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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담]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문 대통령은 대담한 평화구상으로 주변국 설득해야” 

사회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 정리 문상덕 기자 / 사진 이원근 프리랜서
북한은 체제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거래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완전한 핵 폐기 전제로 군축과 평화조약 추진이 유일한 해결책

북핵 위기가 변곡점에 도달했다. 마주 보고 달리는 두 대의 열차가 충돌하기 직전이다. 대화와 협상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일시적인 위기 탈출보다 근원적인 해법이 절실하다. 북한은 무엇을 원하는가? 미국과 중국은 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상황을 주도해야 하나? 대타협이 절실한 시점에서 두 명의 전문가가 만나 토론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어떻게 포장되는 것이 지혜로운가?


▎대담에 들어가기 전 환담을 나누는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왼쪽)과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한반도가 8월 위기설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강도 높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언사를 쏟으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가 둘 다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북핵 위기는 과거보다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위기의 본질과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김영희(81) 중앙일보 대기자와 방찬영(81)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이 만나 긴급 대담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방찬영 총장은 1991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경제특별보좌관으로 임명돼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한 카자흐스탄의 경제시스템 개혁을 주도했다. 특히 방 총장은 북한이 핵 개발을 시작한 이후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현대화를 연계하는 패키지 전략의 연구에 몰두했다. 방 총장의 한반도 평화 구상을 담은 책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한 도전>은 8월 중 출간될 예정이기도 하다. 이 대담은 8월 10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세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핵·미사일 정책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방찬영(이하 방)_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궁극적 목적은 체제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체제생존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미국의 위협에 대처하는 억지력을 보유하고, 둘째는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있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체제생존을 위한 위의 두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김영희(이하 김)_ 철학적으로 얘기하자면 김정은은 지금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인정 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을 벌이고 있다.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이 주저 <정신현상학>에서 쓴 용어다. 요컨대 나를 좀 알아달라, 북한을 핵을 가진 나라로 인정해 주고, 그 바탕 위에서 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가 주고받는 동등한 수준의 말 폭탄을 보면 김정은은 이 ‘인정 투쟁’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일단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까지 북핵 문제 전략적 구상 없어”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정리된 대북 정책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과 중국을 향해 압박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화성-14형이 시험발사되면서 변화한 국면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김_ 그게 게임체인저가 된 것이다. 미국이 화들짝 놀랐다. 소련 붕괴 이후 북한처럼 미국을 이렇게 위협한 나라가 없었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유지해 오다가 7월 4일 화성-14형 발사 후로는 압박 쪽에 무게중심이 옮겨 갔다. 선제타격론, 심지어 예방 전쟁론까지 나왔다. 지금은 군사적 옵션이 훨씬 강력해진 상황이다. 화성-14형을 발사하면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의 마감 단계에서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은 북한이 그 마감 단계에 이르기 전에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그게 군사적인 옵션인 선제타격론의 배경이다.

방_ 미국은 현재까지 북핵 문제에 대한 전략적 구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됐다고 하더라도 본토에 도달하는 미사일을 허용하진 않으려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1년 안에도 핵탄두를 소형화해 본토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긴박성 측면에서 아주 다른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미국 정부 내에서도 단일하고도 확고한 입장이 확정됐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김_ 중구난방이다. 트럼프는 북핵에 대해 포괄적인 개념과 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 아직까지 국무부에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임명되지 않았다. 주한대사도 없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대통령에게 제시할 팀이 갖춰지지 않았다. 매티스 국방장관이나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 같은 군부 출신 강경파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과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그 배후에 록히드 마틴 같은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군산복합체가 있다. 그들은 전문지식을 가진 보좌팀, 예컨대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나 주한대사가 없는 틈을 타 계속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북한이 계속 핵·미사일 개발을 추진한다면 북한을 공격하겠다고 말하면서 “전쟁은 거기(한반도)서 일어나지 여기(미국)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망발을 했다. 이건 백인 우월주의적, 인종주의적 발언이고 한국인에 대한 모욕이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8월 7일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트럼프에게 반박했다. 우리에게는 전쟁방지, 평화가 지상명령(imperative)이다.

방_ 가장 핵심적인 것은 현재의 트럼프 대통령의 방안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이다.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중국이 응하지 않을뿐더러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북한의 핵을 어떻게 풀겠다고 하는 큰 틀의 전략적 구상이 나와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달성을 위해 군사적 수단이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을 수차례 천명했다. 그러나 그런 표현조차도 합리적인 비핵화 전략의 구상 안에서 나와야 한다. 그것이 선제공격이든 해상봉쇄든 전략적인 복안의 일환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문 대통령이 군사적인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베를린 구상에서 천명했다. 지금 문 대통령은 미국이 내놓지 못한 전략적인 정책을 내놓고, 그 안에 따라서 북핵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비핵화 후엔 역동적 경제성장이 필수적인 과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23주기를 맞아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_ 체제 안전보장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은 미국의 위협을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체제 안전보장이란 결국 김씨 세습왕조의 안전보장을 의미한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목표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을 통해 평화라는 목표만 제시했다. 그런데 목표로 가는 로드맵이 안 나와 있다. 핵 동결이 입구이며 비핵화가 출구라고 했지만, 이제는 입구에서 출구까지 가는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어 북한·미국·중국을 납득시켜야 한다.

방_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에게 핵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미국의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고 또 하나는 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수단이다. 북한은 핵 군사 강국과 경제발전을 위한 등 병진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핵을 포기하면 이 같은 병진노선이 와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핵화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북한은 핵무기를 거래수단으로 남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경제발전을 위한 재원을 취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핵 폐기가 북한 정권의 정통성의 위기를 부르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획기적인 경제발전이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김_ 로드맵의 종착지는 평화협정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북·미 수교를 위한 협상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그 단계에 이르기 전 남북관계는 상당히 개선돼 있어야 한다. 여기서 문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북한판 마셜플랜을 제안하는 것도 고려할 가치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부흥을 위한 마셜플랜은 미국 혼자 돈을 냈다. 북한판 마셜플랜은 6자회담 참가 5개국들과 적어도 유럽연합(EU)가 참여하는 국제 컨소시엄이 수백억 달러 규모의 지원 플랜을 만들어 북한을 유인해야 한다. 북·미 수교가 되면 북한은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그리고 막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부터 수백억 달러 규모의 장기 저리 차관을 받을 수 있다.

방_ 북한이 경제 개발, 경제 현대화를 위한 시장지향적 개방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과 적대적 대외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국내 정책이 변하지 않고는 대외정책도 변할 수 없다. 적대적 이념이 국가의 공식 지도이념으로 상존하는 한 북한 경제의 세계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유노동시장의 개설, 사유화, 토지 임대, 사유기업 설립, 합작기업 설립에 관한 법과 시스템의 개혁이 포함돼야 한다. 시장지향적 개혁·개방으로부터 발생하는 부작용을 잠식시켜야만 인민을 통합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모두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핵무기의 폐기는 ‘선군’을 내세우는 북한 정권의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이 되지 않을까?

김_ 정통성이 약화되면 체제가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럴 때 제일 위협적인 세력이 군부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북에 고위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참으로 지혜로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군부 엘리트로 하여금 남북대화나 협상 등 문제 해결에 개입시키고, 그들에게 ‘평화의 배당금(peace dividend)’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군부가 김정은에 대한 최대 위협 세력이기 때문이다. 군부 엘리트가 지금 누리는 외화벌이의 특권을 당분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자리는 북한의 남침 회랑이었다. 그 자리에 북한 2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부대를 16㎞ 후방으로 재배치했다. 그런데 김정은에게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김정일처럼 확고하게 군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북한의 군을 우리의 대화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개선돼도 북한 군부의 특권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군인들에게 암묵적으로 알리자는 것이다.

방_ 정통성의 문제는 지금 성격이 달라졌다. 북한의 현재 경제체제는 이미 사회주의가 아니다. 북한 경제의 70%가 장마당에서 이뤄진다. 국가 영역에서 창출되는 것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주체사상의 구현자로서 김정은의 정통성은 사라져가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판 마셜플랜을 거론하셨는데, 북에 대한 당근 제공은 한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 핵은 한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대가로 북한에 10년에 걸쳐 매년 300억 달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돈을 낼 수 있는, 또 내야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 같은 재원을 지원하면서 시장경제 수용을 유도해야 한다. 북한의 경제개혁과 발전이 중국에 의해 이뤄지면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된다. 덩샤오핑은 경제를 개혁할 때 가장 먼저 군부를 설득했다. 군 병력을 축소해 인프라 산업에 투입시키면서 “군과 당 간부들이 나서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독려했다. 김정은도 덩샤오핑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핵 폐기하면 정통성의 위기에 직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주장한 화성-14형 발사 성공을 지켜보고 있다.
북한 지원을 남한이 주도하느냐, 아니면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하느냐 두 분 간에 이견이 있다.

방_ 남한 주도와 국제 컨소시엄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것이다. 한국이 단독으로 나서면 북한이 신뢰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 그래서 국제 컨소시엄으로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북·미 수교만 되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100억 달러 단위 이상으로 돈을 빌려 쓸 수 있다. 거기에 미국·중국·러시아·일본·EU가 참여해야 북한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야 북한은 약속을 위반할 때 직면할 국제적 반발을 무서워할 것이다.

방_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고 김정은 체제가 생존하려면 매년 10% 이상의 경제발전을 이뤄야 한다. 현실적으로 10% 이상의 고도성장에 필요한 재원을 부담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없다. 북한 경제의 개혁·개방에 따른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남한이다. 남한이 주도하는 것이 맞다.

김_ 영국이나 EU 국가 정부가 상징적인 액수만 출연해도 해당 국가의 기업들은 북한에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핵이 완전히 제거되고 평화체제 안의 북한은 투자처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10% 이상 고속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의 정통성 문제도 군(무력)에서 경제로 전환될 수 있다. 정통성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박정희 시대에 체험하지 않았나? 정통성이 경제에서 나온다는 말은 잘 먹고 잘살게 돼야 국민이 정권과 체제를 지지한다는 의미다.

방_ 김정은 위원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체제는 이미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었다. 현실 속 북한 사회와 국가의 통치이념과는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에 정권의 정당성은 할아버지-아버지의 유훈통치에서 오는 게 아니라 경제발전을 통해 인민들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비핵화 그 자체로 평화공존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북한 경제가 세계경제와 통합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남북한의 평화공존에 기초한 경제협력이 가능해지리란 것이다.

시장경제의 도입은 김정은에게 체제의 붕괴를 암시하는 것 아닐까?

김_ 비핵화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계 개선의 축적에서 오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마셜플랜 등을 받아들여도 사회경제발전의 모델은 중국과 베트남을 따라가는 것이다. 일당독재는 그대로 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고르바초프가 그걸 못해서 소련이 무너진 것 아닌가. 그에 비해 덩샤오핑은 굉장히 현명했다.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이다. 장쩌민 국가주석의 집무실에는 ‘철골상춘(鐵骨常春)’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철골은 일당독재, 상춘은 번영하는 시장경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서둘러야 하다는 지적은 정확하다. 경제발전을 통해 새로운 정통성을 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_ 정치에서는 공산당 독재(일당 독재)를 중국처럼 하면 된다. 대신 경제 부문에서는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중국식으로 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_ 과거 조지 W. 부시는 이라크 전쟁에 개입해 엄청난 손해를 봤다. 이 순진한 사람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중동에 심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북한한테 마셜플랜이든 뭐든 지원하고 평화협정을 맺더라도 그런 실수를 해선 안 된다. 너희들 일당 독재하지 마라, 미국식 민주주의 해라, 이런 식의 주입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핵 폐기 후 주한미군 철수가 중국 설득 카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 둘째)이 7월 4일 오전 평안북도 방현 지역에서 ‘화성-14형’발사 준비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그간 5자 관여국(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은 왜 북한 비핵화에 실패했을까?

방_ 관여국이 공조할 수 있는 공통의 정책(shared com mon policy)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 나라의 한반도에 결부된 전략적인 이해와 우려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중국의 공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이후 북한이 핵 없는 국가로 경제발전을 통해 생존의 길을 확보하고, 비핵화가 완결되는 시점에서는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한다는 안을 제시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됐을 때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비핵화가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것도 극력 반대하기 때문이다.

김_ 6자회담이 북한 비핵화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틀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구상을 소홀히 하고, 오로지 비핵화에만 올인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 당시에는 북한 비핵화 정책은 있어도 북한 정책, 한반도 정책은 없었다. 주한미군 문제는 사실 복잡한 사안이다. 미·중 관계와 남북관계가 마치 동심원처럼 중첩돼 있는 것이다. 최근 헨리 키신저가 북한 정권이 붕괴해 한반도가 통일된 후에는 주한미군의 대부분을 철수하는 카드를 가지고 중국과 합의하면 비핵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 붕괴라는 전제가 비현실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요리하자는 것인데 한국 입장에서 키신저의 제안을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과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북한 비핵화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을까?

방_ 문 대통령이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말 획기적이고 담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지금 미국은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선제타격론도 사실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옵션이다. 비핵화가 완전히 이행돼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카드는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김_ 졸렌(Sollen, 당위론)과 자인(Sein, 현실론)의 문제다. 총장께서는 당위론을 말씀하시는 거고 나는 현실론적 입장에서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얘기가 나오면 우리보다도 일본이 먼저 미국에 가서 철수 반대 로비를 한다. 주한미군이 일본 방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주한미군 철수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다. 의회 청문회가 열리면 군 장성들이 증인으로 나와 주한미군은 일본 방위를 위해 사활적(vital) 존재라는 말로 철군반대론을 폈다. 이런 논리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중국해 문제 때문에 지금은 그런 논리가 더 강해졌다. 주한미군 철수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

방_ 중요한 것은 중국의 동조와 공조 없이는 비핵화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북한이 비핵과 평화체제를 달성한 후에도 미군이 주둔해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것은 중국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쿠바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이 어떻게 했나. 쿠바의 소련 핵미사일을 철수시키기 위해 터키의 전술핵을 철거했다. 닉슨 대통령이 키신저와 함께 중국에 갈 때 대만에서 손을 떼지 않았나? 그런 담대한 ‘기브 앤 테이크’ 정책 없이 우리 욕심만 내세워 중국에 도와달라고만 하면 그게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김_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는 안 된다는 견해엔 동의한다. 그런데 중국을 참여시키기 위해 미군 철수 카드를 내놔야 한다는 데에는 생각이 다르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대해 쓸 카드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안 쓰는 게 문제다. 301조도 있고, 환율조작국 지정, 철강을 포함한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권 문제 등 중국에 대한 치명적인 카드들이 남아 있다. 그런 카드를 쓰면 미군 철수까지 안 가고도 중국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중국이 충분히 협조하지 않는다고 불평만 늘어놓고 중국이 아파할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 미군 철수라는 장검 대신 제대로 된 경제제재라는 단검으로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방_ 중국은 북한을 중요한 전략 자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포기한 이후에도 북한이 생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화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되, 그것이 미국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 또한 중국의 생각이다. 러시아도 중국과 정책목표가 거의 같다. 또한 중국이 유류 공급을 중단했을 때 러시아가 공조하지 않게 되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필요한 유류를 제공받을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공조도 필요하지만 러시아의 공조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대기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미국이 움직일 수 있는 중국 압박 카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런 압박카드만으로는 중국이 거기에 굴복해서 북한에 압력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체제가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압박을 격상시켜야 하는데 중국은 이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한국이 감수해야 할 뜨거운 감자”


▎방찬영 총장(왼쪽)과 김영희 대기자는 대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문 대통령 스스로 찾아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을 포함한 관여국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은 어떻게 도출될 수 있을까?

김_ 많은 아이디어가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 오바마 정부 시절 연이어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게이츠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7월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제재를 포기하라,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어라, ▷북한의 10개 내지 20개의 핵탄두 보유를 인정하라, ▷한국 내 군사력 구조를 조정하라 등이다. <뉴욕타임스>에 실리는 전문가들의 칼럼도 대부분 이런 방향의 논조다. 특히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대폭 축소나 중단이 많이 거론된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은 고려해볼 만하다.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면 훈련을 재개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전쟁 분위기가 너무 고조되고 있다. 이 뜨거운 주전론(jingoism)을 일단 식혀야 한다. 김정은과 트럼프 둘 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들이어서 돌발적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이후에도 중국의 군사굴기에 대한 억지력의 하나로 주한미군을 필요로 한다. 그런 사태는 한국이 중국에 대해 말 그대로의 자주외교를 할 수 있을 때까지 한국이 감수해야 할 뜨거운 감자다.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영향력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는 것을 중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미군 철수 또는 감축 문제는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런 입장을 미국과 중국에 전달하는 것이 현명하다.

중국이 과연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인가? 왜 중국은 송유관 차단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나?

방_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김_ 그렇게 하려면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중국은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을 절대적으로 원한다. 중국은 송유관을 차단하면 북한이 비핵화하기도 전에 쓰러져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목이 바로 중국의 딜레마다. 어디까지 압박을 가해야 붕괴를 피하고 비핵화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계산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방_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정책목표가 북한체제의 붕괴의 결과로 이어지는데 반대한다. ‘제재를 위한 제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제재로 인해 북한이 붕괴하면 재앙이 닥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북한에 핵 포기를 위한 출구 전략 없이 북한정권이 붕괴에 이를 정도의 제재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 북한이 미국 본토에 이르는 ICBM을 실전 배치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대응카드를 전망, 분석한다면?

김_ 미국 입장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기술을 포함한 완성단계 이전에 선제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ICBM과 상관없다.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만 해도 600개를 갖고 있는데, 그것만 가지고도 남한을 초토화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국에 대해 분명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미국에 대해 선제공격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동시에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바로 그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핵 동결이 출구, 폐기가 출구라고 해놓고서 그 로드맵이 없다는 게 문제다. 선언만 가지고는 안 되고 실천적인 방안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미국의 대응은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갈지도 모른다. 벌써 북한은 괌을 포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고, 트럼프는 북한이 “불과 분노와 힘”에 직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이다. 다행히 미국에는 이성을 잃지 않은 사람도 많다. 미국의 선제타격이나 예방전쟁은 제2의 한국전쟁으로 확전될 것이기 때문에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_ 문 대통령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공동의 대북 정책안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가장 유효적절한 채찍(압박과 제재)과 당근(보상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결국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경제 지원의 이니셔티브 한국이 쥐어야”


▎2000년 10월 22일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과 함께 평양의 5월1일 경기장에서 노동자들의 집단 체조 시범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5자 관여국의 공동안, 과연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북한을 설복할 수 있을까?

김_ 그동안 6자회담은 북한의 핵만을 논의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전체 구도,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무시했다. 부시 정부는 두 임기 처음 6년 동안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낙인 찍고 대화조차 거부했다. 마지막 2년에 비핵화를 서둘러봤지만 너무 늦었다. 김정일 생전에 핵 문제 해결의 기회를 놓쳤다. 2000년 10월 북한의 조명록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미국 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할 때가 최적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해 11월 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돼 클린턴의 정책을 모조리 뒤집는 ABC(all but Clinton·클린턴 것이 아니라면 다 좋다) 정책을 쓰는 바람에 모든 것이 증발돼버렸다. 지금은 다자의 틀에서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을 중국이 앞장서서 할 리는 없다. 미국이 앞장서서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상황으로선 군사적 옵션밖에 없다. 일본과 러시아는 특별히 나설 동기가 없다. 결국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독일이 아주 장기적인 호흡으로 통일외교를 펼쳤던 사례를 통해 배워야 한다. 주변국의 동의와 지지를 받아야 한다. 다자의 틀에서 비핵화를 하되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결국은 평화체제로 가는 포괄적인 플랜이다.

방_ 포괄적이고도 일괄타결적인 안이 필요하다. 미국은 체제 보장을 해주고 한국은 군축과 평화조약을 추구해야 한다. 언급한 대로 경제적 지원의 이니셔티브도 한국이 쥐어야 하는데, 그런 지원의 조건 안에는 북한이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위한 경제체제의 개혁안이 들어 있어야 한다. 북한도 핵·무기뿐 아니라 화학·생물학 등 모든 대량살상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에 양자택일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5자 관여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함으로써 제재와 압박으로 인한 체제 붕괴 위협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비핵화를 수용하는 대가로 경제개발기금을 공여받아 경제 현대화로 체제 생존을 추구하든가 하는 양자택일이다. 경제 현대화의 구체적 방법론은 시장지향적 개혁과 개방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한 후에도 미군이 그대로 주둔한다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결정적인 핵 포기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영향력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는 것을 중국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미군은 철수한다는 카드를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의 담대한 결심을 하지 못하면 북핵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을 문 대통령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방_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갈등이 극한에 달했을 때가 대화가 시작되는 전조라고도 볼 수 있다. 남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악조건 하에서 단합해 도전하는 국민이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이 그런 도전의 리더가 돼야 한다.

김_ 미국도 선제타격 등 군사적 옵션이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선제타격이면 성공할 수 있느냐, 그게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은 모든 핵·미사일 시설을 국토 전역에 산재해 놓고 있다. 또 요즘 북한은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하고, 무한궤도 차량을 이용해 산으로 올라가버리기도 한다. 산으로 올라가서 숲 속에 숨어 있는 미사일을 어떻게 찾겠나? 핵무기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사용 즉시 북한은 궤멸한다. 그래서 북한 핵은 협상을 통해 언젠가는 사라질 위협 수단에 불과하다.

- 사회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 정리 문상덕 기자 / 사진 이원근 프리랜서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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