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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이슈] 부자 증세는 文 정부의 덜컥수? 

부메랑으로 돌아와 치명상 입힐 수도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盧 종부세, 朴 담뱃세 등 정권마다 힘 빼는 블랙홀…미국·유럽·일본 등 세계적으로 ‘대세’는 세금 감면

문재인 정부의 증세정책이 본격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예전부터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하면서 “법인세 정상화 등 ‘부자 감세’ 철회를 기필코 이뤄내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증세는 논란의 대상이자 풀리지 않은 숙제였다. 결과적으로 정권의 힘을 빼는 악재로 작용했다.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걷겠다는 문재인 정부 증세정책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2차 주요 기업인과의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 대통령, 허창수 GS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황창규 KT 회장.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조세정책은 정권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박근혜 정권 몰락과 함께 등장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으로 요약된다. 8월 2일 발표된 정부의 첫 세법개정안에는 이 같은 방향성이 담겨 있다. 2017년 세법개정안은 ‘양질의 일자리 확대’와 ‘소득분배 개선’을 지향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라며 “이런 방향에 맞춰 조세정책을 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하자면 재정이 풍부해야 한다. 정부가 명목세율에 메스를 댄 이유다. 보수정권 9년과는 다른 방향이다. 이명박(MB)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며 증세 필요성 주장에 손사래를 쳤다.

문재인 정부는 방향을 틀었다. 세법개정안을 통해 법인세 최고세율은 22%에서 25%로, 소득세 최고세율은 40%에서 42%로 올렸다. 이 안(案)이 국회를 통과해 2018년부터 적용되면 9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MB 정부 2년차이던 2009년 법인세 최고세율은 25%에서 22%로 3%포인트 낮아졌다. 또 소득세 최고세율은 김영삼(YS) 정부 시절이던 1995년(45%) 이후 가장 높아진다.

법인세 최고세율과 소득세 최고세율을 높인다고 해서 증세의 ‘문’이 완전히 열렸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정부·여당은 이번 세법개정이 특정 계층을 겨냥한 ‘핀셋 증세’라고 강조한다. 세율 인상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소수이고, 법인세율이 올라가는 기업은 2016년 기준 129개, 소득세율 인상이 적용되는 인원은 9만300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근로소득세 2만 명(상위 0.1%), 종합소득세 4만4000명(상위 0.8%), 양도소득세 2만9000명(상위 2.7%) 수준이다. 정부는 “여력이 있는 곳에서 세금을 더 걷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정된 증세인 만큼 실제 세수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세율 인상으로 연간 약 3조6300억원(법인세 2조5500억원+소득세 1조800억원)을 더 징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비과세 감면 등을 더하면 총 세수효과는 연 5조5000억원에 이른다. 단순 계산하면 5년 총액 27조5000억원으로 문재인 정부 공약 이행 재원(5년 총액 178조원)에는 한참 모자라는 금액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 정도의 증세로는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 보다 넓은 수준의 증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보편적 증세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977년 이후 40년간 10% 세율에 머물러 있는 부가가치세 역시 당장 수술대에 오르지는 않는다. 김동연 부총리는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납세자가 부담을 안아야 한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인기 없는 정책인 만큼 정부로서는 선뜻 펼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핀셋 증세는 양날의 검”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세법개정은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둔 ‘선거용 증세’라는 의심이 들게 한다. 세수효과는 미미하고 국가재정 여력만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전부터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당선된 직후인 2015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론(論)’을 정면 반박했다. 그는 “법인세 정상화 등 ‘부자 감세’ 철회를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돌아보면 역대 정부에서 증세는 늘 논란의 대상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세금문제가 정권의 레임덕을 부추기는 결정타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이른바 상위 1%에만 과세하겠다며 신설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양도세 강화 등이 2006년 지방선거에서 노무현 정권에 참패를 안겼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가까이 보면 박근혜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증세 없는 복지’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는 공식적으로 임기 동안 증세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 건강을 이유로 담뱃세를 올린 것에 대해 “건강이라는 미명 아래 사실상 세금을 올린 것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렸다.

세금문제는 정치적으로 늘 ‘뜨거운 감자’다. 진보·보수를 떠나 역대 정부에서 증세는 풀릴 듯 풀리지 안은 난제(難題)였다. 소득이 많든 적든 세금을 올리겠다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증세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증세 논의를 통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 취임 70여 일 만에 논의가 시작됐을 만큼 ‘증세전(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70% 이상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집권 초기에 정치적 동력을 통해 난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럼에도 우려의 목소리는 작지 않다. 정부가 ‘부자 증세’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편 증세’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때 중산층에 세금을 더 걷으려 했던 시도를 ‘세금 폭탄’으로 규정했었다. 따라서 보편 증세를 주장할 만한 명분이 마땅치 않다. 당내 여기저기서 “보편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핀셋 증세는 양날의 검”이라며 다음과 같은 고충을 토로했다. “더 많은 복지를 위해서는 더 많은 세금이 불가피하다. 즉 보편 증세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부메랑으로 돌아와 정권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결국 ‘증세 정치’는 정부·여당의 운신의 폭을 좁게 할 것이다.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는 만큼 보다 면밀한 로드맵과 차분한 추진이 필요하다.”

핵심 지지층 4050 화이트칼라 의식한 듯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입주민 200여 명이 2007년 5월 집회를 열고 종합부동산세의 부과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주민의 80%가 거주 목적으로 살고 있는데 정부가 세금 폭탄을 부과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7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법 개정 당정협의에서 김태년 정책위의장, 우원식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부자 증세를 강조했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소득 재분배를 개선하기 위해 고소득층 세 부담을 강화하되, 서민·중산층 그리고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우 원내대표는 “초거대기업, 초고소득자 적정 과세의 가장 큰 의미는 완전히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민주당과 청와대의 부자 증세론은 대선 이전 민주당의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소득 상위 2~10% 이내의 중상위층을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2년 전만 해도 오제세·홍종학 의원 등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국세청에서 받은 ‘통합소득(국세청이 파악한 근로소득 및 종합소득을 모두 합산한 것) 100분위’ 자료를 바탕으로 조세제도가 상위 10%에게 유리하다고 날을 세웠다.

오 의원은 “세전·세후 소득집중도를 분석하면 상위 1% 계층에 대한 과세는 소득집중도를 2.04%만큼 낮추는 효과가 있었지만, 상위 2% 구간부터 소득집중도 차이가 급격히 줄었다”며 “상위 10%는 세금으로 인한 소득 양극화 완화효과가 오히려 -0.02%”라고 분석했다. 2013년 현재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13.05%를, 상위 2~10%는 전체 소득의 34.72%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11월 하순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담배 판매 제한 및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부는 2015년 1월 1일부터 담뱃값을 2000원 인상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근로소득세 납세자 가운데 과세표준 4600만원 이상인 사람은 152만 명으로 전체 근로소득세 납세자의 10.2%에 해당한다. 즉, 소득 상위 10% 이상 중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증세했을 경우 근로소득세만 1조7000억원 이상(2015년 근로소득세 기준 단순 계산) 더 징수할 수 있다. 같은 비율로 세수가 늘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소득세 전체로는 3조9000억원이 증가한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소득세 과세 대상을 확대할수록 세수 확보와 재분배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부족한 세수를 메우고자 국채 발행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부담은 현재 또는 미래 세율을 기준으로 지게 된다. 자산과 소득이 높은 중장년층 이상은 적자재정이 유리하지만, 취업난 등으로 임금소득이 낮은 미래 세대에는 큰 부담이 된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인 수도권 거주 4050 화이트칼라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야당 관계자는 “대기업의 고학력 사무직들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많이 지지했다”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세율을 높이면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연말정산 대란’과 비슷한 형태의 반발이 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살리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화두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외치며 도로·철도·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케인스 이론이 탄생했던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유사하다. 때문에 ‘트럼프-케인스언 정책’이라고도 부른다. 트럼프 정부는 대규모 감세 정책도 발표했다.

내년에 대폭 세제개편 추진?


유럽도 4월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면서(월 800억 유로→600억 유로) 재정정책과 분담해 나가고 있다. 일본은 ‘금융완화(금융시장에서 자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자금 조달이 용이한 상태)’ 중심의 1단계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2단계 ‘재정정책’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유럽·일본 등의 공통점은 ‘세금 감면’에 더 주력한다는 점이다.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은 ‘큰 정부론’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감세정책은 경기 부양의 주체가 민간이다. 때문에 ‘작은 정부론’과 부합된다. 경제 발전 단계가 높은 국가일수록 감세정책을 선호한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소득세를 가리지 않고 세율을 올렸다. 세계적인 추세와는 대조적이다. 법인세·소득세 모두 적정 세율이 얼마일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현재 세율이 적정 세율 이하라면 증세를 통한 현 정부의 재정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적정 세율보다 높다면 단기적으로는 경기 둔화, 중·장기적으로는 세수 감소 등의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민의당 정책 전문가는 “이번 세법개정안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며 “2019년에는 선거가 없기 때문에 내년 6월 지방선거 후에는 상당한 폭의 세제개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 조세정책의 일관성 여부도 이때쯤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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