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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美 싱크탱크 전문가 5人 ‘한반도 위기’ 진단 

“트럼프, 말만 거칠 뿐 북한 이슈 민감성 잘 알아… 대화할 준비도 돼 있다”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 北의 CI BM 야욕은 美에 선제타격 명분만 주는 셈
■ 대화할 준비가 안 된 건 美 트럼프 아니라 北 김정은
■ 북핵 평화적 해결 실마리, 군사 아닌 경제에 있다
■ 개성공단 재가동? 미국 입장에선 시기상조의 문제


▎사진제공·(왼쪽부터)전민규 / 전수진 / 본인 제공 / 중앙포토 / 중앙포토
“북핵 위기는 미국에게는 솔직히 태평양 건너 얘기였는데, 지금은 달라. 모든 건 단 하나, (미국) 본토까지 때릴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실험 때문이야.” 북한이 지난 7월 28일 ICBM급인 미사일 화성-14형을 발사한 뒤 서울에 주재하는 미국인 외교관은 기자에게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털어놨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해 9월 9일 5차를 마지막으로 핵실험은 1년 가까이 쉬고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권력을 잡은 김정은은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같은 해 9월 9일 5차 핵실험까지 숨 가쁜 핵 도발전을 이어왔다. 올해 들어서는 그러나 ICBM에 집중하고 있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을 실제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핵탄두 운반 수단은 ICBM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북한의 ICBM 개발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게임의 판을 일거에 바꾸는 일대 사건이나 존재)’라고 부르는 이유다.

북·미 치킨게임의 한가운데, 미국의 속내를 듣기 위해 전문가들 5인을 선정했다. 전문가 중에서도 미국 정부의 속사정을 잘 알고 실제로 정책 영향력이 있는 이들을 선별했다. 미 국무부가 지난 7월 국내 북한 전문가 및 기자들을 워싱턴·로스앤젤레스 등지로 초청해 진행했던 IVLP(International Visitor Leadership Program)의 미국 측 참가자들이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인 조너선 폴락, 미국 해군연구소(CNA)의 켄 가우스, 국방 분야의 선도적 싱크탱크인 RAND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거론이다. 인터뷰는 대면 및 전화, e메일로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5일 경축사에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며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몇 주간 북·미가 벌여온 설전(舌戰)에 바짝 긴장한 국민과 국제사회를 향한 메시지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북한에 억류됐었던 미국인 20대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미국으로 돌아간 직후 사망했다. 이어 7월,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위협까지 하고 나섰다. 미국은 부글부글했다. 10선 하원의원 출신의 도널드 만줄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워싱턴에서 진행된 IVLP에서 기자에게 “우리 의회와 정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한국 국회와 정부에도 꼭 전해달라”고까지 했다. 그래서 첫 질문은 이렇게 던졌다.

북한의 ICBM 개발이 게임 체인저라는 데 동의하는가. 미국 정부 분위기와 국민 여론은 어떤가?

브루스 베넷 _ “게임 체인저가 맞다. 미국 입장에선 안 그럴 수가 없다. 북한의 ICBM 관련 움직임을 보며 나는 1957년 유럽을 떠올렸다. 49년에 핵실험에 성공한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을 때다. 이는 소련도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유럽 전역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에 대한 불신이 확산했고) 프랑스 당시 (샤를) 드골 대통령은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는 않을 거란 회의감의 표출이었다. 이 질문은 2017년 현재 이렇게 바꿔도 유효하다. ‘트럼프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겠는가’. 북한이 ICBM을 수십 개 만든다면 어떻게 되겠나. 미국이 보유한 요격기도 20기가 겨우 넘는다. 여전히 미국 내 진보 성향 인사들 사이에선 북한의 핵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젠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윌리엄 브라운 _ “북한이 실제로 ICBM 기술을 확보한다면 그건 게임의 판을 미국 대 북한으로 선명하게 바꿀 거라는 점에서 게임 체인저가 맞다. ICBM으로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한다면 미국은 서울의 동의를 구할 필요 없이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 미국 정부엔 자국 영토 수호를 위해 당연한 권리이자 책임이다. 물론 한국 정부에도 북한을 타격할 때 사전에 공지 정도는 할 것이다. 동맹이니까. 트럼프 정부가 최근 북한에 대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건 전문가이기 이전에 미국인으로서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북한의 ICBM은 한미동맹도 변화시킬 것이다. 중요한 건 주한미군 문제다. 미국은 주한미군 없이도 다른 전력을 통해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켜 북한의 인질로 삼기 쉽도록 하는 건 잘못됐다는 회의감이 미국 내에서 나올 수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있다고 해도 평택 미군기지가 실제로 북한의 핵 위협에 안전하다고 할 수 있나? 없다.”

게임 체인저가 맞다고 확신한 베넷 박사, 브라운 교수와 달리 군 정보통인 가우스 박사는 여지를 남겨뒀다. 반면 폴락 박사와 스탠거론 박사는 게임 체인저라고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ICBM과 관련해 논의의 스펙트럼이 아직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켄 가우스 _ “ICBM을 실제로 북한이 개발한다면 그건 부인할 수 없이 중요한 성취(major accomplishment)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미국 정부가 게임 체인저라고 인정하기 전까진 게임 체인저가 될 수가 없다. ICBM만 개발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핵탄두 소형화·경량화 등 북한으로서는 갈 길이 멀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아무리 관영매체를 통해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해도 실제로 인정할지 여부는 미국 정부의 계산에 달렸다.”

조너선 폴락 _“개인적으로 ‘게임 체인저’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을 위협하려면 북한은 굳이 ICBM까지 쓸 이유가 없다. 38선 이남에도 바로 25만 명이 넘는 주한미군 및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미 본토를 타격하는 핵전력을 갖추는 것이 북한의 목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김정은의) 오판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전력을 갖추면 갖출수록 한미동맹은 더 견고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ICBM 개발은 김정은의 목표와는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된다.”

트로이 스탠거론 _“북한이 ICBM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건 분명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상당한 변화(significant change)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게임 체인저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과 한국·일본 등 동맹국들은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ICBM 이전에도 한국은 물론 괌까지, 많은 곳들이 오래전부터 북한의 위협 대상이 돼왔다. ICBM 개발로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하겠다는 것은 판을 바꿀 정도로 주요한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보지 않는다.”

반면 다음 질문엔 다섯 명의 견해가 명확히 일치했다. “북한이 ICBM 또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가까운 시일 내에 계속할 거라 보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물론(Of course)”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진짜로 원하는 건 먼저 말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견례’였던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북한의 ICBM 도발로 판이 흔들리고 있다. / 사진:청와대
도발 수위를 높여만 가던 북한은 8월 15일 돌연 한 발 물러서는 행보를 보였다. 북한 관영 매체들이 이날 발표한 김정은의 워딩을 보면 그렇다. 김정은은 ICBM의 개발 총책임을 맡고 있는 전략군사령부를 방문해 “어리석고 미련한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전략군사령부의 총책인 김낙겸은 앞서 8월 9일 “(ICBM인) 화성-12는 사거리 3356.7㎞를 1065초간 비행 후 괌도 주변 30~40㎞ 해상 수역에 탄착되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김낙겸은 이어 “8월 중순까지 괌도 포위사격을 최종 완성해 (김정은에게) 보고드리고 발사 대기 태세에서 명령을 기다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정확히 엿새 후인 15일 김낙겸은 실제로 해당 보고를 했다. 북한으로선 나름 “한다면 한다”고 보여준 셈이다. 문제는 김정은의 반응이다. “좀 더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수위 조절을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1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된다”며 “북한 당국에 촉구한다. 이대로 간다면 북한에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이다. 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체제 유지가 지상 최대 과제인 김정은을 향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 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며 이산가족 상봉부터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문 대통령이 내민 올리브 가지를 김정은이 잡을 것인가. 미국은 이를 어떻게 보는가.

한반도를 둘러싼 격랑에서 키를 쥔 인물 중 하나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유난히 말 폭탄을 퍼부었다. 먼저 왜 그런 건지 다섯 명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대체 뭔가. 선제타격을 포함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돼 있다는 건가?

베넷 _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닌 사업가다. 정치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먼저 말로 한 뒤에 그걸 얻으려 노력한다. 사업가는 반대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절대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 그럼 거래에서 불리해지니까. 트럼프가 현재 말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내가 볼 때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 실질적 준비가 안 돼 있는 건 기실, 김정은이다.”

스탠거론 _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거칠게 느껴질지 몰라도 미국의 다른 국내 이슈에서 그가 쏟아낸 발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제한(restrained) 발언이다. 트럼프가 다른 정책적 이슈들에 비해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차분하다는 인상마저 받을 정도다. 그의 레토릭이 때론 거칠게 들릴지 몰라도 트럼프는 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잘 간파하고 있다.”

폴락 _ “트럼프 대통령이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에겐 신중하고 냉철한(sober) 외교안보팀이 있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엔 지름길도, 마법처럼 쉬운 해결책도 없다는 걸 잘 안다. 상황 변화에 따라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검토하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지 않는 한 급작스럽게 (군사행동으로) 방향을 틀리는 없다는 점이다.”

가우스 _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관련 중대 기로에 서 있다. 대화로 나아갈 수도, 군사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북한의 행동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북한에 대해 인내심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미국) 국내 이슈들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따라 트럼프가 군사행동을 실제로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게 해서 군 통수권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과시하고 터프한 리더의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운 _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레토릭을 세게 내보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까지는 그가 정책적 실수를 범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볼 때 트럼프는 사실 국내 정치적 상황에 속박돼 있고, 오히려 미국의 언론과 인텔리겐차들이야말로 흥분해 날뛰고(gone berserk) 있다고 느껴진다.”

“김정은, 한국 아닌 미국과 대화 원해”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회담을 갖고 있다. 이 회담에 대해 미국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미국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다. 한·미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필요도 없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는 방증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과, 북핵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힘줘 말했다. 양 정상의 행보는 그러나 찰떡궁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6월 29~30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선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으나 7월의 연이은 북한의 ICBM 도발 후 양측 정상 간 통화는 달을 넘겨 8월 7일에야 이뤄졌다.

한·미 양국 간 공조에 균열이 감지된다는 지적이 많은데, 워싱턴에서는 어떻게 보나?

폴락 _ “양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뒤 불안(unease)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과 대화 제의 거부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게 정신이 번쩍 드는(sobering) 계기를 주었을 거라고 본다. 문 대통령도 포함해서다. 앞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오독(誤讀)하는 일이 없도록 긴밀하게 소통하고 세밀하게 조정해야 한다.”

브라운 _ “아직은 두 정부가 껄끄럽다고 보지 않는다. 정상회담도 매우 잘됐고, 내가 듣기엔 트럼프가 문 대통령이 보다 주도적 역할(leading role)을 하겠다고 한 아이디어를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트럼프는 이미 후보 시절 동맹국들이 자국 수호에 있어 미국에 의존하는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했던 인물 아닌가.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과 대화 제의 불응으로 인해 미국과 한국 모두 지쳐가고(frustrated) 있다. 해결책은 단순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이 한목소리로 북한에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핵 야욕을 멈추지 않는다면 정권의 안정성을 해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북한의 국영기업과 장마당과 같은 사설 시장을 흔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한 가지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만약 북한은 바뀌지 않는데도 한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거듭 시도한다면 한미동맹은 깨질 수도 있다.”

가우스 _ “문 대통령이 집권 직후부터 남북 정상회담을 암시하고 남북대화 모색을 언급한 것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실 올바른 길(right path)을 택했다고 보기 어렵다. 솔직히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지금 북한엔 영향이 별로 없다(carry little sway)는 게 내 진단이다. 김정은은 지금 한국이 아닌 미국과의 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과 미국, 그리고 그럴 수만 있다면 중국까지 모두가 협의해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핵 야욕을 버릴 일은 없다.”

스탠거론 _ “트럼프는 이미 김정은을 두고 ‘같이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북한이 계속 도발하고 있는 이 국면에서 한국과 미국 양측 모두 숨 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한국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대화 모색이 효과적일지는 재고해봐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 방법을 모색할 때 한국이 미국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의했으면 한다. 그것이 한국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베넷 _ “한·미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정은에겐 두 개의 선택지만 줘야 한다. 체제 존속 또는 핵 보유다. 체제를 유지하길 원한다면 핵을 보유할 수 없다는 점을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주지시켜야 한다.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반드시 구체적인 것으로 야금야금 좀먹는(corrosive) 방식을 택해야 한다. 김정은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든지 폐기하든지(Use it or lose it) 명확히 선택하라’고 압박해야 한다. 핵 폐기만이 답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야 한다.”

이라크 신세가 될 건가, 리비아의 길 갈 건가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8월 10일 공개한 평양시 김일성 광장의 군중 집회. 북한은 이 집회에 1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이 든 피켓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미국의 공격에 대한 자위적 핵억제력일 뿐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최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999년 한 방송에 출연해 “내가 리더라면 북한과 끝까지 협상할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는 북한이 본격 핵실험을 하기 이전이며, 김정은이라는 30대 지도자를 맞이하기 전이다. 지금 판의 핵심 플레이어인 김정은에 대해 미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흥미로운 건 많은 전문가가 북한의 경제를 문제 해결의 잠재적 열쇠로 주목했다는 점이다.

미국 전문가로서 분석하는 김정은의 속내는 무엇이고, 그의 예상 행보에 대한 평가는?

가우스 _ “김정은의 사고는 두 가지 축으로 이뤄져 있다. 첫째는 체제의 생존, 둘째는 김씨 왕조의 영구화다. 그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이 축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미사일 시험발사는 물론 계속할 것이고, 언제인지는 추정하기 조심스럽지만 추가 핵실험도 할 것이다. 김정은은 두 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상태(status quo)를 뒤흔들어야 하고, 그 무기가 핵과 미사일이다. 그러나 체제 생존의 입장에서 볼때 열쇠는 북한의 경제 개혁에 있다. 김정은도 장마당(사설 시장)이 번성하도록 허용했고 경제 개혁을 하겠다고 공표했다. 정치나 군사가 아닌 경제가 평화적 통일의 첫 단추가 될 수도 있다.”

베넷 _ “김정은은 무아마르 카다피가 아니다. 미국에 의해 핵을 포기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카다피를 보며 김정은은 치를 떨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사실 지금 상당히 피해망상에 젖어 있는(paranoid) 듯하다. 맏형인 김정남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뒤 평양에서 완전히 축출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를 껄끄러워했고, 결국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그를 암살했다. 김정은은 두려운 것이다. 김정은에게 한국과 미국은 핵·미사일 또는 체제 존속 중에서 양자택일을 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줘야 한다.”

브라운 _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해 결국은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미국과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을 협상하려 들 것이다. 핵 폐기와 달리 핵 동결은 북한에 영어 속담처럼 ‘케이크를 먹기도 하고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조치다. 핵을 없애는 게 아니라 동결하는 것은 언제든지 원자로를 재가동하면 핵을 다시 보유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북한의 경제 상황이다. 김정은은 지금 걱정이 많을 것이다. 평양에선 휘발유 값이 오르고 있고, 작황이 좋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쌀·옥수수 가격은 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체제 존속이 위험해질 수 있다. 장마당이 활성화하면서 파워 엘리트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업가들이 나타났고 이 또한 체제 불안 요인이 된다. 경제야말로 북한을 긍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폴락 _ “김정은이 실제로 북한 주민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핵 보유국으로의 야욕은 버려야 한다. 현재 그가 걷고 있는 길은 북한뿐 아니라 남측의 한국 국민에게도 비극적 결말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현재로선 그러나 김정은에게서 주민을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는 체제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벌일 태세고, 이런 야욕이 그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어 안타깝다.”

스탠거론 _“김정은이 설사 핵·미사일 개발에 성공한다고 치자. 딜레마는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이 자칭 핵 보유국이라고 한들 국제사회는 그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채, 핵을 거머쥔 채 다음을 고민할 것이다. 제2의 리비아가 되어 핵을 포기한 뒤 카다피처럼 목숨까지 잃을 것인가. 제2의 이라크가 되어 미국의 공습을 받을 것인가.”

“섣부른 남북정상회담, 미국이 굉장히 불쾌해 할 것”

미국 전문가들은 또 문 대통령의 ‘제3차 남북 정상회담’ 비전이나,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에 대해서도 일단은 회의를 표시했다. “남북 정상회담, 사실 너무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자명한 점은 이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도 추진한다면 미국이 굉장히 불쾌할 거라는 점이다”(베넷)라거나 “문 정부 역시 ‘회담을 위한 회담’은 효력도 의미도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가우스) 등의 의견이 나왔다.

동시에 북한 압박에 중국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베넷이 대표적이다. 그는 “중국이 소위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것)’을 들고 나왔는데, 일단 환영한다. 단 조건이 있다. 한·미 연합훈련만 중단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인근의, 중국군을 포함한 모든 군의 훈련을 일거에 중단해야 한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중국이 책임은 최소한으로 지려고 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한반도 존재감을 줄이려는 일거양득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현재의 위기가 역설적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일부 나왔다. 브라운 교수는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현재의 북핵 위기는 사실 북한의 체제의 위기를 재촉할 거라고 본다. 북한의 사(私)경제는 급성장하는데 북한의 중앙정부는 국제 제재로 인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특이한 상황은 오히려 생각보다 빨리 예상하지 못한 통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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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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