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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論의 역사(8)] 칭기즈칸의 선조 지파(支派) 부랴트 3종족의 기원 

알란 고아(阿蘭乞哥)의 10세대 후손이 세계 정복자 

글·사진 전원철 법학박사
몽골인으로 알려진 테무친의 선조는 고구려와 발해 족속… 칼지다이 등은 후고구려 ‘궁예(弓裔) 정권’에 참여하기도

▎돈화 성산자산성에서 바라본 들녘. 당의 추격을 뿌리친 대조영과 그가 이끈 군대는 성산자산성에 처음으로 정착해 발해의 기틀을 잡았다. 그들은 이 들녘을 경제적 원천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7월호에서 우리는 칭기즈칸과 몽골종족의 선조 이야기를 했다. <집사>의 ‘황금항아리’, 곧 <시바니의 서>의 ‘황금의 칸’은 <고려사>의 금행(金幸)이다. 그의 세 아들 중 차남이 <금사>가 반안군(완안부) 복간수(함북 길주)로 떠났다는 함보(函普)다. 그의 삼남이 <금사>가 야래(함남 함흥)로 갔다는 그 아우 보활리(保活里)다.

이 두 인물 각각의 손자들인 칼지다이와 바르가 바아타르는 후고구려 왕 궁예(弓裔)의 정권에 참여했다. 이 중 칼지다이는 우즈베키스탄 콩그라트 왕조의 정사 <행운의 정원>에 칼지다이 칸(Qaljiday Khan)으로, 또 <고려사(高麗史)>에서는 아지태(阿之泰, 당시 소리 ‘카지타이’)로 기록됐다. 오늘날 우리말로 클씨씨(乞氏씨)라는 이름이다.


▎칭기즈칸의 영정
보활리의 손자는 부랴트 구비역사서 <부랴트 역사의 글 제2권>에 바르가 바아타르(Barga Baatar)로 적힌 인물이다. 오늘날 우리말로 ‘발해(渤海) 막하돌(莫賀咄)’, 곧 ‘발해 말갈 추장’이라는 뜻이다.

함보와 보활리의 누이인 용녀와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이 혼인해 용건을 낳았고, 그 용건의 아들이므로 아지태와 ‘발해 막하돌’ 두 사람에게는 6촌 고종 형제 사이인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궁예(弓裔)에 대항해 궁정혁명을 일으키자, 이 두 인물은 궁예 편에 섰다.

그러나 궁예가 성난 백성들에게 강원도 부양·부여(夫如)에서 잡혀 죽자, 그들은 궁예의 시신을 안고 당시 발해의 등주(오늘날 함남 안변)로 가 궁예의 시신을 묻고 북으로 향했다.

바르가 바아타르가 궁예의 왕성 철원에서 북으로 간 것에 관해 <부랴트 역사의 글 제2권>은 지난번에 본 바와 같이 바르가 바아타르는 카라 바다(Khara dalay, 고려 바다=발해=서해) 기슭의 커다란 전쟁(왕건과 궁예 사이의 궁정혁명) 때문에 그곳을 떠나 바이칼로 갔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주요 언론사와 일부 강단 및 재야학자들이 우리 민족의 시원이 바이칼호라거나 부랴트족에서 고구려 주몽이 나왔다는 입증할 근거가 없는 설을 서적이나 인터넷·신문·잡지를 통해 퍼뜨리고 있지만 역사의 방향은 거꾸로였다.

이 바르가 바아타르는 <코리-부랴트 11선조의 뿌리에 관한 족보 이야기> 속에서는 바르가 바아타르 타이상 노욘(Barga baatar Taisang Noyon)’으로 기록됐다. 이는 우리 발해-(후)고구려의 관칭으로 ‘발해 막하돌(莫賀咄=말갈왕) 대상(大相=총리) 랑(郞=족장)’에 대응하는 부랴트-몽골어 음변(音便)이다.

모든 ‘몽골인의 어머니’ 알란 고아


▎셀렝게, 즉 솔롱고(고려) 부랴트인들.
바르가 바아타르는 오늘날 바르구진 토쿰(우리 말갈어의 발해진 대군(渤海津 大郡)의 부랴트어 음변)이라고 알려진 곳에 정착해 두 아들을 낳았다. 큰아들 부랴다이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 에히레드와 볼가드는 각각 에히레드 부랴트(약라=고구려 부려씨), 볼가드 부랴트[강원도 부여(夫如) 관향의 부여씨]의 선조가 되고, 코리 메르겐은 코리-부랴트(고려-부여씨) 종족의 선조가 돼 이들은 부랴트 3종족의 선조가 됐다.

이 세 씨족 지파 가운데 코리-부랴트의 시조인 코리 메르겐(고려-말갈)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인 1240년에 기록된 <몽골비사>에서는 코리-라르-다이 메르겐(고려-나라-씨 말갈)으로 기록됐다.

여기서 ‘메르겐’은 <금사 제36백관1(金史志第三十六百官一)>에 따르면 금나라 말에서 “一國의 官長은 모크리(勃极烈)라고 하고” “部長은 메르겐(孛堇)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칭호는 오직 종실(宗室)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칭호로 같은 어원인 우리말 ‘말갈, 무구리’에서 나와 몽골어 ‘메르겐’으로 파생돼 쓰이게 된 낱말이다.


▎알란 고아를 표상한 몽골인들의 그림.
그는 <몽골비사>에 따르면 그 바르구진 토쿰 땅의 군장인 바르구다이 메르겐(발해씨 말갈)의 딸 바르구진 고아(발해진 걸가)와 혼인했다. 이들 사이에서 난 외동딸이 오늘날 ‘모든 몽골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칭기즈칸의 10대 조모 ‘알란 고아(Alan-Goa)’다. <코리-부랴트 11선조의 뿌리에 관한 족보 이야기>는 바로 이 여인의 10대손이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칭기즈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랴트 3종족이 생긴 유래에는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스스로 바르가 타이상 노욘(발해 대상 랑)의 후손으로 자칭하는 오늘날 바이칼호 주변 부랴트 공화국의 부랴트(Buryaad)인들은 자신의 조상이 누구였으며, 어떻게 자기들 부랴트 3종족이 생겼는지 전승을 통해 유래를 알려준다. <셀렝게의 몽골-부랴트인들의 역사>다.

‘고니 여인’ 아내를 얻어 씨족의 선조가 됐는데


▎13세기 몽골 기마부대 복장의 몽골 현역 군인들이 ‘칭기즈칸 800년 만의 귀환’ 행사에서 말을 타고 초원을 질주하고 있다.
이 사서에는 <완단 윰순노브가 1875년에 지은 족보의 일부-코리의 11선조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와 <부랴트 역사의 글 제2권>에 각각 나오는 ‘바르가 바아타르 타이상 노욘과 바르가 바아타르라는 그의 관칭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말갈어로 ‘커가 보고(乞哥保皐, 대씨 맏아들)’라는 이름 소리를 부랴트어 낱말 소리로 풀 때 ‘파란 수소’를 뜻하는 ‘쿠케 보카’라는 실명으로 등장해 그가 부랴트 3종족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몽골의 칭기즈칸의 백성 오이라드-부랴트에서 나온 아수이한(Asuykhan)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다간(샤만, 무당)이 바이칼 호수의 기슭을 따라가고 있는데, 호수 기슭에서 쿠케보카, 곧 바르가 바타르=발해 막하돌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음메음메’ 울고 있었다.

여기서 이런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오다간은 놀랐다. 아마도 보르한 텡게르[몽골어로 ‘거룩한 하늘’, 단 중의법으로는 ‘불함산(不咸山)의 진국(震國=텐게트)’]의 점지로 이것을 남편 없는 내게 보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편 없이 살았기에 그와 함께 하나가 될 생각을 하고, 하나가 됐다.


▎<만주실록>에 나오는 삼선녀(三仙女)가 불후리(布勒瑚裡) 못에서 멱을 감는 그림(맨 위)과 페굴렌(佛庫倫)이 임신해 같이 못 올라가는 그림(아래 왼쪽) 및 페굴렌이 하늘로 올라갈 때가 되자 아들에게 당부하는 그림.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다간은 아이를 갖게 됐다. 두 아들이 태어났다. 큰아들은 부랴다이(Buryaaday), 작은아들은 코리도이(Khoridoy)라고 이름지었다. 한 번은 부랴다이는 산꼭대기의 지팡이 나무(조도 모돈, 가문비나무)에서 한 처녀를 만나 그녀를 아내로 삼아 두 아들을 보게 됐다. 형은 에히레드(Ekhired), 아우는 볼가드(Bulgad)라고 이름 지었다.

에히레드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다. 그들의 첫 뿌리는 바이칼의 저쪽 -에르쿠 모조(에르쿠郡)에 있는 데에데-줄헤(Deede-Zulkhe, 높은 솔고, 곧 ‘上 朝鮮’), 발라간스크(Balagansk, 沸流郡의 도시), 이데(Ide) 따위의 땅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불가드는 여섯 아들을 봤다. 그들에게서 나온 씨족의 후손들은 대개 바이칼의 저편 발라간스크, 코티(Khuti), 오이혼(Oykhon), 도오도-우데(Doodo-Ude) 따위의 터에서 살던 카라노트(Kharanut, 會蘭-씨), 아샤바가드(Ashabagad),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사람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에히레드의 여덟 아들과 볼가드의 여섯 아들의 후손들은 보카 노욘(Bukha noyon) 아버지와 보단 카탄(Budan khatan, 곧 ‘무당 부인’) 어머니를 가졌다고 말하고들 했다.

카안 뫼(Khaan uul)의 전나무 안에 있는 잘만 노욘(Zalman noyon, 朱蒙 郞)에게 새하얀 올락샤(ulaagshaa) 암소의 젖을 짜서 제물로 삼고 기도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이 관습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바이칼의 이편 몇몇 곳의 부랴트인들한테서 이어온다.

이것이 바로 부랴트 3종족 중 2지파인 ‘에히레드 부랴트 8씨족’과 ‘볼가드 부랴트 6씨족’의 탄생 이야기다. 이처럼 파란 수소 쿠케 보카, 곧 ‘바르가 바타르’의 큰아들 부랴다이와 작은아들 코리도이 중 큰아들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 에히레드와 아우 볼가드에게서 태어난 각각 여덟 아들 및 여섯 아들의 후손은 각각 에히레드 부랴트 8씨족과 볼가드 부랴트 6씨족이 됐다.

바르가 바타르, 곧 쿠케 보카의 작은아들 코리도이에게는 두 명의 아내에게서 모두 11명의 아들과 한 아내에게서 외동딸이 태어났다. 이렇게 태어난 또 하나의 종족 코리-부랴트 지파도 합친 것이 오늘날 ‘부랴트 3종족’이다. 이 ‘코리-부랴트 종족’도 그들 자신만의 기원에 얽힌 신비롭고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셀렝게의 몽골-부랴아드인들의 역사>는 부랴다이의 아우인 코리도이가 고니가 변한 여인인 아내를 얻어 ‘코리-부랴트 11씨족’의 선조가 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바이칼 호수의 한가운데 있는 오이혼(Oykhon)섬에 코리도이가 가고 있을 때, 하늘에서 세 마리의 고니가 떨어져 내려앉았다. 호숫가에서 세 처녀가 돼 모습을 바꿨다. 아름답고도 고운 옷과 치장거리를 풀어 던지고 호수로 들어갔다. 물밑으로 들어가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코리도이는 놀랐다. 그 처녀들 가운데 하나의 옷과 꾸미개를 훔쳐서는 숨겼다. 그 가까운 곳에서 숨어들어 앉았다. 처녀는 옷과 치장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가 그 가운데 둘은 옷과 치장을 입고서는 고니가 돼 날아갔다. 하늘로 떨어지듯 가버렸다. 한 처녀는 코리도이에게서 옷과 꾸미개를 도둑질당해 벌거벗은 채로 남았다. 이를 본 코리도이는 아수이한 샤만 어머니에게 아내를 줘 감사의 절을 올렸다.

하늘로 날아간 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아


▎KBS 사극 <대조영>에서 대조영 역을 맡았던 배우 최수종이 군사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리고 있다.
매우 추운 바람이 불었다. 처녀는 몸이 얼어갔다. 어쩔 수 없이 코리도이의 가슴으로 달려 들어와 안겨버렸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둘은 남편과 아내가 됐다. 열한 아들을 낳았다. 그 열한 아들에게서 퍼진 종족이 오늘날 11명 선조의 코리 부랴아드가 됐다.

코리도이는 맨 처음에는 오이혼섬에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곳에서 코리도이는 늙어갔고, 아내도 노파가 됐다. 한 번은 그 아내가 늙은이한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는 이제 늙었구려. 열한 명의 사내아이를 낳았구먼요. 이제 아이들 몸에서 어디로 가겠어요? 예전의 내 옷과 치장거리를 내게 돌려 주구려. 죽기 전에 입어 보고 조금 즐겨보리다.” 이를 들은 코리도이 영감은 그 뜻을 들어줬다. 옷과 꾸미개를 꺼내줬다.

노파는 옷과 꾸미개를 받아서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예전의 옷을 입자마자 고니가 됐다. 하늘 위로 날아가는 때 코리도이 영감은 이를 뻔히 보며 달려 나가면서도 그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고니가 됐다. 하늘 위로 날아가서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 후손들은 아직도 그녀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코리인들은 고니 뿌리에서 나왔다. 자작나무로 만든 말 매는 말뚝을 가진 이들이라고 하는 관습이 있다. 이 때문에 이른 때부터 시작해 고니가 돌아와 앉을 때는 사람들이 술을 흩뿌리는 관습이 있다.

코리도이, 에히레드, 볼가드 세 선조의 후손들은 바이칼을 둘러싸고 산과 뫼에, 숲과 타이가에, 들과 벌판에, 물과 가람에 자리 잡고 살았다. 사냥감인 들짐승을 잡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서기 1200년에 바이칼의 앞과 뒤쪽 지방에 키르기스-학카스 나라가 자기 카안과 함께 자리 잡고 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왜인지 매우 친근하게 들리지 않는가?

바로 지난 <월간중앙> 1월호에서 본 우리 전설 ‘나무꾼과 세 선녀’ 이야기와 <만주원류고>에 나오는 청나라 태조 아이신 교로 누르하치의 시조 ‘포고리 옹순과 삼선녀’ 전설과 거의 같다. 단지 후자에는 ‘코리-부랴트’라는 말만 빠졌을 뿐이다.

이 코리-부랴트 11씨족의 기원 이야기가 말하는 ‘코리-부랴트 종족의 시조’ 코리도이(코료오도이, 곧 고려씨)는 바로 <몽골비사>가 말하는 ‘코리라르다이 메르겐(고려나라씨 말갈)’이고, <집사> 등 서방사서가 말하는 ‘코를로스’이고, 이는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쓴 <황조통지(皇朝通志)>가 ‘고려나씨(高麗那氏)’로 기록한 씨족이다.

코리-도이와 코료오-도이, 곧 우리 말갈말로 ‘고려-씨’라는 이름은 <몽골비사>에서는 ‘코리 오복톤(코리-씨)’로 적힌 씨족의 시조로 그 이름은 그가 ‘고려(=발해)’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코리도이·왕건, 우연의 일치 아니다


▎코리-부랴트의 문중 모임 사갈간 (Сагаалган)에 모인 코리-부랴트 여인들.
부랴트 3종족의 전승을 전하는 <셀렝게의 몽골-부랴아드인들의 역사>에서 부랴트 3종족의 공동 시조인 쿠케 보카는 <완단 윰순노브가 1875년에 지은 족보의 일부-코리의 11선조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카안의 막내아들 부르테-쇼노’를 데리고 바이칼로 온 바르가 바아타르 타이상 노욘이다.

이 부랴트어식 이름(관칭)을 발해-후고구려 시대의 말갈어(靺鞨語) 이름으로 환원하면, 이는 ‘발해-막하돌-대상-랑(渤海-莫賀咄=靺鞨薩-大相-郞)’이다. 이는 ‘발해-말갈(靺鞨=莫賀)-왕(咄=薩)-대상(大相, 고구려, 신라, 고려의 군사령관직)-낭군’(郞君, ‘족장’ 또는 ‘문중회장’)이라는 말이다. 이 긴 이름을 줄인 것이 바로 ‘발해 막하돌(바르가 바아타르)’와 ‘발해 대상 랑(바르가 타이상 노욘)’이다.

부랴트 종족의 에히레드 부랴트와 볼가드 부랴트, 그리고 코리-부랴트 3지파는 모두 이 ‘발해-막하돌-대상-랑’ 한 사람의 후손 3지파다.

그런데 이 바르가 바아타르는 앞서 보았듯이 <금사>의 금나라 시조 함보의 아우인 보활리의 손자다. 그러므로 그는 발해 말갈인(靺鞨人) ‘대씨(大氏)’다.

부랴트 전승에 따르면 그의 둘째 아들 코리 메르겐(<몽골 비사>의 코리라르다이 메르겐)이 코리-부랴트 종족 11씨족, 곧 <몽골비사>속의 칭기즈칸의 직계 10대 선조인 알란 고아의 종족인 코리-투마드 부(고려-주몽부)의 시조다.

이 코리-부랴트 종족의 계보를 대야발의 4대손인 금행과 그 아들 보활리를 기준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코리-부랴트 11씨족의 시조인 코리도이의 바르구진 고아 등 3명의 아내 중 다른 2명의 아내에게서 각각 5명과 6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이 배 다른 두 어머니에게서 난 아들들의 집단 명칭은 어머니의 이름에 따라 ‘5샤라 갈조오드(5shara galzuud)’와 ‘나가트의 여섯(Nagatyn 6)’이라고 부른다.

곧 코리-부랴트의 시조는 자기 아들들에게 그 어머니들의 이름(사실은 성씨)에 따라 아들 무리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자신의 여러 왕후, 비빈들에게서 난 자기 딸, 곧 공주들의 성씨를 자기 성씨인 왕씨(王氏)가 아니라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쓰게 한 것과 같다.

왕건의 기록된 제일 윗대의 모계 선조는 고구려-발해(靺鞨)계와 같은 ‘백두산(白頭山) 말갈(摩訶, 마가)’ 땅에 기원을 둔 ‘호경(虎景)’, 곧 커칸=대씨칸=고씨칸=虎景=호랑이 칸=고라이 왕이다. 이 호경을 비롯해 할아버지 작제건은 ‘고려인(高麗人)’이었다고 기록돼 있고, 이때의 ‘고려인’은 그가 800년대 중반기의 인물이므로 ‘발해-고려인(渤海-高麗人)’이라는 말이고, 아버지 용건도 서해용왕(西海龍王)의 딸, 곧 ‘발해-고라이(구렁이=고려) 왕의 딸’에게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그는 새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하고, 자식들에게 고구려-발해(말갈)계의 관습에 따라 딸들의 성씨를 그 어머니의 성씨에 따르게 했다.

코리도이와 왕건이 택한 비슷한 방식은 그들이 모두 고려(발해)와 후고구려의 말갈 가문이었다는 점에서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샤만 아수이한이 바이칼 호수의 기슭을 따라가다가 만난 관칭명 ‘바르가 바야타르’ 실명 ‘쿠케 보카’는 말갈어, 곧 고구려-발해어로는 ‘커가(씨) 보고’, 곧 ‘걸씨 맏아들’이라는 이름인데, 이는 부랴트-몽골어로는 ‘파란 수소’다.

발해 제2 왕가에서 비롯된 부랴트 3종족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가? 바로 이 ‘발해-막하돌(바르가 바야타르)’의 부랴트-몽골어 이름 풀이인 파란 수소(쿠케 보카)의 증조부인 <고려사>의 평주(平州) 승 금행(金幸)이 살던 평주, 곧 오늘날 황해도 평산(平山)은 소놀음굿으로 유명한 지방이다. ‘푸른 수소’와 ‘샤만(무당) 아수이한’이 만나 혼인해 그들의 시조가 됐다는 부랴트 전승은 그들의 시조인 쿠케 보카의 원래 고향이 소놀음굿으로 유명한 평주 출신이었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 부랴트 종족의 전승과 족보 속에서 1100년 전에 끊긴 족보를 다시 연결할 수 있게 됐다. 이 계보는 대야발 → 일하 → 간 → 간의 아들 → 금행 → 보활리(무구리=고구려) → 콩글리우트(큰구려씨) → 바르가 바야타르 타이상 노욘(발해 막하돌 대상 랑) → 코리 메르겐(고려 말갈) → 알란 고아(함경북도의 ‘阿蘭-乞哥’)이다.

이 코리 메르겐의 11명의 아들과 외동딸 알란 고아는 발해 제2 왕가의 시조 대야발(大野勃)의 계보에서 보면 에히레드와 볼가드 부랴트 2종족의 시조와 함께 바로 대야발의 제9대 후손이다. 놀라운 일이다. 발해 제2 왕가 시조 야발(野勃)의 9세대째에서 오늘날 저 머나먼 러시아 바이칼 지방에 사는 ‘부랴트 3종족’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탐구의 결과 오늘날 부랴트인 자신들도 찾아내지 못한 선조와 종족의 기원을 밝혀낸 것이다.

이 부랴트인 3종족이 오늘날의 우리 땅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역사적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들은 우리 고구려-말갈(발해) 민족, 곧 조선(한) 민족과 진정한 피붙이, 형제 민족이다. 이 3종족 중의 하나인 코리-부랴트 종족, 곧 <몽골비사>의 코리 투마드, <집사>의 코를라스 종족, <황조통지>의 고려나씨를 이룬 11명의 형제에게 외동누이로 태어난 오늘날 ‘모든 몽골인의 어머니’ 알란 고아의 10대손이 바로 세계 정복자 칭기즈칸이다.

칭기즈칸의 선조 지파 종족은 ‘코를라스 종족=코리-투마드 부=코리-부랴트 종족’이다. <몽골비사> 8절은 ‘콜(хол) 땅’[일반적으로 몽골어로 ‘머나먼 땅’으로 풀이함]의 바르구진 토쿰의 임금 바르구다이 메르겐의 딸인 ‘바르구진 고아’와 코리-투마드 부의 노얀(낭군) 코릴라르다이 메르겐이 혼인해 그 둘 사이에서 코리-투마드의 땅 ‘아릭 우스’라는 지방에서 알란 고아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콜 땅의 바르구진 토쿰의 임금 바르구다이 메르겐은 우리 말갈어로 ‘고려(高麗=渤海) 땅 발해진(跋海津=渤海津) 대군(大郡)의 임금(郡王) 바르가(跋海)-씨-말갈(靺鞨, 孛堇)’, 곧 오늘날의 우리말로 ‘발해씨 말갈’이다.

특히 이 바르구다이 메르겐(발해씨 말갈)이라는 인물은 <금사>에 금나라 왕가의 시조로 기록된 함보의 아들 ‘오로/호래(烏魯, 胡來)’, 곧 우리말로 고려에게 다시 아들인 ‘발해(跋海=바르가)’ 곧 다른 말로 ‘발해(渤海)’이다.

한편 알란 고아의 아버지인 코리라르다이 메르겐과 그녀의 친할아버지 바르가 바야타르가 금시조 함보의 아우인 보활리의 후손이다. 이러한 조금 전의 이야기에 비춰볼 때 이 두 가문은 모두 함보와 보활리의 아버지인 금행의 후손이다. 얼마 전까지 동성동본 혼인이 금지됐던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러나 알란 고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는 8촌 종형제자매 사이고,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사이는 6촌 종형제 사이다.

알란 고아는 우리말로 ‘아란댁 걸가’


▎1207년 몽골국이 건국될 당시 오늘날의 부랴트 공화국이 된 바르구진 토쿰(Bargujin Thukhum) 지역과 칭기즈칸 선조의 부락인 코리- 투마드(Khori Tumed) 부락의 위치.
바르구다이 메르겐은 부랴트 전승에서는 바르고 바토르라고도 한다. 하는데, 이 이름은 그와 6촌 종형제이자, 자신의 사돈인 바르가 바야타르의 이름과도 유사해 부랴트인 학자들은 두 사람을 같은 한 사람으로 혼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인물은 동일한 관향을 항렬 이름으로 쓴 것일 뿐, 두 인물은 서로 명백히 다른 인물이다.

알란 고아의 코리-부랴트 종족 등 부랴트 3종족의 시조 바르가 바야타르 타이상 노욘, 곧 우리 말갈어로 발해 막하돌 대상랑과 그의 사돈인 콜 땅의 바르구진 토쿰의 임금 바르구다이 메르겐, 곧 고려(高麗=渤海) 땅 발해진(跋海津=渤海津) 대군(大郡)의 임금(郡王) 바르가(跋海)-씨-말갈(靺鞨, 孛堇) 두 인물은 <고려사> 등을 참조하면 우리 땅, 곧 그 자신 당시의 왕건의 고려(高麗) 땅을 떠나 간 918년부터 발해(渤海)가 망하는 926년 사이에 청·장년기를 산 인물이다.

바르가 바야타르는 보활리의 손자이고, 바르구다이 메르겐은 함보의 손자 ‘바르가(跋海)’로 동 시대, 동 항렬의 6촌 형제 사이다. 알란 고아의 외할아버지 ‘바르구다이 메르겐’은 발해 땅 ‘별해진(別海津) 군(郡)’에서 산 발해인이다. 이 ‘별해진(別海津)’은 바로 월간중앙 6월호에서 찾아본 몽골 종족의 기원지인 전설적인 땅 ‘아르가나 쿤’, 즉 우리 발해의 서경 ‘압록강(鴨綠江) 네 군(郡)’의 강계부(江界府) 부근이다.

또 앞서 봤듯이 <몽골비사> 제8절은 알란 고아가 코리-투마드 부의 노얀(낭군) 코릴라르다이 메르겐과 어머니 바르구진 고아 사이에서 ‘코리-투마드의 땅’ 아릭 우스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아릭 우스를 그보다 더 옛말인 우리 말갈어로 돌려보면, 이는 고려(高麗=발해)-두만(豆滿, 주몽)-씨의 땅 아리-수(阿利-水)다. 여기서 아리-수는 압록강의 지류이고, 또 이는 오리(鴨)-물(水)이라는 뜻과 고려(高麗=鴨綠)-물(江)이라는 뜻을 가진 압록강 자체도 가리킨다.

몽골식 이름 알란 고아는 말갈식으로는 아란(阿蘭) 걸가(乞哥)다. 이 이름의 관향인 아란 땅은 아르가나 콘, 즉 압록강 네 군의 동북부이고 압록강과 두만강이 만나는 함경도 경내에 있다.

그렇다면 알란 고아라는 이름은 사실은 그녀가 아리수가 흐르는 함경도의 아란 땅에서 났기 때문에 그 지방명을 그녀의 관향으로 삼은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오늘날의 우리 말갈식 이름(호칭)으로는 ‘아란댁 걸가(乞哥)’라는 말이다.

<몽골비사>는 알란 고아의 아버지 코리 메르겐이 당시 코리-투마드 부장이었다고 하고, 그가 보르칸 칼돈의 보르칸 보스코르 종족의 신지 바얀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고 한다.

놀라운 역사의 비밀 실린 <몽골비사>


▎헙스걸 아이막 (Хeвсгeл аймаг)의 찬드마니-언더르 숨(Чандмань-θндeр сум)에 있는 칭기즈칸의 10대 조모이자 ‘모든 몽골인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알란 고아 상.
이것은 그가 자신의 자식들과 속민들을 이끌고 발해=고려의 두만강(투마드 河)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살다가 드디어 어느 날 보르칸 칼둔, 곧 불함 고려 땅이라는 뜻의 지명인 불함(不咸) 갈라전(曷懶甸), 달리 야라(耶懶), 곧 그 옛소리가 ‘갸라(고려)’였던 오늘날의 함경남도 함흥으로 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보르칸 칼둔, 곧 불함 갈라전은 백두산 자락이 이어지는 코를라=합란로(合蘭路)다. 이 때문에 그는 <집사>에 코를라=합란로(合蘭路)-스(氏)라고도 기록된 것이다.

이제 위에서 본 <몽골비사> 8절 이야기를 이제 우리 말갈어로 풀어보자. 발해 제2 왕가의 시조인 대야발의 대손인 금행의 세 아들 아고래, 함보, 보활리 중 둘째아들인 금시조 함보의 손자로 태어난 고려(=渤海)-별해진(渤海津=別海津 대군(콜-바르구진 토쿰)의 임금 발해(跋海)-씨 말갈, 바르구다이 메르겐은 자기 딸 발해진(渤海津=別海津) 커가(乞哥), 즉 바르구진 고아를 자기 6촌 종형제인 발해 막하돌의 아들, 즉 자기의 7촌 조카인, 고려-두만강 부(코리-투마드부)의 족장(낭군=노욘), 고려나라씨 말갈, 곧 코릴라르다이 메르겐에게 시집보냈다.

금시조 함보의 아우 보활리의 손자인 남편 고려나라씨 말갈과 아내 발해진(跋海津 커가(乞哥) 두 부부는 8촌 오빠와 누이 사이다. 이들 사이에서 딸 알란 고아가 고려-두만강 부(코리-투마드)의 땅 아리수(아릭 우스)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10세대 후손이 바로 세계 정복자 칭기즈칸이다.

몽골인으로 알려져 왔던 아명 테무친, 곧 대무신(大武神) 세계 정복자 칭기즈칸(震國王)의 뿌리는 이처럼 우리 고구려-발해 왕가의 가닥족속이고 구체적으로는 발해 제2 왕가 시조인 대야발의 제19대 손인 것이다.

놀라운 역사의 비밀을 실은 사서가 <몽골의 비밀스러운 역사>, 곧 <몽골비사>다. 이 때문에 이 사서는 그 제목이 단순히 ‘칭기즈칸 사’ 또는 그의 종족의 역사인 몽골사가 아니라 그 말 사이에 ‘-숨겨진(秘)-’이 들어간 <몽골비(秘)사>인데, 이는 곧 <말갈비사(靺鞨秘史)>다.

전원철 - 법학박사이자 중앙아시아 및 북방민족 사학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체첸전쟁 때 전장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 현장주재관으로 일했다. 우리 역사 복원에 매력을 느껴 세계정복자 칭기즈칸의 뿌리가 한민족에 있음을 밝힌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몽골제국의 기원> 1, 2권을 출간했고, 고구려발해학회·한국몽골학회 회원으로 활약하며 다수의 역사 분야 저서와 글을 썼다.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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