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와이드 인터뷰]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제2의 한국전쟁설(說)’ 송곳 진단 

“北도 겁먹고 있어… 곧 시작될 대화국면, 대북특사 보내야” 

글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r
다가올 가을은 위기 해결의 기회, 주도권 잡아라 北 CI BM 위협은 과대평가… 北, 게임 체인저 못 된다 美·北 말 폭탄은 ‘마른 하늘에 요란한 천둥·번개’(乾打雷, 不下雨) 코리아패싱? 미국에 No라고 못 할수록 소외될 것 北 김정은, 주한미군 철수 없는 평화협정 고려해야

‘전쟁’ 두 글자가 연일 신문지상에 등장한다. 북·미 간 말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불안한 국민은 금을 사재기하고, 경제지표는 동반 하락하고 있다. 8월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주가지수·채권가격·원화가치는 일주일 사이 일제히 떨어졌다. 웬만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도 끄떡없던 시장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로 상황은 심상치 않다. 이에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에게 현재의 상황 진단과 대책을 물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말, 노무현 정부 초기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에 이어 그가 이끌고 있는 한반도평화포럼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브레인이다.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주석 국방부 차관 등 10여 명의 핵심 인사를 배출했다.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통이다.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이자 노무현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그가 통일부 수장인 동안 남북은 모두 95차례의 회담을 했다. 특유의 저력과 배포, 그리고 유머 감각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주도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 드리겠다. 전쟁이 날까?

“‘간다레이, 부샤위(乾打雷, 不下雨)’. 지금 상황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중국 성어(成語)다. 마른 하늘에 천둥·번개 소리가 요란하지만 비는 오지 않고 지나간다는 뜻이다. 말 폭탄의 수위가 높아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다는 말이 전문가들과 언론에서 나오고, 그래서 국민은 더 불안한 상황이지만 전쟁은 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폭탄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굽히지 않고 더 센말 폭탄을 던지는 상황이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듯, 김정은에게 트럼프가 물지도 못할 거면서 소리만 요란한 존재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 김정은은? 더 오만하게, 더 세게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를 뿌릴 것만 같은 말의 먹구름을 걷어내면 곧 천둥·번개도 그친다. 지금은 결국 협상 국면으로 넘어가기 위한 마지막 힘겨루기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라는 전대미문의 미국 대통령이 심상치 않다.

“지금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건 미국이 아니다. 북한이다. 원래는 미국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따라서 대단히 저력이 있는 나라다. 미국 대통령의 말이 곧 정책(Speechwriting is policymaking)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트럼프라는 대통령의 특성상 상황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건 미국이 한반도 전쟁을 주도한다면 이는 제2의 한국전쟁이자 미·중 전쟁,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한다는 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 장관의 입이다. 매티스가 ‘(북한 정권의) 종말’ 등을 언급하긴 했지만 결국 ‘외교를 사용하길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김정은 역시 돌발적인데.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그가 과격한 판단만 내릴 거라고 보는가. 그건 잘못된 관점이다. 난 오히려 트럼프가 오판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북한은 가진 것이 없는 나라다. 강대국에 악을 쓸 땐 목소리를 최대로 높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죽을 짓은 안 한다. 미국은 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재기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공격을 받고 나면 ‘제2 타격(the second strike)’을 할 능력이 없다. 김정은은 자신의 목숨과 자기의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그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도 1994년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시절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결정적으로 내밀었다. 김정은 역시 결정적 순간엔 우회전이든 좌회전이든 해 빠져나갈 거다.”

文 정부 100일, 사드 추가배치 전격 결정은 잘못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벌이고 있는 설전(舌戰)에 대해 정세현 이사장은 “실제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곧 대화국면이 열릴 수 있으며, 그 주도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괌 폭격 위협을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이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해 벌이는 심리전에 휘말리고 있다. 북한 발표를 잘 보라. ‘괌도(島) 주변 30~40㎞ 해상 수역에 탄착’ ‘계획을 8월 중순까지 최종 검토 후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한다고 적시해 놓았다. 괌 주변 30~40㎞면 공해이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미 군사기지에 대한 공격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또 그런 계획을 수립해 김정은에게 보고하겠다고 한 것이지 실제로 폭격 시점을 못 박은 것도 아니다. 북한 사람들이 말 폭탄을 쏟아내는 것 같지만 말의 사용은 굉장히 정확하게 한다. 그걸 해석하는 우리가 더 엉성한 면이 있다. 우리를 벌벌 떨게 만들려는 엄포에 비분강개하는 건 바보짓이다. 북한도 지금 상황에 겁을 내는 거라고 본다. 세계가 김정은의 돌발성을 걱정하지만 북한에선 트럼프의 돌발성을 걱정한다.” (※실제로 김정은은 8월 15일,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문재인 정부가 8월 17일로 100일을 맞았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출발을 어떻게 평가하나?

“글쎄, 100점은 어렵겠지. 아기도 100일을 잘 넘기기가 어렵기에 백일잔치를 하는 거 아니겠나. 이 정부의 앞으로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그래도 공과(功過)를 꼽는다면?

“아쉬운 점은 첫째, 북한 미사일 도발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전격 추가배치로 받았다는 점이다. 기술적으로 우리 영해·영공을 향한 게 아닌데 우리가 사드 배치로 맞받았다. 미국에 대한 도리를 하느라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미국 정부는 한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북한과 동족이니 미국 모르게 남북이 급격히 가까워질 수 있다’고 의심한다. 진보 정부가 들어설 때는 더 그랬다. 그럴수록 미국을 다독일 필요가 있다는 계산에서 내린 결정인 것 같긴 한데, 중국의 보복 등 파급효과가 거셀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결정이다. 둘째로 아쉬운 점은 정부 초기에 미·중·일·러에 특사를 보낸 직후 북한에 특사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도 궁금할 테니 특사를 받았을 거라고 난 본다. 그렇게 5월 대북 특사→6월 한·미 정상회담 수순을 밟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노 전 대통령의 10·4 남북공동선언 10주년부터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까지, 올가을에도 계기는 많지 않나?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북한의 화법과 문법에 익숙한 인사를 보내 관계개선의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 취임 직후 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앞으로도 기회는 있다. 현재의 ‘간다레이 부샤위’ 분위기가 지나면 곧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거다. 그 시점에서 때를 놓치지 말고 특사를 보내라. 사진만 찍으려는 정치인 말고 현 정부 인사를 보내야 한다. 10·4도, 추석도 좋은 계기로 십분 활용해야 한다. 사실 이산가족 상봉을 꼭 추석에 맞춰 할 필요도 없다. 다가오는 가을 전체가 우리에겐 기회다.”

문 정부가 잘한 것을 꼽는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후 트럼프와 통화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것은 매우 잘했다. 한반도 전쟁을 절대적으로 원치 않는 건 냉철히 보면 한국뿐이다. 대통령뿐 아니라 한국의 장삼이사까지 모두 나서서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4월 위기설도, 8월 전쟁설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일부에서 부채질하는 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국의 군수산업체는 무기를 더 팔 수 있고,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북한의 도발을 계기로 군대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헌법 9조를 무력화하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2의 한국전쟁에 희생되는 건 한반도에 있는 우리뿐이다. 상황을 직시하고 우리가 나서서 평화의 물꼬를 튼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누가 대신 부어주지 않는다.”

미국에 의존할수록 코리아패싱은 현실이 될 것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는 소위 ‘운전석 논란’도 뜨겁다.

“지금은 자동차에서 남·북·미·중이 모두 내려서 조수석에도 앉지 않겠다며 목청 높여 싸우고만 있는 형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북·미가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기싸움을 하면 한국이 두 나라 사이에서 관계를 조율했다. 문 대통령에게도 기회가 충분히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접근을 하니 김정일도 진정성으로 화답했다. 내가 통일부를 맡았던 시절(2002년 1월~2004년 6월), 남북 간에 크고 작은 회담이 2년 반여 동안 95번이나 열렸다. 6자회담을 앞두고 우리가 북한 측과 만나 사전교육이라고 할까, 협의를 해서 합의문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여러 번이다. 이런 역할은 한국만이 할 수 있다. 북한의 중국관은 우리의 미국관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기에 미국이 주장하는 북핵 문제에 있어서의 중국 역할론은 잘못된 것이다. 중국이 압박을 한다? 북한은 더 반발할 뿐이다.”

문 정부 들어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대국들이 우리를 쏙 빼놓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민족패배주의적 발상이 집약된 게 ‘코리아패싱’이라는 콩글리시다. 우리가 미국 눈치를 볼수록 코리아패싱은 일어난다. 상황을 잘 보라. 한·미 동맹 강화론자, 동맹 지상주의자들일수록 코리아패싱을 걱정한다. 미국에 쓴소리를 하면 동맹이 깨지고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여기는 분들이 현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코리아패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율배반이다. 구한말을 잊지 말자.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미국은 가쓰라 태프트 조약을 맺고 일본에 조선을 주고 자기들은 필리핀을 차지했다. 조선이 청나라와 러시아에 의존하다 벌어진 일들이다. 동맹을 유지하되 할 말은 해야 한다.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때로는 ‘노(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중국과의 빅딜 카드로 주한미군 철수가 가능하다고 거론해 논란이 일었다.

“키신저의 말이면 다 성경 말씀인가. 키신저가 누군가. 대국 중심의 국제정치 이론을 공부했고,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의 ‘balance of power(세력 균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폰 메테르니히는 대국의 세력 균형을 위해 소국의 이해관계는 중시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키신저가 짜놓은 판에서 우리는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우리 외교안보 전문가와 정치인·지식인들은 이걸 어떻게 극복할지를 연구하기는커녕 금과옥조로만 여긴다. 이 풍토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중국의 입장은 어떻게 보나?

“중국이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통해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동시 진행)을 제의한 것에 주목한다. 우선 ‘쌍중단’으로 시작해 미국을 협상장에 나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꾸 출구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비핵화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달고 나오는 게 문제긴 하다. 이건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비판해 온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미국을 설득하는 건 결국 우리의 책임이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쌍궤병행으로 가는 틀은 우리가 주도해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쌍중단’ 제안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 않나?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 중국의 속내는 이렇다. 미국의 핵전력이 잠수함에든 어디에든 실려서 한반도 인근, 즉 중국 근처에 오는 것 자체를 막겠다는 것이다. 이는 곧 미국이 한국에 씌워주고 있는 핵우산을 접으라는 얘기다. 미·중 양쪽 이해관계가 다르다. 개념 규정을 먼저 정확히 하고 들어가야 한다. 중요한 건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내면서 로드맵을 그려내는 것이다. 시동은 다름 아닌 우리가 걸어야 한다.”

시동을 걸기 위해 필수적인 건 남북관계의 회복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예전에 남북관계가 원활하던 시절, 북한은 우리의 말을 상당히 경청했다. 그 힘은 솔직히 결국 쌀과 비료에서 나왔다. ‘퍼주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대북 지원이 우리 말을 듣게 한 힘이다. 동족으로서 남이 북을 돕겠다는 진정성이 통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남이 지원을 제의해도 북이 받지 않는 상황이지 않나?

“일단 이 국면이 지나야 한다. 우리가 약 9년간 (남북관계를) 쉬었지만 그 가락은 아직 남아 있지 않나. 북·미 간에 뭔가 접점을 만들어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문제가 풀린다. 그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다. 우리가 미국을 설득하고 대화 물꼬를 튼 뒤 남북이 협조해 로드맵을 그려내야 한다.”

개성공단 가동 재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어떻게 보나?

“지금은 모두 난데없는 얘기가 돼버렸다.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하면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즉각 재개라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말기에 사드 배치를 돌발적으로 하면서 한·중 관계를 최악으로 만드는 등 외교 구도에 대못을 박아버렸다. 사드 대못 이전엔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개성공단 가동 재개 등 경제교류협력을 통해 남북관계 복원이라는 정치적 출구를 모색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뭐랄까, 갑자기 꺼내기가 참 난데없는 얘기가 돼버렸다.”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한 것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게임의 판을 바꾸는 일대 사건 또는 존재) 아닌가?

“난 북한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군사력이란 결국 경제력의 표현이다. 경제력에 기반한 재래식 전력에선 북한이 절대적 열세이기에 더더욱 (핵·ICBM과 같은) 비대칭 전력에 집중하는 것이고. 생화학무기도 개발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 때문에 북한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건 북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북한은 핵탄두를 10~20기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되는데, 미국은 감축한 수가 6800여 기에 달한다. 미국이 북한의 10~20기 정도로 주저앉는다면 북한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럴 리 없다. 우리가 북한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하면 국방비의 불필요한 증액 등 정책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ICBM 위협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과대평가해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해서도 안 된다.”

트럼프 말 폭탄의 숨은 표적은 중국


▎북한이 지난 5월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신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북한은 7월에는 이보다 진일보한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인 화성- 14형을 시험 발사했다.
음모론 냄새가 난다.


“외교안보에 있어선 음모론이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깝다는 게 내 경험이다(웃음). 북한의 ICBM 능력에 대해 미국 정보당국의 평가가 오락가락했다. ICBM의 핵심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인데, 미국 정보당국은 이를 처음엔 확보한 것처럼 말했다가 이후에는 아닌 것 같다고 정정했다. 왜 그랬을까. 큰 틀에서 봐야 한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해당하는 문제다.”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인가?

“맞다. 북한의 ICBM 문제는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 전략 전개에서 명분을 얻기 위해 계산된 움직임이다. 트럼프가 속된 말로 장사꾼과 같은 스킬을 부리는 건데, 그가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에 굉장히 깊은 뜻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북한의 군사 능력을 가공할 만한 것으로 부각시켰다가 때론 별것 아닌 것처럼 저평가하기도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미국이 이렇다고 하면 이런 줄 알아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 여론이 조성되고 정책이 정해지고 예산이 편성된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정치인부터 지식인까지 모두가 다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미국이 말하는 대로 따라간다. ICBM 위협이 있으니 무기도 더 사야 하고, 사드 체계도 중국의 보복에도 불구하고 꼭 배치해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이 조성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까지 언급하며 말의 전쟁을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는가?

“현재 국제사회에서 정보 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짜여 있다. ‘Intelligence(첩보)’를 ‘information(정보)’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북핵 문제는 핵 비확산 영역에서만 다루면 되는 거였는데 중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에겐 비극이다.”

북한 김정은에게도 조언을 한다면?

“지금은 북한이 선택을 잘해야 한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새겼으면 한다. 199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이 김용순 국제비서를 시켜서 미군이 남쪽에 주둔을 해도 좋으니 수교하자고 이미 제의했었고, 김정일 역시 2005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에게 같은 얘기를 했다.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평화협정도, 미국과의 수교도 못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왜 미군 주둔을 전제로 한 수교와 평화협정을 얘기했겠는가? 핵실험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고? 미국은 ‘너희가 핵무기를 만들면 얼마나 만들겠느냐. 우리는 압박을 계속하겠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결론이 안 나서 대북제재가 계속되고, 북한으로선 국력이 신장되지 않는 불이익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되새겨야 한다. 그럼 문제는 풀린다.”

이날 정 이사장의 메시지는 문 대통령의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와도 궤를 같이했다. 문 대통령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축식에서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며 “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반도에서의 군사 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며 전쟁설을 일축했다.

- 글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r

201709호 (2017.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