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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순기 현대요트 대표 

“삶의 수준 높여야 소득수준도 높아지죠” 

글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요트 문화 활성화 위해 제조 중심 버리고 차터링(대여) 서비스로 탈바꿈… 규제완화와 중과세 폐지 부분은 과제로 남아

▎한국 해양레저산업을 이끌어 온 도순기 현대요트 대표는 “강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요트도 타고, 식사도 하는 여유로운 수상레저 문화가 확산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일단 타 보시죠.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잖아요?” ‘요팅(yachting)’의 장점을 묻자 도순기(48) 현대요트 대표는 대형 요트인 ‘블랙캣(black cat)’ 승선을 권했다. 서울 반포한강공원에 있는 ‘더리버’ 현대요트장을 블랙캣이 미끄러지듯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8월 11일 입추가 막 지나서인지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이 시원하다. 블랙캣은 46피트 카타마란(쌍동형) 대형 요트로 두 개의 선체를 연결해 놓은 듯한 외형에 선실에는 테이블과 작은 부엌, 침실이 있다. 야외 데크(갑판)에 올라서니 탁 트인 강 주변으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뻥 뚫린 요트 한가운데에는 그물망이 촘촘히 쳐져 있는데 그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물살이 상쾌함을 준다. 그물 위의 간이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적막감이라니!

“제가 말씀드리려던 ‘요팅’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옆에서 도순기 대표가 말을 이었다. 동작대교를 지나치면서 남산타워 전경을 바라볼 때는 머릿속의 잡념들이 씻겨 나가는 느낌이다. 서울의 강과 하늘은 온통 낭만으로 채색돼 있다. “요트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요. 성공·여유·자유·도전·열정 등이요.”

‘더리버’ 현대요트 선착장이 있는 반포한강공원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라운지, 컨벤션홀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재단장이 한창이다. 9월 오픈 예정이란다. 도 대표는 “전 세계에서 경제 수준이 11위인 한국의 요트 보유 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꼴찌다”라고 말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국민들이 일상에서 삶의 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는 여가 문화가 확산되지 못했어요. 우리나라도 요팅 라이프와 같은 여유로운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서비스가 더 많아져야 해요.”

현대요트는 국내 요트회사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국내 해양레저문화를 선도해 왔다. 35년에 걸친 한국 해양레저산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뿌리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75년 설립했던 ‘경일요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1982년에 경일요트가 현대정공의 사업부로 합병되면서 사세는 위축됐다. 현대정공의 요트사업부는 결국 여러 악재를 만나 요트 사업을 접었다. 그러던 중 2000년에 현대그룹이 ‘현대라이프보트’라는 구명정 제조 전문회사를 만들면서 요트사업의 불씨를 되살렸다.

도 대표가 요트 사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현대라이프보트 경영기획실장을 맡고 있던 때였다. 2008년 현대라이프보트가 자회사로 현대요트를 설립했고, 그에게 운영 책임을 맡긴 것이다. “한동안 맥이 끊겼던 요트 사업의 바통을 이어받아 선배들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보자고 생각했죠. 현대요트는 조선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수출효자 상품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 4위까지 오른 현대자동차의 뒤를 잇겠다는 꿈을 꾸었다.” 2009년엔 국내 최초로 건조된 럭셔리 파워요트 ‘ASAN 42’를 선보였다.

요트 사업을 맡은 그의 포부는 컸지만 현실에서의 장벽은 만만치 않았다. 요트 세계는 조선 사업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각종 항해·전자 장비를 비롯해 선실 내 주거공간을 위한 인테리어 등 기술적·문화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것이다. 디자인을 하고 제작(건조)하는 기술자들이 레저 문화에 익숙지 않은 것도 한계였다. 경험하지 않은 문화를 구현하고 고객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도 대표는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다”고 돌이켰다.

레저문화 패러다임 바꿀 요트 문화


▎부엌, 침실, 야외 바 등 부대시설을 갖춘 25인승 중대형 카타마란(쌍동형) 요트 ‘블랙캣’. / 사진제공·현대요트
도 대표는 위기 타개책으로 5년 전부터 현대요트에서 제조 부분을 축소하는 대신에 차터링(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소수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요트 문화의 장벽을 낮추자는 시도였다. 누구나 요트 세계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누려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현대요트는 독일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차별화된 차터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도순기 대표는 국내 요트산업의 미래와 관련해 “수년 내에 급성장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포털 사이트에 ‘요트’라고 검색하면 한 페이지가 전부일 정도로 생소했다”며 “마리나가 더 완성도 있게 갖춰지면 요트 등 한국의 레저문화 패러다임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 대표는 요트 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백방으로 뛴다. 현재 전국적으로 운영되는 마리나는 모두 33곳. 도 대표는 “이용해 봐야 알게 된다”며 이들 마리나 시설을 적극 홍보한다. 격주로 나오는 온라인 웹진 <요팅 홀릭(yachting holic)>을 발행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리더십 요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도 대표는 “어릴 때부터 해양레저 문화를 접해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가라지만 해양인재 육성에는 매우 소홀했다”고 꼬집는다.

최근 들어 정부도 해양레저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힘을 보탠다. 도 대표는 “개발 전엔 시골 어항 수준이었는데 마리나 조성 이후 고급 어항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며 “인프라 확충과 규제 완화가 이뤄져 수상레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규제나 과세 부분에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는 “3억원에 달하는 레저선박 중과세와 요트 차터링 서비스에 대한 보험료가 과중하다”며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를 더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한국형’ 수상레저 문화가 더욱 확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무조건 해양레저 선진국들을 벤치마킹하기보다 바다의 조건, 계절, 접근성에 따라 한국에 걸맞은 마리나 시설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수면 마리나(수변레저공간)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수면 마리나는 바다가 아닌 강이나 호수, 저수지 등에서 요트·보트 등을 탈 수 있는 기반시설을 말한다. 바다보다 비교적 안전하고 건설비도 적게 든다. 도 대표는 “한강만 봐도 접근성이 좋아 퇴근 후에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시설 활용도도 높다”고 말했다. 그는 내수면 마리나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개발 관련 지침들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트 문화는 국내 수상레저산업을 선도해나갈 미래산업 입니다. 돈을 모으고 나중에 요트 문화를 즐기겠다는 건 편견이에요. 소득 3만 달러 시대는 요트 문화가 정착됐을 때 비로소 이뤄질 것입니다.”

- 글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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