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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개혁론 

“유럽 강소국 규모의 광역지방정부 세우자”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
중앙정부 권력 집중 옹호하는 거대한 기득권 세력 존재…헌법 1조에 국가의 ‘지방분권화’ 명문화한 프랑스 사례에서 배워야

한국 정치인 중 가장 강력한 지방분권의 옹호자 안희정 충남지사. 그가 내년 자신의 정치 행로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중앙정치 무대로의 입성이 강하게 점쳐지고 있지만 분권주의자로서의 그의 브랜드를 살려 도지사 3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 있다. 어떤 행로를 택하든 목표는 2022년 대선이다. 그는 어떤 실천을 통해 그 고지에 오르려 하는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오랫동안 침묵했던 안희정(52) 충남지사가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통해 말문을 열었다. 대선 이후 사실상 첫 번째 언론 인터뷰다. 여권 내 유력한 차기 주자로 꼽히는 그의 동향에 지지 세력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일단 안 지사가 도지사 3선에 도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내년 봄 국회에 입성해 바로 당 대표에 도전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그는 내년 행보에 대한 질문의 답변에서 “나는 항상 당의 요구에 충실하게 복무했다”면서 “연말연초 당의 형편과 나라의 상황을 보아가며 향후 구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당의 요구에 충실하게 복무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가령 당이 안 지사에게 충남도지사 3선에 도전하라는 요구를 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나 다름없는 계기가 바로 내년 지방선거다. 당이 안희정이란 묵직한 카드를 충남지사 3선이란 평면적 공간에 배치할 리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안 지사의 측근인 박수현(53) 청와대 대변인은 충남도지사 출마를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19일 충남 천안을 당원 화합대회에 참석해 “당이 결정하고 충남도민들이 나에게 그러한 자격을 준다면 마다하지는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변인은 지역 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자천타천의 다른 후보를 상당히 앞서 가는 결과를 얻고 있다. 박 대변인의 이런 행보로 미루어 안 지사의 중앙정치 입문 결심도 이미 굳혀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 입성을 위해 안 지사가 선택할 지역구도 관심사로 떠오른다. 서울 송파을을 노리고 있다는 설을 일단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파을은 현재 국민의당 최명길 의원의 지역구다. 최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보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될 경우 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민주화 운동은 자본권력과 시민공동체의 싸움


▎지난 5월 9일 오후 11시56분 안희정 충남지사가 서울 세종로공원에 마련된 대국민 인사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의 볼에 ‘깜짝 뽀뽀’를 하고 있다.
안 지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양 정치진영을 넘나들며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강하게 던졌다. 그런 측면에서 송파을은 그가 매력을 느낄 만한 지역구 중의 하나다. 강남 지역 20∼40대 여성에게 상당한 호감을 얻고 있는 분위기도 그는 이미 감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강남4구’ 중 하나인 송파에서 승리할 경우 그의 당내 입지는 강한 탄력을 받게 된다. 내년 여름 전당대회에서 초선 당대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도 매우 커진다. 송파을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가 이곳 출마를 선언할 경우 올봄 재·보선 정국은 홍-안 두 고려대 출신 거물의 빅 매치로 출렁이게 된다. 누구든 승리하면 대어를 낚지만, 패배하면 치명타를 입는다. 그야말로 살 떨리는 룰렛게임이다.

안 지사는 지난 대선에서의 실패 원인을 거듭 복기하면서 당내 그의 지지 세력을 어떻게 배양하고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를 맡은 후 지지율이 급상승했던 대목도 그는 유념하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당시 당 대표라는 프리미엄을 한껏 향유한 측면이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인지도를 부각했고, 당내 주요 세력을 친노 친문 중심으로 규합하면서 온·오프 조직을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작된 대선주자 적합도 1위 페이스는 올 5월 대선 때까지 거의 스트레이트로 이어졌다. 정치적 변방에 머무르며 악전고투했던 안 지사 입장에선 부러울 수밖에 없는 ‘장밋빛 로드’다.

안 지사는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믿는 전형적인 지방분권주의자다. 과거 민주화 운동이 ‘정치권력과 시민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자본권력과 시민공동체의 싸움’이란 지론을 갖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사공론’은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공 하나하나가 배의 주인이 되어 노를 젓는다면, 사공이 많을수록 배는 안정적으로 속도감 있게 나아간다는 믿음을 그는 견지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 등과 함께 “권력과 권한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마키아벨리의 역설을 그는 굳게 신봉한다.

인터뷰에서 가장 크게 강조한 대목은 ‘연방제 수준의 광역지방정부론’이다. “500만~2000만 인구 단위의 광역지방정부 안을 내년 개헌안에 넣자”는 것이 그 골자다. 그는 또한 현재의 안보상황을 ‘최고 단계의 위기’로 규정하고 “사드 배치를 결단한 문 대통령에게 모든 국민이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인터뷰는 토요일인 지난 9월 9일 오후 홍성군 충남도청 옆 도지사 관사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충남도지사 3선에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중앙정치 무대에 오를 것인가, 충남도민과 지지 세력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은 지방정부의 책임자로서 도지사 직에 충실할 때다. 대선 재도전 여부나 그 외 정치적인 일정은 연말연초 상황을 봐서 결정하겠다.”

결론을 내놓고 타이밍을 조율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인가?

“2009년 안산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충남도지사에 나갈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충남도지사 선거에 도전해주는 것이 우리 당을 위해 중요한 일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제가 속해 있는 당의 형편 안에서 다음 운신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연말연초 당의 상황이나 나라 안팎의 상황을 보면서 구체적인 방향을 결정할 생각이다. ”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해 내년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소문도 있다. 연말연초에 당이 ‘안희정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면 국회 입성과 당 대표 도전도 가능한 선택지 아닌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으로서는 일절 말씀드릴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을 재차 공약한 것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큰 흐름에서 볼 때 당연하고 올바른 것이다. 프랑스는 2003년 헌법을 개정해 제1조에 지방분권을 명시했다. 우리도 이제는 자치분권국가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치분권국가’라는 선언이 명실상부하게 헌법에 명문화되기를 희망한다.”

식품 위생 관리는 지방정부에 맡겨야


▎안희정 지사는 인터뷰를 통해 “내년에 개정될 헌법에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 개혁안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위해 어떤 방안을 구상하고 있나?

“500만에서 2000만 정도의 인구가 포함되는 유럽 강소국 수준의 지방정부가 필요하다. 이 정도 규모의 광역자치정부가 서로 경쟁하면서 대한민국 경제에 활력을 넘치게 하자는 구상이다. 광역단체 규모를 경제권 단위로 확대하여 연방제 수준의 국가 기능 분담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의 17개 광역 행정망은 왕명 출납을 현장에서 관리했던 조선시대 관찰사의 영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초자치단체는 주민의 직접 참여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너무 크고, 광역자치단체는 너무 규모가 작아 중앙정부의 기능을 이양 받아 광역적 지방자치 업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 규모는 광역 단위에서는 연방제 수준으로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자유로운 초광역지자체 권한 행사를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 단위에서는 시군구보다 더 작은 동네 단위의 주민자치가 필요하다. 읍면동 단위는 정부 기능과 주민이 만나는 최접점 기능을 수행하고, 읍면동 하위단위는 주민의 직접 참여가 가능한 자치 기능을 부여 받아야 한다.”

이것은 장기적인 플랜인가 아니면 내년 헌법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인가?

“자치분권 헌법과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선언이 있지 않았나? 당연히 이번 개헌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 같은 지방분권 개혁을 시도할 때 눈여겨본 외국의 사례가 있다면?

“프랑스의 자치분권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는 레지옹 18개, 데빠르뜨망 101개, 코뮌 약 3만6000개가 있다. 인구 50명도 안 되는 산간마을부터 200만 명이 넘는 파리까지 코뮌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이게 매우 특이한 점이다. 레지옹·데빠르뜨망·코뮌 간에는 상하관계나 지휘·감독관계가 없다. 각 지자체는 법에 정해진 권한 안에서 독립적인 자치를 시행한다. 레지옹은 주로 경제계획이나 기반 시설 확충 같은 장기사업을, 데파르트망은 공공서비스 관리와 사회복지 등을, 코뮌은 도서관·박물관 관리처럼 주민 일상에 가까운 일을 담당한다.”

아직도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에 대한 국민 불신이 존재한다.

“예컨대 살충제 달걀 같은 식품 위생 관리를 지방정부에 맡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살충제가 검출되지 않은 지역의 양계업은 시장에서 굉장한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경쟁을 통해 품질이 향상되는 것이다. 현재는 친환경농장에 대한 인증제를 중앙정부 농식품부가 모두 갖고 있다. 또한 충남에는 17개의 종합대학이 있는데 이들 대학에 지원되는 R&D 자금은 교육부가 그 권한을 모두 갖고 있다. 그 권한도 저는 충남도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지역 산업의 발전전략과 연동하여 어떤 학과를 육성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걸 왜 교육부가 갖고 대학을 서열화하는 도구로 활용하는가? 중앙정치권력이 강고하면 대통령을 배출해야 우리 지역이 살 수 있다는 고질적인 지역주의 정치는 해소할 수 없다. 결국 지방분권으로 가야 국가의 효율도 높아지고 민주주의가 전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내년 개헌, 결국 무난히 이뤄질 것


▎포도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의 생테밀리옹 마을. 프랑스는 주민의 일상을 관리하는 공동체인 ‘코뮌’이 잘 발달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왜 그렇게 중앙정부는 권력과 권한의 집중으로 회귀할까?

“권력이 중앙에 집중된 체제 아래서 누군가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여러 세력의 이익이 중앙집중 권력에 달려 있다. 중앙집권세력은 단순하게 중앙정부의 관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인 시장점유율을 통합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사회부문의 권력이 이 중앙집중 권력시스템을 옳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자치 개혁은 엄청난 개혁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뜻이 있다고 해서 금방 바뀌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지방자치세력이 이 악물고 도전을 해야 하는데 이 도전이 중앙정부와 정치싸움으로 풀리지 않는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더 유능할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얼마 전 김종인 전 의원에게 내년 개헌 전망을 물었더니 “불가능”이란 답이 돌아왔다. 지금 국회 구도로 볼 때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는 개헌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개헌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견제하기 위한 국회와 대통령 간의 권력 분점 논의로만 졸속 처리되는 것에 반대한다. 개헌은 시기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국회 차원의 국민토론회가 준비되고 있고, 대통령도 개헌에 대한 국민적 토론을 조직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지켜봐야 한다. 대통령이 공약한 시점에 되느냐 안 되느냐를 예단하진 않지만, 결국 무난히 이뤄질 것으로 낙관한다.”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자치를 헌법에 명시하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자치분권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국가적 거버넌스를 위한 의사결정도 필요하다. 지방분권 때문에 국가 차원의 일이 방해를 받거나 차질이 빚어져선 안 된다. 자치분권을 강조한다 해도 국가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전제다. 그 전제를 바탕으로 지역과 지역주민의 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나눠줘야 한다. 고려시대 포함하면 너무도 오랜 기간 우리는 중앙집권화 된 국가에 살고 있다. 관행과 타성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헌법 조항에 명문화된다고 해서 확 바뀔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헌법에 자치분권, 지방에 입법권을 부여하는 것도 차례차례 풀어가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헌법에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를 하도록 돼 있다. 법령이 정해주지 않으면 자치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치입법을 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이것을 ‘법령의 범위 안’이 아니라 ‘법령의 기본 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다시 말해 네거티브가 아니라 포지티브 조항을 두자는 것이 저의 제안이다. 그것만 이뤄져도 지방은 엄청난 재량권이 생긴다. 그런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 지방자치를 규정한 헌법 117조, 118조 모두 폐쇄적 규정이다. 지방자치법을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이번 개헌을 통해 이뤄내야 한다.”

서울의 한 구청장에게 물어보니 “실질적으로 인사권이나 재정권에서의 자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올바른 지적이다. 지방자치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방재정의 고갈에 한몫을 하는 국고보조금 사업을 일제히 정비해야 한다. 두 번째는 8대 2 구조로 되어 있는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6대 4로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재정이 빈약한 자치단체를 위해서는 일반 교부금 비율을 현재 19.24%에서 단계적으로 25% 이상으로 높이자는 것이 저의 제안이다. 재정과 업무의 영역에서 지방정부의 책임을 더 높여야 한다. 현재는 대통령이 모든 욕을 다 먹는 구조다. 살충제 달걀이 왜 대통령 욕을 먹이는 소재가 되어야 하나? 그래서는 국가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없다. 현재 구조로는 모든 책임을 죄다 대통령이 져야 한다. 청와대 터가 세서 대통령이 욕을 먹는 게 아니다. 바로 중앙집중형 권력구조 때문이다. 지방에 자치입법 권한을 주고 재정, 인사문제도 풀어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늘 리더십의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충남도의 경우 부지사가 두 분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도지사만 만나려 한다. 이렇게 되면 도지사도 일을 할 수 없다. 지방정부가 명실상부하게 그 분야의 책임자들이 권위 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인적 구성의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현장 책임자들이 권한을 갖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국가 비상상황에서 공문이 무슨 소용?


▎지난해 1월 17일 ‘뉴 리더 4인의 대토론회’가 월간중앙 주최로 제주도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부겸 전 의원(현 행안부 장관), 원희룡 제주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 사진·임현동
현장 책임자들이 권한을 갖지 못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2015년 5월 20일 국내에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첫 환자가 발생했다. 이틀 뒤인 5월 22일 충남도는 대책 본부를 꾸리고 보건복지국장이 본부장을 맡았다. 사태가 커지면서 6월 4일부터는 제가 직접 본부장이 되어 지휘권을 행사했다. 중앙정부에 보고하는 일 외에는 현장에서 좀처럼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부장을 맡고 한 일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도 자체에서 내리라는 것이었다. ‘내가 책임진다’고 선언했다. 메르스 환자의 객담을 중앙질병대책 본부에 보내 양성·음성 판정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2∼3일이 소요됐다. 현장을 제일 잘 아는 보건소장이 직접 지휘하면 되는 문제였는데, 중앙정부에서 명단과 지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느라 선제적인 대응이 불가능했다. 국가 비상 상황에서 공문이 무슨 소용이 있나? 사흘만 격리하면 메르스 환자인지 아닌지 판명이 나는데,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었다. 현장에 권한을 부여하고,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위해 직접 본부장이 되어 사태를 지휘했다. 충남도 환경 연구원의 연구원과 설비만으로도 양성·음성을 결정할 수 있는데 왜 2∼3일을 허비하나? 지방정부가 주권자인 지역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더 신속하게 지킬 수 있다면 중앙정부에 의존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가 정권을 흔드는 지경까지 나아가지 않았나?

“그렇다. 박근혜 정부는 그러지 않아도 권위주의적이었는데 권한이 중앙에 집중된 시스템으로 인해 메르스나 세월호 사건 때 국민적인 비판을 받았다. 똑같은 제도를 운영해도 운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왔다. 노무현 정부는 태안 유조선 사고 때 해경과 방제단에게 무엇을 도와줄까를 물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현장 책임자에게 계속 보고를 요구했다. 현장 책임자에게 권한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위주의적인 통치 스타일이 사태를 키우고 국민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다.”

지금의 지방자치 제도 안에서 느끼는 한계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면?

“얼마 전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주민세를 주민자치위원회의 재원으로 사용토록 하겠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 충남도가 3년 전부터 줄기차게 중앙정부에 제안한 것이다. 주민자치도 재정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충남의 경우 매년 89억원의 주민세가 걷힌다. 89억원을 충남도 211개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의 재원으로 보내주면 주민들의 자치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민세의 자치 재원화는 충남이 이미 당진시를 시범지역으로 선정해서 실험 중이다. 그러나 기존 제도 아래서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주민세 하나를 주민 자치위 재원으로 돌리자는 것을 도지사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자치재정과 관련해서는 지방에서 필요한 세원에 따라서 자치입법으로 세금을 거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될 텐데 말이다. 현재 지방정부가 하는 일의 70∼80%는 중앙정부의 위임 업무다. 여름에 해수욕장의 보건과 물가관리 업무를 아직도 중앙정부가 지침을 줘서 하고 있다. 그런 업무를 왜 중앙정부가 지침을 주나. 해운대·대천·망상 등 전국 해수욕장의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휴가객이 몰리겠나? 당연히 지방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할 일을 정부가 지침까지 줘서 관리하라고 한다. 이게 다 국가가 명령하는 위임업무다. 이마저도 자치입법을 통해 할 수 있는 단체위임을 하지 않고 기관위임을 한다. 장관이 도지사에게 직접 명령을 내려버린다. 그러면 그 지침 그대로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 재량권으로 이 업무에 대한 우리 내부의 규칙을 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중앙 정부가 하는 일 중의 70%가 위임업무이고, 그중 80%가량이 또 기관위임이다. 이런 방식으로 중앙집중 통치가 계속되기 때문에 지방정치는 고갈되고 황폐화하는 것이다.”

인구절벽이 국가적 과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앞으로 30년 내에 전국 기초자치단체 228개의 3분의 1이 소멸된다는 조사가 최근 발표됐다. 인구절벽 문제와 지방정부의 역할에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가?

“인구절벽 지도는 충남도가 가장 먼저 그렸다. 2013년 일본 출장 갔다가 기내에서 <마이니치 신문>을 보는데 거기에 인구절벽과 도시소멸 기사가 나온 것을 봤다. 돌아와서 충남연구원에 충남 인구변화 추이에 따라 5000여 개의 자연마을이 장차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연구해보라고 했다. 그런 변화 추세에 따라서 우리가 도시발전계획을 어떻게 짤 것인가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인구절벽과 지방도시의 소멸은 차원이 약간 다른 문제다. 인구절벽과 상관없이 지방도시는 계속 소멸해왔다. 인구절벽이 최근 가속화됐지만 지방의 소멸은 이미 40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인구절벽 문제의 핵심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물질과 돈 위주로 성장과 발전만을 중시했지 인간의 가치에 대해 존중하고 숙고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저는 그래서 국가운영의 기본 토대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본다. 2015년 유엔과 국제사회는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만들었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지속가능한 인구와 생태를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170개의 타깃 목표를 세운 것이다. 2000년 뉴밀레니엄 이후 15년 만에 그 목표들을 버전업했다. 충남도 역시 2011년부터 도정 업무를 지속가능 지표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인권이 존중받고 사람의 가치가 훼손당하지 않는 사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바로 이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개인의 인격과 삶의 가치가 너무 땅에 떨어져 있다. 행복하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나?”

그런 목표가 지방자치의 진정한 실현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인가?

“저는 그렇게 도정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충남에 전국 화력발전의 50%가 몰려 있다. 값싼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도시에서 거리가 있는 시골마을에 발전소를 세우면 매연을 좀 내뿜어도 자연이 알아서 정화해주겠지…. 이런 생각으로 발전소를 집중적으로 건설해놓고 관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방정부가 더 주도적인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발전소를 건설하는데 산업자원부 장관과 해당 주민이 합의하면 끝이다. 그러니까 발전소 건립 반경 500m 내 주민에게 얼마간의 마을발전기금을 주고 합의서를 써서 발전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 철학이 아니면 안 된다. 그것이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보약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 사드 배치 결단 국민적 지지 필요


▎시커먼 연기를 계속 뿜어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충남 보령화력발전소. 현행법 상 발전소 건설 사업에 대해 지방자치 단체의 개입은 불가능하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생태주의가 갖는 한계도 있지 않나? 시대를 거꾸로 돌리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 말이다.

“현재의 농촌에서 과거 농경시대 마을과 인구분포를 유지하고 복원하기란 불가능하다. 충남 마을가꾸기 사업의 목표도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뛰놀던 그 옛날의 마을로 돌아갈 수 없다. 어느 정도 경제적 수익이 보장돼야 하고, 기계화된 농업이 요구하는 적정 산업인구의 문제도 있지 않겠나. 손으로 모내기하던 시절과 다르다. 트랙터로 전국의 논이 1주일 안에 모내기가 끝나 버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쌀농사는 좋은 수익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농업에 새로운 품목과 품종, 새로운 경제적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모델에 적절하게 매칭되는 농촌의 인구 규모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될 텐데, 그 마을은 옛날 방식의 소규모 부락이 아닌 다운타운 식의 마을이 될 것이다. 우리 충남도는 읍면동별, 거점별 다운타운 조성을 목표로 한다. 그 다운타운 조성을 위해 주민자치회가 주도하는 주민자치 아카데미를 지난 5년에 걸쳐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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