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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리포트] 트럼프가 지시한 ‘모든 선택’의 본심은? 

대화 쥐어짠 오바마보다 전쟁으로 간 부시에 더 가깝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조지 W. 부시의 ‘모든 선택’ 발언 후 372일 만에 이라크전쟁 개전… 미 정부의 ‘모든 선택’ 발언 시점(올 3월) 적용시 내년 3월이 최대 고비

▎8월 9일 북한 평양 시내 김일성광장에 10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 유엔의 대북제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 사진:노동신문
2분30초 전이다. 핵으로 인한 인류의 대재앙을 가늠하는, 이른바 ‘운명의시계(Doomsday Clock)’의 2017년도 시각이다. 운명의시계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생긴 냉전의 산물이다. 시카고 과학자들이 매년 초 모여 그해의 핵에 관한 위기 국면을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한다. 1991년 냉전 종식과 함께 한때 17분 전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거꾸로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는 마침내 3분 전으로 다가섰다. 올해 2분30초를 가리키는 운명의시계는 한국전쟁 말기이던 1953년 이래 자정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

2017년의 적색경보는 여러 가지 배경 아래서 설명될 수 있다. 이슬람국가(IS)의 핵테러 공격 가능성도 있겠지만 북한 핵 개발이 더 큰 이유다. 북한은 한국·일본·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하는 ‘인류의 암(癌)’으로 진행되고 있다.

1945년 8월 6일은 핵폭탄이 어떤 것인지 인류가 처음으로 목격한 날이다. 히로시마(廣島)에 떨어진 핵폭탄인 이른바 ‘리틀보이(Little Boy)’로 인해 13만 명이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사라진다. 8월 9일은 나가사키(長崎)에도 투하돼 8만 명이 희생된다.

우연이겠지만 2017년 8월 초순은 72년 전의 비극을 되새기게 만드는 빅뉴스로 점철된다. 주로 워싱턴발 속보로 북한 핵과 관련된 메가톤급 발언들이 연이어 쏟아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최고 권력자들이 북한핵 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이들의 발언은 한반도의 생사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하다. 서울에도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트럼프의 북한핵 관련 발언들은 글로벌 뉴스의 헤드라인에 해당된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에서 통하는 미국발 뉴스의 비중과 의미에 관한 부분이다. 워싱턴에서 느끼는 발언의 무게에 비해 너무도 가볍게 처리되는 듯하다. 미국 국민조차 거의 패닉 상태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대응이나 분석은 너무도 미약하고 초라하다. 주변국들로부터 왕따당하는 ‘코리아 패싱’ 때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코리안 스스로가 패싱하는 듯하다. 미국과 함께 흥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북한핵과 관련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주된 현장은 한반도다. 당사자 입장인데도 대하는 자세는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남북한, 미국·북한과의 대결인데 어떻게 해서 브라질·이탈리아의 축구경기쯤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청와대발 뉴스로 간헐적으로 들리지만 미국·북한과의 문제일 뿐 한국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초연해질 수 있을까?

한국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상황’을 보면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봤다. 한국인 대부분이 평생 전쟁 위협에 시달려온 점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핵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북한핵 문제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국제적 이슈다. 원인을 제대로 찾아 해결하지 않는 한 강 건너 불 구경하는 듯한 자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017년 여름의 현실은 불이 코앞에 닥친 상황이다. 브라질·이탈리아가 아니라 한국 스스로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는 한 물통을 들고 진화에 나설 수가 없다. 미국발 북한핵 뉴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 없이는 이미 발등까지 밀려온 불을 끌 수가 없다.

우려되는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들어 군사공격을 시사하는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 사진:연합뉴스
코리아 패싱이 아니라 코리안 스스로가 한국 문제를 패싱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풀이해볼 수 있다.

먼저, 트럼프를 대하는 한국인의 근본적인 자세다. 간단히 얘기해서 ‘허풍쟁이 트럼프’로 해석하는 것이 한국 내 대세다. 트럼프를 코미디언 수준으로 희화화하면서 곧 탄핵에 처할 맥 빠진 인물로 대하는 것이 한국 내 트럼프의 이미지다. 트럼프의 모든 행동이 탄핵을 모면하기 위한 쇼로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는 신문·방송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 정도를 언급할 때 등장하는 용어다. 미디어를 제대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이다. 표면만이 아니라 내면·배경·상황·주변의 여론을 바탕으로 한 정확하고도 이성적인 개인 차원의 능력이다.

리터러시, 즉 문자 해독 면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수위를 달릴 듯하다. 북한 관련 미국발 뉴스에 대한 한국인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어느 정도일까? 필자 판단이지만 거의 미국 초등학교 수준에 그치지 않을까 싶다. 많은 미국 내 리버럴 미디어의 생각을 그대로 직수입해서 보도한다. 미국을 아래로 보려는 자세까지 더해져 비하하고 조롱하는 논조도 넘친다. 미국 국민이나 워싱턴 의회가 아니라 트럼프를 절대악으로 대하는 리버럴 미디어의 기사와 논조가 주류다. 어느 틈엔가 북한핵과 관련해 트럼프에게 입조심하라는 미국 리버럴 스타일의 훈계조 글도 한국에 등장하는 판이다.

필자는 트럼프를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트럼프가 한반도의 운명을 가늠할 수도 있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에 주목할 뿐이다. 필자가 보는 트럼프의 위상은 미국 국민의 지지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필자는 일찍부터 트럼프 강세에 주목했다. 당시 경험에 기초한 것이지만 트럼프가 지금 당장 대통령선거에 나서도 당선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트럼프 절대 지지자가 40%대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60% 가운데 20%가 중립, 40%는 리버럴이다. 이른바 ‘샤이 보터(Shy voters)’로 통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시대착오 ‘꼰대’로 몰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리버럴은 다르다. 신문·방송 나아가 모바일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120% 알린다. 문제는 구체적인 정치행위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꼰대’답게 투표장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증명한다. 리버럴은 다르다. 투표장에 안 가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으라고 할 경우 백인백색으로 나아간다. 트럼프는 죽어도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린턴 힐러리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한국에 전해지는 트럼프에 관한 뉴스의 대부분은 굳건한 40%대 절대 지지자들과 무관하다. 북한핵이나 미국 내 각종 정책에 관한 트럼프의 발언은 40%대 지지자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더불어 북한핵과 관련해 북한 공격을 지지하는 사람은 트럼프 지지자보다 한층 더 많다.

블록케이드(Blockade)와 쿼런틴(Quarantine)의 차이


▎트럼프 미 대통령은 최근 ‘화염과 분노’를 언급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발 북한핵 뉴스에 무심한 둘째 이유는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말한 ‘외교언어(Diplomatic Language)’란 말속에서 찾을 수 있다. 8월 9일 틸러슨은 트럼프가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를 “김정은이 외교언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알아듣도록 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메시지가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외교감각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사실 워싱턴에서 보면 외교언어에 대한 둔감(鈍感)의 정도는 북한만이 아닌 한국에도 통용될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를 허풍쟁이로 대하는 자세에 있다. 트럼프의 발언을 과거 대통령과 비교하면서 ‘해외 토픽’ 수준으로 취급하는 식이다. 미국이 던지는 외교적 수사나 발언의 정도를 한국 식으로 적당히 풀이하면서 축소·무시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제멋대로 한국식 정치논리에 맞춰 풀이하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 해석도 넘친다. 강경자세인데 대화노선이라 풀이하는 식이다.

미국의 외교언어는 대통령이나 담당 장관의 캐릭터, 부서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존 F. 케네디는 1961년 쿠바 사태 당시 봉쇄라는 단어를 ‘블록케이드(Blockade)’가 아닌, ‘쿼런틴(Quarantine)’으로 대치했다. 봉쇄·격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블록케이드는 전쟁을 상정한 것이고, 쿼런틴은 비군사적 느낌이 강한 단어다. 극단적인 상황이나 분위기를 배격하려는 고려라 볼 수 있다.

트럼프의 경우 케네디의 반대편에 선 캐릭터다. 신중하지 못하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다르다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외교언어의 방향성을 찾아낼 수 있다. 기분에 따라 들쑥날쑥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리듬을 탄다. 말을 막 하는 느낌이 들지만 결코 독자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핵 문제를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언어도 마찬가지다. 북한핵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외교언어가 흘러나오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8월 5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허버트 맥매스터의 발언을 보자. “우리는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모든 옵션을 준비 중이다. 예방전쟁 (Preventive War)도 옵션 중 하나다.” 케이블TV [MSNBC]가 던진 북한 관련 질문에 대한 답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직후 인터뷰다. 예방전쟁은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기에 앞서 미리 기습공격을 하는 군사적 행위다. 필자가 아는 한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이 미국의 예방전쟁 대상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예방전쟁이란 말은 맥매스터 발언에 앞서 8월 1일 미국 지상파 TV를 통해 처음 등장한 ‘전쟁(War)’이란 단어보다 한층 더 수위를 높인 구체적인 용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침방송인 [NBC]의 ‘투데이(Today)’에서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한 말이다. 트럼프와 만났을 때 들은 얘기를 인용한 것이다. “만약 ICBM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려 한다면 북한과의 전쟁이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를 믿는다.”

미국에서 상원의원은 대통령에 버금가는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다. 당론에 따르는 한국의 국회의원들과는 다르다.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보수주의 터전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에다 지난해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인물이다. 말 한마디에 무게가 실린다. 전쟁과 예방전쟁은 차원이 다른 말이다. 전쟁이란 단어에는 굳이 능동적인 면을 강조하지 않는다. 적이 공격하면 바로 대응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 쉽다. 예방전쟁은 다르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이다. 적의 공격을 가정한 행위다.

유엔의 무기력과 미국의 조바심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월 14일 청와대 본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이란 말은 예방전쟁에 나설 경우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다. 선제공격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적에게 미리 경고를 한다. 주목할 부분은 ‘All Out War’나 ‘State of War’ 즉, 전면전과의 관계다. 예방전쟁, 나아가 선제공격은 반드시 전면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예방전쟁·선제공격을 전면전으로 받아들이면서 반격할 경우에 한해 전면전이 될 수 있다.

자국이 공격을 받고 가만히 있을 나라가 있을까 하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는 맞지만 군사 초강대국 미국을 대상으로 할 경우 달라진다. 역사상 미국에 맞서 이긴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베트남·중국·아프가니스탄을 미국에 이긴 나라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이 중간에 포기한 상대에 해당된다. 엄청난 피해자와 초토화된 전선도 미국과 무관하다. 미국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자살행위라는 점에서 예방전쟁·선제공격을 받고도 대부분의 국가는 전면전에 나설 수가 없다.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기습 선제공격에 들어가기 직전에 사용되는 말을 북한에 전했다.

때마침 8월 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북한핵 문제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됐다. 드물게도 토요일 오후에 이뤄진 대북 제재에 관한 안전보장이사회 만장일치 결의안이다. 북한산 석탄 수입과 북한 노동자 입국을 전면 금지하는 제재안이다. 외화 수입원을 줄이려는 데 목적을 둔 것이다. 한국 신문을 보면 결의안이 집행될 경우 북한의 외화 수입이 3분의 1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막판에 동의한 것에 방점을 두면서 북한의 핵 개발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8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쟁이 나도 미국 본토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수천 명이 죽는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을 규탄하는 여성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결론부터 얘기하자. 제재안 내용을 본다면 그렇게 큰 변화가 없다. 8월 5일 결의안은 이미 8번이나 계속된 대북 제재안 중 하나다. 매번 나올 때마다 ‘심각한 타격 예상’이 따라붙었다. 끄떡없다. 석유 공급이 끊어지지 않는 한 북한의 핵 개발 의지는 아무도 못 말릴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외화 수입이 3분의 1이 아니라 100분의 99가 사라진다고 해도 김정은의 핵 개발 의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엔 회원국의 결의안 이행 여부도 의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중국·러시아가 다시 거래에 나설 수도 있다. 유엔은 위반 국가를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유엔은 공론(公論)과 공론(空論)의 현장이지 공권력의 현장은 아니다.

8월 9일은 트럼프가 북한핵 관련 외교언어의 수위를 거의 수직으로 끌어올린 날이다. 경천동지할 뉴스로 전 세계 신문·방송의 헤드라인이 된다. ‘지금까지 세계가 경험하지 못한 화염과 분노 그리고 파워’에 관한 부분이다. 북한이 미국을 계속해서 위협할 경우 대응할 보복으로 화염과 분노가 언급된 것이다. 거의 최후통첩으로 들린다. 트럼프는 이후 “화염과 분노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만약 미국을 조금이라도 건드릴 경우 “(북한이)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참사)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의 같은 시기 국방 장관 짐 매티스는 “북한은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고,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미국에 대한 도발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은 제거에 대한 얘기까지는 아니지만 정권 붕괴라는 말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발언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인간적 본능


▎2003년 전투기 조종사 복장을 한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병사들과 환담하고 있다.
8월 들어 터져 나온 미국과 평양발 뉴스는 운명의시계를 수직으로 끌어올릴 만한 최악의 소재들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는 한 예방전쟁·선제공격, 나아가 화염과 분노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운명의시계가 한층 더 수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을 다루는 미국의 기본적인 시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가 반복하는 ‘All options are on the Table’이란 말이 핵심이다. 한국에서는 아마도 그리 크게 와 닿지 않는 어정쩡한 수사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다. 특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직역할 경우 의미다. ‘모든 선택이 책상 위에 있다’는 것이 직역이다. 외교적 대화는 물론 군사공격도 포함된 대화와 전쟁 모두에 걸치는 외교언어다.

“두 눈이 있다고 눈 앞의 모든 것을 전부 보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것이 사람이다.”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남긴 명언이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모든 선택이…’란 말은 누가 하는가에 따라 180도 상황이 달라진다. 트럼프가 큰소리를 치지만 결국은 대화에 나설 것이란 주장과 항공모함을 급파해서 곧바로 북한을 공격할 상황이라는 생각이다. 국내에서나 통하는 정치가와 정파의 주의·주장에 따른 것으로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외교·군사적 상황과 무관한 자의적 해석이 대부분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인간적 본능 때문이겠지만 평화를 바라는 한국인 대부분의 생각을 고려할 경우 전체적으로는 ‘낙관적 대화’가 대세인 듯하다.

주목할 부분은 ‘모든 선택이…’란 말의 배경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북한핵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트럼프의 호기와 전혀 무관하다. 일정한 단계에 들어설 경우 워싱턴에서 통용되는, 아주 상설화된 수사가 바로 ‘모든 선택이…’이란 말 속에 투영돼 있다.

아주 가까운 예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보자. 부시는 취임 1년도 안 된 2001년 9·11 동시테러에 직면한다. 2002년 초 부시의 의회연설을 통해 ‘악의 축(Axis of Evil)’이 탄생된다. 북한도 포함된 이라크·이란 등 세 나라다. ‘All options are on the Table’란 말이 부시를 통해 처음 공표된 것은 의회 연설 직후인 2002년 3월 13일이다. 이라크가 표적이었다. 사담 후세인이 물러나고 대량살상무기(WMD) 상황을 투명하게 공표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모든 선택이…’라고 말한다. 부시의 ‘모든 선택이…’란 말이 전 세계에 공식 데뷔한 것은 2002년 9월 12일 유엔총회를 통해서다. 유엔을 무대로 삼아 후세인에게 보낸 최후통첩이다. 이후 미국을 주력으로 한 연합군이 이라크 공격에 나선 것은 2003년 3월 20일이다. 전쟁 시작 41일 만인 2003년 5월 1일 이라크가 항복한다.

‘모든 선택이…’란 말은 부시만이 아닌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사용한 수사다. 오바마는 집권한 직후인 2009년 3월 ‘모든 선택이…’ 란 말을 이란에 던진다.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하기 직전 이뤄진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네타냐후의 워싱턴 방문은 이란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지를 전하고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오바마의 2009년 발언을 보면 현재 트럼프의 ‘모든 선택이…’란 말을 대화 우선에 방점을 두는 수사로 해석하기 쉽다. 다르다. 오바마의 발언은 당장 이란에 대화에 나서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단독 전쟁을 경계하는 경고성 발언에 해당된다.

잘 알려진 대로 오바마와 네타냐후는 상극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군사적 방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경우 미국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선택이…’란 말 속에 실어 전달한다. 이스라엘과 미국 내 보수파들이 화를 낸 것은 당연하다. 사실 오바마의 발언은 네타냐후가 워싱턴에 내리기 전에 일방적으로 발표한 외교적 결례에 해당된다. 당시 네타냐후는 이란의 핵 개발 위협이 초읽기라면서 단독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 오바마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있다는 입장이다. 전쟁에 당장 나서기보다 남은 시간 동안 이란과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쟁 자체를 부인한다기 보다 대화를 하는 데까지 해보고 나중에 전쟁을 생각해 보자라는 것이 ‘모든 선택이…’란 말의 의미다.

미국이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남은 시간?


▎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미국 뉴욕에서 3자 정상회의를 했다.
오바마의 이란에 대한 ‘모든 선택이…’란 발언은 이후 3년 뒤인 2012년 3월 다시 등장한다. 네타냐후가 다시 워싱턴을 찾은 날 양국 공동기자회견에서 나왔다. 예방전쟁 차원에서 이란 공습을 주장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성 발언이다. 당시 기자회견 장면을 보면 미국·이스라엘 정상 간 신경전이 너무도 뜨겁다. 네타냐후의 오바마에 대한 경멸과 실망이 적나라하다. 오바마의 표정을 봐도 이란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미국의 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오바마가 이란과 포괄적핵협상(JCPOA)에 성공한 것은 2016년 7월 14일이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이 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하면서 석유 판매를 허용하고 나아가 경제지원에도 나선다는 것이 합의안의 골자다. 오바마가 사용한 ‘모든 선택이…’란 말은 초읽기에 들어선 이스라엘 단독 공격에 반대하면서 거꾸로 이란을 대화의 장에 빨리 나서도록 만든 양날의 칼에 해당된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란에 대한 미국의 최종 목적은 전쟁이나 이란 정권 전복이 아니다. 이란 핵무기 개발 중단이 지상 과제다. 이스라엘을 이란 공격의 홍위병으로 두면서 대화에 나선 것이다. 부시의 ‘모든 선택이…’란 말은 이라크 정부 전복은 물론 후세인 제거가 기본이란 점에서 대화의 여지가 들어설 틈이 없다. 부시의 경우 오바마의 이스라엘처럼 홍위병 역할을 할 나라도 없었다.

같은 ‘모든 선택이…’란 말이지만 그 의미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와 닿는다. 그러나 ‘모든 선택이…’란 말은 부시·오바마 관계없이 분명한 공통점을 하나 갖고 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다시 말해 미국이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까지의 시간이 초읽기에 들어서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모든 선택이…’란 말에 처음 주목한 것은 올해 3월 초다. 외신을 통해 흘러들어온 ‘트럼프, 북한 군사제재를 포함한 모든 옵션 준비 지시’ 라는 뉴스다. ‘모든 선택이…’란 말은 곧바로 3월 19일 서울을 방문한 틸러슨 국무장관을 통해 명문화된다. 이후 트럼프 스스로가 ‘모든 선택이…’란 말을 처음으로 던진 것은 4월 7일이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에게 밝힌 생각이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만나기 1시간 전 아베에게 전화를 걸어 의도적으로 발설한 것이다. 아베와 통화한 지 사흘 뒤인 4월 10일 백악관 허버트 맥매스터 외교안보수석보좌관은 트럼프가 ‘가능한 모든 옵션을 준비(Full range of options)’하라는 지시를 정식으로 내렸다고 확인한다. 이후 ‘모든 선택이…’란 말은 기회 있을 때마다 줄기차게 등장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트럼프의 ‘모든 선택이…’란 말은 오바마가 아닌 부시 스타일 수사에 해당된다. 이라크 전쟁은 부시의 ‘모든 선택이…’ 발언 후 정확히 372일 만에 시작된다. 미군의 바그다드 공략은 발언 후 413일 만이다. 부시의 예에 따르면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 시기는 2018년 3월 중순 정도가 된다. 그러나 트럼프와 측근이 던지는 외교언어의 수위를 보면 한반도의 운명의시계가 한층 더 빨라지고 있는 듯하다. 군사대결이 될지 대화가 될지 운명의시계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섰다. 2002년 이라크에 대한 부시의 입장이 그러했듯이 오는 9월 유엔총회는 트럼프 주도 하의 북한핵 성토장이 될 것이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큰 미국발 시련이 올가을부터 본격화될 운명이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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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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