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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택일은 ‘불가피한’ 선택이어야무릇 세상의 지도자는 이런 헤아림이 머무는 금도의 크기가 남과 달라야 마땅하다. 세속의 권력으로 보람찬 결과를 얻으려면 많은 이의 의중을 헤아려 더 넓고 먼 경계를 열어야 한다. 그에 덧붙여 다시 생각해볼 단어가 계승(繼承)이다.앞의 것, 먼저의 무엇을 이어 나아가는 일에 우리는 이 단어를 사용한다. 거꾸로 승계(承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홀로 서는 일은 불가능하다. 삶 자체가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계승과 승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단어를 이루는 앞 글자 繼(계)의 꼴은 온통 실(絲)이 그려져 있다. 실을 가리키는 글자 요소가 다섯 개나 등장한다. 뒷부분은 많은 실이 걸려 있는데, 가운데 구획으로 실들이 끊어진 모습이다. 그러나 부수(部首)의 실, 糸(사)가 등장하면서 끊어진 모든 실을 다시 잇는 형태다. 그로써 이 글자가 얻은 새김이 바로 ‘잇다’다.다음 글자 承(승)의 초기 꼴을 보면 무릎을 꿇은 사람이 가운데 등장하고 그를 떠받치는 손 두 개가 이어져 있다. 주술(呪術) 또는 제례(祭禮)와 관련이 있는 모습으로 본다. 무엇인가를 받드는 사람이 남들에게 역시 떠받쳐지는 형태다. 이로써 이 글자 역시 ‘받들다’ ‘이어받다’ 등의 새김을 얻는다.이 두 글자의 쓰임은 퍽 많다. 끊어지지 않고 줄곧 이어지는 상태나 행위 등을 우리는 계속(繼續)이라고 표현한다. 야구장에서 앞의 투수에 이어 등판한 새 투수가 공을 이어 던지는 행위는 계투(繼投)라고 적는다. 현장의 모습을 화면이나 음성으로 전하는 동작은 중계(中繼)라고 일컫는다.돌아가신 부모를 이어 그 자리에 오른 아버지와 어머니를 계부(繼父), 계모(繼母)로 적는 일은 낯설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 자리를 차지한 분에게는 별도로 계실(繼室)이라고 지칭했다. 후실(後室)과 같은 뜻이다. 릴레이 방식의 달리기는 계주(繼走), 수영이면 계영(繼泳)이다.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일은 승인(承認), 승복(承服)이다. 경영권 등을 이어받는 일은 승계(承繼)라고 적는다. 앞서의 경험과 교훈, 가치관 등을 뒤의 사람 등에게 전하는 행위는 전승(傳承)이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는 일은 사승(師承)이라고 표현했다.흐름을 좇는 시선이 읽혀지는 표현들이다. 앞의 무엇, 먼저의 어떤 것이 뒤의 누구, 나중의 무엇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흐름이다. 앞과 먼저의 교훈과 경험, 반성과 성찰이 뒤로 전해지는 모양새다. 순조롭게 이어져가는 맥락, 순접(順接)의 리듬이 드러난다.성어 표현도 나온다. 계왕개래(繼往開來)가 우선이다. ‘앞서 지나간 것(往)에 이어(繼) 다가오는 상황(來)을 열어가다(開)’의 엮음이다. 앞의 것을 물려받아 미래의 상황을 개척한다는 새김의 승전계후(承前啓後)라는 성어도 자주 사용한다. 위를 받아 아래를 펼친다는 뜻의 승상계하(承上啓下)라는 표현도 있다.우리는 양자택일(兩者擇一)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 아주 급절(急切)한 순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다. 전부를 얻거나, 아니면 전부를 잃는 선택이다. 개인적이며, 매우 절박한 경우에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큰 흐름을 유지해야 하는 국가의 운영, 거대 집단의 통솔에는 금물(禁物)이라고 해도 좋을 행위다.새로 올라선 정부에는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앞의 흐름을 살펴 좋은 요소를 잇고, 나쁜 것은 걸러내는 순접의 지혜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올곧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집권에 성공해 새로 정부를 이룬 쪽의 넓고 큰 금도가 그 바탕을 이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로써 잡음과 말썽, 분규와 갈등을 줄여 꿋꿋하며 힘찬 개혁을 펼칠 수 있는 법이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접근법은 지나치게 소모적이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