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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이낙연 국무총리의 ‘책임총리’ 집념 

“김정은, 국제사회 누구라도 만나라” 

글 박성현·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 60% 지지율 유지돼야 국정 안정적 운용
● 사드 반대 여론, 정부에 동의 안 해도 이해는 할 것
● 한·일 군사협력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 (북한과) 대화, 미국이 하면 전략이고 한국은 구걸인가
● 한·중·일 지도자 올림픽 상호방문 품앗이 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라는 혼돈 상황 속에서 출범했다. 탄핵을 부른 ‘대통령의 제왕화’를 막고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책임총리제를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5월 31일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헌법에 규정된 국무총리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총리도 ‘유능하고 소통하며 통합하는 내각이 되겠다’는 취임사로 화답했다.

이 총리는 정권 출범 100일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관료 중 한 사람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가뭄, 수해, 살충제 계란 파동 등 숨 가쁜 민생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함께했다. 그런데도 총리는 잘 보이지 않았다. 정작 국무총리가 자리한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그다지 받지 못했다. 정권 출범 초 뉴스의 초점은 늘 대통령과 청와대 실세들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인사와 조직 등 새 정부의 초석을 놓는 작업은 권력을 창출한 이들의 몫이기도 하다. 여기엔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권한과 지위가 다소 모호한 탓도 한몫했다. 헌법86조를 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돼 있다.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야’ 하는 자리다.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진 수동적인 ‘그림자 권력’으로만 비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9월 1일 정기국회가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역대급’ 답변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의원들의 날카로운 지적에는 솔직한 수긍으로 예봉을 피해나갔고, 싸움을 걸어오는 질문에는 예상치 못한 돌직구 답변으로 응수했다. 의원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게 마련인 본회의장 분위기를 장악해나갔다는 평도 받았다. 네티즌들은 답변하는 이 총리의 모습을 편집한 영상을 퍼 날랐고, ‘부드러운 카리스마’ ‘촌철살인’ ‘은근한 유머’ 같은 수식어가 그를 따랐다. 선문답 내지 말장난으로 상황을 모면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만만치 않은 내공의 총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 듯하다. 첫 단추를 잘 꿴 듯한 이 총리지만 갈 길이 멀다. 국정과제인 적폐 청산도 해야 하고, 북핵 위기에 동요하는 민심도 다독여야 한다. 문 대통령이 외교·안보 등 대외 현안에 치중하는 동안 일상적인 행정과 민생 등에서 책임총리의 자격과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월간중앙은 9월 8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 총리와 만났다. 이날은 국무총리 취임 101째 되는 날이었다.

한·미 간 지금처럼 긴밀히 대화한 적 없어


▎문재인 대통령이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7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9월 3일 북한의 6차 핵 실험으로 한반도 안보 정세가 극히 혼미하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지금은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야 할 국면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대화를 상정하거나 준비해야겠지만,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마당에 대화하자고 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가 북한에 쓸 카드는 세 가지가 있다. 지금처럼 군사적 도발을 강화하는 시점에서는 제재를 해야 한다. 나아가 억지력도 키워야 한다. 대화는 세 번째 카드다. 현재 우리 정부는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억지하는 중이다. 대화가 궁극적으로 필요할 수는 있지만 지금 그걸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

북핵을 대하는 관점과 속도에서 한국과 미국이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청와대는 강하게 부정하지만.

“한·미간에 지금처럼 긴밀하게 대화한 적은 없었다고 확언한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자정 넘어서도 통역 없이 통화한다.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직접 통화한다. 과거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역대 안보실장이 군 출신일 때는 언어적 제약으로 오히려 긴밀한 협의를 못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한·미 정상 간에도 빈번한 소통이 이뤄진다. 문 대통령은 한국 방위에서 오랜 숙원의 하나인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베 총리처럼 하루에 두 번 통화해야 하는가? 그건 오히려 레토릭 공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유화론과 강경론으로 한·미가 갈리기도 했는데.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도 중간중간 북한과의 대화를 얘기했었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말하면 전략이라 하고 한국 정부가 대화를 언급하면 구걸이라고 하고… 이런 이중 잣대가 어디 있나. 오히려 항변하고픈 심정이다. 미국 입장도 늘 일관된 게 아닌데 그때마다 (우리가 보조를) 맞춰줘야 할까. 국내 언론도 국민께서도 좀 더 냉정하게 봐주실 필요가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빈번한 갈짓자 SNS 메시지에 대해 ‘패싱(Passing)’해야 한다는 여론이 미국에도 있다고 하더라.

“그건 북한의 핵무장 단계, 정도를 고려한 대응 수위 조절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미국 정부 안에서조차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다.

어쨌거나 시중에서는 정말 방독면을 구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지진이 일상화된 이 나라의 국민들은 준비가 잘돼 있다. 제가 언론사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진도 4가 조금 넘는 지진이 발생했다. 아주 큰 지진은 아니지만 아파트 진동이 감지될 정도여서 우리 부부는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도쿄의 한국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그 정도의 흔들림쯤은 즐기는 듯하더라. 평소 학교에서 대처 요령을 배워서 그런지 상황에 쉽게 적응하더라.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는 (이런 위기상황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일 준비도 필요하다. 비단 비상상황이 아니더라도 그런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안전신화에 너무 취해 있었던 건 아닐까?”

기상이변·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재해 일상화에 대비해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8월 2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세종-서울 간 영상국무회의에서 이낙연 총리가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가뭄, 조류독감 등 예상하지 못했던 재해들이 많았다. 내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부실한 게 아닐까?

“사실 가뭄이나 가축전염병도 상시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몰려왔다. 지금과 같은 대증요법만으로는 끌고 가기가 어렵다는 점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중장기적, 또는 항구적 대책이 절실한데 그렇다고 당장의 대처를 소홀히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고민이 깊다.”

그런 재해가 우발적이거나 일회용으로 끝나는 시대가 아닌 것같다.

“가뭄을 예로 들자. 전반적으로 강우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계절적·지역적 불균형은 심화된다. 가뭄 피해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다. 기상이변,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재해의 일상화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 또 조류독감(AI)을 비롯한 가축 전염병도 토착화할 수 있다는 전제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이래 30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땅에 묻혔다. 금년에는 그 규모가 감소하고 있어 불행 중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가기는 어렵지 않겠나. 방역의 상시화, 전염병 토착화에 따른 중장기적인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 예산 수반 문제까지도 함께 말이다.”

정부는 429조원의 새해 예산을 편성했다. 복지 분야 지출이 과다해 국가재정에 주름이 가리라는 비판이 있는데.

“정부 출범 첫해는 새로운 틀을 짜는 정책들이 많아 재정 지출의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후로는 예산 증가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재정증가율이 7%라지만 주로 복지와 국방 분야의 예산 증액인 까닭에 국민들이 충분히 수긍해주실 거라 믿는다. 재원 마련을 걱정하는 시각이 있다는 걸 안다. 그것도 정부 예산안에서 밝혔듯이 초고소득자·초대기업에 대한 증세, 사회간접자본 세출 구조조정, 세계잉여금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의 부담이 없다는 점을 단언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70% 선 아래로 떨어졌다. 향후 추이를 어떻게 보나?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내려가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내려갈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뜨겁게 사랑하던 남녀도 함께 살다 보면 애정이 식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정한 수준에서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는 게 고공 지지율 행진보다 더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안정적인 지지율인가?

“60%대는 유지돼야 하지 않을지…. 60~65%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다.”

한·중 관계 기저에 실망과 배신감 깔려 있는 것


▎이낙연 총리가 7월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서청주교 사거리 부근의 호우 피해지역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여론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 속에 반드시 미래 비전과 전략이 들어 있는 게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탄핵의 여파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와 달리 여론과 너무 함께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지적을 한 분들이 노무현 대통령 때도 같은 말을 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진 문제의식을 문재인 정부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로마시대 사상가 겸 정치인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국민의 뜻에 어긋나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하고, 국민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한다.’ 이걸 문재인 정부가 왜 모르겠나. 문 대통령을 뜨겁게 지지하는 분들 중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정부는 사드 임시 배치를 결정하지 않았나. (여론에 영합한다는) 지적은 과학적 관찰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앞으로의 과제다. 우리 안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정부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고충을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 자신도 몇 차례 종교계 지도자를 포함한 여러분과 비공개리에 만나 대화를 나눈 적 있다. 안보 상황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주셨다고 본다. 사드 배치로 성주나 김천 주민들이 입은 피해는 정부가 채워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국가 안보가 지켜져야 다른 일도 가능하고, 지속된다. (사드 배치에) 동의하지 않은 분들도 이점은 이해하실 것이다.”

이 문제로 한·중 관계가 심각한 상황인데.

“중국 지도급 인사들을 만나보면 가장 서운해 하는 게 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 책임을 돌리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 박근혜 정부는 중국에 ‘3불(사드 배치에 대한 요청도, 협의한 적도, 결정된 바도 없다)’ 원칙을 얘기해 놓고 며칠 뒤에 사드 배치를 발표해버렸다. 한·중 관계의 기저에 이런 실망과 배신감이 깔려있는 것 같다. 우리는 신의에 기초해 설명하고 대화하겠다고 중국에 끊임없이 얘기한다. 중국의 안보현실을 주변국에서 말하기 어렵듯이 한국의 안보현실도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중국 정부가 이해하고 존중해주면 좋겠다. 한국의 안보현실을 이해하리라 본다.”

남북 대화통로 겨우 실개천만하게 남아 있어


▎이낙연 국무총리가 9월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에 대한 대정부 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노출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9월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총리는 정계 입문 전 국내 언론사의 일본 특파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한일 관계는 좋다, 싫다를 반복할 단계는 지났다”면서 “이제는 함께 일을 찾아가고 관계를 넓혀가는 게 지혜로운 대처”라고 강조했다.

특파원 시절과 지금의 한일 관계를 견주면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다.

“내년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해다. 제가 공부하고, 경험했던 범주에서 말씀드리면 그때가 한일 관계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 그 뒤로는 점점 나빠졌다. 그때는 미래 비전과 상호 배려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균형의 리더십을 발휘했고,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배려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이런 장점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1998년 멋진 공동선언이 탄생한 것이다. 지금의 양국 지도자들이 다시 상기하고 배울 대목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서로 지원하거나 지도자들이 교차 방문하는 방안은 어떤가?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2년 뒤인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또 2년 뒤인 2022년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열린다. 한·중·일 삼국이 올림픽 품앗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 현재 일본과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평창동계올림픽에 오는 걸로 준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우리도 도쿄올림픽 가서 성원도 하고 일본에서도 평창에 많이 와주면 좋지 않겠나.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주자 중 한 분이 일본 JAL 항공 마사루 회장인데 지난 주 아주 설렌다고 자랑을 하더라. 정부 차원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를 스포츠나 민간 차원에서 완화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것 같다.”

북핵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이 미사일 방어시스템 개발에 협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좀 예민한 대목이다.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돼 있는 한국 입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방어 역량을 갖춰야 하는 건 틀림없는 일이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한 미사일 탄두 제한 해제는 독자적인 방어역량을 극대화했다. 한일 군사 협력 문제는 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1년 연장하는 걸로 합의가 됐지 않았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다.”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을 현실에 맞게끔 전면적으로 리셋(reset)할 필요는 없나?

“내부적으로 하고 있다. 대화의 통로가 살아있으면 보다 효과적일 텐데 통로가 모두 막혔다. 이전 정권 10년 동안 대화 통로가 파괴된 것은 굉장한 손실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일지라도 통로는 살아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주 실개천만한 통로가 형식적으로 남아있는 정도니…. 대북 전략은 꾸준히 재검토되고 있다. 국면에 따라 전략·전술적인 판단도 하고 있다.”

미국은 꾸준히 1.5트랙(반관반민) 대화를 하는 눈친데.

“미국도 물밑에서는 대화를 하고 있다. 우리 국민도 트럼프 대통령의 특정 메시지가 (내면 의사의) 전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미국도 한국도 대화의 카드를 꺼내지 않고 있는 건 국면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 간에,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

그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김 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지 6년이 되지만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그가 만난 유명 외국인은 대략 두 사람뿐인 것 같다.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와 미국의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이 고작이다. 세계정세나 북한의 향후 발전전략을 자문해 줄 수 있는 외부의 시각을 김 위원장이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그런 뜻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주재 독일대사라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말했듯 지금은 북한에 대한 압박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김 위원장이 외부 세계의 흐름을 들을 만한 기회를 줬으면 하는 꿈 같은 생각을 해본다.”

1노3김 시절 법안 처리율 가장 높았다


▎2002년 11월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여의도 당사에서 이낙연 당시 대변인과 방송녹화 원고를 검토하고 있다.
국내 사정도 만만치 않다. 여야 협치에 있어 총리는 “1노(盧) 3김(金) 시절의 리더십이 그립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협치’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까?

“여소야대 다당제다. 매사 시간이 걸리고 과정이 복잡하다는 흠이 있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어느 정당도 국회의 발목을 단독으로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역으로 보면 많은 법안 처리, 안건처리를 이뤄낼 수도 있다. 지금 4당 중 어느 한 당이 국회 불참해도 돌아가고 있다. 양당제였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걸 잘 활용하면 될 것 같다. 제 6공화국 여소야대 국회 당시의 1노(노태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체제에서 법안 처리율이 가장 높았다. 당시 김재순 국회의장이 4당의 의석비율을 ‘황금분할’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때도 적폐 청산 다 했다, 5공 청산도 하고 언론 통폐합 청문회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갔지 않았나. 할 수 있다.”

총리 취임사에서 “공직자들은 촛불 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 과제의 도구들”이라고 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흔드는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 과정에서 탄생한 정부다. 정부는 국정과제를 이행하는 기구이며 그 국정과제는 촛불혁명에서 파생됐다. 공직자들도 촛불혁명에서 파생된 국정과제를 실현하는 도구라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국정과제를 이행하고 실행하는 건 정치적 중립 이전에 공무원의 본분 아닌가. 물론 정치적인 문제를 편들라는 얘기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가장 특이했던 기억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였다. 당시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이던 문 대통령이 조문객이 올 때마다 자기 자리를 내주느라 나중엔 말석으로 밀려나던 장면이 또렷하다. 보통 겸손한 분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권력욕이 있으면 그렇게 하기 어렵다. 제가 7남매 중 장남이지만 집안 행사에 다 모이면 저는 항상 끄트머리에 서곤 했다. 문 대통령이 저랑 비슷한 분인 것 같다고 나중에 만난 자리에서 농반진반으로 그 얘기를 끄집어내기도 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생전 2010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헌법상 총리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국민이 ‘정책총리’(이명박 정부 당시의 표현으로, 요즘의 책임총리)를 바란다면 헌법에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규정하든가 아니면 내각책임제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대통령의 명령이나 찬의(贊意)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무사안일’로 가면 방탄용이라는 말을 듣는 자리가 총리라는 이유에서다. 남 전 총리는 “그럴수록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은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을 추진하는 입장이다. 개헌 과정에서 총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국회 주도로 국민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개헌작업을 하고 있어서 정부에 있는 입장으로 코멘트를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총리 제도에 대한 원론적인 언급은 가능하지 않나?

“모든 것이 (헌법과 법률에) 정해져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헌법이 (총리의 권한 등을) 시시콜콜하게 정리하면 정부 형태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다. 이 부분은 국회의 결단과 동의를 필요로 한다.”

이 총리는 전라남도 영광 출신으로 광주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첫 직장인 동아일보에서 21년에 걸쳐 기자로 재직한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천을 받아 고향인 전라남도 함평·영광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19대 국회까지 4선 의원으로 활약했고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37대 전남지사에 당선됐다. 19대 대선 다음 날인 5월 10일 문 대통령에 의해 새 정부 초대 총리에 지명됐다.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선방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대통령감’이라는 평판을 듣기도 했다.

DJ는 평생의 스승


15대 김대중 대통령 이래 네 번의 대선에서 줄곧 영남 대통령이 배출됐다. 앞으로 호남 대통령이 나올 법하지 않은가?

“어느 지역에서든 자기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오길 바란다. 호남이라고 우리 대통령이 안 나오길 바란다? 그럴 리는 없지 않나.”

이 총리가 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야 한두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분은 아니다. 어떤 때는 사상가 같고, 또 어떤 때는 아주 열정적인 정치인이었다. 문학가 같아 보이면서도 대단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도 보였다. 위대한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가 확실시 되던 김영삼 후보를 누르고 역전승을 거뒀다. 흥분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다. 대학 강의실보다 그분의 연설회장을 더 좋아했으니 제 남루한(?) 청춘은 그렇게 왜곡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웃음) 1987년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 마크맨으로 취재하면서 그의 면모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당신 승용차에 허락 없이 올라도 용인되는 몇 안 되는 기자의 한 사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제 문투(文套)에도 능해 바이라인(기자명)이 달리지 않은 글을 보고서도 제 기사를 찾아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제 평생의 스승이시다.”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출 당시 당 대변인을 지내는 등 인연이 돈독한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고한 신념체계와 열정적 성격이 조합된 특출한 분이었다. 제가 당의 대변인으로 있을 즈음 16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일종의 직업적 관계로 시작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변인 제안을 받았지만 사양하면서 다른 길을 걸었다. 아주 특출한 매력이 있는 분이다. 그에 따른 흠도 없지 않았지만, 그만큼 열정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 앞으로 또 나올까 싶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끝나면서 이 총리의 발언은 문 대통령에게로 옮겨갔다. 언젠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일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정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내력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평한 것 같다. 이 총리는 이를 인용하면서 “문 대통령의 가치체계는 노 전 대통령을, 추진하는 방식이나 스타일은 김 전 대통령을 닮았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이낙연 말은 믿어도 된다”는 평가 듣고 싶어

어떤 총리로 기억되길 바라나?

“이뤄질 수 없는 꿈일 수도 있지만 평생을 간직하고픈 게 하나 있다. ‘다른 사람 말은 몰라도 이낙연 말은 믿어도 된다.’ 이런 평가를 들어보고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 총리로서든, 자연인으로든 이낙연 말을 믿어도 된다,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정치를 하자면 말이 바뀔 때도 있고 번복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말을 안 해야 한다. 언젠가 국회의원 선거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유림에서 찾아와서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요청하기에 해준 적이 있다. 같은 날 여성단체에서 찬성 서명을 받으러 왔다. 그때 저는 이미 반대 서명을 했으므로 찬성 서명을 할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까 경쟁 후보 대부분이 양쪽 다 서명해 줬다.”

인생의 키워드를 꼽자면.

“신뢰, 신의, 믿음이다. 난 거짓말을 끌고 갈 만한 그릇이 안된다. 그럴 바에야 참말 하고 사는 게 낫다. 나도 공부 잘한다는 말보다 잘생겼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이 인터뷰에 사진이 잘 나오길 바란다.”(웃음)

[박스기사] 오부치 日 총리, 류관순 동상 헌화 불발 해프닝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 8일 도쿄 영빈관에서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 협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제는 공개해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낙연 총리는 인터뷰 도중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성사됐다면 세계적 특종으로 기록될 뻔한 일화 하나를 공개했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류관순 열사 동상 헌화 계획이 그것이다. 1999년 3월 19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내외가 김대중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오부치 총리의 2박3일 방한 일정에는 고려대 강연이 잡혀 있었다. 동아일보 일본 특파원을 마치고 국제부장으로 있던 이 총리는 친분이 있던 일본 외무성 관료와 함께 깜짝 이벤트를 추진했다고 한다. 고려대로 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것처럼 가장해 오부치 총리가 동국대 옆의 류관순 열사 동상에 헌화하는 행사를 일본 관료와 깊숙이 논의했다. 당시 한일 관계가 우호적이었기에 충분히 해봄직한 시도였다고 이 총리는 돌이켰다.

“저하고 일본 외무성 관료 등 극히 일부만 사전에 알고 있었고 심지어 한국 외교부도 몰랐을 것이다. 세계적 특종을 보도하겠다는 생각에 사전에 관련 자료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 위령탑에 헌화하면서 무릎을 꿇어 세상을 놀라게 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의 행보에 비견되는 사건이 완성되기 일보직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부치 총리 방한 이틀 전쯤 야심 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일본 외무성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며 불가 통보를 해온 것이다. 이 총리는 “우연을 가장한 역사적 사건이 될 뻔했던 계획이 불발돼 개인적으로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면서 “그래도 당시는 그런 ‘모의’가 가능했을 정도로 한일 관계가 좋았다”고 말했다. 오부치 총리는 그로부터 얼마 뒤인 2000년 5월 과로에 의한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오부치 총리가 좀 더 오래 사셨다면 한·일 관계가 더 발전했으리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이 총리는 말했다.

- 글 박성현·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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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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