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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창조의 본고장’ 바우하우스를 가다(18)] 독일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종탑만 남은 ‘깨진 교회’ 평화위한 경고비로 남다 

사진 윤광준
74년에 불과한 ‘독일제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다. 그들 자신의 호전성 때문일까. 주변국이 그들을 투쟁하게 만들었던 걸까. 전쟁 관련 ‘경고비’로 ‘기억의 터’를 마련한 것은 독일인이 깨달은 역사의 교훈 때문이다.
#1. 도시는 기억이다 - 베를린의 경우

베를린 노이쾰른(Neuköln) 지역에는 카를 마르크스 슈트라세(Karl-Marx-Straße)가 있다. 거리 이름이 ‘카를 마르크스’다. 유학 시절 그 지역에 살던 친구는 매번 걱정이 많았다. 한국의 안기부에서 자신의 독일 주소를 보고 ‘간첩’으로 의심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서베를린에 카를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다. ‘동백림(東伯林) 간첩단 사건’의 기억이 아직 분명할 때였으니 그리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베를린의 거리 이름은 이렇게 역사적 인물과 관계 있는 곳이 많다.

도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한다. 단지 거리 이름만이 아니다. 동상과 같은 기념물들이 곳곳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념물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느냐를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역사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문화적 기억(kulturelles Gedächtnis)’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한 개인이 과거의 경험을 선택적으로 기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것처럼 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택적으로 과거의 사건을 집단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전제는 ‘기억이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사전에서 ‘객관적’의 반대말은 ‘주관적’이지만, 인문학에서 ‘객관적’의 반대말은 ‘상호주관적’, 혹은 ‘담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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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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