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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문재인 정부 조세 정책의 행로 

“정치논리에 기댄 세금 정책은 실패한다” 

대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허용석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 /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
여당은 조세에 정통한 관료들과 충분한 토론 거쳐야… 수출 경쟁력 높이는 혁신전략 없으면 부채 증가할 것

▎조세 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는 월간중앙 대담에 나선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왼쪽)와 허용석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
여권은 ‘수퍼리치’에 대한 증세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과세표준 2000억원이 넘는 대기업의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리기로 했다. 또 과세표준 5억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의 소득세율도 현행 40%에서 42%로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내년부터 실행에 들어간다.

정치권의 반응은 양 갈래로 나뉜다. 여권은 조세정의의 출발점이자 글로벌스탠더드에 맞는 세정 정상화라는 의미를 부여한 반면, 증세 자체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우려하던 ‘세금폭탄’이 현실화됐다”며 반기를 들었다. 여론조사에서는 증세 찬성이 더 우세한 가운데 정부의 조세 정책이 국민을 ‘1대 99’로 편가르기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초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는 명목세율 인상과 같은 증세 방안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내각과 민주당이 세율 인상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정부·여당의 증세론은 이처럼 처음부터 묘한 긴장감 속에서 시동이 걸렸다.

월간중앙은 정부의 바람직한 조세 정책의 방향을 모색해보는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자로 나선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거시경제·금융 분야의 전문가로 연세대 상경대학장, 한국경제학회장, 기획재정부 자체평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허용석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은 행시 22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건전재정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담은 8월 10일 월간중앙 회의실에서 두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혁신 전략 없는 임금 인상은 자승자박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왼쪽부터)이 7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2017년 세법 개정 당정협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불평등을 최소화되면서 중산층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를 꿈꾸는 듯하다. 이를 이룰 수단으로 제시된 여러 정책과 추진 방식을 접하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되던가?

허용석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_ 정부는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를 저성장과 양극화로 규정하고 있다. 과거 정부가 추진한 정책들이 이 문제 해결에 효과를 내지 못했으므로 근본적인 경제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경제를 시장원리에 맡겨만 두지 않을 것이며, 필요한 경우 정부가 과감하게 개입해 시정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_ 정부 정책의 목표는 크게 소득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해소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복지 확충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 소득주도 성장 전략으로 일컬어지는 제이(J)노믹스인 것이다. 소득이 늘면 소비가 증가하고 기업의 매출도 올라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선순환 구조를 상정한 것 같다.

허_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7월 25일 발표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지금까지 이런 유의 발표가 있을 때 맨 앞자리를 차지하던 혁신성장이 뒤로 밀리고 가계소득을 늘리는 소득주도 성장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다. 성장보다는 복지나 분배, 확장보다는 내실, 물적 자본보다는 사람, 소수보다는 다수 대중에게 더 무게중심이 놓일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도 정부와 공공부문이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김_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줄이고 최저임금을 높이면 소득 불평등과 같은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볼 문제는 과연 이게 개방경제와 잘 맞물려 돌아갈 것인가다. 폐쇄경제나 내수 비중이 큰 경제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 일자리의 70%는 서비스업에서 실현된다. 내수를 부양하면 서비스업이 활성화돼 고용이 확대되겠지만 소득은 수출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수출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내수를 확대하면 상관없는데 그게 안 되면 벌지도 못하면서 써야 하므로 부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임금을 올리면 내수는 살아나겠지만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므로, 결국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혁신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거듭 혁신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배경으로 받아들였다.

정부가 증세 정책을 전격적으로 밝혔다. 증세와 관련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다.

허_ 세금 문제를 다룰 때는 의견 수렴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세법개정안은 노사정위원회의 결론과 성격을 달리한다. 노사정위원회는 사용자와 근로자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기구인 데 반해, 세금은 불특정 국민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 안팎이다. 이것만으로는 복지 재원을 충당하기 어렵기에 세 부담을 늘리는 데 국민들도 동의할 것으로 본다.

김_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 재정지출도 당연히 증가하게 된다. 증세는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세금을 올리면 내년 지방선거에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음에도 추진하는 걸 보면 국민적 지지가 상당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시장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부의 불균형을 심화하고 주택가격 폭등을 초래하면서 국민들도 문제의식을 가진 것이다. 그게 대선 투표 결과에 일정하게 반영됐다고 보기에 증세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게 아닐까.

허_ 정부가 용기를 내 솔직하게 실상을 설명하는 게 좋겠다. 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만큼이나 요구 수준도 높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복지를 어떤 모습으로 가져갈 것인지, 거기에 드는 재원이 어느 정도이므로 국민의 세금 부담률을 몇% 올리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률 목표치,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의 비율 등 복지제도 운용의 청사진을 제시해 정부 정책의 모호함을 덜어주는 게 좋겠다. 이후 각론 부분의 공론화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각론 부분 공론화로 정책 모호함 걷어 내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운데)는 당초 명목세율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 사진:연합뉴스
김_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합의를 이끄는 게 중요하다. 몇 년 뒤에 봤더니 재정적자가 너무 심해졌다든지 하면 정부의 신뢰에 문제가 생기고 반발도 격해질 것이다. 현시점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너무 낙관적인 시각이다.

허_ 저는 1~2년 뒤에 정부의 예측이 빗나갈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전제가 있다. 사전에 경제성장률과 임금상승률 전망을 다 공개하고 토론에 붙였으면 한다. 그래야 나중에 수정하는데도 부담이 덜할 것이다.

당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소득세 최고세율도 42%로 올린다고 한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반발하는데.

김_ 국제적 추세는 소득세율을 높이고 법인세율은 낮추는 것이다. 한국 법인세율의 절대 수준은 국제 평균과 비슷한 편이다. 제조업에 기반을 둔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는 법인세를 높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가 지금 법인세를 올리고자 하는 것은 세수 확보 그 자체보다는 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을 쌓아둔 채 너무 투자를 안 하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기업은 돈이 넘치는데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은 점점 감소하는 흐름 말이다.

허_ 세정의 기본 원칙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맞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하면 한국은 전 소득계층에서 조세부담률이 낮은 편이다. 이번 정부의 시책은 중하위 소득 계층의 형편이 어려우니 담세 능력이 있는 계층부터 먼저 부담하게 해 달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김_ 소득세 최고구간에서 세율을 높이는 것도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 추세와 맞물린다. 초고소득층 소득세율을 높여서 거둬들이는 세수가 연간 2조원에 불과하다. 정부 정책은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을 높여 정서적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5억원 이상의 소득세 상한 구간을 신설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허_ 우리나라 기업의 법인세 명목세율은 OECD 국가의 중간쯤 간다. 중요한 건 실효세율인데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2010년 기준 자료를 보면 국내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비교 국가에 견줘 낮거나 비슷하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나 총조세 대비 법인세 비중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상위권에 들어 있다.

법인세·소득세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예측한다면?

허_ 기업하려는 의욕, 근로하려는 의욕 저하가 가장 우려된다. 소득세율 인상은 개인 가처분소득 감소라는 비교적 단선적인 효과가 있는 데 반해, 법인세율 인상 효과는 복잡하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의 유보금, 배당, 임금, 소비자가격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법인세 부담이 가령 100 증가한다고 하자. 통상 기업은 83을 부담한다. 이중 59는 유보금을 줄이거나, 15는 배당을 축소하고, 7은 근로자 임금을 깎아서 충당한다. 나머지 17은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가 내도록 한다. 소득세율 인상은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지겠지만 세수가 복지재원으로 쓰이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이고 사회적 갈등 비용을 축소하는 데 기여한다. 법인세 인상도 마찬가지다. 세수를 사회간접자본(SOC) 확충과 미래 먹을거리 개발, 근로자를 위한 재교육이나 훈련 등에 쓰면 성장잠재력 확충에 도움을 주게 된다. 이번 법인세 인상은 초거대기업 대상이므로 감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_ 임금이 오르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측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가져오고, 그게 임금을 또 오르게 해 경제가 계속 악화되는 남미형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 게다가 업종에 따라 사정은 다르지만 생산성과 비교해 임금이 높은 분야가 있다. 임금 인상은 왜 일어날까? 과거에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심해 노후 저축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가가 안정화돼 있다. 하지만 연금체제가 준비돼 있지 않아 노후 대책이 없다. 연금이라고 해봐야 교사·공무원·군인 정도만 마련돼 있고, 그외에는 최대 150만원이 고작인 국민연금으로 버텨야 하기에 퇴직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노후소득이 없이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게 될까 봐 생산성을 뛰어넘는 임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모든 이가 연금 시스템으로 들어오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효과가 금세 안 나타나고 시간이 걸리니까 5년 단임의 정부는 이런 데 신경을 별로 안 쓰게 된다.

내막 잘 아는 기재부가 뒤처지는 이유는?


세금 문제는 청와대와 당이 주도하고 경제부처는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모양새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_ 정치권에서 결정하면 관료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너무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정책이 결정되면 나중에 비용 증가 등으로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경제 논리에 의해 경제정책이 결정돼야 한다. 현실에서 이를 잘 조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번 경우도 세법 개정은 청와대와 당이 주도하고 기획재정부가 뒤처지는 감이 있다.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정책의 부작용을 잘 아니까 여당은 사전에 충분한 토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낮추는 등 국민개세주의에 따라 보편적 과세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경제 여건에 부합하나?

김_ 세금을 내게 되면 참여의식이 고조되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아무래도 관심을 더 가지게 되는 법이다. 나중에 보조금 등 각종 명목으로 돌려주더라도 세금을 내게 하는 게 중요하다. 선진국의 면세자 비율은 보통 30% 중반대에서 움직인다. 우리 면세자 비율도 예전에는 지금과 달랐다. 고소득층에 세수를 더 걷고자 지난 정부에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변경하면서 면세자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자영업자의 절반, 소득세 대상자의 거의 절반이 세금을 안 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다.

허_ 면세자 비율을 낮추는 문제는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면세자 비율을 늘리는 쪽으로 정책을 가져가지만 않는다면 자연적인 임금 인상분 등으로 매년 1~1.5%포인트가량 면세자 비율이 줄어든다. 2014년 48.1%던 면세자 비율이 2015년 46.8%로 감소했다. 1년 만에 1.3%포인트 개선된 셈인데, 이런 추세로 4~5년 정도 지나면 그 비율이 40%를 조금 밑돌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중산층·서민층의 세 부담을 인위적으로 늘리기보다는 이런 방법으로 시간을 두고 해결하는 게 현실적이라 판단된다.

자유한국당은 담뱃세 인하를 추진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올린 담뱃세를 다시 내리자는 주장은 합리적인가?

김_ 2015년 담뱃세를 올렸는데 흡연율은 줄지 않고 세수만 5조원 정도 늘지 않았나. 서민들이 담배를 즐겨 피우다 보니 서민 증세라는 푸념이 나와 다시 내려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담뱃세 인하는) 글쎄다. 게다가 한 번 올린 세금을 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허_ 이미 올린 담뱃세를 낮춘다? 아마 그런 나라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조세 행정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신중해야 하지 않겠나. 담배·술·석유는 가격을 높여 소비를 억제할 필요가 있기에 일반소비세인 부가가치세에 더해 개별소비세까지 붙이는 것이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들 물품에 붙는 세금은 올라가는 게 맞다.

한국 재정건전성 급격히 악화될 듯


▎현대자동차 수출 선적 부두에 외국으로 수출될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임금 인상은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기도 하다.
정부는 재정지출 증가율 목표치를 7%로 제시했다. 공공부문 부채를 포함하면 국가채무도 상당 수준이라 재정 건전성도 안심하지 못한다는 게 지난 대선 국면의 쟁점 아니었나?

김_ 재정지출 증가율을 정부가 7%로 잡은 배경에는 세수 증가율 6%, 경상성장률 4%대 실현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 재정 건전성에는 큰 탈이 없다는 말인데, 하지만 우리는 과거와 다른 환경에 접어들고 있다. 성장률이 둔화되고 고령화는 급속하게 진전된다. 노후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증가하는데 일자리는 점점 중국에 빼앗기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복지지출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다. 지난해에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올해 세수가 많이 걷혔다. 재정적자를 GDP 대비 2.3%라는 양호한 수준에서 막은 동력이다. 현재 GDP 대비 정부부채는 40%로 매우 건전한 편이지만 이런 정황에 대입해보면 앞으로는 급격하게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재정이 양호해서 필요할 때 재정을 사용할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공식통계에 따르면 공공부문 부채까지 더하면 국가채무가 GDP 대비 67%에 달한다. 아직은 통제가 가능하지만 앞으로 복지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허_ 정부는 2015년 장기재정전망(2016~2060년)에서 경상 성장률이 2016~2020년 중 3.6%, 2050~2060년 중에는 1.1%로 점차 낮아질 것으로 전제했다. 의무지출(지출 요건이 법령에 명시돼 재량 개입 여지가 없는 지출)을 현 수준으로 동결하고, 재량지출을 경상성장만큼 늘리면 42.3%인 국가 채무 비율이 62.4%(2060년)로 오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경상성장률을 4.5~5%로 보면서 정부지출 증가율을 더 높게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재정지출 증가율 7%가 현실화하리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만약 7%로 간다면 2015년 장기재정전망과는 큰 차이가 난다. 2060년 기준 62.4%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기재정전망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등도 결국 국가재정에 의존하는 정책이다. 일각에서는 나랏돈을 쏟아 부어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를 추진한다고 비판한다.

허_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 중에서 공공부문에 속한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9%로 OECD 국가 평균(2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제나 인구 면에서 한국과 비슷한 영국이 23%, 프랑스가 20%, 스페인이 17%다. 일본이 8%로 우리보다 낮을 뿐이다. 일본 사례는 연구 대상이다. 우리가 ‘중부담 중복지’로 가는 길에서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릴 여지가 있다고 본다. 공공부문에서의 무분별한 일자리 확충은 응당 없어야겠지만 사회복지와 요양, 공공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 분야, 소방·경찰관 등 국민 안전과 치안 유지 분야의 일자리 확충은 한국 복지 수준에 견줘 당분간 확대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_ 간병이나 복지 관련 직종 등 수요가 있는 공공 분야의 인원이 부족하면 늘려야겠지만 꼭 정규직으로 할 건 아니라고 본다. 공공부문 일자리라 해서 반드시 정규직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줄이면서 수요가 있는 공공부문에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서비스 분야에서 사람이 필요한 일에는 노동을 적극 투입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요소요소에 도우미를 두고 안내도 하고 무거운 짐도 들어준다. 유럽도 유사한 방식으로 고용을 창출한다.

사회통합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진하는 쪽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이 현실에서 뿌리 내리려면 어떤 보완책이 필요할까?

김_ 새 정부 출범 100일에 이르면서 추경안을 제외하곤 그동안 전반적으로 미시적인 정책에 치중하는 듯하다. 더 큰 틀에서의 성장전략과 같은 거시정책에 주목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의 경우 시장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건 금리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목표로 각종 세금 인하나 대출규제 완화와 같은 미시적 지원책을 쏟아냈지만 별다른 효과를 못 보다가 금리인하 조치를 취하자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금리를 올리지 않고 대출규제 같은 미시적인 정책에만 매달려선 부동산 열기를 제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책을 디자인하는 쪽에서는 거시적 틀에서의 접근도 고려했으면 한다.

집값 안정화와 부의 불평등 해소 동시에 이루려면


▎정부가 ‘2017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8월 2일 오후 서울의 한 세무서에서 한 시민이 세금 납부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소득의 불평등’뿐 아니라 ‘부(자산)의 불평등’이 더 심각하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빈곤층의 부를 올려주는 방법으로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의 인프라 개선을 꼽았다. 그는 “예컨대 서울과 수도권 외곽의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투자한다면 새로운 지역에서 공급이 늘어나면서 주택가격 안정화와 부의 불평등 해소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제안했다.

허_ 내각을 풀가동하는 정부의 면모를 기대해본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해 범정부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계획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의 ‘정보화추진위원회’가 한국을 정보통신(IT) 강국 반열에 올렸듯,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새 시대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요람이 됐으면 한다. 저 개인적으로는 저출산, 규제 완화, 복지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가 추가됐으면 한다. 저출산과 규제 완화는 다들 절박하다면서도 정작 진전을 보지 못했다. 복지는 관련 예산의 증가와 증세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에 복지국가의 모습을 그려보자는 취지다. 복지위원회에서는 현재 시행되는 각종 복지제도의 중복·누수 실태를 점검하고 예상되는 미래 국민 부담, 업그레이드된 신개념 복지제도를 모색하면 어떨까?

- 대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허용석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 /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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