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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해양강국으로 가는 신(新)항로, 마리나(marina) 

대한민국 3면 바다 레저와 휴양의 메카 된다 

글·사진 강태우 중앙일보플러스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해수부, 요트·모터보트·크루즈선 항구이자 편의시설·문화공간 갖춘 마리나 항만 개발 박차··· 복합휴양시설로 경제 성장, 고용 창출 원동력 기대

▎하늘에서 내려다본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전곡항 마리나. 2009년 개장한 이곳은 레저선박 191척(육상 53척, 해상 138척)이 정박할 수 있는 계류장과 크레인, 무인등대 등을 갖추고 있다.
석양으로 붉게 물든 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낭만을 즐긴다. 에메랄드빛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자유를 만끽한다. 해외 유명 휴양지에서나 봤을 법한 광경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생활로 다가왔다. 수상레저 활동은 그동안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소수의 사람이 누리는 호사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레저선박을 정박할 수 있는 마리나(Marina)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가기 편리해지고, 이용료가 낮아지면서 모든 국민이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마리나는 스포츠·레크리에이션용 요트, 모터보트, 크루즈선 등이 머무르는 항구를 비롯해 선양(船揚)장, 수상·육상 보관시설, 방파제, 주차장, 편의시설 등 모든 시설을 갖춘 넓은 의미의 항만을 뜻한다.

8월 9일 오후 인천시 영종도에 있는 왕산마리나. 서울에서 파우치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양희돈(42) 씨가 수상 계류장에서 보트 출항 준비를 하고 있다. 양씨는 주말에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서울과 가까운 데다 주변에 섬이 많아 낚시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해서다. 그는 “배를 바다에 띄우고 올리는 선양장이나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리나가 생겨 언제든지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레저선박 소유주들은 그동안 배를 정박하거나 보관할 장소가 적어 애를 먹었다. 배를 띄우기 위해 마을의 항구를 사용하다 어민과의 마찰도 잦았다. 지난 6월 개장한 왕산마리나는 레저선박 300척이 정박할 수 있는 규모로 한진그룹이 1700억원을 들여 조성했다. 민간이 투자한 마리나 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수상·육상 계류장, 선양장, 배를 들어 올리는 크레인, 선박 주유소 등 입항·출항·보관을 위한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요트·보트를 타는 해양스포츠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출항 준비를 마친 양희돈(오른쪽) 씨가 직원과 함께 보트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왕산레저개발 임종범 차장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요트경기장으로 사용한 후 시설을 보완해 일반인에게 개방했다”며 “레저선박이 크게 늘어나면서 계류장을 빌려 배를 대는 장소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 마리나는 개장 한 달 만에 레저선박 60여 척이 들어와 계류장에 정박하고 있다. 외부 선박의 선양장 이용 횟수도 월 100건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마리나가 레저와 휴양을 아우르는 복합 해양레저시설로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미래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자리 창출, 관광업 활성화, 지역경제 발전 같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마리나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미국·유럽·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자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 레저선박 급증, 수용시설 태부족


▎마리나에 정박한 요트·보트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뉴질랜드는 마리나를 친수(親水) 공간 정비사업과 연계해 제조업체 109개, 정비업체 32개, 전문인력 양성학교 등을 끌어들여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마리나산업 시장 규모는 11억 달러, 고용 인원은 1만 명에 이른다. 프랑스는 정부가 방파제 같은 기반시설과 공유수면 매립 공사를 시행해 6000여 척이 정박할 수 있는 유럽 최대 거점형 마리나를 조성, 민간에 분양했다. 호주는 330척 수용 가능한 거점형 마리나를 조성하면서 주변에 산업단지를 만들어 기업 400여 개를 유치해 일자리 4500여 개를 창출한 덕분에 7200억원(한화)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

세계 레저선박 수는 2900만 척, 시장 규모는 500억 달러에 이른다. 마리나 수는 2만3000여 개로 이 중 90%가 북미와 유럽에 있다. 마리나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최근 아시아 국가들도 마리나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은 칭다오(1466척), 샤먼(1450척), 산야(600척)에 대규모 마리나를 개발 중이다. 싱가포르는 부지 무상 임대, 방파제 구축 등을 통해 민간투자 사업을 파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반면 국내 마리나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에 따르면 국내 레저선박 수는 2015년 1만 5172척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요트·보트 조종면허 신규 취득자 수는 1만5059명으로 전년보다 10% 이상 늘었다. 해양 레저선박과 이용객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33개 마리나가 운영 중인데 계류 용량은 2331척에 불과하다. 국내 레저 선박의 15.4%만 수용 가능한 규모다. 이마저도 기존 어항을 활용하는 데다 소규모 형태로 개발하다 보니 좁고 부대시설은 열악하다. 2020년에는 레저선박 수가 2만 척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마리나 개발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정부가 직접 마리나 개발에 나선 이유다.

정부는 2013년부터 전국 6개 지역을 선정해 거점형 마리나 개발에 착수했다. 레저선박과 장비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거점형 마리나로 지정된 곳은 안산 방아머리, 당진 왜목, 여수 웅천, 창원 명동, 부산 운촌, 울진 후포 등이다. 거점형 마리나에는 레저선박이 300척 이상 머무를 수 있는 계류장과 다양한 관광·레저시설이 들어선다. 지자체나 민간기업이 투자해 사업을 시행하고, 국가는 최대 300억원을 지원해 방파제 등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거점형 마리나를 세관·출입국관리·검역(CIQ) 처리 기능을 갖춘 해양관광의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고용 창출 8730명, 부가가치 창출 6303억원, 생산유발 효과 1조2383억원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해수부 정성기 항만지역발전과장은 “국내 마리나 개발이 사업성 불투명, 리스크 부담 등으로 민간 참여가 저조해 정부 주도의 선도적 투자가 필요하다”며 “마리나를 요트·보트 계류뿐 아니라 복합휴양시설로 개발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호수 마리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


내수면 마리나 개발도 추진된다. 내수면 마리나는 바다가 아닌 강이나 호수, 저수지 등에서 요트·보트 등을 탈 수 있는 기반시설을 말한다. 현재 국내 레저선박 중 3분의 1은 강·호수 같은 내수면에 등록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내수면 마리나 시설은 거의 없다. 서울 여의도의 서울마리나와 경기도 김포의 아라마리나 두 곳 정도에 불과하다. 내수면 마리나에선 요트·보트뿐 아니라 카약이나 수상스키 같은 다양한 해양레저 활동이 가능하다. 파도와 바람 등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해수면 마리나와 달리 강·호수의 마리나는 규모는 작지만 해수면 마리나에 비해 안전하고, 건설비가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 장기화로 고용절벽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내수면 마리나 개발이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요트 대회의 하나인 ‘아메리카스컵’에 참가한 김동영 팀코리아 대표는 “내수면 마리나 개발은 경제 규모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는 마리나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저비용 고효율 성과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수부는 그동안 외국 사례들을 벤치마킹해 국내 강·호수 마리나 개발 유형을 ▷도심 강변 친수공간과 스포츠 체험 기능을 살린 도시레저형 ▷호수 주변 호텔을 포함한 전원 리조트형 ▷거주 개념 마을계류형 등 세 가지로 구분했다.

도시레저형 마리나는 도심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을 활용해 시민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리조트형 마리나는 호텔, 콘도, 펜션, 자연체험 관광 등 단체와 가족 단위 이용시설로 개발할 예정이다. 해수부 정성기 과장은 “내수면 마리나는 방파제처럼 해수면 마리나에 필요한 시설을 추가하지 않아도 돼 적은 투자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최근 지자체도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내수면 마리나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 글·사진 강태우 중앙일보플러스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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