발 수익 가운데 일부를 공원개발 비용으로 떼어내 충당한다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실용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뛰어나 2015년 독일 조경 건축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경쟁력은 5분의 1이란 숫자에 있다. 도시에서 숲과 녹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티어가르텐 같은 숲속을 달리다 보면 짙은 숲과 그림 같은 호수에 홀려 자칫 미로에 빠질 정도인데, 이처럼 녹색이 풍부한 곳에 또 하나의 거대한 도심 속 허파 기능을 조성한 것은 그 안에서 시민들의 육체적 건강과 건강한 마음, 더 나아가 창의성이 샘솟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포츠담 광장의 건물들에는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프랭크 게리, 렌초 피아노, 한스 콜호프, 노만 포스터, 리차드 로저스, 렘 쿨하스 등 이름 하나하나가 하나의 전설이 돼버린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이다.

개성 있는 이 작품들은 그 뒤쪽에 위치한 베를린 필하모니의 날렵한 지붕과 멋진 대조를 이룬다. 은황색 금속판으로 겉을 두른 한스 샤로운이 설계한 베를린 필하모니 건물은 그 음악적 실력만큼이나 주목할 만하다. 포츠담 광장의 최신식 오피스 빌딩의 경우도 주말이나 심야 도심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 일정부분 주거 공간을 의무화하고 있다.

베를린이란 도시는 창의성의 경연장 같다. 기차역을 현대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함부르크 반호프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최근 화제를 모으며 개장한 새로운 음악홀인 피에르 불레즈 홀의 실내 건축은 미국의 거장 프랭크 게리에 의해 설계됐으며, 베를린의 박물관 섬에 있는 5개의 박물관 가운데 핵심인 노이에스 무제움은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에 의해 한층 멋진 공간으로 탄생했다.

유럽의 대표적 ‘스타트업 도시’로도 손꼽혀


▎베를린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데다 활력 넘치는 문화까지 즐길 수 있기에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 스타트업의 산실인 슈프레강 주변.
한 도시의 진정한 매력을 알고자 한다면 대로가 아니라 골목, 겉이 아니라 속을 봐야 한다. 마치 인형 속에 또 다른 인형이 계속 나오는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건물 안에 또 다른 건물과 중정(中庭) 여덟 개가 잇따라 나오는 ‘하케셔회페(Hackescher Höfe)’라는 특이한 건물이다. 유겐트 스타일의 특이한 건물 사이사이로 개성 있는 공방과 세련된 카페들로 연중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동독 시절 역사 보호 건물로 지정돼 있긴 했지만 관리 부실이던 것을 통독 이후 새로운 투자자와 지역 문화단체, 그리고 예술가들이 손잡고 가장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도시재생의 대표적 사례다.

주상복합 개념인 이곳에는 40여 곳의 사무실과 오피스가 있지만 카페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극극장이나 디자인 사무실 그리고 광고 제작, 수제공방 등 크리에이티브 분야로 용도를 제한했다.

이곳이 아름답고 멋있는 공간이라면 나란히 있는 ‘하우스 슈바르첸베르크’는 대안 문화의 중심지다. 베를린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아픔과 상처까지도 그대로 드러낸다. 그라피티 예술가들에게 스트리트 아트의 오픈 캔버스로 허용한 곳이다. 마치 미술관이 거리로 나온 듯, 아니 미술이 폭발하는 듯하다. ‘out of the box’라는 영어 단어가 ‘발군이며 아주 특별하다’는 뜻과 동시에 ‘독창적으로’ 생각하는 뜻을 담고 있는데 바로 이곳이 그렇다.

대안 예술가들인 그라피티 예술가들에게 거리의 예술(Street Art)이란 오픈 캔버스로 허용한 곳이다. 크로이츠 베르크의 대안 예술가 지역은 더욱 과감하다. 마치 미술관이 거리로 나온 듯, 아니 예술이 폭발한 듯하다. 베를린은 예술에서도 그렇고 도시재생에서도 그렇다. 이 도시가 갖는 진정한 힘이다.

슈프레 강가를 따라 세워졌던 베를린장벽 가운데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1316m의 오리지널 장벽을 예술지구로 지정한 것도 좋은 예다. 105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긴 오픈 갤러리인데, 베를린을 찾는 방문객들이라면 브란덴부르크 문과 함께 인증 사진을 찍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예술이란 면에서 베를린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온 것은 2014년, 유니버설 뮤직의 임원이었던 팀 렌너(Tim Renner)가 베를린 자치정부의 문화담당 책임자가 되면서부터다. 그는 독일의 메탈 밴드인 람슈타인(Rammstein)을 발굴해 유명해진 인물인데 한 도시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역할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편이다. 2015년에는 문화 관련 예산이 4900만 유로, 전년보다 10%나 늘렸다.

57회째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올해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과 최고예술가상 모두 독일과 독일 작가에게 돌아갔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들이었기에 세계 예술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도시에는 3개의 오페라하우스, 50여 개의 연극극장, 175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600여 곳에 이르는 상업용 갤러리, 베를린 영화제와 130여 개의 극장이 있지만 이들은 크리에이티브 경제의 일부일 뿐이다.

현재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도시로 베를린을 최고로 손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싸고 매력이 넘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에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 연중 창의적인 페스티벌이 끊이지 않아 시민들은 돈을 들이지 않고 눈으로 즐길 수 있다.

어둡고 투박한 인상이 짙었던 도시가 어떻게 최고의 창의력 기지로 변신하게 됐을까? 베를린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주는 경쟁력의 비결은 5분의 1이란 비율, 20%라는 숫자에서 찾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도시 전체 면적에서 숲과 녹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그렇고, 크리에이티브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두터운 예술 인력 또한 그렇다. 베를린 인구가 350만 명인데, 약 5분의 1에 달하는 7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베를린 시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리적·사회적·경제적 재생, 3단계 거쳐


▎갤러리 거리인 리니엔 슈트라세에서 바라본 풍경.
과거 동베를린의 중심 알렉산더 광장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정식 베를린예술가협회의 회원이 돼 영주권을 받고 활동 중인 김혜연 작가를 방문했다. 과거 동독의 국영 텔레콤 회사였던 건물을 통일 이후 문화와 예술작가들의 작업실 용도로 통째 변경했다. 5층 건물 한 개에 20개의 작업실이 들어 있으니, 건물 하나에 약 100곳의 문화예술인이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베를린은 1년 내내 세계적인 작가들의 수준 높은 전시를 볼 수 있으니 자극도 되고 내 작품의 수준을 가늠해 보게 된다. 게다가 예술가를 지원해 주는 도시의 합리적인 정책이 매력적이고 작품 창작에서 수집가에 이르는 전체 시스템이 건강하다. 일단 작가로 등록된 정식회원증이 있으면 파격적인 임대료의 작업실을 구할 수 있고 붓이나 물감 등 그림도구도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행정적으로나 시민사회 전체가 예술가를 도시에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해 주는 암묵적 분위기가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한마디로 예술도시로 만드는 역량과 동력이 넘치는 곳이다.”

김 작가처럼 현재 베를린의 보조금 지원을 받는 예술 및 음악 스튜디오는 870곳에서 2000여 개로 크게 늘었다. 건물 소유주와 협상을 해 싼값에 임대하거나 문화 친화적인 NGO들, 심지어 베를린 시당국이 자체 구입해 예술가들이 작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창의력이 필수적인 크리에이티브 분야는 도시에 활력과 자본을 가져온다고 그들은 믿는다.

푸른 숲과 문화, 예술은 때로는 개별적으로, 때로는 상호작용하면서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도시재생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양대 축이다. 그것이 도시가 추구해야 할 매력자본이다.

다섯 개의 박물관이 몰려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박물관 섬 뒤편에는 황금색 쿠폴라로 빛나는 유대인 성전인 시나고그가 있다. 박물관 섬은 분명 귀중한 보물이지만 문화와 예술은 박물관이나 과거의 명성 안에만 갇혀 있지 않다. 그 뒷골목에 위치한 아우구스트 슈트라세와 리니엔 슈트라세에서 베를린 예술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이 세계 미술 콜렉터들이 주목하는 갤러리 거리다. 베를리날레를 이끌고 있는 ‘KW(Kunstwerk: 독일어로 예술작품을 의미)’, 그 옆에 나란히 위치한 ‘ME(Moving Energies)’는 이 지역을 이끄는 양대 기둥이다. 멋진 카페와 커피숍, ‘Do You read Me?’ 같은 아트 전문 책방 등도 있어 현대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거리로 손꼽히고 있다.

“베를린은 유일무이한 곳이다. 이 도시는 기득권 의식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갤러리 ‘벙커’의 소유주이자 영향력 있는 수집가 크리스티안 보로스의 말이다. 벙커는 나치 시대 방공호를 개조한 것으로 소련 주둔군 때는 포로수용소, 동독 시절에는 쿠바의 열대과일 보관창고, 그리고 장벽 붕괴 뒤에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테크노 클럽이었다. 지금은 혁신적인 베를린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갤러리로 유명하다.

그는 과거 서독 지역에서 사업하던 사람이고 사업적으로 성공한 기득권층의 한 명이지만 도시가 주는 매력에 빠져 자신이 몇 십 년 동안 수집한 작품들과 함께 거주지도 벙커 옥상으로 옮겼다. 주로 설치미술에 중점을 둔 그의 수집 작품들을 보면 그만의 독특하고도 분명한 안목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복원 아닌 새로운 문화 탄생해야


▎대피소에서 미술관으로 변모한 ‘벙커’ 보로스 컬렉션. 이곳에 수집된 작품은 사전예약을 통해 주말에만 감상할 수 있다.
보로스의 벙커에 수집된 작품은 주말에만, 그것도 사전 예약에 큐레이터의 안내로 소수만 입장이 가능해 보통 수개월씩 예약이 밀려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도시재생은 물리적 재생에서 시작해 사회적 재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재생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물리적 재생이란 새로 설계하고 건물을 짓는 것을 말하고, 사회적 재생이란 커뮤니티와 공동체의 보존이나 육성을 의미하며, 경제적 재생은 결국 그 지역 사회가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는 것을 얘기한다.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은 여전히 상이한 분위기고, 구역마다 ‘키에츠(Kiez)’라는 특유의 지역 공동체 문화가 있다. 개발하더라도 키에츠 문화의 손상과 다양성 유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핵심은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역별 특징과 강점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이다.

과거 터키 사람이 많이 살아 ‘리틀 이스탄불’이란 별명아 있기도 했던 크로이츠베르크(區)는 이제 미래 산업을 겨냥한 스타트업의 본거지가 되고 있다. 사무실 공유공간으로 유명한 ‘베타하우스’도 이곳에 있고, 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들은 앞다퉈 이곳에 오피스를 내고 있다.

아이젠반슈트라세 42번지에 위치한 ‘마르크트 할레9(Markthalle Neun)’은 이 지역뿐 아니라 국제적인 명소가 된 경우다. 독일제국 시대인 1891년 처음 문을 연 재래시장이다. 126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현재의 마르크트 할레9은 먹거리만을 파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한때 현대적인 수퍼마켓에 밀려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던 것을 2011년 지역 주민들이 합심해 거대한 수퍼마켓체인 대신 새로운 개념의 시장으로 회생시켜놓았다. 식재료와 음식, 문화가 함께 만나는 신개념 복합공간으로 거듭났다. 요일마다 다른 시장이 들어서는데,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베를린 근교에서 생산되는 지역 식재료를 판매하는 날이고 매달 세 번째 일요일 오전에는 아침 식사 메뉴로 가득한 ‘브렉퍼스트 마켓’이 들어선다.

반면에 옛 구 동베를린에 속해 있던 프리드리히스하인 같은 경우에는 ‘베르크하인(Berghain)’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이 있다. 이곳에는 다양한 클럽들이 있어 젊은 이 지역 DJ들뿐 아니라 세계의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메카로 인기를 누린다.

도시의 재생이 과거의 단순한 복원과 회생에 그치지 않고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정신과 함께할 때 발전도 있고 진정한 힘도 갖는다. 공공기관의 일방적 주도가 아니라 주민과 지역 커뮤니티가 함께할 때 도시재생 사업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재생은 건물의 부활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탄생, 더 나아가 공동체와 인간의 건강한 삶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베를린의 사례에서 확인한다.

“지나가버렸어-라고 하는 것은 바보 같은 말”(Vorbei-ein dummes Wort)이라고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말했던가. 지나가버린 과거의 명성으로 자기를 포장하려는 상대는 사람들이건 도시들이건 보기에 안쓰럽기 마찬가지다. 베를린에 도시재생은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다.

막다른 골목이 때로는 최고의 최전선이 되기도 한다. 역경을 뒤집으면 훌륭한 경력이 된다고도 하였던가? 장벽에 막혀 있던 도시는 이제 예술의 최전선이 됐다. 그렇다. 미로를 헤매봐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사람이건 도시건 마찬가지다. 진정한 재생의 의미다.

손관승 - 세한대 교수로 의사소통 능력과 스토리텔링, 리더십 등을 가르치고 있다. MBC 기자로 베를린 특파원, 국제부장, 100분 토론 부장 등을 거쳐 방송 콘텐트 플랫폼 기업인 iM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제2의 인생을 찾는 과정을 그린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그림형제의 길>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노마드>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언론중재위원으로도 재직 중이다.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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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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