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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남도 정원에는 배롱나무가 있다 

뜨거운 여름날에 핀 가장 화려한 붉은 꽃 

이대흠 시인
담양 명옥헌에서 장흥 고영완 가옥까지 이어진 여정…묵은 것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것이 움튼다

정치의 이전투구(泥田鬪狗)에서 벗어나려고 남쪽으로 향했던 선비들이 있었다. 적벽 뒤로 물러나 물로 울타리를 치고 산꼭대기에 거처를 마련한 이들이다. 이들의 기억이 머무는 곳에는 그늘도 무게를 가진 듯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꽃말이 수다스러움과 웅변이라는 배롱나무는 그래서 역설적이었다.


▎명옥헌은 조선 중엽 오희도가 살던 곳으로, 아들 오이정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가꿔놨다.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명옥헌의 전경.
남도의 여름은 배롱나무의 계절이다. 정원마다 배롱나무가 있고, 고택에도 어김없이 배롱나무가 있다. 뜨거움의 절정에서 절정의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남도 정원의 상징이다. 이열치열이라고 해야 할까. 땡볕에 맞서 꽃을 쏘아대는 배롱나무를 바라보면 어지간한 더위도 참을 만해진다. 용접기로 지진 부위처럼 빨갛게 달아오르는 배롱나무 꽃. 해가 뜨거울수록 배롱나무의 꽃은 더욱 힘차게 피어난다. 해의 뜨거움이 사랑이라면 배롱나무 꽃은 황홀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길가의 어린 배롱나무들은 진즉에 꽃을 피웠다. 어린 나무는 일찍 꽃을 피우고, 늙은 나무는 한참 후에 핀다. 봄의 매화도 그렇고 여름의 배롱나무도 그렇다. 늙은 나무의 꽃은 늦게 피고 일찍 진다. 꽃잎의 두께도 다르다. 어린 나무의 꽃잎은 두툼하고, 늙은 나무의 꽃잎은 얇다. 어린 나무의 꽃 향은 진하고, 늙은 나무의 꽃 향기는 연하다.


▎물염정 기둥이 힘을 바짝 준 채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겠다는 선비들의 고집스러움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어린 나무의 꽃 향기는 서툴고 거친 반면 나이 든 나무의 꽃 향기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틈이 없다. 담양의 명옥헌과 화순의 물염정. 그리고 장흥의 고영완 가옥의 배롱나무를 다 본다면 배롱나무 여행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길가의 어린 배롱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으니 산술적으로 길가의 꽃들은 두어 달 후면 질 것이다. 그러나 명옥헌 백일홍은 이제야 피기 시작했으니 석 달도 더 넘게 피어 있겠다. 하지만 나이 든 나무가 많은 명옥헌의 백일홍이 백일 동안 피어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매화의 경우 늙은 매화는 늦게 펴서 일찍 진다.

전남도가 남도문화르네상스 시대를 위해 올해 선정한 주제는 ‘정원과 종가와 음식’이다. 있는 것을 어떻게 알리고 더욱 의미 있게 할 것인가가 과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래된 것을 어설피 개발하기보다는 있는 것 자체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명옥헌에서 꽃으로 울다


▎연못을 감싼 둑은 지상이고, 연못 가운데 섬은 천상이다. 조상들은 연못 하나를 꾸밀 때도 이상세계를 꿈꿨다. 명옥헌 앞 원림 연못.
묵은 나무에 새 꽃이 피듯 묵은 것 속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것이 발견된다. 아니 태어난다. 고목에 새 꽃이 피었다. 꽃은 나무의 구애이고, 나무의 말이다. 꽃피는 때의 나무는 모두 사랑으로 들떠 있다. 오직 사랑한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무라고 해야 한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사랑을 가늠하지만 꽃은 내부 조건, 즉 상대 자체를 중요시 여긴다.

꽃이 피었다. 꽃으로 웃고, 꽃으로 운다. 꽃으로 사는 것은 오로지 자기의 정서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꽃은 역사를 모르고 꽃은 시를 모른다. 역사나 시 따위는 꽃이 되지 못한 자들의 몸부림이다. 꽃은 일념으로 자기자신의 최선을 피우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꽃은 혼자 있어서 충분히 아름답다. 외따로 있어도 환하고, 어울려 피어도 주눅 들지 않는다. 꽃에게는 꽃만 있다.

명옥헌은 몇 십 년 전에 왔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0년대 초에 태풍이 와서 상당수의 배롱나무가 쓰러졌다. 거기에 새 나무를 심었는데 그것들도 제법 자라서 나름대로의 자태를 만들고 있다. 명옥헌은 그 어느 곳보다 배롱나무 고목이 많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황지우 시인의 작업실이 근처에 있었다. 배롱나무에 둘러싸인 그 집을 황 시인의 후배인 김명조 조각가가 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른 이의 소유로 바뀐 듯하다.

마을 전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찾아오는 사람도 꽤 많다. 20년여 전에 왔을 때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시골마을이었는데 지금은 관광지가 다 됐다. 정자 마루에 누워 있는 사람도 몇 있고, 간단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젊은이보다는 중년을 넘긴 사람이 많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기 위해 웃고, 꽃처럼 웃고, 꽃 아래에서 웃고, 사람들은 즐거워 보인다.

땡볕 아래에서의 사랑은 지독한 사랑이다. 배롱나무는 해가 뜨거울수록 더욱 힘차게 살아나고,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을 한다. 염천 아래에 서니 생각마저 녹아내리는 것 같다.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도 지극히 사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배롱나무는 이 더위를 뚫고 가장 환한 꽃을 피우고 사랑을 한다.

배롱나무는 한여름 논바닥에 엎드려 피를 뽑고 있는 농부 같다. 남들은 나무 그늘에서 시간을 희롱할 때 햇볕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밀짚모자 눌러 쓰고 논바닥을 쓰윽쓰윽 훑어가는 늙은 농부. 배롱나무가 부귀를 상징한다는 것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워대는 저 부지런함 때문일 것이다.

흔히 양반집에 많이 심었다는 배롱나무는 이름도 다양하다. 목백일홍이라고도 하고, 가지 한 끝에만 살짝 손을 대도 온몸이 흔들리는 것이 간지럼 잘 타는 여자 같대서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이 지역 방언으로는 간지막나무다. 간지럼과 성감이 일치한다고 하니 배롱나무는 성감이 뛰어난 나무일지도 모르겠다. 한자어로는 파양수(怕癢樹)라고 하니 뜻이 통한다.

명옥헌 배롱나무는 연못을 감싸고 있다. 연못은 사각이고, 연못 가운데는 원형의 섬 하나 있다. 연못을 감싼 둑은 지상이고, 연못 가운데 섬은 천상이다. 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이상세계를 두고 그것을 그리워할 줄 아는 우리 조상의 관념세계가 신선하다. 물을 건너면 바로 천상세계지만 함부로 건너지 않고 바라본다. 몸으로 건넌다고 해서 그곳에 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상이라는 것은 곁에 두고도 그리워하는 것이다.

명옥헌에 여러 번 왔지만 명옥헌을 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많은 편견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기에 본디의 그것을 보는 데는 장애가 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 마음대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곤 하였다. 하지만 어떤 관점이나 지식이 결국은 내 눈을 가린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풍경 하나 보는 것도 수월하지가 않다. 무언가를 볼 때마다 나는 어떤 편견에 싸여 있지는 않은지 의심한다.

명옥헌(鳴玉軒)의 명 자는 울 명(鳴)자를 쓴다. 위쪽 연못에서 아래쪽 연못으로 물이 흐를 때 옥이 구르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의미다. 물빛 또한 수은처럼 빛난다. 명옥헌은 조선 중엽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가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정원을 만들었다. 정자 앞 연못 주변에는 배롱나무를 심었고, 정자 뒤는 산에 은근히 기댔으며, 특이한 것은 정자보다 높은 곳에 연못이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정자를 오른쪽으로 두고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조그만 바위에 ‘명옥헌 계축(鳴玉軒 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썼다고 한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 편액 중 ‘삼고(三顧)’라는 게 있는데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희도를 중용하기 위해 멀리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조는 반정(反正)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 다녔는데 이때 만난 선비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홍진(紅塵)이 쌓여 적벽(赤壁)이 되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의 ‘화순 적벽’(전라남도 기념물 60호)은 조선 10경으로 꼽혔을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화순 적벽. / 사진제공·연합뉴스
명옥헌에서 물염정으로 가는 길에는 가로수로 배롱나무를 심어놓은 곳이 많다. 아직 어린 나무의 꽃은 활짝 피어 있다. 머지않아 배롱나무 가로수 길이 명물이 될 것 같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이지만 배롱나무를 찾아다니는 길은 과거로 향한 곳이 많아서 그늘이 많고 서늘하다. 몇 개의 적벽을 지나 물염정에 이른다. 명옥헌은 산 아래쪽에 위치한 반면 물염정은 얕은 야산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물염(勿染)은 물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세속의 것에 물들지 않는다는 뜻을 품고 있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고고하고, 둘레를 물 울타리로 둘렀으니 어느 것도 침범하기는 어렵겠다. 신라인 고운 최치원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옳고 그름 가리는 소리 들릴까 항상 두려워
일부러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렀네


물염(勿染)이라 이름 지은 이는 고운의 시를 알았을 것만 같다. 고운의 시를 다시 읽어본다. 물을 둘러 시비를 가리는 소리를 가린 경지였으니 최치원이 죽어서 신선이 되었으리라는 설화가 생겼을 것이다. 산에 든 것도 모자라 물을 둘러서 그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게 하였다. 행여 옳다 그르다 다투는 소리가 근처에 왔다가도 그 물에 다 씻길 것이다. 그러하니 물로 가린 산속나라는 오로지 산과 물소리만을 국민으로 두었을 것이다. 아니 물소리는 국경일 터이니 산만 남는다. 산만 홀로 국민인 나라이므로 아무런 다툼이 있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공간을 특정 지명이나 지형으로만 한정 짓는 것은 고상하지 않다. 이 문장은 자기 내면에 가야산 하나 두고 오직 자기 안으로 갈 수 있는 경지로 독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 안의 산 위에 물염정 하나 짓고 산 둘레를 물 울타리로 두른다. 세속은 땡볕 속이지만 이미 세속은 내 안에 있지 않다. 밖에 있는 것에 휘둘린 것이 내 마음이었으니 마음만 씻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염정 아래로 흐르는 물은 창랑천이고, 이 하천은 동복 호로 흘러든다. 창랑천에는 물염적벽·창랑적벽·망미적벽 등이 있다. 여름인데도 적벽에는 단풍이 들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물염(勿染)하고 싶었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버린 세속의 껍데기가 묻어 적벽은 저리 붉어졌을까. 물 건너편의 적벽은 물을 건너오지는 못하고 자꾸 제 그림자로 수면에 투신한다.

정자의 가운데 기둥이 눈에 띈다. 배롱나무 기둥이다. 다른 곳에도 배롱나무 기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좁은 내 식견으로는 물염정 말고는 그런 예가 없다. 정자를 재건할 때 마을사람들이 아꼈던 나무를 베어 썼다고 하니 기둥 하나에 모든 마을사람의 마음도 들어 있는 셈이다.

정자 아래쪽에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김병연의 시비와 동상이 있다. 김병연은 자신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을 꾸짖는 시를 써서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였으나 후에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았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하지만 20세였던 김병연이 자신의 할아버지 이름조차 몰랐을 수는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이 내용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불덩이 같은 배롱나무꽃은 방랑객 김삿갓의 심장 속 같았으리라. 그이가 말년에 이곳을 자주 찾았다니 그이가 찾을 때마다 적벽의 바위는 더욱 붉어졌으리라.

적벽 붉은 색보다 정자의 단청이 더 붉다. 이 정자는 조선 중종과 명종 때 성균관 전적과 구례·풍기군수를 지낸 물염 송정순이 세상을 개탄하여 운둔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한때는 세상을 개혁하려다 실패하고 화순 능주로 유배된 정암 조광조가 죽기 직전 이십여 일 동안 이 근처의 화순 적벽에 머물며 한을 달래기도 하였다. 또한 조광조와 함께 기묘사화 때 화순 동복에 유배된 신재 최산두가 이곳을 ‘적벽’이라 이름하고 후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물염정 적벽에는 꾀꼬리 소리도 스며 있다


▎고영완은 고향마을을 가꿀 목적으로 연못을 만들고 ‘송백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연못에 배롱나무 꽃잎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군데군데 심어진 배롱나무에 꽃이 끓고 있다. 배롱나무 꽃말이 수다스러움과 웅변이라더니 실감이 난다. 땡볕 아래 저리 꽃으로 짖으니 웅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평평한 적벽은 거대한 캔버스다. 볼 때마다 놀라운 그림이지만 여전히 미완성인 그림이다. 바람 몇 톨, 노을 몇 되를 들이부어 오늘도 부지런한 시간이 그릴 것이다.

오래전에 썼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별을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달아나는 시간을 눅인/ 청태전을 마신다” (이대흠 졸시 ‘천관’ 전문)

물염정에서 장흥까지 가는 길은 멀다. 직선상으로는 40㎞ 안팎이지만 돌아서 가는 구불구불한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70㎞ 이상을 가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지독한 폭염 속의 여행인데도 함께 한 아내는 노래를 부른다. 나도 노래를 따라 부른다. 아내가 폭소를 터뜨린다. 나는 노래를 유독 못한다. 박자도 맞지 않고, 음의 높낮이도 엉망이라 한다. 나는 어디에서 틀렸는지 모른 채로 노래를 부른다. 보성을 지나니 금세 장흥이다. 고영완 가옥은 장흥 읍내에서 가까운 평화마을에 있다.

배롱나무 여행의 절정이 따로 있다면 고영완 가옥 앞 송백정의 배롱나무 꽃이라 하겠다. 몇 백 년은 되었음직한 고목들이 저마다 화관을 썼다. 활짝 핀 꽃들이 우렁우렁하다. 어느새 논배미의 나락들도 꽃을 틔울 태세다.

연못은 송백정이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섬에 200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정자의 이름에 답하고 있다. 연못 주위는 온통 배롱나무 고목들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의 작은 개들이 한참 짖어댄 후에 늙고 큰 개가 ‘컹’하며 한 번 짖듯이 송백정 주위의 고목들은 늦게 꽃을 피운다. 꽃사태다. 하늘 향해 타오르던 꽃잎이 연못의 수면 위로 떨어져 압화(押花)처럼 펼쳐져 있다.

뜨거운 해보다 더 붉게 타오를 것 같은 마음을 물 위에 수놓으니 그 마음이 더 붉어진 것만 같다. 꽃 구경에 두 가지 재미가 있는데 꽃보다 사람이 더 많은 곳에 가서 사람 구경 하는 재미와 사람이 드문 곳에 가서 꽃에만 집중하는 재미가 그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것이지만 나는 후자 쪽을 더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꽃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꽃과 나의 소통을 꿈꾸려면 아무래도 인적이 드문 장소로의 꽃구경이 좋다.

하지만 고영완 가옥의 배롱나무도 꽤나 알려져서 잠깐 머무르는 동안에도 몇 무리가 다녀간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꽃이 되어 꽃을 본다. 꽃 앞에 서면 닫고 있던 자신을 열게 된다. 아니 꽃 앞에서는 누구나 무장해제가 되지 않을까. 쿠데타 군의 탱크에 꽃을 놓았던 이국 여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꽃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군인들의 모습과 탱크의 진행을 멈추고 꽃을 받아들인 수뇌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그녀들은 탱크의 포신을 꽃으로 녹인 셈이다. 전쟁도 꽃을 쏘고, 꽃씨를 뿌려주는 전쟁이라면 아름다울 것만 같다.

고택에서는 그늘도 두껍다


▎고택에는 돌계단 한 층, 문지방 한 턱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계단 옆 아무렇게 자란 나무가 푸근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무계(霧溪) 고영완(高永完)은 장흥 현대사의 주요 인물로 좌·우익을 넘나들며 추앙받았다. 격정의 한국 현대사에서 꽃을 주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그리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해 투옥됐고,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 장흥지부장, 미군정 때는 초대 장흥군수를 지냈다. 광복 후에는 교육사업에도 관심을 둬 장흥공립중학교에 논 100마지기를 쾌척하기도 했다. 또한 평화마을 앞쪽 진입로 부지도 기부했으며, 마을을 아름답게 가꿀 목적으로 ‘송백정’이라는 정원을 만들기도 하였다.

집의 왼쪽은 북향(北向)이라 습기가 많고 그늘져 있는 시간이 길다. 왕대나무가 우거진 길로 굽어 들어가면 높직한 곳에 가옥이 있다. ‘왕대밭에 왕대가 난다’는 말은 말쟁이들의 말이 아니다. 왕대밭이 아니고는 왕대가 나오지 않는 게 사실이다. 대는 뿌리와 비슷한 굵기의 줄기를 내기에 왕대는 왕대밭에서만 나온다. 큰 인물 아래에서 큰 인물이 나온다는 것을 가리키는 격언이지만 고영완 가옥 좌우를 둘러 싼 왕대밭을 보면 어디선가 큰 인물이 자라고 있을 것만 같다.

보통 때는 문이 닫혀 있는데 오늘은 열려 있다.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석류나무는 백 년이 넘어 보인다. 이미 죽은 굵은 가지 옆에 새 가지가 자라고 있다. 무언가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을 것만 같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비석의 이수(螭首)로 보이는 돌덩이가 몇 개 놓여 있고, 집은 마당보다 한참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집도 늙었고, 정원도 늙었다. 늙은이 목젖에 묻은 햇살처럼 마당에 몇 점 햇살이 흩어져 있다. 오래된 가옥엔 그늘이 깊다. 그늘의 지층을 파본다면 이 땅의 역사가 덩어리째 묻혀 있을 것만 같다.

일본풍을 한 담장과 석등은 절반쯤 썩거나 망가져 있다. 대숲에는 여전히 내가 모르는 전설이 있을 것만 같다. 가장 오래된 것은 숲이고, 가장 최근의 것은 집이다. 이 집이 있기 전에 이 집터는 수많은 생물의 집이었을 것이다. 한 수저의 흙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이 있는지를 말했던 한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정현종의 시 ‘한 숟가락의 흙’ 일부)

두툼한 그늘에 나의 숨을 풀어놓는다. 이러한 작은 행위도 역사일 것이니 걸음걸이 하나도 자유롭지 않다. 얼마나 많은 이의 기쁨과 슬픔과 노여움과 즐거움이 이 그늘에 겹으로 쌓였을까. 그늘 장막이 무거워 잠시 자리에 앉는다. 여름 한낮의 열기도 이곳에서는 순해졌다. 한바탕 뱁새 소리가 쏟아진다. 새소리에 쪼인 곳마다 꽃이 피어난다. 백 년 전, 오백 년 전의 소리가 스며서 검어졌을 것만 같은 오래된 나무뿌리에 오래 눈길을 둔다. 이끼 뿌리가 물을 품듯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꽃잎에 날리는 새소리처럼 마음이 가볍다.

이대흠 -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4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귀가 서럽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물 속의 불> 등을 펴냈다. 1999년 <작가세계> 소설부문 신인상, 2010년 제7회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을 받았다. 안도현 등과 함께 결성한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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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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