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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보고] 11월 열릴 중국 제19차 당대회 관전법 

시진핑, 장기집권 터전 닦는다 

베이징=예영준 중앙일보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포스트 시진핑’ 각광받던 쑨정차이, 범죄 혐의로 낙마…후춘화·천민얼에게 바통 넘기지 않고 ‘시 체제’ 연장할 수도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오는 11월 열릴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2017년 3월 5일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
딱 한 줄의 문자 속보, 한자(漢字) 글자수로는 단 21자에 불과한 긴급 뉴스가 토요일 오전의 평온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7월 15일 오전 9시가 약간 지났을 무렵, 족히 8억 명이 넘는 중국의 스마트폰 이용자에게 날아든 중국 공산당의 인사 발표 뉴스는 이랬다. “쑨정차이(孫政才) 동지는 더 이상 충칭시 당 위원회 서기와 상무위원, 위원을 겸직하지 않는다.”

뒤이어 “천민얼(陳敏爾) 동지가 그 자리를 맡는다”는 짤막한 문장이 덧붙여진 것 외에는 아무런 설명도 후속 뉴스도 없었다. 그럼에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중국의 권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정변(政變)’급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21글자의 인사 발표문 뒤에 응당 뒤따라야 할 4글자, 즉 ‘영유임용(另有任用)’이란 표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별도의 임용이 있을 것이란 뜻이다. 중국 공산당 간부를 다른 보직으로 승진 또는 수평 이동하기 위해 현직을 내려놓게 하는 인사발령의 뒤에 이 표현을 붙이는 게 관례다.

쑨의 실각은 인사 발표 9일 만인 7월 24일 중앙기율검사위가 중대한 기율 위반 혐의에 대해 정식 입건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함으로써 공식 확인됐다. 물론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그가 실각에 이르게 된 내막은 미궁 속에 있다.

부패 혐의가 발견됐으니 인사 처분과 함께 정식 조사를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최연소 국무원 부장(장관에 해당)과 최연소 정치국원 등 화려한 출세가도를 달려왔으며, 2022년에 국가주석이나 총리 자리를 바라볼 수 있는 ‘포스트 시진핑’의 선두주자로 꼽혀왔음을 감안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13억 중국인 중에 단 한 사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밖에 없다. 한국식으로 얘기하자면 현직 대통령이 자당(自黨) 소속의 최유력(最有力) 대권주자에게 범죄 혐의를 씌워 형사처벌은 물론 정치활동 자격을 영구 박탈한 조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 정변이 아니라면 달리 뭐라고 표현할 것인가.

2012년 집권 직후 “부패분자는 호랑이든 파리든 모두 때려잡겠다”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시 주석은 집권 만 5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그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어지간한 직위의 관리가 잡혀 갔다는 소식은 뉴스거리도 안 될 정도로 수많은 공산당 관리가 반(反)부패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하지만 그 서슬 퍼런 시진핑 체제에서도 현직 정치국원이 반부패 혐의로 물러난 일은 쑨정차이 이전에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정치국원은 13억 중국인 가운데 엘리트 집단인 8800만 명의 공산당원, 그중에서도 단 25명(상무위원 7명 포함)만 올라갈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그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권력의 정점인 상무위원을 지낸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법위 서기를 부패 혐의로 적발해 무기징역형은 내린 게 시진핑의 호랑이 사냥의 상징처럼 돼 있지만 현직이 아닌 전직에 대한 단죄였다.

어제의 권력자가 자고 나면 타도 대상으로 둔갑해 있던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이후 중국에서 현직 정치국원이 낙마한 사례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2006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이 천량위(陳良玉) 상하이 서기를 하루아침에 낙마시킴으로써 물러난 뒤에도 상왕 노릇을 하던 전임자 장쩌민(江澤民)의 세력을 견제한 게 대표적이다. 그보다 11년 전에는 상하이를 기반으로 총서기에 오른 장쩌민이 베이징을 기반으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던 천시퉁(陳希同)을 끌어내렸다.

이런 전례들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 역시 중난하이 권력투쟁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공산당의 권력 재편이 이뤄지는 제19차 당대회(11월 개최 유력)를 두어 달 남짓 남겨둔 시점이란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향후 5년간 이어질 시진핑 2기 체제와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포석이 충칭의 정변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7월 15일 인사 발표를 접하는 순간, 베이징의 외신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드디어 시즌이 시작됐다”는 반응을 보인 건 그런 이유에서다. 당대회를 앞두고 치열하게 펼쳐지는 물밑 권력투쟁이 표면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덩(鄧) 이후 5년마다 열어 인적쇄신 단행


▎중국중앙방송의 정치선전물 ‘개혁은 어디까지 진행되나’ 1회 시대의 물음 편에 나온 시진핑 주석. 위부터 18차 당대회 직후 총서기 취임 연설, 30대 초반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 시절 주민을 만나는 모습, 시진핑 주석의 저서에서 개혁을 언급한 부분.
이번 당대회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기에 앞서 우선 중국 공산당의 권력구조와 체계를 살펴보자. 중국 공산당은 당원 수만 8875만8000명(2016년 말 기준)을 헤아리는 거대 조직이다. 인민해방군을 포함한 각종 조직·기구 및 지방별 대표들이 5년마다 당대회를 열어 공산당 중앙위원을 선출한다.

중앙위원회는 200여 명으로 구성되는데 궐석에 대비해 그 비슷한 수의 후보 위원까지 선출해 둔다. 현재 중앙위원은 205명, 그 아래 후보 위원은 161명이다.

이들이 1년에 한 차례씩 모여 개최하는 회의가 바로 ‘3중전회’ ‘5중전회’란 식으로 약칭되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다. 중앙위원회는 205명의 중앙위원 중에서 25명의 정치국원을 선출한다. 평상시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 중앙위원회의 권한을 대행하는 조직이 정치국이다.

정치국은 다시 7명의 상무위원을 선출하는데, 그중 서열 1위가 바로 공산당 총서기가 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을 겸임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8800만 당원은 총서기를 정점으로 상무위원-정치국원-중앙위원-후보 위원-평당원으로 이뤄지는 완벽한 피라미드 조직을 형성한다.

1921년 창당된 중국 공산당이 지하 비밀조직이었을 때나 국민당과의 내전을 치르던 시기, 혹은 마오쩌둥(毛澤東)이란 절대적 카리스마로 당을 통치하던 시기엔 당대회가 열리는 간격이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마오 사후에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면서부터는 5년마다 한 차례씩 당대회를 열어 인적 쇄신을 단행하는 게 제도적으로 정착돼 왔다.

명문 규정은 없지만 지금까지의 관행에 따르면 당 총서기는 한 기를 연임해 10년마다 한 차례씩 뽑는다. 당대회 차수가 짝수일 때다. 올해 열리는 당대회는 19차 대회다. 따라서 총서기를 새로 뽑지 않는다. 이번에 새로 뽑는 것은 중앙위원회 후보 위원부터 정치국 상무위원까지다.

따라서 홀수 차수의 당대회는 짝수 차 당대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홀수 차수의 당대회가 주목을 받아 온 것은 5년 후 짝수 차 당대회에서의 총서기 교체에 대비한 후계자를 미리 정해두는 관행 때문이었다. 이번 19차 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도 바로 이 후계 구도에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마찬가지 경로를 거쳤다. 그가 총서기로 선출됨으로써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건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차기 최고지도자로 낙점된 건 그보다 5년 앞선 2007년 제17차 당대회에서였다. 17차 당대회는 후진타오(胡錦濤) 1기 체제를 마무리 짓고 2기 체제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었다.

당시 상하이 서기로 있던 시진핑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성 서기와 함께 50대 초반의 나이에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됐다. 중요한 건 서열이었다. 정치국원이나 중앙위원과 달리 상무위원은 서열이 있다. 새롭게 진용을 짠 상무위원 명단이 발표될 때 시진핑은 여섯 번째로 호명됐고, 리커창은 일곱 번째였다.

당시는 상무위원이 9명인 시절이었다. 이 가운데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7명은 모두 꽉 찬 나이 때문에 5년 후인 18차 당대회에서 물러날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18차 당대회 이후에도 계속 상무위원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은 나이가 젊은, 시진핑과 리커창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서열이 앞선 시진핑이 차기 최고지도자, 즉 총서기 겸 국가주석으로 내정되고 리커창은 차기 총리로 내정된 것이다. 시진핑은 5년 후인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예정대로 서열 1위의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됐고, 이듬해 3월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출됐다.

그로부터 다시 5년, 시진핑 1기를 마감하고 2기 체제로 넘어가는 19차 당대회가 올가을로 다가왔다. 관례대로라면 시진핑의 뒤를 이을 50대 나이의 후계자가 상무위원으로 발탁돼야 한다. 당초 쑨정차이가 그 후보감 중 한 명이었다. 그와 동갑인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가 함께 지난 18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 바로 아래 단계인 정치국원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쑨정차이가 실각함으로써 남은 한 사람인 후춘화가 상무위원 진입에 성공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후춘화는 시진핑의 후계자로 굳어지는 것일까.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후계자 확정 미룰 가능성도


▎1. 3월 5일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쑨정차이 충칭 서기(앞줄)의 뒤로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지나가고 있다. / 2. 천민얼 구이저우 당서기가 2016년 4월 한국을 찾아 ‘구이저우 문화 투자 설명회’를 열고 있다. / 3. 후춘화 광둥성 당서기.
우선 현직 정치국원뿐 아니라 그 아래 레벨인 중앙위원에서 곧바로 상무위원으로 올라가 후춘화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 시진핑과 리커창부터가 그랬다. 시와 리 두 사람도 앞서 말한 대로 17차 당대회(2007년)에서 각각 서열 6위와 7위의 상무위원으로 발탁될 때의 직급은 정치국원이 아닌 그 아래 중앙위원이었다. 쉽게 말해 ‘2계급 특진’을 하면서 차기 지도자로 낙점된 것이다.

현재 중앙위원 중에서도 상무위원으로 ‘2계급 특진’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표주자는 천민얼이다. 낙마한 쑨정차이의 후임 충칭시 서기로 임명된 천민얼이다. 충칭을 포함한 4대 직할시 서기는 정치국원급 인사가 맡는 게 관례다. 구이저우(貴州)성 서기이던 그가 당대회 직전 충칭성 서기로 옮겨감으로써 정치국원은 떼어 놓은 당상이고, 상무위원으로의 직행 승진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천민얼에 대한 시진핑의 신임이 두텁기 때문이다. 천민얼은 공직 입문 이래 줄곧 저장(浙江)성에서만 근무해 온 지방 관료였다. 2003년 시진핑이 저장성 서기로 부임했을 때 그는 저장성 선전부장이었다. 그는 현지에 기반이 없던 시 주석을 위해 ‘즈장신어(之江新語)’란 이름의 고정 칼럼 연재를 구상했다.

그가 사장을 지낸 저장성 기관지 <저장일보>에 매주 한 편씩 칼럼을 연재해 신임 서기의 철학을 전파한다는 계획이었다. 시 주석은 2003년 2월부터 4년여 동안 저장혁신(浙江革新)을 의미하는 ‘저신(哲欣)’이란 필명으로 매주 한 편씩 칼럼을 연재했다. 초고는 선전부장 천민얼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칼럼 232편을 묶은 단행본은 시 주석 집권 이후 재출판 돼 중국 당 간부들의 필독서가 됐다. 천민얼은 2012년 1월 구이저우성장에 임명됐고, 이후 구이저우 서기를 거쳐 충칭 서기에 이르렀다.

시 주석의 배려 아래 차기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시주석은 저장 서기를 5년 역임하고 직할시인 상하이 서기를 6개월 수행하던 중 상무위원으로 발탁됐다. 구이저우 5년에 충칭 서기 경력까지 쌓게 된 천이 시 주석의 전례를 따르지 말란 법이 없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만약 후춘화 혼자 상무위원이 되고 천은 정치국원에 머무르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차기 지도자는 후춘화로 굳어지는 것일까. 혹은 후춘화와 천민얼이 모두 상무위원으로 발탁된다고 하자. 10년 전 시진핑-리커창의 경우처럼 서열이 앞선 사람이 차기 총서기로, 서열이 뒤인 사람이 차기 총리로 낙점되는 것일까.

둘 모두 답은 ‘노(No)’에 가깝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계자를 내정하는 순간 권력 누수, 즉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막강한 1인 권력체제를 다져온 시 주석이 후계자를 미리 결정함으로써 레임덕을 자초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복심’ 왕치산, 칠상팔하(七上八下) 불문율 깨나


▎역대 중국의 최고 권력자들의 사진. 왼쪽부터 마오쩌둥·화궈펑·후진타오·시진핑. / 사진:연합뉴스
그보다 시 주석이 2022년에도 물러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할 것이란 관측, 따라서 이번 당대회에선 후계자를 확정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무성하다. 설령 10년 임기 관행을 지켜 2022년에 권력을 물려준다고 해도 후계자가 누구인지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끊임없이 충성 경쟁을 유도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어느 경우가 되건 이번 당대회에서는 ‘포스트 시진핑’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시진핑이 2022년에도 권력을 내놓지 않을 것이란 예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왕치산(王岐山) 기율위 서기의 거취다. 올해 69세인 그가 이번 당대회를 끝으로 물러나느냐 여부가 이번 당대회의 둘째 관전 포인트다. 왕치산은 지난 5년 간 시진핑 체제를 떠받친 최대 공로자였다. 당내 공식 서열은 6위이지만 실제 파워로는 서열 2위 리커창 총리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대 중국에선 황제가 하사한 검을 상방보검(尙方寶劍)이라 불렀다. 이 검을 하사받은 장수나 신하에겐 선참후주(先斬後奏)라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누구든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황제에게 미리 고하지 않고 이 검으로 처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왕치산이 지휘하는 기율위는 시진핑 체제의 상방보검이나 마찬가지다.

기율위는 공산당의 방침에 반하거나 비리 혐의가 있는 당원을 조사하는 사정·감찰 조직이다. 중국 공직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당원들에게는 경찰이나 검찰보다 더 무서운 게 기율위다.

왕 서기는 ‘순시조’라 불리는 감찰반을 조직해 중앙 관청이나 당 기구, 지방의 당정 조직으로 내려 보내 부패 혐의자를 잡아낸다. 상무위원 역임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을 잡아들여 무기징역에 처한 것을 비롯해 시진핑 집권 4년여 만에 115만 명의 공직자를 적발했다. 쑨정차이를 적발한 것도 기율위다.

시진핑과 왕치산의 인연은 4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혁명 기간 중인 1969년 산시(陝西)성 산간 오지에서 하방(下放)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이래 평생을 교류해왔다.

문제는 왕치산이 올해 69세여서 원칙대로라면 올가을 당대회를 끝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엔 당대회 시점을 기준으로 67세 이하는 유임하고 68세 이상은 은퇴한다는 칠상팔하(七上八下) 규칙이 있다. 장쩌민 집권기에 이 불문율이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하지만 시진핑은 왕치산을 계속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왕치산만큼 능력과 신망을 겸비한 데다 시 주석 자신이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나오는 게 왕치산의 유임설이다. 그에게 칠상팔하 예외를 적용해 상무위원에 유임시키고 계속해서 요직을 맡긴다는 설이다. 최근에는 2018년 신설되는 국가감찰위원회 수장을 맡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혹은 리커창 총리를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보내고 왕치산을 총리로 임명할 것이란 설도 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총지휘한 금융전문가 출신이며, 2004년에는 베이징 대리시장으로 긴급 투입돼 당시 유행하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퇴치하는 등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 이 때문에 생전의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리커창보다 왕치산이 더 총리직에 어울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칠상팔하의 파괴는 왕치산의 일로만 끝나지 않는다.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69세가 되는 시진핑 주석 역시 권력을 연장하려면 칠상팔하 원칙을 깨뜨려야 한다. 왕치산의 상무위원 유임은 시진핑이 유임하는 데 선례가 될 수 있다. 왕치산의 거취가 이번 당대회의 주요 관전 포인트인 이유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과 동급?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2007년 10월 22일 열린 제17차 당대회에서 새롭게 구성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을 소개하고 있다.
시진핑의 집권 연장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당장(黨章) 개정설이다. 시 주석이 지난 5년간 펼쳐온 통치철학을 ‘시진핑 사상’이란 이름으로 집대성해 이를 공산당 지도이념의 하나로 당장 명기한다는 얘기다.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공산당 당헌에 해당하는 당장은 중국에서 헌법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이란 나라를 세운 이후 당의 영도 아래 국가가 운영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중국 공산당 당장의 초반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과 과학적 발전관을 행동지침으로 삼는다.” 공산당의 지도이념을 차례로 나열하고 있는데 이 중 뒷부분에 등장하는 ‘3개 대표론’은 장쩌민 전 주석, 과학적 발전관은 후진타오 전 주석이 각각 제창한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이름만 명기돼 있지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이름은 생략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나열 순서는 시대순인 동시에 중요도의 순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진핑 사상’이 당장 명기될 경우 시 주석의 위상이 일약 신(新)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과 동급 반열에 오르는 셈이다.

앞서 지난해 6중전회 때는 ‘핵심’이란 호칭을 명확하게 규정했다. 그 전까지 공산당의 공식 문건에서 ‘시진핑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이라 표현하던 것을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으로 바꿨다. 전임자인 후진타오는 10년 내내 ‘핵심’이라 불리지 못했다. 따라서 시 주석에게 핵심 칭호를 부여한 것은 장쩌민 전 주석과 동급의 위상을 갖게 된 것으로 평가됐다.

그로부터 1년 만에 ‘시진핑 사상’을 공식화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그런 움직임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공산당 중앙조직부가 펴내는 월간지 <당건연구(黨建硏究)> 7월호에는 ‘시진핑 사상’을 거론하는 논문이 처음 게재됐다.

이 논문은 “18차 당대회 이래의 창조적 이론은 시진핑 사상이라 불릴 만하다”며 “이 시대의 가장 생생한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평가했다. 그러자 차이치(蔡奇) 베이징 당서기가 당 기관지 <인민일보> 8월 7일자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시진핑의 중요 발언록과 국정통치의 신이념·신사상·신전략을 묶어 “시진핑 총서기의 중요 사상”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시진핑 총서기 중요 사상으로 뇌를 무장하자”고 강조했다.

장젠궈(蔣建國)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 겸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임이 8월 3일 외신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한 발언도 심상치 않다. 그는 “시진핑 주석의 정치 신이념·신사상·신 전략은 이미 완벽하고 과학적인 이론으로 실천적 체계와 사상적 체계가 완성됐다”며 “이 같은 기초하에 더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압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들이 “시진핑 사상이 당장에 포함된다는 말이냐”고 묻자 그는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시대에 맞춰 이론적 창의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시진핑 사상이 당장에 명기될 것이라는 예측을 부인하지 않은 답변이다.

이 같은 애드벌룬 띄우는 데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의 위상이 덩샤오핑을 뛰어넘어 마오쩌둥과 동렬에 오를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제 집권 만 5년이 되는 시 주석에겐 마오나 덩이 이룬 것과 같은 업적이 없다. 마오는 누구나 인정하는 신중국의 창업자다. 덩샤오핑은 중국을 오랜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준 인물이다. 시진핑이 아무리 강력한 반부패 드라이브로 묵은 적폐를 개혁하고 있다고 한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단계다. 그가 내건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은 앞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이지 이미 성취한 업적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마오쩌둥과 동급의 사상이란 용어 대신 ‘시진핑 이념’이나 ‘시진핑 정신’이란 용어로 절충점을 찾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낙착되건 시진핑의 이름이 명기될 경우, 그의 위상은 마오와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반열에 오르게 된다. 시진핑의 집권 연장론에 힘과 명분이 실리게 된다는 얘기다.

또 한 가지 관전 포인트는 권력구조의 변화 여부다. 일각에선 당 주석제도를 부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당 주석에 오른 사람은 마오쩌둥이 유일하다.

마오 사후 덩샤오핑은 당 주석제도를 폐지하고 집단지도 체제를 채택했다. 10년간 계속된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과도한 1인 권력 집중에서 비롯됐다는 반성에서 내린 결단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경위를 감안하면 아무리 시진핑의 권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당 주석 제도의 부활은 그리 간단하게 실현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석제도 부활 여부도 주목 대상

시진핑 주석이 정치국 상무위원의 숫자를 지금의 7명에서 5명으로 줄일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상무위원의 수가 줄어들수록 개개인의 권한이 더 강해지고 그 정점에 있는 총서기에게 권력 집중이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공산당 내 계파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어서 결론을 섣불리 점칠 수 없다.

아무튼 이런 권력구조의 얼개가 결정된 연후에야 시진핑 2기 체제를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부, 즉 25명의 정치국원과 거기에서 선출되는 상무위원들의 면면이 결정된다.

항간에는 19차 당대회에서 선출될 상무위원을 예측한 명단들이 여러 버전(version)으로 나돌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런 예상은 모두 추측이자 억측일 뿐이다. 실제로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결과를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는 게 중난하이 정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국 정치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다. 쑨정차이의 실각을 미리 예측한 언론이나 분석가가 아무도 없었던 게 그 실례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시진핑 2기야말로 명실상부한 ‘시진핑의 시대’가 될 것이란 점이다. 시진핑 1기 체제의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 주석의 사람으로 불릴 만한 사람은 왕치산 기율위 서기가 유일했다. 나머지는 5년 전의 실권자인 후진타오와 상왕(上王) 역할을 하던 장쩌민 전 주석이 심어둔 사람들이었다. 이번 당대회를 기점으로 그들은 모두 물러나게 된다. 그 대신 시자쥔(習家軍), 즉 시진핑의 측근 인사들이 대거 전면에 배치되면서 본격적인 시진핑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 베이징=예영준 중앙일보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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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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