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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동병상련 연구] 편의점의 진화, 어디까지? 

싱글가구 덕분? 경기침체 속 ‘나 홀로’ 호황 

김경철 일본 고단샤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편의점 ‘세븐일레븐’, 일본 기업에 합병되며 초고속 성장… 국내 편의점 시장, 지난해 도시락 판매 세 배로 늘고 커피 매출도 스타벅스 맞먹어… 초고령사회 일본은 배달과 요양 서비스까지 진화돼

▎불황의 여파로 성장세가 둔화됐지만 1인 가구가 늘며 편의점은 나날이 성장 중이다. 국내 최대 편의점 체인 CU 매장에서 직원들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편의점(convenience store)은 1927년 미국 텍사스주 오크클리프라는 소도시의 작은 얼음가게에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아직 일반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로, 가게에서 판매하는 얼음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사우스랜드제빙사로부터 얼음가게 운영을 위탁받았던 존 제퍼슨 그린은 얼음뿐 아니라 달걀·우유·빵 등의 식료품도 팔아달라는 인근 주민들의 요청에 부응해 가게 한구석에 식료품을 쌓아놓고 팔기 시작했다. 그린의 얼음가게는 여름철이면 주 7일, 하루 16시간씩 영업했는데 식료품점이 문을 닫는 저녁 시간과 일요일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린의 성공에 고무된 사우스랜드제빙사는 산하 8개 제빙 공장과 21개 창고에서 일제히 식료품을 판매하도록 조치했다. 이것이 편의점의 시작이다. 사우스랜드제빙사가 세운 최초의 편의점은 처음에는 ‘토템 스토어’라고 불리다가 1946년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매일 영업하는 체인’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세븐일레븐(7-ELEVEN)’으로 바꿨다. 세븐일레븐은 ‘프랜차이즈 체인’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점포 확산 방식을 도입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영업망을 확대해 미국 최대의 소매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월마트 등 대형 유통 체인점이 보급되면서 가격경쟁 및 사업 다각화에 실패해 1991년 ‘세븐일레븐 재팬(Japan)’에 흡수합병됐다. 미국에서 출발한 편의점은 현재 발상지인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는 소매유통점이다.

한국 | 국민냉장고 된 편의점


▎10대들의 편의점 구매 트렌드.
한국 편의점의 역사는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도성장으로 국민소득이 급격하게 올라간 1980년대, 특히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구매력을 지닌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소매업이 황금기에 진입했다. 1989년 5월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세븐일레븐 1호점이 처음 문을 열었다. 세븐일레븐 1호점은 현재 편의점의 평균 면적보다 두 배 정도 넓은 40평 규모의 매장에 식품 위주로 2000여 종의 상품을 구비하고 1일 24시간 영업체제로 총 11명의 종업원이 3교대로 근무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1990년 훼미리마트(현 CU)와 미니스톱, LG25(현 GS25) 등이 잇따라 편의점 시장에 뛰어들면서 1989년 전국에 단 7곳뿐이던 편의점은 1991년까지 수도권에만 300여 매장이 생길 정도로 판을 키워갔다. 1993년에는 1000호 점을 돌파했으며 2007년에는 전국 점포 수 1만 개를 넘긴 이후 2016년 3만2611개까지 늘어났다.

시장 규모면에서도 비약적 성장을 계속했다. 2012년 10조 원을 넘어선 시장은 5년 만인 2016년에는 두 배로 성장, 20조4000억원을 달성하며 연간 12조원 규모의 백화점 시장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불황의 여파로 성장세가 둔화된 백화점·대형마트 등의 유통 채널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편의점만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는 것이다.

급증하는 1인가구는 편의점 성장에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17>의 공동 저자인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1인가구의 소비 패턴인 소량 구매, 근거리 쇼핑에 최적화한 유통 채널이 편의점이다. 국내 편의점들은 1인가구의 생활 패턴에 맞춰 수시로 전략을 바꿔가며 다양한 상품과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개발해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 분석한다. 이 교수는 또한 “편의점과 관련해 편의점족·편도족·모디슈머 등 새로운 문화 트렌드가 등장했고, 최근에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시 등 편의점 문학까지 생성됐다.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도심 속 작은 오아시스처럼 심리적 위안과 재미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최근 편의점이 젊은 층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한다.

‘편도족(편의점 도시락 먹는 사람들)’이 일등공신


▎1인가구 증가와 가사노동시간이 감소하는 추세에 맞게 세탁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점도 있다. 세븐일레븐의 세탁 서비스.
학교 근처 원룸에서 생활하는 취업준비생 한유진(24·여)씨는 하루 세 번 편의점에 들른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학교 안의 편의점에 들러 아침 대용으로 커피와 빵을 먹은 후 도서관으로 직행한다. 점심에는 편의점에서 미리 주문한 도시락을 받아 점심을 때우고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하굣길에 제일 먼저 들르는 곳 역시 집 근처 편의점이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상품을 픽업한 후에는 혹여 새로운 원플러스원, 투플러스원 상품이 있는지 매장 안을 꼼꼼히 둘러본다.

“아침·점심은 거의 편의점에서 먹어요. 저녁도 편의점에서 산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아요. 혼자 살기 때문에 식사를 만드는 게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들어요.”

유진씨는 매달 집에서 보내주는 생활비에서 집세와 통신요금 등 꼭 필요한 지출을 제외하면 한 달에 30만원 남짓으로 생활해야 한다.

“가장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식비예요. 편의점은 비싸다는 인식이 있지만, 할인카드도 많고 쿠폰이나 원플러스원 등의 행사 상품을 잘 활용하면 마트보다 싸게 살 수 있어요.”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할 정도로 도시락은 최근 편의점 매출의 일등공신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편의점 업계의 도시락 매출은 2015년 대비 약 세 배 수준까지 뛰어 역대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전체 편의점 도시락 시장 규모가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국내 최대 편의점 체인인 CU의 경우 전체 3000여 품목의 매출 순위에서 도시락이 1위와 3위를 기록, 편의점이 상륙한 지 27년 만에 ‘바나나우유’와 맥주를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으로 등극했다.엄청난 인기로 원하는 시간에 도시락을 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면서 각 사는 도시락 예약 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GS25’는 ‘나만의 냉장고’라는 자사 앱을 통해 도시락 예약 서비스를 실시하며, ‘CU’는 배달전문업체 ‘부탁해’와 손잡고 예약배달 서비스를 실시한다. ‘세븐일레븐’은 자사 홈페이지와 직접방문을 통해 예약 주문을 받는다.

최근 신세계유통에 편입된 편의점 ‘위드미’는 선두 업체들과의 경쟁을 위해 도시락 차별화에 사활을 걸었다. ‘고시히카리’ 품종 쌀로 밥을 지어 고객이 원하는 반찬과 함께 즉석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만들어 제공하는 ‘밥 짓는 편의점’으로 운영하며, 샌드위치 전문점을 입점시켜 자신이 원하는 토스트를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셀프 토스트 코너도 마련했다.

1000원대의 편의점 원두커피 역시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매출이 증가하는 품목이다. 2015년 1월 ‘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를 필두로 편의점 커피 시대를 연 선두 3사의 커피 매출액은 1년 만에 네배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3사의 1일 커피 판매량은 30만 잔에 육박, 국내 커피 시장 점유율 1위인 스타벅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밖에 혼술족을 위한 편의점 안주와 간편식도 날로 다양해지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는 ‘편의점 꿀조합’이라는 새로운 식문화가 유행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각종 간편식과 식품을 이용해 나만의 조리법을 만들어내는 ‘모디슈머(Modify+Consumer, 창의적 소비자)’들의 아이디어가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모으더니 최근에는 케이블 TV채널의 어엿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택배·세탁·귀가 서비스 등 맞춤형 서비스


▎서울 흑석동 국내 1호 드라이브스루 CU 편의점.
1인가구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도 날로 추가되고 있다. 대표적 서비스가 바로 택배 픽업 서비스다. ‘CU’는 인터넷 쇼핑 업체인 티몬과 연계한 택배물품 서비스를 한다. 편의점 직원이 직접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며, 문자로 받은 바코드를 직원에게 보여주면 물건을 받을 수 있다. ‘GS25’는 G마켓·옥션·G9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와 손잡고 편의점 외부에 전용 택배함인 ‘스마일박스’ 서비스를 운영한다. 스마일박스에 택배가 도착하면 고객의 휴대전화로 인증번호가 발송되며, 고객이 점포를 방문해 스마일박스 무인 키오스크에 인증번호를 입력하면 택배함이 열려 상품을 수령할 수 있다.

‘세븐일레븐’은 롯데 온라인쇼핑몰(롯데닷컴·엘롯데·하이마트 등)의 택배를 수령할 수 있는 ‘스마트픽’ 서비스를 운영한다. 해당 쇼핑몰 사이트에서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고 ‘스마트픽 찾기’를 선택한 후 지점 선택하기에서 ‘세븐일레븐을 클릭하면 된다.

1인가구의 증가와 가사노동시간이 감소하는 추세에 맞춰 세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점도 생겨났다. ‘세븐일레븐’은 원룸이 밀집한 서울 용산구의 한 매장에서 세탁전문업체와 손잡고 무인세탁 시스템을 도입한 세탁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격은 와이셔츠 990원, 운동화 3500원, 정장 한 벌 5200원 등으로 기존 프랜차이즈 세탁 서비스보다 최대 약 15% 저렴하다.

서울시 편의점들은 경찰서와 연계해 여성들을 위한 안심지킴이 서비스도 전개한다. 귀갓길에 신변에 위험을 느낀 여성들이 ‘여성안심지킴이집’이라고 표시된 노란색 스티커가 붙어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편의점과 112가 핫라인으로 연결돼 바로 경찰이 출동, 집까지 안전하게 귀가시켜준다.

이 밖에 각종 민원서류 발급과 공과금 납부 등의 서비스도 한층 진화하고 있다. ‘GS25’는 키오스크 복합기를 설치, 프린트·복사·팩스는 물론 주민등록증과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편의점을 대학로에서 시범운영하며, ‘CU’는 삼성전자와 제휴해 문서 출력과 스캔·복사·팩스 송신 등을 할 수 있는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강남구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 시범운영한다.

국내 편의점의 점포당 인구는 1600명에 달한다. 인구 대비 편의점 수에서 편의점 왕국이라는 일본(2300명)을 추월했다. 이 때문에 국내 편의점은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했으며,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준영 교수는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젊은 싱글 남녀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고령층 1인가구를 위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옴니채널(Omni Channel, 온·오프라인과 모바일 등의 쇼핑 채널을 연동한 시스템) 서비스, 오토 비즈니스 등 급변하는 정보화 환경에 대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일본 | 최초 365일 연중무휴, 24시 영업


1960년대 후반, 고도성장의 전성기에 돌입한 일본에서는 대형 유통 체인점인 수퍼가 급성장하면서 막강한 상품 조달력과 자금력을 이용한 수퍼들이 신업종으로 소형소매업 분야에 진출을 위해 본격적인 편의점 사업에 나선다. 수퍼체인점이던 ‘세이유’는 1972년 기획실에 소형점 담당을 설치하고 1973년 사이타마현에 ‘훼미리마트’ 1호점을 낸다. 이어 이듬해인 1974년에는 역시 대형 수퍼체인점인 ‘이토요카도’가 당시 미 전역에 4000점 이상의 점포를 가지고 있던 사우스랜드제빙사의 ‘세븐일레븐’과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도쿄 도요스에 세븐일레븐 1호점을 개점했다. 미국의 대형 식품유통사인 콘솔리데이티드푸드사와 컨설팅 계약을 한 다이에는 1975년 오사카에 ‘로손’ 1호점을 개점했다. 로손이라는 점포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목장주인 JJ 로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로손은 우유 외에 일상용품을 함께 파는 방식의 우유 판매점인 로손우유회사를 설립, 큰 인기를 끌었으나 콘솔리데이티드푸드사에 흡수합병되면서 로손이라는 점포명은 미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의 편의점들은 미국의 편의점과 다른 독자적 운영 방식으로 성장을 거듭해 나갔다. 365일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으로 인한 시간적 편리성, 주택가나 역 근처는 물론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접근의 편리성, 너무 넓지 않은 매장에 풍부한 제품군을 갖춘 선택의 편리성을 무기로 비약적으로 점포 수를 늘려갔다.

일본 프랜차이즈협회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편의점 시장 규모는 2016년 말 기준으로 10조5722억 엔, 점포 수는 2017년 3월 현재 5만48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업계 최강자는 세븐일레븐으로 2016년의 연 매출 규모는 4조2910억 엔, 전체 시장의 40%에 육박하는 점유율이다.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 전역에 1만9000여 점이 출점했다.

시장 점유율 약 18.6%로 업계 2위인 로손은 오사카에 1호점을 개설한 이후 1997년 업계에서 처음으로 일본 전역에 가맹점을 두는 데 성공, 현재 약 1만2000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로손 외에 도쿄도를 중심으로 한 관동 지역에 입점한 ‘내추럴 로손’, 싱글족을 타깃으로 하는 100엔 균일 신선식품 편의점인 ‘로손 스토어 100’ 등 세 종류의 편의점 체인을 운영한다.

점유율 18.2%로 업계 3위였던 훼미리마트는 2016년 업계 4위의 ‘서클K상크스’의 모회사인 유니그룹홀딩스를 흡수합병하며 훼미리마트·서클K·상크스 등 세개 편의점 브랜드를 소유, 총 1만7600점포를 보유하며 선두인 ‘세븐일레븐’을 바싹 뒤쫓고 있다.

세븐일레븐·로손·훼미리마트 3사 3색


▎일본 편의점 ‘로손’의 경영전략은 ‘시대의 니즈’를 반영한 서비스다. 로손의 이동식 편의점. / 사진:일본 편의점 ‘로손’의 경영전략은 ‘시대의 니즈’를 반영한 서비스다. 로손의 이동식 편의점. / 사진:김경철
오늘날과 같은 편의점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공헌해온 세븐일레븐은 항상 새로운 서비스와 아이디어로 업계를 이끌고 있다. 1975년 처음으로 24시간 영업점을 개설해 오늘날과 같은 ‘24시간 영업’ 체제를 만들었으며, 1982년 POS(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 정보와 니즈에 부응하는 서비스와 상품 개발에 적극 나섰다. 고품질의 자사 브랜드(PB) 상품 개발 경쟁에 불을 지핀 것도 세븐일레븐이다.

비슷한 매장 디스플레이와 비슷한 상품군을 보유한 편의점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이 PB상품군이다. 기존의 PB상품들은 기존 브랜드(NB) 상품보다 가격은 싸지만 품질 면에서는 떨어진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세븐일레븐은 ‘가격은 PB상품, 품질은 NB상품’을 추구하는 세븐프리미엄을 2007년 5월 선보이며 편의점 PB상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2016년 2월에는 1조 엔 판매를 돌파하고 품목 수도 3650개에 이르는 등 세븐일레븐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로손의 경영 전략은 ‘시대의 니즈’를 반영하는 상품과 서비스 전개다. 2013년부터 ‘우리 동네 건강 스테이션’을 슬로건으로 건강과 미용에 관련된 상품을 풍부하게 취급하는데, 이 때문에 병원에 가장 많이 진출한 편의점이기도 하다. 건강을 키워드로 내세운 주먹밥·도시락·빵·과자 등의 PB상품도 풍부하다. 일반적인 밀가루에 비해 당질이 적은 브랜(bran, 밀 껍질)으로 만든 빵과 파스타 등의 저당질 식품을 제일 먼저 출시했으며, 2013년부터는 점포 내에서 조리하는 모든 패스트푸드의 튀김은 ‘트랜스지방 0’ 기름을 사용한다. 관동지역에서 운영하는 ‘내추럴 로손’은 “아름답고 건강하고 쾌적한 라이프스타일을 지원한다”는 콘셉트로 식품첨가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엄선된 재료로 만든 PB상품을 선보였다.

훼미리마트는 “Fun&Fresh”라는 슬로건으로 타 업종과 제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다. 셀프서비스 노래방 체인점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훼미리마트에서 식료품을 사서 노래방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체형 점포를 전개한다. 또 농협과 컬래버레이션 점포에서는 채소·과일 등 농산물뿐 아니라 수산물 등 신선식품을 풍부하게 구비하고 있다. 이 밖에 지방 특산물이 풍부한 수퍼마켓·약국·음식점 등과 일체형 점포도 선보였다. 세제·티슈 등 PB상품뿐 아니라 무인용품의 상품을 포함한 일상용품을 폭넓게 구비했으며, 단맛을 줄이고 용량을 늘린 ‘남성용 디저트’ 등 ‘훼미리마트’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개성 있는 상품 라인도 인기를 얻고 있다.

40년 동안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일본의 편의점 업계는 2013년 시장이 ‘포화점’으로 보는 5만 점포를 넘어섰다. 그러나 포화 상태에 다다른 시장에서도 고객층의 다각화, 고객을 찾아가는 서비스 등을 통해 고객 확보를 모색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20~30대 남성층이 주 고객층이던 편의점 업계는 여성 고객, 특히 주부층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10년 전까지만 해도 남녀 고객 비율은 7대 3으로 남성 고객이 월등히 높았으나 현재는 5대 5로 여성 고객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업계는 여성 고객이 늘어난 계기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본다. 국가적 재해를 경험한 이후 생활과 밀접한 위치에 산재한 편의점의 존재가 새롭게 인식됐던 것이다. 피해 직후 가장 앞서 문을 연 편의점은 빵·생수 등의 물자를 헬리콥터로 수송해 조달했으며, 피해 지역 주민들의 정보 센터 역할은 물론 모금 창구가 되어 지역 복구에 이바지해 사회 인프라로서 긍정적 이미지를 크게 제고했다. 또한 평소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편의점을 이용하지 않던 여성들이 재해를 계기로 편의점을 이용하게 되었고, 이후 재방문이 늘었다.

2010년께부터 로손을 필두로 여성 고객들을 타깃으로 한 고품질의 편의점 디저트가 등장했다. 도시락 판매대에는 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를 연상시킬 만큼 다양한 반찬을 구비했다. 또 간식으로 인식되던 핫스낵류를 보강해 주부들이 반찬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입구 근처에 여성잡지 코너와 여성용 일용품 코너를 마련(세븐일레븐)하고 건강에 까다로운 여성들을 위해 전문 영양사가 감수하는 도시락을 시판(훼미리마트)하는 등 여성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판매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인구가 희소한 외딴 지역이나 근처에 쇼핑할 만한 공간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 혹은 외출이 불편한 고령자 등 이른바 ‘쇼핑 약자’들을 위한 이동판매 서비스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도시락·주먹밥·샌드위치 등의 식료품과 일상용품 등 수백 개의 상품을 전용 트럭에 싣고 매주 정해진 시간에 마을을 찾아가는 서비스다. 현재 일본 전역에 약 700만 명에 이른다는 쇼핑 약자를 위해 고안된 이동판매 서비스는 지방의 인구공동현상, 초고령화 등 일본의 인구 변화에 맞춰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훼미리마트가 전개하는 자판기편의점(ASD) 역시 찾아가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자판기편의점이란 음료수·컵라면· 과자뿐 아니라 샌드위치·주먹밥 등의 조리식품, 마스크·타월 등의 일상용품으로 구성된 150여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판기다. 1호점은 2004년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쓰의 전산실에 설치돼 보안상 출입 시마다 철저한 체크가 번거로웠던 직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 미만의 좁은 공간에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사무실·공장·공공장소의 휴게실 혹은 길거리에도 설치할 수 있으며, 인구가 적어 편의점이 들어설 입지조건이 안 되는 시골 마을에도 설치할 수 있다. 현재 전국에 1700개 이상의 자판기편의점이 존재한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는 편의점의 주고객층이 중·고년층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자료에 따르면 25년 전 9%에 지나지 않던 50대 이상 이용객이 2016년 33%까지 늘어난 반면 20~30대 이용객은 55%에서 39%로 감소했다. 50대 이상 시니어층이 주고객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편의점의 상품과 서비스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배달 서비스다.

초고령화에 맞춰 배달 서비스 활황


▎훼미리마트가 전개하는 자판기편의점(ASD) 역시 찾아가는 서비스다.
세븐일레븐의 ‘세븐밀’이라는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선두로 모든 편의점에서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실시하는데, 현재는 도시락 외에 물품도 500엔 이상 주문하면 배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훼미리마트는 드러그스토어 체인점과 협력해 다양한 의약품을 구비하고 조제약을 처방할 수 있는 전문 약사가 상주하는 점포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로손은 ‘케어로손’이라는 테마로 개호(간병)거점형 점포를 개설, 케어 매니저를 상주시켜 노인들을 위한 상담창구를 마련했다. 개호 서비스 업체와 연대해 24시간 동안 각종 정보와 상담 서비스를 실시하며, 고령자들이 쉴 수 있는 코너도 마련했다.

고령자 취향에 맞춘 상품 개발도 치열하다. 일본식 디저트·파스타 등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식품들이 속속 개발되며, 채소가 풍부하고 부드러워 씹기 쉬운 도시락, 저염식·저열량 도시락 등 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상품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고령자 고객을 겨냥한 개호용 식품, 성인용 기저귀 등 일용품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 사회의 요구에 대응해 의료나 요양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는 일본의 편의점은 우리 편의점의 미래상이 될 수 있을 듯하다.

- 김경철 일본 고단샤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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