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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이슈] 1세대 프랜차이즈 커피왕들의 明暗 

외형에 집착하다 큰 그림 망쳤다 

박준호 서울경제 기자 violator@sedaily.com
강훈·김선권·김도균 등 커피 시장 선도했던 토종 브랜드 선구자들… 최근 신사업 부진, 실적 악화에 발목 잡혀 힘든 시기 보내고 있어

▎국내 1세대 커피왕들은 고(故) 강훈 전 망고식스 대표와 인연이 깊다. 그런 그들이 최근 들어 실적 악화 등으로 하나같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왼쪽 사진부터 망고식스 대표, 김선권 전 카페베네 회장, 김도균 탐앤탐스 대표.
지난 7월 24일 강훈 KH컴퍼니 대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사 직원 A씨는 여러 번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강 대표의 자택으로 찾아갔다. 얼마 전 서울 청담동 아파트를 정리한 뒤 반포동에 10여 평짜리 원룸을 얻어 이사해 월세를 내며 살던 터였다.

집으로 들어간 A씨가 발견한 건 목을 맨 채 숨져 있던 강 대표의 시신이었다. A씨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강 대표의 자택을 찾았을 때 이미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때 커피전문점 ‘카페베네’를 가맹점 수 기준으로 글로벌 브랜드 스타벅스를 이길 정도로 키워내며 성공 신화를 쓴 ‘커피왕’의 마지막이었다.

강 대표는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디저트 카페 ‘망고식스’가 부진에 빠지면서 가맹점 수가 줄었고 금전적으로도 어려움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KH컴퍼니를 지난 7월 중순께, KJ마케팅을 지난해 인수했지만 심각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였다.

결국 강 대표는 숨지기 전날인 7월 23일 지인에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나 없이도 잘살았으면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문장이었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스스로 등졌다.

강 대표의 비극적 결말을 두고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경영인 1세대들의 우울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타 마케팅에 흥하고, 스타 마케팅에 무너진 강훈


▎강훈 전 대표가 야심작으로 내놓았던 망고식스. 매장 내부가 시원하고 깔끔하다는 평을 듣는다.
국내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경영인 1세대들은 강 대표와 어떻게든 인연이 엮여 있다. 김도균 탐앤탐스 대표는 그와 동업으로 ‘할리스커피’를 열었고, 김선권 전 회장은 강 대표를 ‘카페베네’에 영입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강 대표와 카페베네의 성공을 이끈 김선권 전 회장은 신사업에 발목이 잡히며 경영권을 사모투자펀드(PEF)에 넘겨야 했다.

김도균 대표는 올해 들어 실적 악화와 커피값 꼼수 인상 논란, 가맹점 보험료 착복 의혹 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급속히 성장하며 한때 국내 커피전문점 시장을 호령했지만 급격한 추락에는 날개가 없었다.

1992년 신세계백화점에 공채로 입사한 강 대표가 커피와 인연을 맺은 건 1997년. 당시 신세계가 스타벅스를 국내에 들여오기 위해 구성한 태스크포스(TF)에 들어가면서다. 그해 8월부터 석 달간 미국 시애틀의 스타벅스 본사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린 건 론칭의 무기 연기였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여파였다. 몇 달 후 그는 퇴직금과 대출금을 합해 1500만원만 들고 신세계에서 퇴사한다. 그를 떠나게 만든 스타벅스는 약 1년이 지난 1999년 7월 한국에 1호점을 낸다.

강 대표는 1998년에 현 탐앤탐스 대표인 김도균 씨와 동업 형태로 국내 최초의 카페 프랜차이즈인 할리스커피를 창업하며 커피 사업에 뛰어든다.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한 커피전문점은 처음이었다.

할리스커피는 인스턴트커피와 캔커피 위주의 커피 시장에서 정통 원두커피로 반향을 일으켰다. 초기 서울 강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출점(出店)하며, 지역을 차츰 넓히는 동시에 30평 이상 대형매장만 여는 전략을 구사하고 고급 이미지를 표방했다.

그렇게 5년여 만에 가맹점을 50개로 늘리며 당시 스타벅스에 대항할 만한 국내 대표적 커피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강 대표는 전문적 경영을 통해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할리스커피를 2003년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현 CJ E&M)에 매각한다.

강 대표는 2008년 카페베네에 영입돼 사장을 맡는다. 이후 최단 기간 가맹점 수 500개 돌파 등의 기록을 남기며 ‘커피왕’으로 불리게 된다. 성공 요인은 스타 마케팅이었다. 그는 당시 정훈탁 싸이더스 대표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커피와 엔터테인먼트의 접목을 시도한다.

우선 서울 압구정동에 카페 내부를 지나야 싸이더스 사무실과 연기학원에 들어갈 수 있는 본점을 열었다. 싸이더스 소속 연예인 100명에게는 하루에 4만원까지 쓸 수 있는 유효기간 1년짜리 VIP카드를 발급한다. 그 결과 연예인을 많이 볼 수 있는 카페로 소문이 났고 6개월 만에 하루 매출 300만원을 달성하며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비롯한 각종 드라마·영화 등에 간접광고(PPL)를 제공했고 TV·신문·전광판·라디오 등 할 수 있는 모든 매체에 광고를 집중하는 등 적극적 마케팅을 폈다. 강 대표는 저서 <카페베네 이야기>에서 “집중적 광고활동이 업계 1위로 오를 수 있게 한 마케팅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압구정 본점 오픈 초기 3개월간 집중적으로 광고를 내보내고 이후에는 인지도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광고를 유지하는 전략을 썼다.

그러던 강 대표는 2011년 다시 독립한다. KH컴퍼니를 창업하고 그해 3월 디저트 카페 ‘망고식스’를 론칭했다. 카페베네에서 성공한 마케팅을 그대로 구사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등 각종 드라마에 PPL을 제공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NOA엔터테인먼트와 제휴해 당시 소속 배우인 공유를 전속모델로 썼다. 매장에 연예인 공간을 꾸미고 공동으로 쿠키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카페 시장이 포화상태였다. 스타 마케팅도 ‘약발’이 받지 않았다. 결국 수년간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매장 수가 계속 줄었고 매출도 떨어졌다. KH컴퍼니는 2013년만 해도 282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해 106억원으로 급감했다. 영업손실도 2015년 10억원, 지난해 11억원에 달했다.

그는 망고식스의 가맹점 수를 품질관리가 가능한 수준인 300개 선에서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KH컴퍼니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할 무렵 망고식스의 가맹점 수는 100여 개에 그쳤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강 대표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선권, ‘탱크 추진력’은 양날의 칼


‘커피왕’이라는 별명은 강 대표의 몫이었지만, 커피왕으로 만들어준 사람은 그를 카페베네로 데려온 김선권 전 카페베네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카페베네를 창업한 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마케팅이 필요했는데 이에 적합한 인물로 데려온 사람이 강 대표였다.

김선권 전 회장은 ‘추풍령감자탕’을 운영하는 행복추풍령의 대표이사였다. 그러던 중 2005년 캐나다를 여행하다 현지 커피·도넛 프랜차이즈인 팀홀튼이 스타벅스·던킨도너츠 등을 제치고 가장 인기가 좋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에 한국에서도 스타벅스에 버금가는 토종 커피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게 카페베네다.

카페베네는 2000년대의 마지막과 2010년대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성공 가도를 달린다. 성공 요인으로는 당시 ‘커피가 아닌 카페 문화를 판다’는 철학 아래 카페를 대화하고 휴식하거나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시도가 꼽힌다. 이를 위해 카페에서 공부 혹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콘센트를 설치하고 오랜 시간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편하도록 의자를 바꿨다. 이 영향으로 주요 커피 전문점들은 좌석마다 콘센트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카페에서 공부나 업무를 보고 담소를 나누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특히 폭발적으로 가맹점 수를 늘리며 전국 어디를 가도 카페베네가 있다는 이미지를 심은 건 김 전 회장의 공이 컸다고 업계 안팎에서는 평가한다. 창립 5년 만인 2013년 8월에 국내외 총 가맹점 수를 1000개까지 늘리며 외형을 키웠다. 해외에서도 한때 중국에서만 250여 개의 가맹점을 냈고, 미국에서도 2012년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직영점을 여는 등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이어갔다.

그때의 성공은 ‘탱크 추진력’ 덕분이었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김 전 회장은 생각에 확신이 들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카페베네에서 일한 적이 있는 업계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사업과 관련된 뭔가를 결정하면 일사천리로 진행시킬 정도로 추진력이 강했다”며 “새벽 2시쯤 전화해 어떤 사업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하면 직원들은 그날 아침 출근 전까지 안을 짜서 보고하고, 김 전 회장은 최종 승인을 내렸다. 주변에서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지만 당시 성공은 그런 추진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회장의 추진력은 ‘양날의 칼’이었다. 그는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외식·제과점 등 새로운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시작했다. 하지만 외식 브랜드 ‘블랙스미스’와 제과점 ‘마인츠돔’은 해당 업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선정되면서 매장을 늘릴 수 없게 됐다. 결국 손실만 입고 철수해야 했다.

2012년 시작한 드러그스토어 ‘디셈버24’는 1년도 안 돼 사업을 접었다. 같은 브랜드의 매장은 일정 거리 이내 출점할 수 없도록 한 동반성장위원회의 규정을 피하기 위한 저가형 커피 브랜드 ‘바리스텔라’는 시작도 못했다. 기존 카페베네 가맹점주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이에 매출액은 2012년 2207억원에서 2015년 1210억원으로 줄었고, 2014년부터 영업적자로 돌아섰다. 2015년 2·4분기에는 부채비율이 2636%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고, 김 전 회장은 그해 말 PEF K3에쿼티파트너스에 경영권을 넘기고 회사를 떠났다.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했더라면…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문을 연 카페베네.
고인이 된 강훈 대표와 김선권 전 회장의 실패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업계 안팎에서는 지적한다. 회사의 성장에는 탁월한 성과를 보였지만 내실을 다지는 데 소홀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성공신화를 쓴 카페베네를 키운 건 마케팅과 공격적 출점을 통한 외형 확대 전략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스타 마케팅과 적극적 장소 협찬으로 인지도를 높인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내실을 채우지 못한 점이었다. 카페베네는 음료·베이커리 등 제품의 품질과 수익성을 높이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았던 탓에 2013년 이후 가맹점 출점 속도가 둔화하자 바로 실적 악화로 돌아왔다. 카페베네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2010년대 초반에도 신규 가맹점의 인테리어 비용이 매출의 50%를 웃도는 반면, 본업인 커피 판매에서는 손해를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맹점을 계속 늘려야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였던 셈이다.

결정적으로 커피 맛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카페베네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강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페베네 매장이 500개를 넘어가니 좋은 재료, 생두(生豆)를 볶는 로스팅 기술, 매장 직원의 커피 추출법에 대해 관리가 안 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카페베네를 떠난 후 한 인터뷰라서 파장이 적지 않았다. 내부고발 같은 효과였다.

강 대표의 망고식스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망고식스가 초반에 성장한 건 드라마 PPL로 홍보에 성공한 덕이지 음료의 맛 등 품질 덕분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그 결과 가맹점 전체의 품질을 관리하는 데 실패했고 고객의 충성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좀 더 전문적으로 나아갔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창업자 자신 말고 다른 이들을 믿지 못하면서 경영권을 향한 집착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메인 브랜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른 업종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만들어 손쉽게 상황을 타개하려 했던 점도 실책으로 꼽힌다. 심지어는 같은 업종에서 가격대만 달리한 프랜차이즈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프랜차이즈가 순조롭게 성장하면 겉보기에는 큰 결함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뜻대로 성장하지 못할 때다. 브랜드 하나가 휘청거리자 함께 운영하던 다른 프랜차이즈도 흔들렸다. 아니면 메인 브랜드의 몰락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김 전 회장의 경우 커피전문점 시장이 급격히 포화상태에 다다르며 카페베네의 가맹점 수를 늘리는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고 개별 점포의 수익성은 떨어졌다. 이를 돌파하려고 ‘블랙스미스’ ‘마인츠돔’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로 사업 범위를 넓혔다가 동반성장위원회 규정에 묶여 출점이 어려워지자 자금이 여기에 묶였다. 결과는 몰락의 도미노였다.

강 대표 역시 망고식스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지난해 4월 되레 생과일주스 전문점 ‘쥬스식스’, 저가형 커피전문점 ‘커피식스’를 운영하는 KJ마케팅을 인수한다. 새로운 브랜드로 가맹점을 모아보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세 업체에서 파는 커피와 음료들은 모두 비슷했다. ‘제 살 깎기’의 우려가 일었고 시너지는 없었다. 더구나 직원들이 잇따라 퇴사하는 등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와중에도 올해 초 빙수 기반의 디저트전문점 ‘디센트’를 론칭하며 가맹점을 모집하기도 했다.

또 다른 커피왕 김도균의 ‘다른 길’


▎김도균 대표가 할리스커피에 이어 내놓은 탐앤탐스.
또 다른 커피전문점 경영인 1세대인 김도균 탐앤탐스 대표는 다소 다른 길을 걷는다. 그는 할리스커피 창업 1년 만인 1999년에 ‘탐앤탐스’라는 상표를 등록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그는 이전에 인테리어 사업과 다른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얻은 노하우로 할리스커피를 공동창업한다. 창업 당시 자금의 상당부분을 김도균 대표가 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할리스커피와 함께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 경영진과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판단에 1년여 만에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2001년 탐앤탐스를 개인사업자 형태로 창업한다. 당시 많은 돈을 투자했던 할리스커피를 1년여 만에 떠나는 바람에 김 대표는 고시원 생활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창업을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커피전문점 시장이 자리 잡음에 따라 가맹사업을 시작했고, 2004년에는 주식회사로 전환한다. 탐앤탐스는 2009년 100번째 점포를 열며 꾸준히 성장한다.

탐앤탐스는 가맹점 수를 크게 늘리지 않는 대신 직영점의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본사의 수익성을 키우고자 했다. 지난 7월 말 기준 탐앤탐스의 직영점은 54곳으로 전체 매장 446개 중 13.7%를 차지한다.

탐앤탐스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독립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가맹점주와 신메뉴 등을 두고도 마찰이 벌어지는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싶어서 직원들 중에서 직영점주를 뽑기도 했다.”

그는 커피전문점 시장에서 탐앤탐스의 세 가지 차별성을 제시했다. 영업 면에서는 24시간 운영과 대규모의 흡연실, 제품 측면에서는 ‘프레즐’이다. 우선 탐앤탐스는 커피전문점 중 24시간 영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 중 하나로, 지금도 탐앤탐스 하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밤샘 영업을 떠올린다. 또한 2014년 정부 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흡연실을 넓게 만들어서 담배를 피우는 고객들을 공략했다. 전체 매장의 절반 정도를 흡연실로 운영한 매장도 있었다.

제품 중에서는 프레즐·허니버터브레드 등 베이커리 메뉴의 비중이 높았다. 이들 제품의 마진율이 음료보다 높은 편이라 매출에 적지 않게 기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매장에 오븐을 놓고 직접 조리해 판매한 덕분에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탐앤탐스 측은 평가한다.

하지만 점차 수익성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탐앤탐스는 2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매출은 869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영업이익은 23억원으로 전년 대비 46.2% 줄었다. 당기순손실을 낸 건 2007년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여러 구설에 오른 것도 김도균 대표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그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2003년부터 최근까지 가맹점주들로부터 직접노무비의 10% 가량인 약 18억6000만원을 산재보험료로 받고도 실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동부지검은 증거불충분으로 김 대표를 무혐의 처분했지만 고소인들이 항고하면서 재수사가 진행 중이다. 앞서 올해 초에는 커피값을 최대 12% 인상하면서도 원두 납품가를 1㎏당 최대 62% 낮췄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력 제품인 프레즐 유통 과정에 김 대표가 사실상 지배하는 업체를 중간에 끼워 넣어 마진을 빼돌렸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그들의 마지막 페이지는 어떻게 장식될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카페골목.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커피 애호가들로 붐빈다.
김선권 전 회장은 현재 수제버거 브랜드 ‘토니버거’의 대표를 맡아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2015년 서울 청담동에 첫 번째 직영매장을 연 이래 약 1년 반 만에 매장 수를 70개로 늘렸다. 수제버거 시장이 고급 제품 위주인 것에 맞서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제품을 표방하고 있다.

방송인 홍석천 씨 등 유명 연예인을 내세우는 스타마케팅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점포 확장과 마케팅에 치중하던 모습은 과거 카페베네가 성장하던 모습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한때는 스타벅스·커피빈 등 글로벌 브랜드에 맞선 자랑스러운 토종 커피전문점 경영인 1세대로 꼽힌 이들이다. 칭찬에 취해서였을까? 영광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한 사람은 고인이 됐고, 한 사람은 한때 성공했던 방식을 답습한다. 또 한 사람은 처음 커피업계에 뛰어든 방식으로 꾸준히 살아남았지만 앞길이 순탄하지 못하다.

‘커피왕으로 불리던 사람들’의 진짜 마지막에는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한 사람은 영영 그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 박준호 서울경제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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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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