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그림자는 저녁을 모르고 

김경인 


▎해질녁 서해 오이도 둑길 위로 저녁이 내려 앉는다. / 사진 김현동
모든 빛이 돌아눕는 저녁이었네
방안에는 늙은이처럼 중얼거리는 낡은 테이블과
주파수가 맞지 않는 꿈의 라디오 뿐
내 곁에 남은 그 희미한 빛들 뜨거운 입술을 다 버리는 저녁이네
나는 걷네, 그늘막을 따라 보랏빛으로 타오르다 마침내
무너지는 등나무처럼
나를 어루만지며 무성히 자라나는 주름들이
내 얼굴을 조금씩 흩어놓는 걸 바라보면서
장롱 속에 처박아둔 어릴 적 처음 덮고 자던 이불과도 같이
낡고 해진 순한 마음을 찾아
아이처럼 토닥이며 돌아오는 길
누군가의 빛바랜 금빛 공단 주름치마처럼 펼쳐진
저 하늘이 녹아 사라지는 줄 모르고

김경인 - 시인. 1972년 서울 출생. 200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한밤의 퀼트>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가 있다.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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