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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포커스] 닮은 듯 다른 盧-文 청와대 

‘청출어람’ 말하기엔 아직은 갈 길 멀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jwhn2 0@naver.com
개혁 어젠다 같은 차별화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 들어 … 당·청 갈등, 인사 시스템, 코리아 패싱 논란 등은 숙제

▎문재인 정부는 시대정신에 걸맞은 개혁 어젠다 등으로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코리아 패싱 논란, 청와대 인사시스템 등은 여전히 난제(難題)로 지적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5월 1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시민사회수석비서관에서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공직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직후 맡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한 1~2년 눈 딱 감고 ‘죽었다’ 생각하고 일하다 내 자리로 다시 돌아오면 되겠지 하고 순진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 자리였다.(<문재인의 운명> 중에서)

실제 그의 생각은 ‘순진’했다. 건강을 핑계로 청와대를 두 차례 떠났지만 휴지기는 각각 3개월과 8개월에 불과했다. 결국 참여정부 5년 동안 수석으로 시작한 청와대 생활을 비서실장으로 마치기까지 무려 4년간 계속해야 했다.


▎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함께 청와대를 떠났던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9년여 만에 대통령이 돼 청와대로 돌아왔다.
2017년 5월 10일 제19대 대통령으로 9년여 만에 청와대로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경험은 어떤 형태로든 국정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참여정부 시즌 2’를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비슷한 가치를 공유했다곤 하나 사람이 다르고, 정치적 여건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만의 독자성과 차별성이 주목되는 이유다.

‘비슷하면서도 분명히 뭔가 다를 것 같은’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 정권 출범 100여 일 만에 비교, 분석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최고 권부(權府)인 청와대라는 잣대로 좀 좁혀서 들여다보면 차별성도 언뜻 엿보인다. 필자는 국제신문 기자로 2004년 9월부터 2006년 말까지 참여정부 절반에 가까운 기간 청와대를 취재했다. 당시 취재수첩에 나타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두 정권의 청와대를 들여다봤다.

열정과 냉정의 ‘차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7월 27일 기업인들과의 호프미팅 때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2006년 6월 21일 참여정부 청와대는 한 언론 보도에 대해 집중포화를 날렸다. <조선일보>는 이날 신문에 ‘북한 미사일 위기 등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노 대통령·부시 9개월간 전화 안 해’라고 보도했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겐 2주 전 전화를 걸어 북한이 로켓을 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는 워낙 자주 통화해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요즘 시사용어로 얘기하자면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의 우려를 전한 셈이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청와대는 먼저 ‘청와대 브리핑’이라는 서면 보도자료를 통해 반박했다. 여기서 말하는 청와대 브리핑은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 앞에서 직접 행하는 구두 브리핑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참여정부 청와대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청와대 브리핑이라는 코너를 마련, 주요 쟁점에 대한 정책 홍보는 물론 언론 보도에 대한 적극적 해명과 반박을 게재했다. 아울러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문건으로 출력해 청와대 기자실에 즉각 배포했다.

어쨌든 이날도 청와대 브리핑은 예의(銳意) 반박 보도문을 실었는데 표현 강도가 무척 셌다. 글을 쓴 이는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을 기획하고 실행,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그 양정철 말이다.

먼저 ‘나라 걱정하려면 제대로 하시오’라는 제목의 글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채널로 필요한 얘기를 모두 나누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국 대통령이 우방 정상과 전화통화를 오래 안 해서 두 나라 관계가 걱정이라는 기사를 쓴 외국 언론은 지금껏 접해본 적이 없다”며 “별 문제도 없는 우방관계를 별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빗나간 애국심”이라며 비난했다.

청와대의 반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날 오후 2시 청와대 대변인의 정례 구두 브리핑 첫 일성도 이 건이었다. 정태호 대변인(현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은 “관련 기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따지고 보면 최근 벌어진 코리아 패싱 논란은 11년 전 참여정부 시절 에피소드와 무척 닮은꼴이다. 먼저 상황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똑같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 대통령이 통화를 안한 사실을 언론이 지적하고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 야당이 가세하고 나선 것도 일치한다. 여기에다 공교롭게도 미국과 일본 정상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통화를 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대응도 똑같았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혀 달랐다. 물론 코리아 패싱을 적극 부인하고 나선 점은 같았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천양지차였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8월 2일 기자실을 찾아 코리아 패싱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윤 수석은 “대통령이 휴가를 갔기 때문에 전화를 안 해서 코리아 패싱이라고 말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 차원의 직접적 반박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과거 참여정부 청와대가 볼멘소리를 냈던 “나라 걱정 제대로 하라”거나 “빗나간 애국심” “기사 의도가 뭐냐”는 등의 감정적 언급은 일절 없었다. 과거 ‘청와대 브리핑’처럼 별도의 매체를 통한 언론 보도 반박도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청와대 안보실은 직접 행동을 통해 코리아 패싱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다. 8월 3일 밤 전격적으로 이뤄진 한·미·일 정상의 안보담당 참모 간 3자 화상통화가 바로 그것.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3국 간 긴밀한 공조를 계속해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코리아 패싱 논란에 대한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대응 방식은 이처럼 분명히 차별화된다.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열정과 냉정의 ‘차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참여정부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의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견고한 기득권 속에서 개혁을 하느라 집권 내내 너무 힘들었다. 무엇보다 중앙 언론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정권이 실패한다는 초조감도 있었다. 그래서 조그마한 비판에도 민감하게, 뜨겁게 반응하고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어 “반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민심의 지지가 여전히 높은 국정지지율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개인 미디어의 활성화로 특정 언론매체의 영향력도 제한적이다. 여기에다 과거 참여정부의 실패 경험이 차분한 대응으로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열정과 냉정의 ‘사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앞으로도 모든 사안에 대해 이토록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 나갈까. 꼭 그렇게만 볼 순 없을 것 같다.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똑같이 맞닥뜨린 부동산 가격 급등 문제가 참고 사례다.

참여정부 집권 초반부터 강세를 띠던 부동산 가격은 2004년 들어 급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야권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5년 1월 일정 기준 초과 토지와 주택 소유자에 대해 별도 누진세율을 적용해 부과하는 국세인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게 된다. 그래도 부동산 거품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청와대 브리핑에 ‘부동산, 이제 생각을 바꿉시다’라는 제목의 10회분 시리즈 글을 통해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공개 선포했다. 특히 당시 김병준 정책실장은 시리즈 기고문에서 복부인, 기획부동산업자, 주요 신문 등을 ‘부동산 정상화에 대한 조직적 공격세력’으로 지목 한 뒤 ‘공익적 시민단체’가 직접 ‘맞짱’에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집값 잡는 데 홍위병 동원하겠다는 말인가’라고 반발했다. 이에 ‘청와대 브리핑’은 “불량식품만 욕할 게 아니다. 불량재료로 만든 ‘불량기사’ 역시 시장과 소비자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고 피해를 주게 된다”고 비판했다. 부동산 투기 근절에 딴죽을 거는 세력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서슬 퍼런 의지가 절로 묻어난다.

문재인 정부 역시 부동산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집권 한 달여 만에 ‘6·19 대책’을 내놓았지만 약발이 안 먹히자 바로 핵폭탄급 투기억제책인 ‘8·2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노무현 정부 시즌2’ 대책으로 규정한 뒤 ‘수요·공급의 시장 원리 무시’를 이유로 실패를 예견했다.

이에 김수현 사회수석은 브리핑을 자처하며 강하게 맞받아쳤다. 그는 “어떤 경우든 새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 정부는 출범 석 달이 안 됐다”며 “정책 일관성이라는 점에서 최소 5년 동안 부동산 시장을 새로운 구조로 안착시키는 데 대해 확고하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진행할 시간이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코리아 패싱 논란 때와는 달리 정면으로 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김 수석은 참여정부 당시 언론이 지목한 바로 그 ‘도시빈민운동 출신 비서관’이다. 자신이 입안했던 종합부동산세가 이명박 정부 때 사실상 해체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김 수석의 절치부심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정면돌파의 동력이라는 게 다수의 관측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민생과 직결된 경제문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국정철학대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문재인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주변국과의 이해가 얽혀 있고, 국내적으로 이념 논란까지 가미된 안보문제는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차별화 전략을 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서양호 두문정치연구소장은 “과거 집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관록이 엿보인다”면서 “‘두 번 다시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문 대통령의 뜻에 따라 대선 이전부터 각종 사안별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도상연습까지 해왔기 때문에 차별화된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향후에도 사안에 따라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유연한 대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참여정부의 左 재인, 右 호철


▎1. 청와대의 숨은 실세로 꼽히는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그는 오랫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한 측근 중의 측근이다. / 2. 김수현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이 5월 22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4대강 정책감사가 시작된다고 공식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 수석은 현 정부의 대표적 실세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반이었던 2005년 8월 12일 이호철 제도개선비서관을 국정상황실장에 임명했다. 즉각 ‘좌(左) 재인, 우(右) 호철’이라는 말이 안팎에서 회자됐다. ‘왕수석’으로 불리던 문재인 민정수석이 이미 사정을 맡고 있는 터에 ‘86 참모 맏형’격인 이호철 실장마저 정보를 총괄하는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에선 ‘부산 갈매기’의 전면배치로 해석하는 시각도 제기됐다. 두 사람 모두 노 대통령의 부산 인권변호사 시절 동지라는 점에서 부산 인맥이 청와대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던 것이다.

당시 청와대에는 최인호 부대변인(현 민주당 의원), 송인배 행정관(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 대통령의 또 다른 부산 동지들도 중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동아일보>는 ‘부산갈매기 형제들에게 바란다’는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른바 집단사고(group thinking)의 위험인데, 서로 잘 아는데다 생각까지 같다 보면 논의 과정에서 직언과 상호 견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렵다.”

부산 인맥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독주할 처지는 아니었다. 어쩌면 인맥 파워로는 연세대 출신을 일컫는 ‘신촌 독수리’가 한 수 더 위였다. 김우식 비서실장(전 과학기술부총리), 윤태영 제1부속실장(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작성), 천호선 의전 비서관(전 정의당 대표), 윤후덕 기획조정비서관(현 민주당 의원), 김만수 대변인(현 부천시장) 등 연세대 동문이 청와대를 좌지우지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아니라 연세대의 이니셜 Y를 딴 ‘청Y대’라는 별칭이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참여정부 청와대가 부산과 연세대 인맥으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며’ 권력 쟁탈전을 벌인 것은 아니다. 부산 인맥의 투톱 격인 문재인 수석과 이호철 실장 모두 그런 쪽으론 관심이 없었다. 생리적으로 정치와 거리를 둬온 데다 당시 청와대 생활을 노무현 대통령의 강요에 따른 ‘차출’로 여겼던 탓이다. 신촌 독수리도 참여정부 이후 보여준 저마다의 차별화된 정치행보가 말해주듯 결속력은 거의 없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지연 또는 학연의 분류를 통해 특정 인맥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이 공직 진출 전 평생을 보낸 부산에서 다양한 인연을 쌓았던 인맥은 “거의 씨가 말랐다”는 게 부산 측근들의 볼멘소리다.

문 대통령의 ‘부산 평생지기’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국정 상황실장을 거쳐 임기 말 영전)이 진작 손사래를 치며 칩거한 여파가 자못 크다.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부산 막후실세로 적잖은 영향을 발휘했던 이호철 전 수석부터 서울에 안 가겠다고 하는데 감히 누가 명함을 내밀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역시 청와대 참모진 구성 때 첫 번째 원칙이 ‘1기에선 부산 배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정 대학 출신의 요직 독점도 거의 사라져 학맥을 통한 참모진 분류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3실장+α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첫 청와대 수석회의가 2003년 2월 26일 청와대 집현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유인태 정무수석,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문희상 비서실장, 노 대통령, 이정우 정책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김희상 국방보좌관, 반기문 외교보좌관, 권오규 정책수석, 이해성 홍보수석, 정찬용 인사보좌관.
그럼에도 참여정부 청와대의 ‘좌 재인, 우 호철’급에 버금가는 실세는 있다. 1번은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재선 의원 출신의 정치력, 뛰어난 친화력과 탁월한 조정 능력을 겸비한 51세의 젊은 임 실장이 청와대뿐 아니라 여권 내 해결사로 맹활약하면서 문재인 청와대의 소프트랜딩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설화(舌禍)로 토라진 국민의당을 찾아가 대신 머리를 숙이고 꽉 막힌 추경예산안 정국을 풀어내 “역시 임종석”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임종석 실장, 실세 맞지요. 그런데 장하성 정책실장도 그에 못지않은 실세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청와대 소식통의 전언이다. 깜짝 발탁 전까지 대통령과 전혀 인연이 없었던 장 실장. 하지만 대통령의 ‘소득주도 성장론’의 뒷받침은 물론 재벌개혁 기수의 동반자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호흡을 맞추며 ‘한국 자본주의’ 병폐 척결에 앞장서고 있다.

북핵 실무경험이 없어 일각의 우려와 반대를 샀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대통령의 신임을 업고 순항 중이다. 거듭되는 북한 미사일 도발 대처, 사드 갈등 조정, 한·미 정상회담 성공적 개최 등 ‘통일외교안보 컨트롤타워’로서 일단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실장급은 아니지만, 조국 민정수석도 주목되는 인물. “적폐청산과 검찰개혁 등 새 정부 개혁과제를 제대로 처리해낸다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차세대 주자’로 문 대통령이 강력히 밀 공산이 크다.” 또 다른 청와대 출입기자의 관측이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 소식통들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을 ‘숨은 실세’라고 공통적으로 꼽았다. 참여정부 막판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낸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정계 데뷔 후 줄곧 곁을 지킨 최측근이다. 의원 시절 보좌관을 거쳐 두 차례 대선에서 일정기획팀장과 선대위 상황실 부실장으로 각각 활약했다.

한 소식통은 “지난 대선 때 양정철 전 비서관이 이끌던 광흥창팀의 멤버였던 만큼 이른바 ‘3철(이호철·전해철·양정철)’이 떠난 문 대통령의 곁에 남은 유일한 복심”이라며 “비서관 직급 이상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6월 16일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이날 <중앙일보> 1면 보도 때문이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 의장이 사흘 전 당을 찾은 이병완 비서실장에게 같은 달 21일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 국회 연설과 관련,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하자 청와대가 아예 국회 연설 일정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열흘 전 지방선거 참패로 패닉 상태였던 여당이 민심과 동떨어진 노 대통령의 ‘오기(傲氣) 연설’ 가능성 탓에 이런 부탁을 했고, 이에 발끈한 청와대가 일정 취소라는 감정적 대응에 나섰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청와대 측은 이날 “김 의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기사의 껍데기를 둘러쓴 한 편의 그럴듯한 정치소설”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당·청 갈등이 감정적 단계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글”이라며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 청와대는 “당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등 아주 혼란스러운 가운데 배석자가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정정문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반박의 근거였던 김 의장 발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러자 ‘각 세우기’ ‘엇박자’ ‘갈등 심화’ 등의 제목을 단당·청 갈등 기사가 쏟아졌다. 참여정부 시절 불편한 당·청관계는 결국 임기 말 대통령의 탈당과 열린우리당 공중분해에 이어 정권 재창출 실패로 이어졌다.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당·청 관계 파탄이 정권 실패로 이어지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문재인 대통령. 당시의 아팠던 심경을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에 잘 기술해놓았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로 접어들자 민망한 일들이 벌어졌다. 우린 속수무책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아픈 건 여당 의원들이 보여준 이른바 대통령과의 차별화였다. 정부에 대한 지지가 외관상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차기 대선 전망은 어두워 보이니 참여정부나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자기 입지를 다져보려는 속셈이었다. 대통령은 분노하기도 했지만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 내내, 그리고 당선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 정부’다.” 참여정부 청와대 부대변인을 지낸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우리 헌정사에서 문 대통령만큼 청와대 참모로서 많은 경륜을 쌓고 취임한 대통령은 없다”면서 “과거 경험을 통해 청와대와 여당 간 소통과 협조가 국정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과 건강한 긴장관계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첫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했다. 오른쪽부터 장하성 정책실장,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조현옥 인사수석, 조국 민정수석.
그런데도 여당이 다소 겉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역시 당·청 갈등의 잠재된 불씨는 추미애 당대표의 정치적 몽니에 가까운 언행이다. 추 대표는 국민의당 증거조작 파문 때 안철수 전 후보와 박지원 전 대표에 대한 ‘머리 자르기’ 발언으로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렸다.

추가경정예산안 통과를 위해 국민의당 협조가 절실했던 청와대로선 ‘벙어리 냉가슴’만 끙끙 앓아야만 했다. 보다 못한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민의당에 찾아가 추 대표 대신 사과하는 것으로 정국의 물꼬를 텄다. 그러자 추 대표는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대표 오찬 회동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여당 대표가 막무가내로 대리 사과를 당하기 전에 대통령도 여당 대표와 소통해 달라.”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혁신비서관으로 근무한 허성무 경남대 초빙교수는 “오히려 당·청 간에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게 더 문제일 수 있다”면서 “적당한 갈등은 당·청 간 건강한 긴장관계를 만드는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인물은 발탁 때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전병헌 정무수석이다. 직속상관 격인 임종석 실장보다 선수(選數)도 하나 더 많은 3선에다 원내대표·최고위원 등 화려한 정치이력을 바탕으로 다소 삐걱거리는 당·청 소통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전 수석을 비롯해 한병도 정무비서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등 정무라인 모두를 이례적으로 전직 여당 의원들로만 보임한 것도 원만한 당·청 관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8월 17일로 취임 100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78%(한국갤럽)에 달한다. 파격적 소통 행보, 친근하고 소탈한 이미지, 전임 정부의 실패에 따른 기저효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의 풍부한 국정 경험, 과거 실패에서 체득한 노련미, 촛불민심의 시대정신에 걸맞은 개혁 어젠다 등이 어우러진 결과일 수 있다. 그 바탕에는 국정의 사령탑인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와 닮은 듯하면서도 분명히 다른’ 문재인 정부의 차별화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혔다는 말이다.

그러나 코리아 패싱 논란은 계속되는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기영 전 과학기술본부장의 낙마는 인사시스템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다 국방과 검찰을 비롯한 각종 개혁 과제도 산적해 있다. 아직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청출어람(靑出於藍)’을 말하기엔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jwhn2 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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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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