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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20)] ‘잔치하는 인간’ 호모 페스투스(Homo Festus) 

“맥주는 나라를 지탱하는 생명이다”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BC 9500년 구석기 신전 ‘궤베클리 테베’에서 맥주 제조 흔적 발견··· 돌기둥은 인류 문명 이전의 문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영적 자궁에 해당해

▎터키에서 발견 된 신전 궤베클리 테베는 거대한 돌기둥들이 원형을 그린 유적지다. 영국의 스톤헨지보다도 7000년 앞선 거석문화다. 농업이 있기 전부터 있던 최초의 순례지로 알려지며 ‘농업혁명’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 사진제공·배철현
우리는 최근까지 농업의 발명이 도시, 문자, 예술, 그리고 종교를 탄생시킨 기반이라고 믿어왔다. 물질이 정신을 이끌지, 정신이 물질을 이끌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최근 기원전 9500년에 건축됐다고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터키 궤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에서 신전이 발견됐다. 지금 봐도 압도적이고 정교한 구조를 띤 신전이다. 이 발굴은 지금까지 인류 문화와 문명사의 ‘진리’로 여겨졌던 가정을 수정하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마치 천동설을 믿던 사람들의 지동설 발견과 같다.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세계관을 수정해야 하는 중세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인류는 농업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기술과 문화의 상징인 그릇조차 만들 능력이 없었다. 고고학자들은 조심스럽게, 인류문명에 대한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궤베클리 테페에 사냥-채집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거주지로부터 떠나 일정한 기간에 이곳에 순례(巡禮)를 와 정교한 의례와 잔치를 벌였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의례를 지내고 잔치를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교환했고 ‘농업’이라는 새로운 생존방식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종교가 농업이란 개념을 상상하는 기반이 되고, 농업은 다시 도시와 문자라는 문명을 탄생시켰다.

궤베클리 테베는 거대한 돌기둥들이 원형을 그리며 서 있는 유적지다. 외견상으로는 영국에서 발견된 스톤헨지와 비슷하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우선 궤베클리 테페는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건축시기와 비교해 동시대가 아니다. 거의 7000년이나 앞선 거석문화다. 둘째, 궤베클리 테페에 사용된 돌들은 자연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석회암의 표면을 부드럽고 평평하게 직사면체로 다듬어 사방에 수많은 동물들을 반부조물로 새겨 놓았다. 야생 사슴, 뱀, 여우, 전갈, 그리고 야생 멧돼지를 새겼다.

인류는 기원전 9500년경 가족 혹은 친족 단위를 중심으로 소규모로 모여 살았다. 식용으로 먹을 식물을 채집하거나 야생동물들을 사냥하며 생존했다. 그런데 궤베클리 테페는 사방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인위적으로 만든 신전이다. 당시 인류는 무게가 16t이나 되는 돌을 바퀴나 동물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인력을 동원해 이 높은 곳으로 옮겼다. 이들은 높은 곳에 특별한 건물, 일상과는 구분되는 신전을 건축했고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이다. 아직 문자, 금속 혹은 도자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이곳에 도착하면 커다란 돌기둥이 거대한 거인처럼 그들을 압도하고, 그 위에 그려진 동물들을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횃불에 의해 빛나 영적인 세계에서 온 전령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떤 고고학자는 궤베클리 테페의 건축을 스위스 칼을 가지고 달나라에 갈 우주선을 제작하는 것과 비유할 정도로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고고학자들은 아직도 궤베클리 테베를 발굴하고 있고 기능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중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간과 인간의 문명을 이해하는 기본 틀을 흔들어놓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을 설명하고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고고학자는 호주출신 영국 고고학자 고든 비어 차일드(Godon Vere Child)가 주장한 ‘신석기혁명’의 이론을 수용했다.

예루살렘, 메카, 바티칸에 앞선 최초 순례지


▎궤베클리에서 발견 된 머리모양의 돌.
신석기혁명 이론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호모 사피엔스는 농업이라는 기술을 발명해 자신들의 과거 사냥-채집생활 그만두고 한 곳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상호간의 소통과 통치를 위해 신전과 계급제도를 만들고, 신전중심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문자를 발명했다. 농업혁명은 오늘날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어떤 한 곳에서 일어난 특이한 사건으로 그 후에 인디아, 유럽으로 전파됐다. 학자들은 농업이 갑자기 등장한 이유가 빙하기가 끝나 기후가 좋아져 사람들이 처음으로 식물을 지배하고 동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진리로 여겨졌던 ‘농업혁명’과 그 가정들은 궤베클리 테페의 발굴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과학에선 정설이나 진리란 있을 수 없다. 더 많은 지식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더 정교한 이론이 등장하면 이전에 정설도 수용된 것들은 거짓이 되고 만다. 고고학자들은 최근 이 이론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농업의 등장은 혁명이 아니다. 농업은 여러 곳에서 수천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등장한 문화다. 농업이 등장한 이유는 환경과 같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우연한 발견이다.

궤베클리 테페는 인류가 아직 농업을 발견하기 전에 모든 것을 동원해 건축한 최초의 순례지다. 후대 등장한 위대한 종교들은 신도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순례지가 있다. 예루살렘, 메카, 바티칸,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다가야가 대표적이다. 이 순례자들은 신앙의 수련을 위해 자신의 일상 거주지를 떠나 먼 길을 걸어온다. 순례지엔 순례자들을 영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특별한 물건이나 구조물들로 가득 차 있다.

궤베클리 테베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최초 순례지다. 빙하기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지하 동굴을 내려가 벽화 그리기, 노래하기, 춤추기와 같은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의례를 행했다. 빙하기 시대가 끝난 후 인류는 지하가 아니라 자신들이 살던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일상과는 구별되는 거룩한 구조물을 지었다. 인류는 처음으로 이곳 궤베클리 테페에서 자신을 초월하는 세계를 희구하고 압도적인 건물을 지음으로 새로운 틀의 문화를 찾고 있었다. 이들의 하늘의 숭고함에 도전하는 웅장한 구조물에 대한 집착과 죽음 너머 세계에 대한 묵상, 그리고 자연과 동물에 대한 관찰이 인간에게 문명을 선물했다.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dt)란 고고학자는 1994년에 궤베클리 테베 근처에 있는 샨리우르파(Sanlıurfa)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샨리우르파는 고대 근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에 하나로, 유일신 종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태어난 장소다. 슈미트는 샨리우르파 북쪽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원류가 있는 산맥과 연결된 평원에서 신기한 지형 하나를 발견했다. 샨리우르파에서 14㎞ 떨어진 평원에 갑자기 우뚝 선 언덕이 등장한다. 지역 주민들은 이 장소를 다소 우스꽝스런 용어를 사용해 ‘배불뚝이’란 의미를 지닌 ‘궤베클리 테베’라고 불렀다.

1960년대 이곳을 발굴한 미국 시카고대학 고고학자들은 궤베클리 테베를 비잔틴 시대 군사기지로 오판했다. 슈미트는 1995년부터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훨씬 이전 인류문명의 기원을 밝혀줄 유물로 판단하고 독일 고고학 연구소와 샨리우르파 박물관 팀과 함께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한다. 그는 현재까지 이곳에서 원형으로 정교하게 배열된 돌기둥 단지를 20개나 발견했다.

궤베클리 테베 건축자들은 자신들이 정성스럽게 건축한 원형 돌기둥을 시간이 지나면 흙, 도자기, 그리고 희생제사 지낸 동물 뼈들로 매장하고 그 위에 다시 원형 돌기둥들을 세웠다. 그래서 이곳은 점점 높이 쌓이게 되어 마치 그 모양이 ‘배불뚝이’처럼 됐다.

또 다른 특징은 궤베클리 테베의 건축기술이 후대로 가면 갈수록 후퇴한다는 점이다. 가장 오래된 땅속 깊이 매장된 원형 돌기둥이 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월등히 뛰어나다. 이 기둥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작아지고, 단순해지고 무엇보다도 섬세하지 않다. 궤베클리 테베는 기원전 8200년 의도적으로 버려졌다. 그 후 완전히 폐허가 돼, 아무도 찾지 않았다. 궤베클리 테페는 어떤 장소였는가? 그리고 왜 사람들은 이곳을 버렸을까?

지역 돌기둥에 새겨진 포유류 동물만 3만여 개


▎원형 돌기둥 중앙엔 T 모양의 기둥이 있다. 인간의 모양을 흉내낸 ‘의인화 된’ 기둥이다. / 사진제공·배철현
궤베클리 테페의 건축물은 커다란 원형 구조물 안에 사각형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사각형 구조물 안에 가장 큰 T모형 기둥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궤베클리 테베 건축물들의 특징은 그 규모뿐만 아니라 이 돌기둥에 반부조로 새겨진 동물들의 표현 때문이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발굴한 A, B, C, D 지역 돌기둥에서 포유류 동물들을 3만8704개나 확인했다. 그들 중 가장 많이 표현된 포유류는 야생사슴(7949번), 야생 황소(2574번), 야생 당나귀(1177번), 여우(971번), 야생 양(944번), 야생 돼지(865번) 순이다. 특히 원형 돌기둥 중앙에 위치하여 마주보고 있는 T모양 기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뱀(23번), 여우(12번), 야생 돼지(7번), 학(5번) 그리고 야생 황소다. 그뿐 아니라 독수리, 까마귀, 아구창과 같은 다양한 조류는 포유류만큼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골고루 분포돼 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동물을 궤베클리 테페 돌기둥에 새겨 놓았을까? 샨리우르파로부터 14㎞나 떨어진 높은 언덕에 건축한 이 건물은 오늘날 바티칸, 예루살렘 혹은 메카처럼 잔치를 곁들인 의례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이제 막 선토기(先土器) 신석기시대(PPN, Pre-pottery Neolithic)로 진입하면서 돌기둥들을 세워놓고, 그 위에 다양한 동물상징을 새겼다. 이 돌기둥들은 후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등장하는 ‘쿠두루(kudurru)’라는 경계석과 기능이 유사하다. 쿠두루는 기원전 2000년부터 바빌로니아 왕들이 자신이 치리하는 도시 경계를 표시하는 상징물로 쿠두루에 온갖 무섭고 사나운 동물들을 새겨 놓았다.

쿠두루는 질서와 혼돈,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경계석이다. 바빌로니아의 쿠두루가 문명이 시작된 이후 야만과 문명을 구별하는 지형적인 표식이라면, 궤베클리 테페 돌기둥은 문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 문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기반들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자궁이다. 인류는 궤베클리 테페를 통해 도자기, 농업, 동물 사육 등을 창조하여 후에 등장할 문명의 두 요소인 문자와 도시를 탄생시켰다.

궤베클리 테베의 D지역은 가장 오래되고 크고 잘 보존돼 있다. 정 가운데 두 개의 커다란 돌기둥이 마주보고 서 있고 둘레 담에 12개 기둥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 주로 묘사된 동물은 여우와 뱀이다. T모형 기둥은 높이 5.5m나 되고 사람의 손과 손가락이 돌기둥 옆으로 새겨져 있다. 그 손 밑에는 벨트와 허리감개가 둘러져 있다. 이 원형돌기둥들의 중심인 T모형 기둥들은 인간의 모양을 흉내 낸 의인화된 기둥이다. 이 기둥 표면에 새겨진 동물들은 자신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보초들이다. 뱀, 야생 돼지, 야생 황소, 그 밖에 사나운 육식동물들은 잠정적으로 무서운 동물들인 셈이다. 이들은 궤베클리 테페의 거석 예술에서 이제 막 정착생활을 시작하려는 인간을 보호하는 동물들이다.

사냥-채집으로 연명하던 인류가 굳이 이곳에 원형돌기둥들을 세워놓고 동물을 새겨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동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사냥하거나, 경쟁해야 하는 동물이다. 이 동물들을 기원전 3만1000년부터 기원전 1만 년까지 유럽의 지하 동굴에서 발견된 동굴벽화와 비교하면 심층적인 의미를 추적할 수 있다. 빙하시대 인류에게 동물을 사냥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의례행위의 중심이었다.

언덕, 산 등 높은 곳에 위치한 성소는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 후대 문명에 등장하는 피라미드, 지구라트, 오벨리스크, 바벨탑 등이 그 예다. 이 돌기둥들의 동물 상징은 토테미즘이다. 스코틀랜드 인류학자 앤드류 랑(Andrew Lang)은 20세기 초에 초기 인류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동물들을 선택해 자신을 다른 그룹과 구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각각 사회공동체는 자신들이 선택한 동물이나 식물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배타적인 상징물로 사용했다. 토템 상징은 다른 공동체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각인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장소에 등장한다. 돌 기둥들이나 토템 기둥으로 표시된 경내는 한 집단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나 성인식을 거행하는 장소다. 궤베클리 테페의 돌기둥들의 토템들은 하늘, 땅 그리고 지하세계의 강력한 동물들로, 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상징이었다.

‘페스티발’의 기원 형태의 半-정착적 공동체


▎돌기둥에 반부조로 새겨진 동물 종류 중 뱀, 여우가 가장 많다. 사나운 동물은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상징한다. 여우와 황소(왼쪽)와 도마뱀 형상이 새겨진 기둥. / 사진제공·배철현
인류의 최고 공동체는 음식을 함께 먹고 지난 일들을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식구(食口)다. 식구는 한 지붕 아래서 먹을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다. 인류는 기원전 9500년 아직 사냥과 채집을 기본적인 생계수단으로 삼았다. 인류는 ‘식구’라는 최고 공동체를 확장하여 ‘친족 공동체’로 확장했다. 공동체가 점점 커지면서 구성원들 간의 만남이 빈번해지고, 그에 비례해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궤베클리 테베는 사냥-채집을 일삼던 ‘이동하는 인간’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조직적으로 키우는 ‘정착하는 인간’으로 전이하는 과정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이 둘 사이에 반(半)-정착적인 공동체가 등장한다. 이 공동체는 특정한 장소를 정해, 정해진 시간에 함께 보여 일정기간 동안 함께 지내기를 연습한다.

서양서는 그런 모임을 ‘페스티벌(festival)’이라고 부른다. 페스티벌은 라틴어에서 빌려온 차용어다. 라틴어 페스타(festa)는 ‘축제, 잔치’라는 의미다. 서양 언어에서 ‘축제’에 관련된 용어들은 모두 이 단어에서 파생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fête), 스페인어(fiesta), 영어(feast)가 그렇다. ‘페스타’란 단어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오래된 관습을 담고 있다. 페스타의 어원은 궁극적으로 프로토-인도유럽어 *dhes-no로 거슬러 올라간다. *dhes-no는 “우주의 질서에 맞게 만물을 배치하는 의례”라는 의미다. 그런 의례를 하는 시간을 ‘절기; 축제일’이며, 그런 의례를 하는 장소를 ‘신전’, 그런 의례와 관련된 일련의 활동을 ‘잔치’라고 부른다.

무슬림들은 1년에 한 번 라마단 기간 동안 한곳에 모여 의례를 행한다. 전 세계에서 300만 명 이상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찾아 종교축제를 거행한다. 이들은 오히려 금식을 통해 음식의 중요성을 묵상한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이집트를 탈출해 이스라엘 공동체를 만들었던 유월절을 기념해 함께 공동식사를 한다. 유일신 종교들의 축제보다 더 오래된 잔치가 있다.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선사하는 자연과 신에게 감사하는 축제를 서양에서는 ‘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추석’이라고 부른다. 먼 친척까지 함께 보여 음식을 나눔으로 상호간의 신뢰와 우정을 다진다. 순례는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살펴보며, 더 큰 공동체 형성을 위해 진지하게 대화라는 자기수련 과정이다.

의례에 필요한 고기와 술


▎이동하던 인류가 정착하는 과정에서의 공동체 기원을 페스티벌(festival, 축제)이라고 부른다. 어원인 ‘페스타’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오랜 관습을 담고 있다. 스페인에서 지난 8월에 열린 ‘몬순 홀리 페스티벌’. / 사진·연합뉴스
의례에 필요한 두 가지 음식이 있다. 고기와 술이다. 고대 근동지방의 희생제사 의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구약성서 창세기 15장에 등장한다. 유일신 종교의 조상 아브라함이 신과 최초로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신은 아브람(아직 아브라함이라고 개명하지 않았음)에게 ‘3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3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3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를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아브람은 비둘기를 제외한 다른 희생 제물들을 둘로 쪼갰다. 그러자 한밤중에 갑자기 횃불이 나타나, 쪼개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성서는 이후 이 희생제물의 처리에 관해 침묵한다.

대개 이런 의례에 참가한 사람들은 함께 음식을 먹으며 공동체의식을 다진다. 이렇게 희생제사를 위해 ‘정결하게 잘려진 음식’을 히브리어로 ‘베리스(berith)’라고 부른다. ‘베리스’는 계약(契約)이란 의미도 함께 지닌다. 함께 음식을 나눈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운명체가 되며, 만일 공동체가 결의한 계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반으로 잘려진 희생제물과 같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선포이기도 하다.

고고학자들은 궤베클리 테페에서 10만 개 이상의 야생동물 뼈를 발견했다. 이 뼈들은 야생 멧돼지, 사슴, 양, 그리고 다양한 새일 것이다. 궤베클리 테페는 주변에 거주하던 사냥-채집인들을 일정한 기간에 불러 모았다. 이들은 1년에 두 번씩 공동체 별로 동물을 가져와 이곳에서 희생 제사를 올렸다.

두루미는 대표적인 철새로 1년에 두 번 이곳을 지나간다. 3~4월에 알을 낳기 위해 북쪽으로 이동하고, 9~10월에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한다. 이 두 기간은 춘분과 추분에 해당한다. 3~4월은 만물이 죽음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간이며 9~10월 지난 1년 동안 생존을 감사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 철새들은 시간과 자연의 변화를 알린다.

희생제사에 필요한 또 다른 음식은 술이다. 인간은 술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탈출해 인위적으로 황홀경에 빠진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술은 야만을 문명으로 이끄는 중요한 상징이다. 이 서사시의 처음에 등장하는 엔키두는 동물과 함께 배회하며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야만적인 인간이다. 엔키두를 도시의 상징인 우룩으로 인도하는 여인은 창녀 샴하트다. 샴하트는 엔키두에게 맥주를 건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맥주는 나라를 지탱하는 생명입니다.” 아카드어 원문을 쓰자면 ‘시카룸 나피슈툼 샤마팀(shikarum napishtum shamatin)’이다. 샴하트는 엔키두에게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결코 문명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오래전에 이 문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이 나라를 지탱하고 구성하는 생명이라니!

최근까지 맥주와 포도주는 수메르와 이집트 문명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술의 발견이 훨씬 이전이라는 고고학적 증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고학적 증거로 술을 제조했다는 증거는 다음 두 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곡물을 발아시켜 건조하는 소위 ‘몰팅 바닥’의 성분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도자기나 석기 그릇의 바닥에 남아있는 유기물의 화학성분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학자들은 궤베클리 테페 건물들 중 ‘부엌’으로 추정되는 건물에서 다섯 개의 커다란 석회암 그릇을 발견했다. 고고학자들은 그 그릇 바닥에서 맥주를 만들기 위해 보리와 밀을 발효시킬 때 생기는 화학물질인 옥살산염(oxalate)을 추출했다. 이들의 맥주를 제조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기에서 축제를 준비한 사람들은 맥주 제조에 필요한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인류가 아직 농업도 시작하지 않았고 도시도 건설하지 않았지만 맥주를 제조하는 방법을 터득해, 궤베클리 테베에서 거행된 의례에서 사용했다. 이곳에 찾아온 순례자들은 맥주를 마시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흥겹게 확인했을 것이다. 나는 궤베클리 테베의 증거를 통해,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창녀 샴하트가 엔키두에게 건넨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궤베클리 테베는 인류 최초의 순례지였다. 유럽 전체가 두꺼운 빙하로 덮여 있었을 때, 소수의 호모 사피엔스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와 회화, 조각, 음악과 같은 예술을 발견했다. 기원전 1만 년경, 빙하시대가 끝나자 인류는 사냥뿐만 아니라 채집할 수 있는 지역으로 남하했다. 그곳이 바로 궤베클리 테베는 오늘날 터키,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의 중간 지점으로 후에 등장할 문명의 정신적인 모체가 됐다.

한잔 걸치며 새 공동체 모색


▎학자들은 발견한 석회암 그릇에서 맥주를 만들기 위해 보리와 밀을 발효시킬 때 쓰는 화학물질 ‘옥살산염(oxalate)’을 추출했다 / 사 진제공·배철현
고고학자들은 2009년 발굴 기간에, 석회암으로 만든 동물 조각의 머리 부분을 궤베클리 테페의 남동쪽 언덕에서 발견했다. 그들은 그 장소를 깊이 파 내려가, 길이 1.92m, 지름 30㎝, 그리고 무게 500㎏가량의 토템 기둥을 발굴했다. 이 기둥은 세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가장 윗부분은 사자 혹은 표범을 조각했다. 이 동물의 귀와 눈은 아직 남아 있지만 얼굴 부분은 오래전에 지워졌다. 머리 부분 아래로 짧은 목과 양 팔과 손이 보인다. 이 모양은 남서 독일 홀레스타인에서 발견된 ‘사자인간’ 상과 흡사하다. ‘사자인간’ 상은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인간은 전형적인 반인반수의 괴물이다.

두 팔은 가슴 앞에서 어떤 것을 들고 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고고학자들은 이와 유사한 토템 기둥과 비교해, 두 팔로 들고 있었던 것은 ‘해골’이라고 유추했다.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발견한 샨리우르파. 유일신 종교 조상인 아브라함이 태어난 도시로 궤베클리 테베 근처에 있다. / 사진제공·배철현
토템은 왜 해골을 들고 있는 것인가? 해골은 조상숭배와 죽은 자로부터 산 자를 보호하는 신앙까지 다양한 이유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먹고 마시는 행위를, 공동체 형성을 위해 중요한 문지방으로 변화시켰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기원전 1만 년경 빙하기가 끝나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북반구에서 남하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 접경 지역에 반 정착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겨나는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궤베클리 테페에 인류 최초의 신전을 지었다. 그들은 1년에 두 번, 이곳에서 희생제사를 지내기 위해 순례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질 뿐만 아니라, 다른 공동체와의 만남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친분을 쌓는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들은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은 맥주를 함께 마시며,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고 더 큰 공동체를 만들기를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궤베클리 테베는 대규모 잔치를 곁들인 의례를 행하던 구석기 시대의 메카다. 그들은 정교한 원형 돌기둥들을 세워 그 안에 들어가 의례를 행하는 사람들이 ‘우니오 미스티카(unio mystica)’ 즉 ‘신비한 하나’를 경험했다. 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동안 자신들이 관찰했던 야생 보리와 밀을 재배 가능성을 논의했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족단위가 아니라 더 규모가 큰 집단을 상상하며 지도자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소위 ‘평등사회’에서 ‘초평등사회’로 진입했다. 인류는 궤베클리 테페로 자신이 신과 공동체를 위해 제사할 제물을 가지고 수십㎞ 수백㎞를 걸어왔다. 이들은 중동의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삶과 죽음, 자신과 공동체를 깊이 묵상했다. 인류는 이제 떠돌이가 아니라 정착해 문화와 문명의 씨앗을 뿌릴 참이다.

배철현 -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셈족어와 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 쐐기문자가 기록된 베히스툰비문의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에 개원한 미래혁신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이다.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이 있다.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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