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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한자 時評(8) 금도(襟度)] 금도(襟度) 바탕 위에서 힘찬 개혁 펼칠 수 있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이을 건 잇고 거를 건 거르는 순접(順接)의 지혜 필요… ‘모 아니면 도’ 식의 접근법은 지나치게 소모적인 태도

▎수년 전 안방극장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MBC 사극 <선덕여왕>의 한 장면. 뛰어난 언변과 미모로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던 미실(고현정 분, 왼쪽)과 포용력을 바탕으로 험로를 개척해 나갔던 덕만(이요원 분)의 캐릭터는 대조를 이뤘다.
쓰임새가 흔한 편이지만 본래의 뜻을 잘 알지 못한 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단어가 금도(襟度)다. 우선 글자부터 살피자. 襟(금)이라는 글자는 옷깃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서도 가슴 부위에 해당하는 옷깃을 지칭하는 글자다.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옷의 일부다. 숨기려고 한들 잘 가릴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글자는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말하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가슴이 마음을 품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은 머리에 머물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대개 가슴에 자리를 잡는다고 여겼다. 포부(抱負), 이상, 뜻, 지향 등은 사람의 이런 가슴과 관련이 있다.

그 정도와 크기, 수준 등을 나타낼 때 붙는 글자가 度(도)다. 이 글자는 크기나 길이 등을 재는 의기(儀器)를 말한다. 흔히 길이와 부피, 무게 등을 지칭하는 도량형(度量衡)이라는 말에서 자주 등장하는 글자다. 때로는 직접 길이를 재는 ‘자(尺)’을 말할 때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금도(襟度)라고 적으면 가슴의 크기를 가리킨다. 그러나 육체의 가슴 크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가짐의 크기’를 일컫는 말이다. 남을 헤아리고, 남을 받아들일 줄 알고, 남과 어울릴 줄 아는 능력이다. 이를테면 포용력과 개방성이다.

마음이 헤아림이라는 기능을 상실하면 골치 아프다. 사람은 먼 세상 한 곳의 홀로 떨어진 장소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남과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사람이라면 이 마음가짐의 근본 바탕인 헤아림에 밝아야 한다.

헤아림으로써 남의 눈과 마음에 비친 나를 알 수 있으며, 또한 그로써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 따라서 금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런 금도를 제대로 갖춰야 남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까닭이다.

흉금(胸襟)이라는 말도 있다.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가슴(胸)과 그 앞의 옷깃(襟)을 한데 엮었다. 가슴에 품은 생각이나 뜻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크기를 재보려는 시각도 담았다. 가슴에 담은 생각이나 뜻, 감성이 커야 함을 은연중에 일깨우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심금(心襟) 역시 같다. 가슴에 품은 생각이나 의지다. 마음을 울린다고 할 때의 심금(心琴)과는 다르다. 금기(襟期)는 가슴으로 품는 기대, 희망, 뜻을 가리킨다. 그저 옷깃을 가리킬 때는 의금(衣襟)이다. 하지만 이를 잘 만져야 한다. 흐트러진 모습은 이 옷깃이 어떻게 다뤄져 있는가에서 곧 드러나기 때문이다.

잘 매만지는 옷깃은 정금(整襟)이라고도 적는다. 가다듬는다는 뜻의 整(정)이라는 글자를 앞에 붙였다. 염금(斂襟)도 그렇다. 옷깃을 잘 매만진 뒤 남을 정중하게 대하는 자세다. 제대로 거둬들인다는 뜻의 斂(렴)이라는 글자를 붙인 경우다.

양자택일은 ‘불가피한’ 선택이어야

무릇 세상의 지도자는 이런 헤아림이 머무는 금도의 크기가 남과 달라야 마땅하다. 세속의 권력으로 보람찬 결과를 얻으려면 많은 이의 의중을 헤아려 더 넓고 먼 경계를 열어야 한다. 그에 덧붙여 다시 생각해볼 단어가 계승(繼承)이다.

앞의 것, 먼저의 무엇을 이어 나아가는 일에 우리는 이 단어를 사용한다. 거꾸로 승계(承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홀로 서는 일은 불가능하다. 삶 자체가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계승과 승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단어를 이루는 앞 글자 繼(계)의 꼴은 온통 실(絲)이 그려져 있다. 실을 가리키는 글자 요소가 다섯 개나 등장한다. 뒷부분은 많은 실이 걸려 있는데, 가운데 구획으로 실들이 끊어진 모습이다. 그러나 부수(部首)의 실, 糸(사)가 등장하면서 끊어진 모든 실을 다시 잇는 형태다. 그로써 이 글자가 얻은 새김이 바로 ‘잇다’다.

다음 글자 承(승)의 초기 꼴을 보면 무릎을 꿇은 사람이 가운데 등장하고 그를 떠받치는 손 두 개가 이어져 있다. 주술(呪術) 또는 제례(祭禮)와 관련이 있는 모습으로 본다. 무엇인가를 받드는 사람이 남들에게 역시 떠받쳐지는 형태다. 이로써 이 글자 역시 ‘받들다’ ‘이어받다’ 등의 새김을 얻는다.

이 두 글자의 쓰임은 퍽 많다. 끊어지지 않고 줄곧 이어지는 상태나 행위 등을 우리는 계속(繼續)이라고 표현한다. 야구장에서 앞의 투수에 이어 등판한 새 투수가 공을 이어 던지는 행위는 계투(繼投)라고 적는다. 현장의 모습을 화면이나 음성으로 전하는 동작은 중계(中繼)라고 일컫는다.

돌아가신 부모를 이어 그 자리에 오른 아버지와 어머니를 계부(繼父), 계모(繼母)로 적는 일은 낯설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 자리를 차지한 분에게는 별도로 계실(繼室)이라고 지칭했다. 후실(後室)과 같은 뜻이다. 릴레이 방식의 달리기는 계주(繼走), 수영이면 계영(繼泳)이다.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일은 승인(承認), 승복(承服)이다. 경영권 등을 이어받는 일은 승계(承繼)라고 적는다. 앞서의 경험과 교훈, 가치관 등을 뒤의 사람 등에게 전하는 행위는 전승(傳承)이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는 일은 사승(師承)이라고 표현했다.

흐름을 좇는 시선이 읽혀지는 표현들이다. 앞의 무엇, 먼저의 어떤 것이 뒤의 누구, 나중의 무엇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흐름이다. 앞과 먼저의 교훈과 경험, 반성과 성찰이 뒤로 전해지는 모양새다. 순조롭게 이어져가는 맥락, 순접(順接)의 리듬이 드러난다.

성어 표현도 나온다. 계왕개래(繼往開來)가 우선이다. ‘앞서 지나간 것(往)에 이어(繼) 다가오는 상황(來)을 열어가다(開)’의 엮음이다. 앞의 것을 물려받아 미래의 상황을 개척한다는 새김의 승전계후(承前啓後)라는 성어도 자주 사용한다. 위를 받아 아래를 펼친다는 뜻의 승상계하(承上啓下)라는 표현도 있다.

우리는 양자택일(兩者擇一)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 아주 급절(急切)한 순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다. 전부를 얻거나, 아니면 전부를 잃는 선택이다. 개인적이며, 매우 절박한 경우에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큰 흐름을 유지해야 하는 국가의 운영, 거대 집단의 통솔에는 금물(禁物)이라고 해도 좋을 행위다.

새로 올라선 정부에는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앞의 흐름을 살펴 좋은 요소를 잇고, 나쁜 것은 걸러내는 순접의 지혜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올곧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집권에 성공해 새로 정부를 이룬 쪽의 넓고 큰 금도가 그 바탕을 이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로써 잡음과 말썽, 분규와 갈등을 줄여 꿋꿋하며 힘찬 개혁을 펼칠 수 있는 법이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접근법은 지나치게 소모적이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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